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면 뭐. 녹음이라도 하고 있냐?”
세영은 저도 모르게 움찔하고 말았다.
아차. 바로 자신의 실수를 눈치채고 수습하려 했으나 때는 늦었다.
“아닌데요.”
“뭐냐 그 반응은?”
호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설마 진짜로 녹음하고 있냐?”
“아니라니까요.”
세영이 뭐라고 말하던 호진은 이미 반쯤 확신한 듯했다.
“이거 진짜 미친년이네?”
“…….”
잠시 호진의 기에 눌린 세영이었지만 미친년이라는 말에 정신이 돌아왔다.
“봐주니까 고마운 줄 모르고 기어오르잖아?”
“봐주긴 뭘 봐줘요. 잘못한 게 있으니까 녹음할까 봐 지금 겁먹고 있는 거 아니에요. 사람들이 알게 되는 건 선배도 두려운가 봐요.”
“진짜 녹음하고 있나 보네.”
세영의 비꼼에 호진이 내뱉었다.
세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호진은 세영을 찢어 죽일 것처럼 노려보았다.
세영도 지지 않고 호진을 노려봤다.
“녹음한 거 내놔. 핸드폰으로 하고 있냐?”
“싫어요!”
호진은 세영에게 다가와 세영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어깨를 쥐어 잡았다.
그리고는 멋대로 옷을 뒤지려 했다.
세영은 격하게 몸부림치며 저항했다.
아무리 저항해도 작정한 남자의 힘을 이겨낼 순 없었다.
그렇지만 세영은 죽을힘을 다해서 호진을 밀어냈다.
그 과정에서 호진의 손에 생채기가 났다.
“이런 씨…….”
따끔한 감각에 호진이 자신의 손을 확인했다.
아주 작은 상처였음에도 호진의 눈은 분노로 번뜩였다.
“좋게좋게 봐주려고 했더니.”
이건 진짜 위험했다.
그의 눈이 완전히 맛이 간 것이, 정말 위험했다.
세영은 도망치려 했지만 호진이 더 빨랐다.
“아악!”
“어딜 도망가려고.”
호진이 세영의 머리카락을 우악스럽게 잡아당겼다.
뒤에서 비명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진희일 것이다.
호진은 정신이 팔려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정신 차려야 한다.
고통에 소리를 지르면서도 세영의 정신은 말짱했다.
세영이 격하게 저항하지 않자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있던 손이 느슨해졌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세영은 그의 손목을 물어버렸다.
“아악!”
호진이 고통에 소리를 질렀다.
세영은 있는 힘껏 더 세게 그의 손목을 깨물었다.
그리곤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더 이상 당하고만 있지는 않으리라.
당한 만큼, 아니 그보다 더 갚아 줄 것이다.
뿌듯함도 잠시, 거친 동작에 세영은 버티지 못하고 떨어져 나갔다.
엉덩방아를 찧은 세영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진짜 씨발!”
호진이 주먹을 휘둘렀다.
“꺄악!”
뒤에서 진희가 비명을 지르는 것이 들려왔다.
피할 틈은 없을 것 같았다.
세영은 다가올 충격을 예상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끅, 커억! 컥!”
예상했던 충격 대신, 고통스러운 듯한 호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을 떠보니 도겸이 호진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도겸이 왜 여기에?
세영은 멍하게 바라보았다.
남자는 후드에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세영은 알 수 있었다.
도겸이 맞았다.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걸까, 세영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호진의 고통스러워하며 컥컥대는 소리가 현실임을 알려줬다.
도겸은 그를 떨어뜨려 놓는 데서 멈추지 않고, 호진이 조금 전 그랬던 것처럼 주먹을 들어 그를 때리려고 했다.
“야, 이 미친놈아! 그만두지 못해?”
그러자 웬 남자가 달려오며 소리쳤다.
그 뒤로는 또 다른 여자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두 사람은 호진을 때리려는 도겸을 필사적으로 말렸다.
“정신 차려! 무슨 짓을 하려고 그래!”
“놔! 저 새끼가 방금 무슨 짓을 하려 했는지 못 봤어?”
“아니 나도 그 마음은 알겠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여태 네가 쌓아왔던 것들 다 무너뜨리고 싶어?”
“그래! 네가 참아!”
