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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나쁜 년 컴플렉스
작가 : 가로수
작품등록일 : 2018.9.12

SNS를 통해 억울한 오해를 사게 됐다.
아무리 해명해도 모두가 나를 나쁜 년이라고 욕하는 상황.
결국 휴학하고 떠난 시골에서 그 상처를 치료해줄 남자 민도겸과 만나게 되는데…….

 
41. 새로운 시작
작성일 : 19-03-11 05:54     조회 : 248     추천 : 0     분량 : 8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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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연 선생님의 부탁 때문만입니까?”

 “……세영 씨에 대한 제 마음은, 이미 알아차리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니 이전에 그렇게 저를 견제하셨죠.”

 결국 사감이 들어갔다는 말이다.

 도겸은 재찬의 팔을 뿌리쳤다.

 “제가 왜 당신과 이런 얘길 해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더 할 말 없으면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지키지 못할 거면, 위험에 처하겐 하지 마셔야지요.”

 “뭐라고요?”

 “애인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으면 뭐합니까? 지키지도 못하면서.”

 도겸이 뭐라 반박하기도 전에 재찬이 이어 말했다.

 “함다은이라는 여자가 언제 또 세영 씨를 다치게 할지 불안해서 가만두고 볼 수 있겠습니까? 이번만 해도 세영 씨가 저렇게 다쳤는데.”

 안 그래도 책임감을 느끼고 있던 도겸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그건 제가 책임지고 해결했습니다. 다시는 함다은이 세영일 건들진 못할 겁니다.”

 “그 외로도, 도겸 씨의 과격한 팬이 세영 씨를 괴롭히는 일이 생길 수도 있겠죠. 어떤 식이든, 세영 씨가 당신 때문에 또 다치는 일이 생길 수 있겠죠. 그렇다고 해도 스스로 먼저 떨어져 나갈 생각은 없다는 겁니까?”

 “지금 두 사람 뭐 하고 있어요?”

 두 사람 사이로 여자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세영 씨…….”

 “왜 안 들어오고 병원 앞에서 그러고 있어요?”

 병원 현관을 나선 세영이 한쪽 목발을 짚은 채로 그들에게 다가왔다.

 “세, 세영아. 너…….”

 도겸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그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 사이의 묘한 기류를 느꼈는지 표정이 밝진 않았다.

 세영은 재찬을 돌아봤다.

 “재찬 씨.”

 “예.”

 재찬의 몸에 긴장이 흘렀다.

 대화를 들었을까? 지금까지의 반응으론 알 수 없었다.

 “잠시 자리 좀 비켜주실래요? 함다은 씨에 대해서 할 얘기가 있어서요.”

 “아-.”

 “남들이 들을 만한 얘기도 관여할 일도 아닌, 저희 둘 사이 일이라서요.”

 재찬은 벌어지던 입을 다물었다.

 “절 걱정해주는 마음은 감사하지만, 재찬 씨가 개입하지 않았으면 해요.”

 자신을 올려다보는 눈동자에서 그녀의 완곡한 거절을 읽을 수 있었다.

 부드럽게, 하지만 단호하게 세영이 선을 그었다.

 그 이상 넘어오지 말라는, 확고한 선을.

 세영이 그가 그리하길 원하는데 재찬이 거스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재찬은 멍하니 고개를 숙였다 들었다.

 “제가 결례를 저지른 것 같습니다. 저는 이만,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선생님께는 일이 급해 간다고 세영 씨가 말 좀 전해주세요.”

 “네, 알겠어요.”

 그는 애써 무심하게, 아무렇지 않은 듯 자연스럽게 뒤돌았다.

 “재찬 씨.”

 세영은 자리를 떠나는 그를 불러세웠다.

 “병문안 와주신 거 정말 감사드려요. ……다음번에, 이모랑 같이 또 뵐 수 있을까요?”

 꾹, 입술을 강하게 다문 재찬은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물론이죠, 언제든 뵐 수 있다면 기쁠 겁니다.”

 빙긋 웃으려 노력했지만, 입꼬리가 썩 잘 올라가질 않았다.

 가슴에 찬 바람이 불어왔다.

 그녀에게 한 번이라도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긴커녕-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깨달은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안 될 사랑이었다.

 그는 다시 뒤돌아 병원을 떠났다.

 재찬의 떠나는 뒷모습을 잠시 바라본 도겸이 세영에게 물었다.

