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날다람쥐1호의 인연이 이어진 건 그 후의 일 때문이었다. 그녀는 아이의 부모를 찾아 돌고 돌아 그의 집까지 왔다. 먼저 찾아간 사무실에서 그들은 아버지의 은사님-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비서-을 만났고, 아버지가 '급한 일' 때문에 집에 돌아갔다는 전언을 받았다.
"급한 일이라니요?"
날다람쥐1호보다 당황한 듯 그녀는 거듭 물었다. 뒷말은 물끄러미 그녀를 보는 그를 보고 삼켰지만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인 그를 잃어버린 것보다 급한 일이 있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날다람쥐1호는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듣는 순간 아, 할 정도로 깔끔하게 떨어지는 결론이었다. 열 살답지 않은 침착한 그의 모습을 보고 그녀는 잠시 침묵했다.
"주소 알려주세요."
이미 해가 졌고, 그때는 몰랐지만 그녀는 퇴근할 시간이었다. 오후에 만난 아이 때문에 그녀 본연의 일은 하지도 못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씩씩하게 그를 차에 태우고 그의 집으로 갔다. 집앞에서 이야 집좋다 라고 말했고 밝게 웃었다. 애써 밝은척 하려는 몸짓이 아니라 날다람쥐1호는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집안에 들어가기도 전에 무언가가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났다. 들어가지 말까? 그녀가 물었을때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왜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래서 그녀와 그는 들어갔다. 들어갔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싸우고 있는, 한참 감정이 최고조로 치달은 상황을 그대로 목도했다.
먼저 두 사람을 알아본건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아들을 보더니, 그가 손을 잡고 있는 그녀에게로 시선을 옮겨갔다. 날다람쥐1호는 어쩐 일인지 순간 그녀의 손을 세게 꽉 잡았는데 그때를 놓치지 않고 어머니의 관자놀이 아래 파란힘줄이 불끈 솟아올랐다.
그녀가 말할 틈도 없이 어머니는 달려들었다. 그녀의 기다란 머리칼을 우악스럽게 잡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년이지? 어디 뻔뻔하게 집까지...!
분노에서 경악으로 얼굴을 바꾼 아버지는 서둘러 어머니를 말렸다. 오늘 처음 본 사람이라는 말은 어머니에게 통하지 않았다. 소심하게나마 왜이러세요. 아니예요 를 외치고 있는 그녀의 목소리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가 힘을 써 어머니를 그녀에게서 떨어뜨린 후에야 상황은 마무리 되었다. 아버지는 차마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하면 상황이 악화될걸 알아서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도 갑자기 말려든 일의 인과관계를 따질 틈이 없었다. 어머니는 이제 아버지에게 달려들었다. 아버지가 그 정신없는 와중에 그에게 휴대전화를 쥐어줬다. 날다람쥐1호는 눈치빠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를 잡아끌었다. 어른인데도 그녀는 순순히 그의 손에 이끌려 나왔다.
그가 죄송하다고, 말하려는 찰나 그녀가 말했다.
"미안.."
머리가 마구 뒤엉킨 그녀의 말에 그는 깜짝 놀랐다. 미안할건 난데. 우리 부모님이 싸워서 잘못된건데. 어리다고 해서 이게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 꼴이란걸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그를 흘끗쳐다보았다. 정말 미안한 얼굴이었다. 그녀의 말과 얼굴은 그때도 그 후에도 항상 진심이었다.
"서러워서 안되겠으니까..나 좀 울게."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정말 울었다. 무릎을 굽히고, 산발한 머리로 얼굴을 가리고선 어깨를 들썩이며 낯선 이의 집 앞에서 울었다. 너무 서럽게 울어서 날다람쥐1호는 그녀를 위로해줘야할 것 같은 의무감을 느꼈다. 그는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토닥토닥 다독여주었는데, 그 손이 너무 작아 위로가 되기엔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그 다독임에 더욱 서럽게 울었다. 충분히 이해되는 모습이었다. 그도 어머니가 다독여주면 더욱 서럽게 운 기억이 있었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다정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는 괜스레 슬퍼졌다.
그 날 이후로 날다람쥐1호 앞에서 그녀가 운적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