도겸의 팔을 잡아당기며 승완이 외쳤다.
그 말에 세영의 눈이 번쩍 뜨였다.
자신 때문에 그런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세영은 잘 일으켜지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몸을 일으켰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달려가 도겸과 호진 사이를 막아섰다.
“그만, 때리면 안 돼.”
조급한 마음에 거친 목소리가 나왔다.
“때릴 가치도 없는 놈이야. 그러지 마.”
세영은 도겸과 호진 사이를 겨우겨우 조금 벌려 놨다.
세영을 보자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던 도겸이 점차 누그러들었다.
씩씩 숨을 내쉬면서도, 도겸은 호진의 멱살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뺐다.
도겸이 손을 내려놓자 승완과 미연이 안심했는지 숨을 들이켰다.
세영도 마찬가지였다.
이성을 찾은 도겸은 세영의 안위를 가장 먼저 확인했다.
“다친 곳은 없어?”
다급하게, 그러면서도 조심스럽게 세영의 어깨를 붙잡고 이리저리 확인했다.
그 부산스러운 움직임에 세영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괜찮아. 안 다쳤어.”
살짝 떨고 있던 몸을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힘주어 떨리지 않게 만들었다.
그제야 조금 진정한 도겸이 푸욱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그렇게 말한 도겸은 고개를 돌려 호진을 확인했다.
그는 잠시 정신을 잃었는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저 새끼가 그 새끼야?”
잇새로 뿌드득.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응. 맞아.”
호진을 보자 다시 화가 치솟는지 도겸이 으르렁거렸다.
“저 새끼가 나중에 또 너한테 무슨 짓 하려고 하는 거 아니야? 그런 생각은 꿈에도 못 하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지 마. 그럴 필요 없어. 다 잘 해결됐어.”
세영은 널브러진 호진이 도겸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도록 가리며 한숨을 쉬었다.
행여나 도겸이 호진에게 또 달려들까 걱정이었다.
도겸을 상대로 이런 걱정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넌 이게 잘 해결된 거야?”
그때 도겸이 날카롭게 말했다.
안 그래도 찌푸려져 있던 도겸의 미간은 더욱 찌푸려져 있었다.
“어…….”
세영은 자신의 말에 어쩐지 도겸이 더 화가 난 것 같아 당황스러웠다.
뭐라 대답도 못 하고 눈을 도르륵 굴리고 있었다.
도겸도 화를 풀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어색한 침묵이 감돌기 시작했다. 세영은 어쩔 줄을 몰랐다.
그때 승완이 두 사람 사이에 불쑥 끼어들었다.
“안녕하세요. 도겸이 친구 승완이라고 합니다. 저도 배운데 혹시 알아보시겠어요? 이런 상황에서 인사라니 조금 어색하시겠지만, 말씀 많이 들었어요.”
말과 달리 전혀 어색하지 않은 듯, 승완은 쾌활한 말투로 인사를 건네 왔다.
도겸과 마찬가지로 얼굴을 꽁꽁 싸매고 있어서 눈밖에 볼 수 없었다.
그는 눈꼬리를 휘어가며 웃고 있었다.
눈밖에 안 보이는데 대체 어떻게 알아보라는 건지.
그래도 승완이 침묵을 깨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세영도 인사를 건넸다.
“아, 안녕하세요. 죄송해요. 제가 TV를 잘 안 봐서…….”
“에이, 아니에요. 전혀 죄송하실 필요 없어요. 이쪽은 도겸이 메이크업을 맡아주시는 미연 누나예요.”
손사래를 쳐가며 괜찮다고 말한 승완이 이어서 미연을 소개했다.
세영의 뒤에 있던 미연은 다정하게 세영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안녕하세요. 괜찮아요? 다친 곳은 없다니 다행이지만, 애초에 우리가 좀 더 일찍 도착했으면 좋았을 텐데.”
어깨에 닿는 감촉에 살짝 놀란 세영이 도리질하면서 말했다.
“아 아니에요. 구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그리고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다 이상함을 깨달은 세영이 눈을 깜박였다.
“그런데 여긴 어떻게 오신 거예요?”
승완이 도겸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웃었다.