 “우리 대화하는 거 들렸어? 어디서부터 들은 거야?”

 “그냥 뒷부분만 들었어. 근데 재찬 씨가 너한테 스스로 먼저 떨어져 나가라는 식으로 말을 하길래…….”

 그래서 대충 무슨 얘길 하는지 알아차렸지.

 중얼거린 세영이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결국 네 말이 맞았네.”

 “…….”

 “예전 같이 보면서 지낼 순 없겠지? 재찬 씨 입장에선 불편할 테니.”

 “글쎄, 그분이 마음만 정리하면 친구로 지낼 수 있겠지.”

 도겸은 자신의 표정을 세영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그녀를 끌어안았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보지 말고 지내라고 하고 싶었다.

 세영이 대놓고 표현하진 않았대도 재찬을 거절한 직후임에도 그러했다.

 질투하는 자신이 스스로 보기에도 너무 못나 보여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진 못했지만.

 그런 도겸의 마음을 모르는 세영은 그를 마주 끌어안았다.

 그녀의 어깨에 이마를 묻고 도겸이 말했다.

 “뉴스 봤지. 내가 미안해. 나 때문에 다치게 해서. 내가 막질 못해서.”

 “네가 미안할 게 뭐 있어. 그 사람이 그럴 줄 네가 알 수 있던 것도 아니잖아.”

 “……어쩌면 예재찬 씨 말이 맞을지도 몰라. 내가 옆에 있는 게 너한텐 오히려 안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

 홱,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겸은 세영에게서 몸이 밀쳐졌다.

 아프진 않았지만, 그는 아무 말 못 하고 얼떨떨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세영은 미간을 좁히고 말했다.

 “너 그런 소리 하지 마. 내가 누구랑 사귀고 누구를 옆에 둘진 내가 정해. 네가 연예인인 걸 내가 모르고 사귄 것도 아닌데 이제 와서 그걸 네 탓을 할 것 같아? 내가 정한 일이고, 내가 감당할 일이야.”

 그녀가 잠깐 망설이다 말했다.

 “아니면……, 이제 나랑 사귀기 싫어진 거야?”

 “아니야,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깜짝 놀란 도겸이 얼른 손사래를 쳤다.

 그제야 세영은 표정을 풀었다.

 “그럼 됐어. 사주한 사람이 잘못한 거지 네가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 헤어지고 싶다는 말은 네가 나한테 정떨어졌을 때 해.”

 “내가 먼저 너한테 헤어지자고 말할 일은 없을 거야.”

 냉큼 그렇게 말하는 도겸에 세영은 화내던 것도 잊고 웃고 말았다.

 도겸의 말 한마디에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싫지 않았다.

 도겸의 손을 맞잡고 부축받으며 병원 안으로 들어가며 그녀가 물었다.

 “그런데 함다은 씨, 듣기론 아버지가 무슨 회장이라 못된 짓 해도 다들 쉬쉬해왔다고 하던데?”

 “맞아, 하지만 이번엔 지금까지 자기가 해온 일까지 다 죗값을 받을 거야.”

 “이번 일이 크게 논란이 된 덕분이구나.”

 “그렇지.”

 다행히 세영이 그가 재찬에게 했던 말은 듣지 못한 것 같아 도겸은 안심했다.

 그녀가 알게 된다면, 아무리 도겸이 스스로 배우 일을 그만둔 거라고 말해도, 세영은 자신의 탓을 할 것이었다.

 저에겐 네 탓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말이다.

 병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도겸이 가볍게 말했다.

 “나 부모님이랑 화해했어.”

 “뭐?”

 “그때 연락이 온 뒤로 만나서 대화를 하게 됐어. 생각보다 잘 얘기했어. 함다은 일도 있고, 서로 싸우는 분위긴 아니었어. 미운 자식이어도, 결국은 자식이었나 봐.”

 “부모님이랑 화해했다니 잘됐다.”

 세영이 배시시 웃다가 문득 생각난 것을 물었다.

 “배우 일은? 배우 일 반대하신다고 했잖아. 계속 해도 괜찮대?”

 띵,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안에서 사람들이 내릴 수 있도록 옆으로 비켜서면서 도겸이 말했다.

 “아……, 타협을 봤어. 배우 일을 하면서 대학교에서 다시 공부도 하고, 나중엔 회사 일을 물려받기로.”

 “회사? 물려받아?”

