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과 많은 얘기를 하며 친목을 다지면서 어느덧 전학온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이렇게 별 특별한 일 없이 지루한 나날을 보내던 나에게 문득 할 말이 있으신 듯 담임선생님께서 나를 찾아오셨다.
“준영아, 학교는 잘 적응 됐어?”
“네 뭐, 첫날이랑 비교해서 많이 좋아졌어요. 근데 무슨 일로 찾아오셨어요?”
나는 뜻밖이라는 표정을 한 채 선생님께 물어봤다.
선생님은 마침 잘됐다는 듯이 하려고 하시던 이야기를 꺼내셨다.
“너 혹시 야자에 대해서 아니?”
“야자라면 혹시 야간자율학습이요?”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단어의 뜻이 맞는지 선생님께 되물어봤다.
“응 맞아 그거. 우리 학교도 야자 아니, 야간자율학습 하는 거 알지?”
“네 뭐.”
“그래서 그런데, 너는 야자 할거니? 아님 말거니? 슬슬 정해야 하거든.”
전에 있던 고등학교에서도 했던 경험이 있는 터라 나는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다. 그래서 선생님께 그 마음을 전달했다.
“네 할게요. 전에 있던 고등학교에서도 했었고, 공부도 슬슬 해야 하니까요.”
“그래 잘 생각했어. 그럼 한다고 알고 있을게.”
선생님은 기쁘다는 듯이 반응해주셨다. 아마 야자를 하는 학생이 많으면 그 반 선생님이 교장선생님께 인정받거나 그런 모양이다.
그렇게 나는 점차 이 학교에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평소 말주변이 없는 탓인지도 모르지만 아직도 학교에서 말을 나누는 사이라고는 민서 이외에는 거의 없었다.
“이야 왔냐?”
반갑다는 듯이 손을 흔들며 민서는 말했다.
“아, 어 안녕”
오자마자 받은 인사에 나는 내 짝이나 다른 자리에 있는 친구보다는 민서와의 얘기에 열중해있었다. 민서는 할 이야기가 많다는 듯이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말이야..”
“야”
그런데, 대화 중 갑자기 짧고 청아한 한 목소리가 내 귀 안으로 난입했다.
나는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 목소리의 주인이 전혀 예상치 못하는 사람의 것임을 알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
“할 얘기가 있으니까 잠시 밖으로 나와.”
바로 학교의 톱스타인 내 짝인 그녀가 말을 건 것이다. 그녀는 짧고 강하게 한마디를 남긴 뒤 밖으로 나갔다.
나는 얼빠진 듯 잠시 가만히 있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 민서에게 말했다.
“아, 미안 잠깐 갔다 올게.”
“그래 신경 쓰지 마.”
그는 상냥하게 대답해줬다.
나는 그녀를 따라 복도로 나가면서 수많은 생각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이 학교 톱스타이다. 말주변 없고 눈에 띠지도 않는 나에게 말 걸 이유가 전혀 없는데 말을 걸었을 뿐만 아니라 따라 나오라니. 나는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숨을 내쉬며 무표정인 얼굴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녀가 다가오는 날 보더니 항상 무표정이었던 그녀의 얼굴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고선 그녀가 입을 열었다.
“너 혹시 변장 한 거야? 아니면 앞을 볼 수 없는 거야?”
“응?”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첫 대화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무슨 말..”
“아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열변을 토하듯이 상기된 얼굴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네 짝이 바로 그 김다휜 이라고? 김. 다. 휜?“
“응, 첫날에 선생님께 이야기 들어서 알아 근데..”
“알아? 안다고? 근데 어떻게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이 지낼 수 있어?”
그렇다. 그녀는 항상 수많은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점심시간이든 저녁시간이든 그녀가 혼자 있는 일은 이렇게 이른 아침시간이 아니면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뛰어난 외모와 학업 실력 때문인지는 몰라도 학급 친구들은 물론 선배, 선생님까지 그녀는 항상 대인기였고, 그런 자신에게 하나의 관심도 가지지 않는 내가 눈엣가시였나보다.
“하지만 내가 너에게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잖아.”
나는 그녀가 나를 부른 이유가 기대와는 다른 이유였기 때문에 무표정인 채 딱딱한 말투로 대답했다.
“하? 뭐.. 뭐라고?”
그녀는 당황한 듯이 더 빨개진 얼굴로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나.. 나도 딱히 너에게 관심이 있어서 얘기한 건 아니거든?”
“그래? 그럼 할 얘기는 끝이지?”
나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그녀의 검은 눈동자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나는 순간 당황해서 어찌 할 줄 몰라 했다. 그녀의 어이없는 이유를 듣고 난 뒤 그녀의 말을 더 이상 듣고 싶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울리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당황한 나는 걱정스러운 말투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야.. 괜찮아?”
“됐어.”
그녀는 눈물을 훔치고 나를 손으로 밀며 도망가듯 떠났다. 그 자리에서 나는 뭔가가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며 차갑게 말한 내 자신을 책망하고 있었다.
- 여자 화장실 -
“바보.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었잖아. 이제 용서받기에도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난거야..?”
다휜은 화장실에서 혼잣말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조용하고 잔잔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