“다 도겸이 덕분이죠. 얘가 오늘따라 안절부절못하고 막 서두르더라고요. 무슨 일인가 해서 물었더니 세영 씨가 오늘 학교에 간다고, 걱정된다고 하더라고요.”
“아…….”
세영은 눈만 껌벅였다.
이 사람들도 자기 일을 알고 있나 보다.
놀랍게도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대신 도겸이 자신을 걱정한 것만 신경 쓰였다.
도겸이 자신을 걱정했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남의 귀로 들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이럴 때가 아닌데, 가슴이 간질간질했다.
미영이 이어서 말했다.
“어찌나 세영 씨를 걱정하던지. 조금 꼴불견이었는데 걱정할 만했네요. 일이 하나 취소돼서 다행이었지, 아니면 큰일 날 뻔했네요. 도겸이가 재촉해서 서둘러왔는데 진짜 다행.”
“미연 누나가 운전했는데 어찌나 밟던지 나 죽는 줄 알았어요. 다시는 안 타야지.”
미연의 말에 승완이 깐족댔다.
웩, 토하는 시늉을 하는 승완의 정강이를 미연이 발로 걷어찼다.
누가 널 또 태워줄 줄 알고? 미연이 시니컬하게 말하는 것을 들으며 세영은 도겸을 바라봤다.
그는 여전히 심통이 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아까는 세영의 눈에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를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녔는지, 이 추운 날씨에 도겸은 땀범벅이었다.
잘 정돈되어 있었을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옷차림도 흐트러져 있었다.
세영은 미안한 마음에 다가가지 못하고 그를 바라만 봤다.
“그럼 이제 갈까요?”
세영과 도겸을 바라보던 승완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이 사람만도 못한 자식은 이대로 놔두고 안전하고 따듯한 곳으로 가요.”
미연이 호진을 가볍게 발로 걷어차며 세영을 자연스럽게 이끌었다.
도겸도 아무 말 없이 따라 걸어왔다.
“아 잠시만요.”
세영은 잊고 있던 진희가 생각나 그들을 멈춰 세웠다.
그리곤 진희 쪽으로 서둘러 걸어갔다.
세영이 다가오자 세영을 보고 있던 진희가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너, 너 괜찮아?”
“괜찮아.”
세영은 자신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는지 덜덜 떨고 있는 진희를 보면서 물었다.
“그보다 영상은. 잘 찍혔어?”
“너는 지금 이 상황에 영상이 잘 찍혔는지가 중요해?”
자신과 달리 차분한 세영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진희가 날카롭게 말했다.
씁쓸하게 입꼬리만 들어 올려 보이며 세영이 대답했다.
“중요해. 그걸로 내가 스토커가 아니었다는 걸 밝힐 수 있으니까.”
“…….”
진희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답이 없었다.
아무래도 대답이 느릴 것 같아 보이자, 세영이 물었다.
“그래서, 직접 보고 나니 어때?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증명은 됐어?”
“…… 됐어. 충분히 됐어.”
세영은 조금은 죄책감이 서린 듯한 진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세영은 사람들의 여론에 휩쓸린 진희를 이해하면서도,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던 친구가 완전히 용서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진희의 죄책감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럼 그 동영상 퍼뜨려줄 수 있어?”
“내가?”
“응. 네가.”
되묻는 진희에게 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망설이는 표정으로 진희가 물었다.
“…… 왜 나야? 그걸 퍼뜨려서 넌 어떻게 하고 싶은 건데?”
“내가 퍼뜨리는 건 별로 효과가 없을 것 같아서. 그리고 직접 본 네가 당사자인 나보단 객관적일 거 아냐.”
일 년이나 지난 일을 사람들이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지. 세영은 회의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적어도 그녀의 과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을 터였다.
완벽하겐 아니라도 희미하게나마 기억할 터였다.
세영은 적어도 그들에게라도, 그들이 알고 있던 것이 틀렸다는 것을 밝히고 싶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밝히는 것보다는, 제삼자인 진희가 밝히는 것이 더욱 신용할 만한 말이라 생각할 것이다.
진희가 마당발이기도 했고, 온갖 일을 다 알고 다니는 정보통이었으니까.
숨을 들이쉰 세영이 이어서 말했다.
“퍼뜨려서. 내가 당했던 그대로 호진 선배가 죗값 치르도록 만들고 싶어. 그렇게 하고 싶어.”
