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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왕비님의 알바일지
작가 : 박티티
작품등록일 : 2018.12.7

만년 배우 지망생 희우는 오늘도 오디션에서 탈락하고 낙담한다. 그러던 와중 왕비역을 구한다는 알바 공고에 지원했다가 덜컥 합격하는데, 뭐? 진짜 마왕이 왕비를 구하는 거였다고? 1년의 계약기간동안 마왕성에서 벌어지는 왕비님의 흔한 알바일지

 
#10-너무 많은걸 알려고 하시네.
작성일 : 18-12-19 17:01     조회 : 243     추천 : 0     분량 : 4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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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우."

 

 알현식이 끝나고 둘만 남게되자 디노가 제일 먼저 한 말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감탄사였다.

 ​

 "내가 사람보는 눈은 있네."

 "......"

 "어떻게하면 그렇게 눈 하나 깜빡 안하고 뻥을 칠 수가 있죠? 역시 배우는 배우인가봐요."

 ​

 왕비의 방. 알현식이 끝나고 방으로 돌아온 희우는 완전히 진이 빠진채 거의 테이블에 넙적 쓰러질듯이 기대어 있다. 혹시나 내막이 들통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당장이라도 잡아먹을듯이 눈을 부라리는 노이르에 대한 압박감 속에서 한바탕 제대로 연극을 하고 난 뒤, 긴장이 풀리고 경계심이 풀리자 완전 파김치가 되어버린 것이다. 희우는 자신이 알현실에서 무슨 짓을 건지 제대로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 때 희우의 머릿속에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 방패가 없어진 것을 들키면 안된다는 생각뿐이었다.

 ​

 "'저는 전하의 운명의 상대이자 영원의 반려. 언제든 전하의 곁에 머무르며 전하를 지켜드릴 것인데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캬아,명대사네. 이거 기록해둬야 겠어요. 마계력 모월 모일, 왕비 채희우가 귀족들 앞에서 팩트로 노이르 공의 뼈를 때리다. 이야, 내가 속이 다 시원하네."

 "...그걸 어떻게 다 외우고 있어요?"

 "외운게 아니에요. 몸이 기억하는거지. 와, 소오름. 다시 생각해봐도 진짜 소가 한 318미터는 오르겠네요."

 "그거 개그에요 지금?"

 ​

 300년 묵은 아재개그, 아니 할배개그인가. 희우가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자 디노가 푸핫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노이르를 한 방 먹인것이 그렇게 기분이 좋았는지 디노의 얼굴에선 연신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희우는 창피한듯 디노의 시선을 피하며 툴툴거린다.

 ​

 "그래도 완전히 새빨간 거짓말은 아니잖아요..."

 "하긴 따지고 보면 거의 다 맞는 말이죠."

 ​

 디노가 고개를 끄덕이며 희우의 말에 동의를 표한다. 그는 홀가분한듯 머리 뒤로 깍지를 끼더니 느긋하게 쇼파 등받이에 몸을 기댄다.

 ​

 "이 정도면 1년이 아니라 10년은 해도 되겠는데요?"

 "이 짓을 10년동안 하라고요?"

 "아하하, 농담이에요. 그러기엔 희우씨 청춘이 너무 아깝잖아요. 당신도 진짜 운명의 상대를 만나아죠. 결혼도 하고."

 ​

 하긴, 쇼윈도 부부로 10년을 보낼 수는 우리 둘 다 너무 젊다-희우는 순간 디노가 300살이란 것을 잊어버렸다-. 그 때 문득 희우는 댄스 파티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디노가 만났다는 어느 한국인. 그를 떠올리던 디노의 표정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보통 감정은 아니었다. 헤어진 전여친이라도 되는걸까? 막상 한 번 궁금해지니 참을수가 없어서, 희우는 결국 조심스레 운을 떼었다.

 ​

 "저,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되요?"

 "뭔데요?"

 "그런데... 왜 왕비 알바를 구할 생각을 한 거에요?"

 "그거야 뭐, 왕비 후보중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억지로 정략 결혼하긴 죽어도 싫었거든요."

 "좋아하는 사람 없었어요? 300년이나 살았으면 최소 한명쯤은 있었을 거 아니에요."