 이게 뭔 소리야. 세영이 눈을 깜박이며 도겸과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도겸이 작은 목소리로 세영의 귓가에 말했다.

 “아버지가 회사를 운영하고 계시거든.”

 “뭐어?”

 세영은 저도 모르게 엘리베이터 안에서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쉬잇.”

 “죄송합니다.”

 하필 만원인 엘리베이터라 눈총이 따가웠다.

 “그래서 반대하신 거였구나…….”

 작은 목소리로 세영이 중얼거렸다.

 이제야 왜 그렇게 배우 일을 반대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넌 아쉽지 않아? 정말 배우 일 그만둬도 괜찮겠어?”

 그렇게 연기하는 걸 좋아하면서……. 세영이 중얼거렸다.

 도겸은 빙그레 웃어 보였다.

 “응, 괜찮아. 지금 당장 그만두는 것도 아니고, 회사 일도, 재밌을 것 같아.”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잠깐. 혹시 나랑 만나는 것도 싫어하시면 어떡하지?”

 회사를 위한 정략결혼이라거나, 뭐 그런 거……?

 세영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도겸을 올려다봤다.

 마침 엘리베이터가 딱 도착해, 도겸은 피식 웃으며 세영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왔다.

 “걱정하지 마. 그럴 일 없어. 만약 그런 일 생기면 내가 다시 집에서 도망쳐 나올게.”

 “진짜 그럴 거야?”

 “당연하지.”

 실없는 농담임을 알면서도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세영은 도겸의 팔에 팔짱을 끼고 목발을 짚었다.

 움직이는 것이 힘들어도 마냥 좋았다.

 “도겸아, 너 그럼 이제 다시 학교 다니는 거야? 우리 같이 다니겠네?”

 “그렇지. 나는 재입학이니까, 네가 선배로서 나 잘 챙겨줘야 해.”

 “와, 앞으로 선배라고 불러라.”

 “알겠습니다 선배님.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악, 뭔가 이상하다. 그러고 보니 너 누나도 있다고 하지 않았어? 누나도 뵙고 온 거야?”

 “아니, 누나는 해외에서 연구 중이라……. 그러고 보니 승완이랑 누나도 온다고 했는데.”

 “진짜? 오늘 언니 오신대?”

 “너 어째 나보다 미연이 누나를 반기는 것 같다.”

 “에이, 설마 그렇겠어?”

 병실로 향하는 내내 두 사람의 목소리가 즐겁게 울려 퍼졌다.

 

 * * *

 

 퇴원하는 날이 다가왔다.

 세영은 전보다 가벼운 몸놀림으로 짐을 챙기고, 빠진 게 없나 확인하고 있었다.

 스케줄이 있는 도겸 대신, 미연이 그녀를 돕고 있었다.

 “언니 이렇게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아냐, 뭘 이런 걸 가지고. 이제 내려가면 한동안은 못 보겠네. 아쉬워서 어떡해.”

 “그러게요.”

 세영도 헤어짐이 아쉬운 듯 미연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다시 연숙과 함께 돌아가기로 했다.

 “너 못 본다고 민도겸 시무룩할 걸 생각하면 벌써부터 귀찮다.”

 “영영 헤어지는 것도 아니고, 잠깐 못 보는 건데 설마 그럴까요.”

 세영은 다시 서울로 돌아올 예정이었다.

 이번에 가는 것도 복학에 맞춰 그 준비를 하기 위함이었다.

 “어휴, 네가 못 봐서 그래. 너랑 떨어져 있으면 키는 멀대같이 커서 낑낑대는 강아지 같다니까.”

 “진짜요? 그 정도예요?”

 “그래, 그렇다니까.”

 어쩐지 상상이 되는 것 같아 세영은 웃고 말았다.

 그때 때마침 켜져 있던 TV에서 다은과 관련된 뉴스가 흘러나왔다.

 “-살인 청부 교사 의혹이 불거진 배우 함다은씨가 경찰에 정식 입건되었습니다. 경찰에서는 해당 사건 외에도-.”

 “……다은이, 입건됐구나.”

 “그러게요…….”

 “뭔가 같이 일하면서 보고 지냈던 애라 그런가, 기분이 이상하다. 항상 못되게 굴긴 했어도 저 정도인 줄은 몰랐어.”

 TV에선 그간 다은으로 인해 상해를 입었던 피해자들의 인터뷰가 나오고 있었다.