“…….”
간략하게 말해야 할 것은 다 말한 세영은 진희의 대답을 기다렸다.
진희가 조금이나마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아 부탁하긴 했지만, 과연 어떻게 대답할지 세영은 확신할 수 없었다.
진희가 소문에 관심이 많고 그걸 말하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알겠다고 할 거란 장담은 할 수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이 일이 퍼지면 호진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가 알게 되면 모든 말의 근원지인 진희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행패를 부릴 수도 있었다.
오늘 자신을 때리려고 했던 것을 보면 그럴 가능성이 작진 않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직접 본 진희도 호진에게 두려움을 느낄 법했다.
뭐, 호진이 아예 포기하고 잠적한다는 가능성도 있지만 말이다.
실제로 어떻게 될지는 일이 터져야만 알 수 있으리라.
어쨌든, 진희가 말을 퍼뜨리고 다닌다는 건 그만큼 리스크가 큰 일이 될 수도 있었다.
세영은 진희가 싫다고 말하면 자신이 직접 동영상을 받아 대나무숲에라도 올릴 생각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예전만큼 관심은 못 받을 것 같지만, 하는 수 없었다.
세영은 그녀의 대답에 따라 어떻게 행동할지 결정하고 한결 편하게 진희의 대답을 기다렸다.
진희는 세영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다.
그걸로 정말 괜찮은지, 저 사람들은 누군지.
그런 질문들을 해도 될 만한 사이는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진희가 잘 알았다.
그럴 수 있던 관계를 무너뜨린 것은 세영이 아닌 바로 자신이었다.
그녀는 앞장서서 세영과 호진 사이의 일을 퍼뜨리고 다녔다.
그때는 그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정의 구현이라는 이름으로 친구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줬다는 것을 진희는 깨달았다.
그러니 세영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 자신의 죗값을 조금이나마 치르는 것이리라.
진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최대한 퍼뜨려 볼게.”
놀라움에 세영의 눈이 살짝 커졌다.
세영은 진희에게서 후회와 미안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진희의 죄책감을 이용하겠다. 다짐했으면서도 세영도 마냥 마음이 좋지만은 않았다.
그녀는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담아 인사했다.
“고마워. 나 때문에 안 좋은 경험하게 한 것 같아서 미안하다. 그럼 갈게.”
“잠, 잠깐만!”
돌아선 세영을 진희가 다급하게 불러 세웠다.
“왜?”
잠시 망설이던 진희가 세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했던 짓들이 용서받지 못할 일이란 거 알아. 변명할 생각도 없고. 그래도 미안하다고 말은 하고 싶어. 정말 미안해. 그리고……. 너만 괜찮다면 전화번호 좀 알려줄래? 적어도 어떻게 됐는지. 그 결과라도 너한테 알려줄 수 있게.”
세영은 멈춰 서서 진희를 바라보았다.
진희에게서 사과를 들을 줄은 몰랐다.
아침의 당당함은 다 어디로 갔는지.
판결을 기다리듯, 진희는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 그래.”
세영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진희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정말?”
“응. 줄게. 핸드폰 줘볼래?”
“어, 어. 잠시만.”
진희가 서둘러 꺼낸 핸드폰에 세영은 꾹꾹 자신의 바뀐 번호를 눌렀다.
누군가에게 전화번호를 알려주는 건 도겸 이외로는 참 오랜만이었다.
“여기.”
핸드폰을 넘겨받은 진희가 진지하게 말했다.
“내가 꼭 최대한 사람들한테 퍼뜨리겠다고 약속할게. 이걸로 내가 저지른 일이 없는 일이 되는 건 아니지만……. 정말로 미안해.”
그 일에 대해 처음으로 듣는 사과였다.
세영은 어쩐지 목이 메여 왔다.
“…… 그래.”
티 내지 않고 말하려고 노력하면서 세영이 작게나마 웃어보였다.
“그럼 나는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어서. 먼저 갈게.”
“아, 그래. 조심히 가.”
“너도 조심히 가. …… 부탁 들어줘서 정말 고마워.”
다시 한 번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진희도 조금은 마음의 짐을 덜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세영은 그녀를 뒤로 하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뛰어갔다.
진희는 가만히 서서 조금 더 세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