 ​

 돌려서 묻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 희우의 말은 전여친이 있었냐 없었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전여친이 착하고 예쁜 한국인이라는 것이 궁극적인 질문이다. 그러나 디노는 불확실하게 웃기만 할 뿐이다.

 ​

 "그건 왜요? 혹시 지금 남편 과거 단속하는건 아니죠?"

 "내가 그걸 왜... 그냥 궁금해서 그래요. 다른 것도 아니고 왕비인데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뭔가 싶어서요. 무슨 드라마도 아니고..."

 ​

 대체 그 아프리카에서 만났다는 한국인이랑은 무슨 사이였고 왜 그 사람한테 왕비가 되어달라고 하지 않았니? 이렇게 그냥 툭 까놓고 물어보고 싶지만 차마 그럴수는 없어서 빙빙 돌려 말하는 희우의 노력이 눈물겹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 싶기도 하지만 이미 말 꺼낸거 무를수도 없고, 이왕이면 한 번 시작한거 끝까지 캐내보기로 하자. 거기다 희우는 진짜로 궁금하기도 했다. 아무리 그 때 마욍이 되기 위한 시험을 통과하는게 급했다고쳐도, 다른 것도 아니고 아내를, 그것도 왕비를 알바로 퉁치겠다는 생각을 누가 하겠느냔 말이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 그런 신박한 결심에 이르는지, 한번 속 시원하게 들어보고 싶다.

 ​

 "설마 모쏠은 아니죠?"

 "너무하네. 날 뭘로 보고 그래요? 이렇게 잘생겼는데 여자들이 날 그냥 냅둘리가 없잖아요?"

 ​

 희우는 얼굴에 노골적으로 불만스러움 드러내지만 디노는 뭐가 문제냐는듯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다. 쓸데없는 걸 물어본 것 같다.

 ​

 "좋아했던 사람이야 당연히 있었죠."

 "언제요? 누군데요?"

 "갑자기 왜 이래요? 너무 많은걸 알려고 하시네."

 "궁금하잖아요. 어차피 우린 진짜 결혼한 것도 아닌데 어때요, 뭐. 억울하면 내 연애사도 얘기해줄게요."

 ​

 나름대로 승부수까지 던져보지만 별로 신통치 않은 것 같다. 쳇, 어쩔 수 없지. 희우는 결국 단도직입적으로 묻기로 결심한다.

 ​

 "정 그러면 내가 맞춰볼까요?"

 "희우씨가 맞춘다고요? 어떻게요?"

 "파티에서 춤출때 말했던 사람 있잖아요. 한국까지 만나러 왔다는 그 사람."

 ​

 희우가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디노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비친다. 그는 희우가 그녀에 대해 물어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았다.

 ​

 "그 사람, 좋아했던거 아니에요?"

 ​

 디노는 희우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의 굳은 얼굴을 보자 희우는 갑자기 실수한 듯한 기분에 미안해지려 한다. 진짜 너무 많은걸 알려고 했나. 희우가 디노의 눈치를 보다가 얼른 말을 돌리려 한다.

 ​

 "에이, 말하기 싫으면 됐어요."

 "아니에요, 이미 다 눈치챈거 같은데. 맞아요,"

 

 오, 역시나. 내 촉은 틀리지 않았어. 희우는 뭔가 대단한 것이라도 해낸 듯 뿌듯해졌다.

 

 "여자친구에요? 아니면 짝사랑?"

 "사귀는 사이였어요."

 ​

 그럼 왜 왕비로 알바를 뽑은거지? 애인도 있었으면서. 희우의 궁금증은 점점 커져만가고, 호기심은 어느 순간 선을 넘는다. 그리고 디노는 그녀가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다.

 ​

 "왜 그 사람을 왕비로 삼지 않았는지가 궁금한거죠?"

 

 디노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쉰다. 그는 덤덤하게 짧은 대답을 내놓았다.

 ​

 "죽었으니까요."

 ​

 

 

 

 **

 

 

 

 

 

 "왕비님?"

 

 정신을 차려보니 로나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 희우가 눈이 동그래지며 뒤늦게서야 겨우 대답했다.

 ​

 "응?"

 "무슨 일 있으세요?"

 

 무슨 일이야 있긴 있었지. 알현식에 갔었고, 노이르와 기싸움을 벌였고, 디노가 매우 통쾌해했으며, 그리고 전여친 썰을 틀었다. 다만 그 끝이 하필 '죽었어요'라니.