 “이제라도 밝혀져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피해자들은 억울해서 어쩔 뻔했어. 제대로 다 죗값 치렀으면 좋겠다.”

 “…….”

 세영은 말없이 TV 화면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실감이 나진 않았다. 그녀가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것이.

 다행히 그녀는 미수로 그쳤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했던 짓들에 대해 그녀가 뉘우치길 바랐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다시 띄우고자, 미연이 손뼉을 치며 큰 목소리로 말했다.

 “자, 뭐 빠뜨린 거 없지? 누구 더 올 사람도 없고?”

 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없어요.”

 애초에 올 사람이 많진 않았다.

 그간 수고해주신 간호사 선생님과는 인사를 마쳤고.

 진희는 이미 한 차례 호들갑 떨고 간 직후였다.

 도겸은 오늘 스케줄이 있어 아침에 먼저 보고 갔다.

 헤어짐이 아쉬워서 스케줄에 지각하기 직전까지도 떨어지질 않아 민수가 그를 끌고 나가야만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사람, 재찬은…….

 

 *

 

 재찬은 며칠 전, 아무도 몰래 세영의 병실을 들렀다

 늦은 오후, 하늘엔 노을이 지고 있었다.

 도겸은 스케줄이 있고, 연숙이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재찬이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 예재찬 씨…….”

 다시 볼 수 있음 좋겠다고 말하긴 했지만, 정말 그를 다시 보게 될 줄은, 아니 그가 직접 찾아올 줄은 몰랐기에 세영은 말끝을 흐렸다.

 그런 그녀의 반응에 재찬은 부드럽게 웃였다.

 “안녕하세요. 지나가던 길에 잠깐 들렸습니다.”

 “아, 어서 오세요. 하필 지금 잠시 이모가 자리를 비우셔서….”

 세영은 엉거주춤하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앉는 걸 도와준 재찬은 그 옆의 의자에 앉았다.

 “선생님을 뵈러 온 게 아닙니다. 세영 씨를 보러 왔어요.”

 “…….”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어서 왔어요. 그래도 직접 말이라도 해야 제가 미련이 남지 않을 것 같아서요. 이대로는 저희 너무 불편하잖아요.”

 “아…….”

 세영은 이어질 말을 직감했다.

 재찬은 잠시 세영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세영 씨, 좋아합니다.”

 “죄송합니다. 재찬 씨는 좋은 사람이지만……, 그런 쪽으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그렇군요.”

 “……미안해요.”

 “아닙니다. 미안해하실 일이 아니니, 그런 말 마세요.”

 세영에게 괜찮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저어 보인 재찬이 잠시 침묵을 유지하다가 물었다.

 “만약, 아주 만약에……, 세영 씨가 민도겸 씨와 만나기 전에 우리가 알게 됐더라면 대답이 조금은 달랐을까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 질문엔 대답하지 않을래요. 그런 생각은 괜한 희망 고문만 되니까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단호한 말에 재찬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그렇네요. 시간을 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무의미한 질문이었네요.”

 웃음을 머금은 채로, 재찬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뭔가 속이 후련하네요. 이걸로 미련은 남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제가 차이긴 했지만, 아직 그 제안은 유효합니다.”

 “무슨……?”

 말을 이해하지 못한 세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같이 일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던 거, 잊으셨습니까?”

 “아.”

 그거, 세영은 그제야 기억이 났다.

 “요리 쪽으로 진로 정하게 되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어지시면 도와드리겠습니다. 사실 이 말씀 드리고 싶어서 오늘 찾아왔습니다.”

 “아…….”

 사람으로선 괜찮은 사람이란 걸 알기에 아쉽지만 재찬과 영영 척을 질 것을 각오했는데.

 불편했을 텐데도 그가 먼저 선뜻 다가와 그녀를 배려해주었다.

 세영은 그 마음이 미안하면서도 고마웠다.

 “고마워요, 재찬 씨.”

 “천만에요.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까딱, 목인사를 해보인 재찬은 병실을 나가기 직전, 세영을 등진 채로 물었다.

 “……다음번에 만나게 될 때는 저희 불편함 없이 웃으면서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딘가 지난번 재찬과 헤어질 때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었다.

 재찬이 했던 대답을 이번엔 세영이 했다.

 “물론이죠. 언제든 뵐 수 있다면 기쁠 거예요.”

 재찬은 가볍게 웃으며 병실을 나섰다.

