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인지 낮인지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자욱한 연기를 머금은 숲이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구분 불가능할 정도로 숯검댕을 온 몸에 뒤집어 쓴 듯 전신이 탄 사람이 하나, 연기를 헤치고 나왔다. 역시 전쟁은 해서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이 몸에 남은 시간은 얼마 없었다.
이 사람은 죽음에 대해 두려울 것이 없었다. 다만 유성우같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재앙들이 싫을 뿐이었다. 다음은 얼마나 더 끔찍할 삶일지. 연기에 가려져 들리지 않던, 말라죽은 잔디를 밟는 발소리가 들렸다.
“……네 마지막은 언제고 숲이었지. 시체조차 보기 싫다며.”
“절 죽일 건가요? 저는 전쟁 중에 중상을 입고 도망쳐 나온 병사에 불과합니다. 한쪽 눈은 이미 보이지 않고, 나머지 눈도 당신을 구체적으로 볼 수도 없습니다.”
“그거 다행이네.”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걸 다행이라 여길 사람이 얼마나 있으려나. 숯검댕은 맞은편의 사람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남자 여자를 따질 때가 아니었지만 저 중성적인 목소리는 대체 정체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지게 고개를 들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흐릿한 시선 사이로, 뻗어오는 하나의 손이. 타버려 재인지 살인지 알아볼 수 없는 어깨를 만졌다. 헛기침으로 목을 푸는 소리가 두어번 들려왔다.
흐릿하게 서 있는 사람은 짧게 몇 글자로 이루어진 말을 건넸다. 사방에서는 폭발을 짐작케 하는 굉음이 들려왔고, 또 그 뒤에는 사람들의 비명이 이어졌다. 숯검댕은 사방팔방에서 다가오는 진동들 사이에 이질적으로 숨겨진 목소리를 잡아내었다.
“제 모든 이름을 아는 사람이군요.”
“네가 두려워하는 걸 알고 있어.”
“아무도 모를 시작이네요. 당신이 봐 준다니 다행이군요.”
“여전히 모든 이름을 아는 사람에겐 친절하네.”
“어느 곳에서 오셨든. 제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단 걸 아시려니까요.”
맞은편의 사람을 중심으로 액체가 바닥으로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사람도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구나. 숯검댕은 얼마 남지 않은 힘으로 손을 들어 올려 제 어깨를 만진 손을 꽉 잡았다. 망가져버린 신경계는 이 손이 따뜻한지, 차가운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숯검정은 그 손을 제 뺨 한 구석에 담아두기로 했다.
“제 두려움은, 언제고 풀릴지 모르겠네요.”
숯검정은 바닥으로 풀썩 쓰러졌다. 한참을 숯검정의 앞에 서 있던 흐릿한 사람은 자신의 망토를 벗어 타버린 몸 위를 덮어주기만 했다. 이 손의 주인은 무슨 생각을 했는가, 그건 제게 상관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