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상수."
그는 트레져 헌터 길드의 마스터다. 트레져 헌터 길드는 중앙 대륙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는 국내에서도 유명한 대형 길드다. 듣기로는 디멘션 특성도 몇 개 얻었다고 한다.
그를 목표로 잡은 건 트레져 헌터 길드가 중앙 대륙에서 소수로 다니는 헌터들을 죽여 아이템을 빼앗는 것을 즐기기 때문이다.
중앙 대륙에서 죽으면 시체도 찾을 수 없어 경찰들도 수사하지 않는다. 증거는 없지만 그들의 악명은 이미 세계에서도 소문난 상태다.
알고 보니 송진우를 습격했던 둘도 여기 길드 사람이었다. 그것이 목표를 길상수로 정한 이유이기도 했다.
김택현 기자는 전 트레져 헌터 길드원의 인터뷰를 따내서 그들의 악행을 폭로할 생각이었지만 확실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해서 아쉽게도 지켜봐야만 했다.
이놈을 마지막 타겟으로 정한 이유는 가장 난이도가 높은 임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구린 구석이 많은 길드라서 그런지 본부를 중앙 길드에 두고 거기서 아예 살고 있다.
아무리 마을을 점유하고 있어도 어떤 돌발 퀘스트에 휘말릴지 모르는 것이 중앙 대륙이다.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라 대부분은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그곳에서의 체류 시간을 최소로 잡는데 그들은 달랐다.
위험 부담이 크고 실제로 많은 희생자가 나왔지만 덕분에 적은 자본으로 시작한 길드치고는 거대하게 성장했다.
"거의 NPC처럼 살고 있네."
사실 사돈 남 말 하는 송진우다. 그도 트레져 헌터 길드처럼 중앙 대륙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다.
이번 일은 평소와는 다르게 해야 할 거다. 현실에서는 송진우가 일반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인 피지컬로 정면 돌파할 수 있었지만 중앙 대륙에 있는 트레져 헌터 길드원은 모두 강력한 헌터다. 정문으로 들어가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더 철저한 계획이 필요해."
굳이 잡기 어려운 길상수보다 죽이기 수월한 범죄자를 잡아도 된다. 하지만 자료에 따르면 트레져 헌터 길드에 죽는 사람이 일 년에 적어도 1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측된다.
송진우 본인도 이들에게 목숨을 잃을 뻔했다. 절대 이들이 행태를 가만히 놔두어서는 안 된다.
송진우는 거대한 괴수를 낚을 튼튼한 올가미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
중앙 대륙에 위치한 디튼 시티. 이곳이 트레져 헌터의 본거지가 있는 곳이다.
트레져 헌터 길드의 길드원들은 대부분 현실에서 큰 죄를 짓고 중앙 대륙으로 도피한 도망자들이다. 다들 흉악 범죄를 저질러 인터폴에 수배된 경우가 대부분이라 현실에 나갈 생각은 않고 이곳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표면상으로는 용병 길드에서 의뢰를 받아 활동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플레이어들을 죽이고 아이템을 빼앗는 일을 더 즐겨한다. 퀘스트를 수십 개 완료하는 것보다 플레이어 하나를 사냥하는 것이 더 짭짤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진 좋은 아이템도 대부분 그렇게 빼앗은 거다. 하루가 멀다고 사람을 해치면서도 전혀 죄책감 같은 것을 가지지 않았다.
길상수가 나른한 오후에 사무실에서 졸고 있는데 길드원 중 하나가 급히 뛰어왔다.
"마스터! 대박입니다. 대박!"
달콤한 낮잠을 방해받자 길상수가 얼굴을 찌푸렸다.
"웬 호들갑이야?"
"대박이에요. 어떤 풋내기 행상인이 상행 보호에 2,000골드나 걸었어요."
"뭐? 2,000골드?"
지금 1골드를 환전하면 20만 원 정도와 교환할 수 있다. 그러니 2,000골드면 약 4억이나 된다. 그것도 한 번의 임무에 말이다.
"상인 몇 명인데?"
"혼자입니다."
"혼자라고?"
"네, 마스터."
상인이 적으면 적을수록 당연히 더 좋다. 뒤처리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무슨 임무인데?"
"테오 산을 넘어서 미든 마을까지 호위할 용병을 찾고 있습니다."
"테오 산?"
테오 산이면 700레벨 이상의 몬스터가 나오는 숲이다. 위험한 만큼 용병을 고용하는 비용이 뛰는 건 당연하니 어쩌면 2,000골드면 적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이 이렇게 흥분하는 건 보수가 아니라 운반할 상품 때문이다. 용병 고용에만 2,000골드를 쓰겠다는 것은 운반하는 물자가 엄청 값비싼 물건일 거라는 뜻이다.