 

 *

 

 “세영아, 세영아?”

 “아, 언니.”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얼른 나가자.”

 “하하, 죄송해요.”

 세영은 머쓱하게 웃였다.

 그녀는 목발을 짚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연숙이 창구에서 남은 병원비를 결제한 뒤, 차를 대기시키고 있었기에 서둘렀다.

 후다닥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연숙의 차에 올라탔다.

 미연은 다시 방송국으로 향할 예정이었기에 여기서 헤어져야 했다.

 “조심해서 가!”

 “언니,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이제 대학교 개강하는 3월에 보겠네. 그동안 잘 지내고, 안녕!”

 “연락할게요!”

 손을 열심히 흔들며 인사를 하고 차가 출발하고 나서도 세영은 창을 닫지 못했다.

 흘끔, 조수석에 앉은 세영을 본 연숙이 말했다.

 “얘, 춥다. 그리고 위험하니까 창밖에 얼굴 내놓지 말고 얼른 닫아.”

 “알겠어.”

 “으구, 뭐 얼마나 헤어진다고 그렇게 아쉬워해.”

 세영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연숙이 말했다.

 아까는 도겸이 낑낑대는 강아지 같을 거란 말에 웃어 보였지만, 사실 그녀도 몇 달 안 되는 동안의 헤어짐이 너무 아쉬웠다.

 “그러게. 벌써 보고 싶어서 어떡하지.”

 “하이고, 열부 났네, 열부 났어!”

 세영의 중얼거림에 연숙이 기가 찬다는 듯 외쳤다.

 “이래서 자식들은 키워봤자, 쯧쯧.”

 “헤헤.”

 세영이 밉지 않게 웃어 보이곤 창문에 이마를 기댔다.

 얼음이 살짝 서렸는지 차가운 창문의 촉감이 시원했다.

 얼른 이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오기를.

 세영은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었다.

 

 * * *

 

 3월이 되었다.

 아직은 조금 쌀쌀했지만, 사람들의 옷차림은 얇아졌고, 따스한 햇볕이 기분 좋게 내리 쬈다.

 대학교는 갓 입학한 새내기들로 활기가 넘쳤다.

 새로 사귀는 친구들과 바뀐 환경에 대한 흥분으로 소란스러웠다.

 “으으…….”

 모처럼 복학하고 맞이하는 첫날인데, 세영은 약간 지쳐 있었다.

 며칠 동안 자취방으로 이사를 하느라 바빴던 탓이었다.

 거기다 감기가 겹쳐 꼴이 말이 아니었다.

 행여나 옮을까 봐, 도겸도 오지 못하게 했었다.

 덕분에 개학날인 오늘에서야 그를 보기로 했다.

 근처에서 보기로 했는데.

 세영은 핸드폰을 쥐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간 전화, 문자로만 연락하면서 얼마나 보고 싶었던지.

 서울로 그냥 얼른 올라가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그간 밀린 공부를 조금이나마 보충했다.

 하지만 서울에 오자마자 감기에 걸릴 줄 알았더라면, 그냥 일찍 올라오는 게 좋을 뻔했다.

 뭐, 늦은 후회였지만.

 “세영아.”

 그때 앞에서 누군가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도겸이 그녀의 앞에 서 있었다.

 “도겸아.”

 반가운 마음에 세영이 그에게 얼른 달려가 와락 껴안았다.

 도겸이 가볍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세영은 그를 올려다봤다.

 너무나도 보고 싶은 얼굴이었다.

 눈꼬리가 휘어져 예쁜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보고 싶었어.”

 “나도. 감기는 괜찮아?”

 “응, 다 나았어.”

 모자를 쓰고 있는데도 몇몇 사람들이 그를 알아봤는지, 흘끔거리는 게 느껴졌다.

 개의치 않고 도겸은 덥석 세영의 손을 잡았다.

 “가자.”

 공개적으로 연애를 인정했기에 더는 숨길 필요가 없었다.

 새삼스럽게 그 사실을 깨달은 세영은 웃으며 도겸의 옆을 걸었다.

 새로운 대학 생활의 시작이었다.

 
작가의 말
 

 완결입니다!

 미숙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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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4. 각자의 시간 (1) 2018 / 10 / 21 268 0 6632   
13 13. 이별. 이별? 2018 / 10 / 17 271 0 6878   
12 12. 영영 헤어지게 된다면? 2018 / 10 / 14 279 0 6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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