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휘의 컨디션 난조로 결국 연호들은 울다 지친 그녀를 데리고 본부로 복귀하는 수밖에 없었다.
연호의 본래 계획은 로빈과 혜혁을 화해시키는 것이 가장 첫 번째였다.
두 번째는 본부 보다 좀 더 활발하고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인 암살부 간부들과 저녁을 함께 하면서, 다휘의 암울한 기분을 풀어주려 했었다.
그러나 휘원의 모습만 봐도 눈물을 흘리는 다휘를 보며, 역시 겉으로만 괜찮은 척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속은 전혀 멀쩡하지 않았다.
어제의 데자뷰를 느끼며, 연호는 자신의 어깨에 기대어 잠든 다휘를 천천히 다독였다.
그들의 맞은편 자리에 앉은 은호는 자신의 턱을 쓸며 연호와 다휘를 번갈아 쳐다봤다.
“··· 보스.”
“응?”
은호의 부름에 연호는 고개를 돌렸다. 조용하던 차 안의 모두가 은호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다휘 말이에요.”
“··?”
“조금 휴식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어?”
은호가 조심스레 말했다. 그녀의 말에 모두가 의문을 표했다.
비록 어제 오후에 와서 하루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충분한 혼자 있을 시간이라던가·· 주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니까, 우리는 좀 빠져주자 이거죠. 자신이 스스로를 위할 수 있게 말이에요. 오늘도 보셨잖아요. 휘원 님 사진 보자마자 세상 떠나가듯이 울었잖아요. 우리가 곁에 있으니까, 걱정 하니까, 겉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 한 거지.” 은호가 말했다.
그녀의 말에 로이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의 영역인 듯 했다.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우리랑 그 여자랑 무슨 상관이 있어서? 자기 혼자 추스를 수 있는 일 아닌가.”
그의 무미건조한 목소리에 동감한다는 듯 도담이 고개를 끄덕였다.
로빈은 ‘외부인’의 입장에서 느끼는 감정을 이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그는 로이드의 말에 반박했다.
“아니지. 다휘는 우리랑, 너희랑 다르잖아. 일반인이라고. 평생 누군가의 죽음을 경험하는 횟수가 손에 꼽힐 수 있어. 죽음을 경험하고 뭐고, 우리는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살인자라고. 솔직히 여기서 총 안 잡아본 사람도 있어?”
로빈이 모두를 보며 말했다.
도담은 로빈의 말을 100% 공감할 순 없었지만, 다휘의 입장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한편, 본부로의 복귀의 대열에 합류한 선우는 모든 자초지종은 몰랐지만, 대충 상황의 전후는 알 것 같았다.
‘섬세하지들 못하군. 이런 투박한 남자들 사이에 있으려니, 서은호에게만 의지하려 했던 거겠지.’ 그가 모두를 보더니 눈을 감으며 한심하다는 듯 숨을 길게 내뱉었다.
그도 마찬가지로 감정에 예민하지는 않지만, 객관적으로 상황을 판단할 수는 있었다. 그의 생각에도 다휘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다.
연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종합적으로 은호는 다휘가 우리랑 떨어져 지내면서 휴식을 좀 가졌으면 좋겠고. 다들 동의한다는 거지?”
그의 물음에 은호와 로빈, 선우, 그리고 진탁은 긍정의 의사를 표시했다.
진탁은 운전 중이라 뒤를 돌아볼 순 없지만, 모든 대화를 똑똑히 듣고 있었다.
“·· 그렇지만, 다휘가 위험한 것은 사실이야. 유 환이 만약 그녀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안다면···.”
연호는 다휘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의 이름만 생각해도, 얼굴만 떠올려도 치를 떨 정도로 싫었다.
은호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그것대로 위험했다.
유 환은 자신의 일에 실수가 생겼다면, 그는 어떻게 해서든 다휘를 ‘제거’할 것이다.
“휘원이 그랬던 것처럼 경호를 붙이는 건?” 도담이 말했다.
휘원은 자신이 암흑의 세계로 발을 들이고 다휘의 걱정이 심해졌다.
그래서 자신의 부하들을 시켜 다휘를 감시하게 만들었다. 물론 들켰을 때는 팬이라고 둘러댔었지만.
“·· 그래. 그렇게 하자. 다휘가 스스로 우리의 곁에 있기를 원할 때까지, 혼자 두자.”
모두의 의견이 합쳐졌다.
연호는 다시 혼자 남겨지게 될 아이를 끌어안았다.
미안해, 혼자 있게 해서.
연호는 자신의 진심이 전해지길 바라며, 동시에 다휘를 다시 만나게 될 날을 기대했다.
다휘는 아무 것도 모르고 깊은 잠 속에서 가족들의 흔적을 찾고 있었다.