 ​

 그 대답을 듣고 희우는 한동안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쁜 결말이래봤자 싸워서 헤어졌다거나 바람이 났다거나 이런 수준만 생각했었지, 설마 죽었다는 말이 나올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희우가 잔뜩 당황스러워 하다가 곧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디노는 씁쓸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젓고는 쉬라면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버렸다.

 

 그렇지만 그가 떠나고 난 뒤에도 저녁 내내 디노와 나눈 대화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괜히 아픈 기억을 들춰낸 것이 미안했고,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그가 안쓰럽기도 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심란해하는 것이 티가 났는지 결국 로나가 머리를 빗겨주던 손을 멈추고 걱정스레 물은 참이었다.

 ​

 "아니야, 그냥... 생각 좀 하느라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세요?"

 ​

 차마 시녀에게 마왕님 전여친 얘기라고는 말할수가 없어서 희우는 어색하게 웃기만 한다. 그러나 로나는 희우가 그닥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얼른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

 "오늘 알현식은 어떠셨어요?"

 ​

 노이르를 꼼짝 못하게 만든 뒤 알현식은 순풍에 돛단배가 나아가듯 평온하게 진행되었다. 아로닌이 말한 '기싸움'에서 선수를 친 덕분인지, 그 뒤의 귀족들은 모두 하나같이 고분고분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재미있었던 것은 누가 디노에게 호의적이고 그렇지 않은지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디노를 보고 뿌듯해하거나 감격스러워했고, 어떤 이들은 그저 딱딱하게 형식적으로 인사를 건넸으며, 또 어떤 이들은 갈피를 못잡고 혼란스러워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현 마왕을 지지하는 자들과 노이르를 따르는 자들, 그리고 어떻게 해야할지 갈팡질팡하는 자들까지. 여러가지 마족 군상을 직접 보고나니 기분이 묘하다.

 ​

 그런데 디노를 반대하는 마족들은 무슨 이유로 그러는걸까. 그에 대한 이유까지는 들은 적이 없었던 희우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대답대신 로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

 "로나, 성에서 얼마나 있었어?"

 "저요? 그렇게 오래되진 않았어요. 100년 정도?"

 ​

 그럼 충분히 오래 있었던 것 같은데. 어쨌든 이제 겨우 일주일 있었던 자신보다는 아는 것이 훨씬 많을테니 희우는 마저 물어보기로 한다.

 ​

 "노이르 공에 대해 알고 있지?"

 "노이르 님이요? 당연하죠. 전하의 숙부님이시잖아요."

 "그거 말고 어떤 분이신지 궁금해서. 오늘 뵈었는데 길게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었거든."

 ​

 순진한 호기심인 것처럼 말하고는 있지만 대체 그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길래 여전히 그를 지지하는 자가 있는지 의아하다. 희우는 디노와 아로닌이 아닌 다른 이가 말하는 노이르에 대해 들어보고 싶었다.

 ​

 "노이르님은 어릴적부터 아주 용맹하셨다고 들었어요. 전투에서도 엄청나게 활약하셨대요. 얼마 전 있었던 마물들과의 전투에서도 노이르 님의 공이 아주 컸다고 들었어요. 비록 선왕 전하는 돌아가셨지만..."

 "아..."

 ​

 그저 왕위만 탐내는 욕심쟁인줄 알았더니 의외로 구국의 영웅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렇게 따르는 마족들이 많았구나. 하지만 역시나 믿을만한 인물은 아닌 것 같다. 디노는 노이르가 부친을 죽였지만 그것이 '비공식'이라고 했다. 로나가 말하는 것을 보니 공식적으로 선왕은 전사한 것으로 알려진 모양이다.

 ​

 ​믿을 사람이라곤 얼마 되지 않는 마왕성, 그나마 그곳을 벗어나 만나게 된 연인의 죽음. 여지껏 디노의 삶이 얼마나 녹록치 않았을지 생각해보니, 희우는 어떻게든 그를 돕고 싶어졌다. 물론 디노 말처럼 비즈니스 관계이긴 하지만, 어찌됐든 완벽히 왕비 역할을 해낸다면 그에게도 도움이 되겠지. 그녀는 노동 의지를 불태우며 마음을 다잡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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