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아무런 미동초차도 없는 하륜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가 두려운 듯 흔들렸다.
"설마..."
그리고 떨리듯 헝크러진 머리를 쓸어내며 그의 가슴에 귀를 대어보자 다행이도 그의 심장은 거칠게 뛰고 있었다.
"다행이야... 정말..."
이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내 도움을 요청할 사람들을 찾는 듯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워낙 외진 곳이라 아무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저씨.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가 도와줄 사람 불러 올 테니까..."
이수가 의식이 없는 듯 한 하륜을 걱정스럽게 살피며 다급하게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탁...
하륜이 그녀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엄마야~!!"
하륜이 정신을 잃은 체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손목을 움켜잡자 이수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그대로 주저앉아 그를 가만히 불러보았다.
"이봐요. 정신이..."
그리고 그를 오롯이 바라보며 말을 멈추었다.
하륜이 그대로 그녀의 손목을 움켜쥔 채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자 이수가 당황한 듯 그의 손에서 그녀의 손을 빼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에게서 빠져나가려하면 할수록 그의 손이 더욱 더 그녀의 손을 절박하게 움켜잡자 이수가 체념하듯 그대로 그의 곁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로 하륜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얼마 전 이 곳 작은 어촌마을에 홀연히 나타난 남자였다.
훤칠한 키에 운동으로 관리한 듯 탄탄하면서도 늘씬한 몸매에 만화 속에서 튀어 나왔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그는 수려하면서도 잘생긴 남자였다.
이수가 그런 그를 처음 본 것은 두 달 전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바닷가에서였다.
17살. 그녀는 이른 아침부터 멀리 떨어진 고등학교에 등교를 하기위해서 언제나 같은 시간에 그 앞을 지나갔다. 그 시간 그 곳에 그 남자는 항상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반 친구 미경과 함께 그 시간 그 곳을 지나치며 이수가 저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그가 항상 서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와~ 저기 봐라!! 예술이다. 예술~!!"
하륜을 발견한 미경이 흥분한 듯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그를 가리켰다.
"이수야~ 저기 좀 봐봐. 저 남자... 완전 예술이다. 그치~"
"어... 어."
"내가 얼마 전에 저 남자를 가까이에서 봤는데 심장이 딱 멈추는 줄 알았어. 겁나게 잘 생겼어!! 내 생에 저렇게 잘생긴 남자를 또 볼까싶어~"
미경이가 그대로 걸음을 멈추자 이수도 그녀를 따라 멈춰 섰다.
"그런데 그거 알아~?!"
"뭘..."
미경이가 그를 대놓고 바라보며 목소리를 낮추고 이수에게 작게 속삭였다.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저 남자 개망나니래~"
"개망나니..."
"그래~ 그리고 완전 놀라운 건 대한그룹 둘째 아들이래~!! 너도 알지. 우리나라 최고 의 그룹이잖아!! 완전 다이아몬드수저야!!"
이수가 그대로 하륜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하륜이 그녀를 향해 있었다.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려왔다. 그리고 오롯이 느껴지는 그의 시선에 당황한 듯 이내고개를 돌렸다.
정밀 너무나도 먼 거리였다. 하지만 그 남자의 눈동자가 그녀의 눈동자를 오롯이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이수야. 있잖아~"
미경이가 그녀의 상념을 깨우는 듯 다시 발길을 재촉하며 비밀얘기를 하듯 더욱 더 작게 속삭였다.
"저 남자. 첩의 자식이래~ 그것도 그 여자가 마담이었데..."
"어?!"
"몰라~?! 술집마담!! 서울에서 어마어마한 술집 샬 롱의 잘나가는 고급마담이었데~"
"그래..."
"그래서 그런지 말썽이란 말썽은 다부리고 없는 사고도 만들어 치는 망나니 중 개망나니래~ 피는 못 속이나 봐. 그치!!"
미경이가 다시한번 힐끔 뒤돌아보며 아쉬운 듯 내뱉었다.
"인물이 정말 아깝다 아까워~ 저 기럭지에 저 빛나는 외모가 정말 아깝다."
이수가 잠시 하륜을 돌아다보았다. 왠지 그는 슬퍼 보였다.
"악~!! 이수야!! 늦었다. 빨리 가자!!"
저 멀리...
하륜이 사라져가는 이수를 행해 시선을 떨구었다.
*****
토요일.
이수가 바닷가에 나와 섰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일찍 일어나 필요가 없었지만 이수는 뭐에 홀린 것처럼 그 시간 그 바닷가를 찾았다. 하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없네..."
이수가 왠지 알 수 없는 허탈감에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저 멀리 절벽 위에 선 그가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순간 그녀의 심장이 알 수 없이 울렁거렸다. 그리고 그녀의 눈동자가 그에게 홀린 것처럼 하륜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왠지 그의 몸짓이 위태롭고 위험해 보였다.
그 순간.
하륜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가 그녀의 눈동자와 뒤엉켰다.
하륜이.
그녀에게서 천천히 고개를 돌려 먼 바다를 황망하게 바라보며 한발 한발 무너질 듯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이봐요. 그러지 마요..."
이수가 미친 듯이 그를 향해 내달렸다.
"제발!!"
이수가 우뚝 멈춰버렸다
그녀의 눈동자가 거세게 요동쳤다.
하륜이...
그대로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안 돼!! 안 돼... 안 돼!!"
이수가 바다로 뛰어들었다.
하륜이 바다 속으로 하얗게 사라져버렸다.
제발...
그녀가 미친 듯이 그를 찾아 울렁거리는 바다 속으로 헤엄쳐 들어가자 하륜이 짙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안 돼!!
그녀가 그를 잡았다.
*****
어느덧
태양이 중천에 떠오르고.
오래도록 그의 곁을 지키며 앉아있던 이수가 제 손목에 전해지는 아릿한 열기에 그의 손을 바라보았다.
마치..
그는 그녀의 손목이 제 생명 줄인 것 마냥 놓지 않은 채 괴로운 듯 몸을 한껏 웅크렸다.
"엄마야~!!"
그리고 그녀의 허리를 휘감아 그대로 아이처럼 그녀의 배에 얼굴을 묻자 이수가 놀란 듯 당황해하며 그를 떨쳐내려는 듯 하륜을 힘껏 밀어내 보았지만 하륜은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그녀의 허리를 절박하게 끌어안았다.
"이. 이봐요!! 미쳤..."
"어머니..."
하륜이... 운다.
이수가 그대로 멈춰버린 채 엄마에게 매달리듯 애타게 제 품 속을 파고드는 그를 조심스럽게 애틋하게 끌어안았다.
그대로.
그의 눈물이 그녀의 심장을 알 수 없이 적셔왔다.
가슴 아프게...
*****
3개월 전.
"꺼져..."
감정 없이 내뱉어진 그 한마디에 혜림이 무너질 듯이 돌아섰다.
하륜이 그런 그녀를 경멸이 가득한 눈으로 미칠 것 같이 아픈 심장으로 그녀가 제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아프게 바라보며 서 있었다.
"빌어먹을 차 혜림... 빌어먹을..."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져버린 그녀의 흔적을 저도 모르게 애타게 쫓으며 하륜이 두 주먹을 바스라 질듯이 움켜쥐었다. 그런 그의 심장에 눈동자에 무너질 것 같이 사라져버린 그녀의 모습이 가시가 되어 아프게 박혀왔다.
그것이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날 밤.
그녀의 쓸쓸한 저택에서 한 발의 총성이 가슴 아프게 울려 퍼졌다.
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