* * * (그 날 저녁) * * *
다휘는 부스럭거리며 천천히 눈을 떴다.
익숙한 천장이었다.
포근한 이불과 익숙한 냄새, 그리고 어두운 방 안.
그녀는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내·· 방···?” 그녀의 의문 가득한 목소리가 울렸다.
이곳은, 다휘의 집이었다.
나는 분명, 암살 전문부에서··· 어라?
나 차 안에 타고 있지 않았나?
상체를 일으킨 다휘는 당황한 기색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디로 보나 자신의 보금자리였다. 그녀는 침대에서 벗어나 방 안의 불을 켰다.
환히 밝아진 방 안.
잘 정돈된 책상과 그 앞에 하얀 쪽지가 눈에 띄었다. 다휘는 책상 앞으로 가서 쪽지를 손에 들었다.
‘다휘야. 장례식은 내일 오전 9시에 FW 병원 장례식장으로 가면 진행해 줄 거야. 언제든지 연락 줘. 010-XXXX-XXXX, 차 연호.’
정갈한 글씨체였다. 다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쪽지를 손에 쥔 채 방 밖으로 나갔다.
“하···. 이게 뭐야.”
자신을 위해 연호가 준비했던 옷장을 가득 채운 옷들이 가지런히 소파 앞 탁자 위에 있었다.
그리고 결혼식에서 입고 있었던 하늘빛 원피스도 잘 정돈되어 옷걸이에 걸려서 거실 한쪽에 있는 행거에 있었다.
아무도 없는 그녀의 집은 속마음처럼 공허했다.
다휘는 그대로 쪽지를 들고 있지 않은 손을 들어, 어느새 흐르고 있는 눈물을 닦아냈다.
“또·· 혼자야.”
물기에 젖은 목소리가 집 안을 맴돌았다.
다휘는 또 다시 주저앉았다.
그리고 메말라 더는 나오지 않을 줄 알았던 눈물이 그녀의 손 틈새로 흘러넘쳤다.
집을 비추는 조명은 밝았지만, 그녀의 마음은 가장 어두운 장소였다.
겉으로라도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면, 그들도 자신을 받아들이고 결국에는 정말 아무렇지 않은 상태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아니었다. 자신의 과한 생각이었다.
원래 혼자였는데, 너무 많은 것을 바랐던 것이었을까.
휘원이 남기고 간 선물처럼 느껴진 그들, bloody ellipse는 차마 열어보지도 못한 채, 포장지만 건드려보고 그녀에게서 떠나갔다.
* * *
다음 날 오전 9시.
어느 한 빌딩 앞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건물에는 커다랗게 'NEU ENT.' 라고 간판이 걸려 있었고, 사람들 사이를 뚫고 검은 고급 승용차는 부드럽게 멈췄다.
차에서 내린 한 남자, 우진은 수심으로 가득한 표정이었다.
회사의 간판 발라드 가수인 호윤은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해야했고, 덕분에 활동 예정 시기와 겹쳐 많은 스케줄을 미뤄야 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회사 소속 작곡가들 중, 나이는 어리지만 굉장히 감이 좋은 ‘다휘’에게 어제 아침 급하게 연락이 와 자택 근무를 하고 싶대서 그러라고 했다.
그러나 오늘 아침 다시 연락이 와 가족상을 당해 휴가를 달라는 것이었다.
NEU 기획사의 대표인 그는 며칠 새 일어난 많은 일들에 골을 썩이며 출근하고 있었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그래요.”
“대표님, 좋은 아침입니다.”
“네, 수고해요.”
우진은 회사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자신의 방, 대표실을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그때 마침, 그의 핸드폰이 진동을 울리며 전화가 오고 있었다.
발신자는 ‘다휘’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는 목을 가다듬고서 그녀에게서의 전화를 받았다.
“네, 무슨 일이에요?”
[저기·· 대표님. 죄송하지만, 오늘 안 바쁘시면 같이 있어주시면 안 될까요?]
“예?”
그녀의 어쩐지 풀이 죽은 듯, 기운이 없는 목소리를 들으며 우진은 띵 소리와 함께 멈춘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리고 대표실 앞의 데스크에 앉은 비서를 보며 핸드폰을 옷 속으로 숨기고서 말했다.
“오늘 스케줄 부대표에게 돌리세요.”
“네? 대표님? 오시자마자 무슨··”
“부탁합니다.”
의문을 표하는 자신의 비서를 뒤로하고, 우진은 다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다휘를 향해 말했다.
“다휘. 어딥니까? 갈게요.”
[FW 병원 장례식장이요··. 감사해요, 대표님.]
“아닙니다. 20분만 기다려요.”
그는 정장 자켓 주머니에 넣은 차 키를 다시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