"이거 오늘 한몫 단단히 챙길 수 있겠는데요?"
부하가 실실 웃자 길상수가 소리쳤다.
"뭐 하고 있어? 당장 계약하지 않고?"
"물론 보자마자 냉큼 잡아챘죠."
"그래? 근데 왜 이러고 있어? 애들 데리고 출발해!"
"아 글쎄 그놈이 우선 마스터를 보고 싶다고 해서요. 중요한 물건이니 책임자와 확실하게 의논하고 싶답니다."
"그런가? 뭐,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상인이라서 그런지 꼼꼼한 것 같았다. 하지만 돈을 생각하면 이정도 수고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앞장 서."
"네, 마스터."
길상수가 간 곳에는 마차 한 대와 커다란 가방을 메고 있는 어리바리하게 생긴 상인이 서 있었다.
딱 봐도 호구상이다. 일이 쉽게 풀릴 거라고 직감할 수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고용주님. 제가 트레져 헌터를 이끄는 길상수입니다."
길상수의 말에 아직 한참 어려 보이는 상인이 꾸벅 절을 했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송우진이라고 합니다."
"우리 길드에 일을 맡기기로 하셨다고요?"
"네, 여기서 가장 큰 용병 길드라고 저분이 말씀하셨는데······."
"하핫! 맞습니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 우리 길드가 가장 크고 뛰어난 용병 길드입니다."
길상수의 말에 상인은 안심한 표정을 지었고 길상수는 더 진하게 웃었다.
"그런데 가져갈 짐은 이 마차가 전부입니까?"
보통 2,000골드나 하는 임무는 수많은 마차가 동원되었는데 이상하게 다른 짐은 보이지 않았다.
"네, 이게 전부입니다."
"허~ 실례지만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알 수 있습니까?"
"아, 네. 여기 실려 있는 건 모두 태양초라는 희귀 약초입니다."
"태양초요?"
태양초는 길상수도 들어 본 적 있는 유명한 풀이다. 태양초는 그 자체로는 큰 가치를 지니지 못하지만 먹는 것과 조합하는 방법 말고도 다른 사용법이 있다.
"설마······ 골드 슬라임을 잡으려는 겁니까?"
"네, 맞습니다."
골드 슬라임은 엘릭서의 재료로도 사용되고 펫으로도 길러지는 특수한 슬라임으로 그냥 씹어먹어도 올 스탯이 10이나 오른다는 영물이다.
아무리 고렙의 플레이어라도 강제적으로는 절대 잡을 수 없고 오직 한 가지 방법으로만 잡을 수 있다고 알려졌는데 그게 바로 태양초를 활용한 방법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골드 슬라임이 지나다니는 곳에 태양초를 잔뜩 뿌려놓으면 골드 슬라임이 그것을 마구잡이로 먹는다. 한도 이상을 먹으면 위에서 태양초가 반응을 일으켜 골드 슬라임이 잠에 빠지는데 그것을 포획하면 끝이다.
방법은 쉽지만 골드 슬라임이 나타나는 장소가 일정하지도 않고 늘 중앙 대륙의 고렙 몬스터가 있는 지역에 출몰하기 때문에 그곳까지 가는 것도 쉽지 않다. 우연히 발견했다고 해도 태양초가 없으면 절대 잡을 수 없다.
"골드 슬라임이 설마 테오 산에 나타난 겁니까?"
"네, 맞습니다. 제가 상행을 하다가 우연히 알아낸 정보입니다. 자세한 건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그곳에 있는 건 확실합니다."
"골드 슬라임이라······."
길상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골드 슬라임을 포획할 수 있다면 최소 100억에 팔 수 있다. 수요는 줄지 않는데 공급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길상수는 최대한 표정이 무너지지 않도록 관리했다.
'그냥 호구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완전 봉이잖아?!'
절대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골드 슬라임을 잡을 수만 있으면 이 지긋지긋한 중앙 대륙 생활도 청산할 수 있을 거다.
길상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상인은 여전히 순진한 얼굴로 계약서를 꺼냈다.
"그럼, 여기 계약서에······."
길상수는 상인이 준 계약서를 읽어봤다.
평범한 계약서다. 용병 길드의 직인이 찍혀 있고 조건도 평범했다. 금액도 정확히 2,000골드였다.
이런 형식의 보수는 의뢰인이 먼저 용병 길드에 돈을 위탁하고 임무가 끝나면 용병이 길드에서 돈을 가져가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당연히 수수료도 붙는데 용병의 등급에 따라서 15%에서 5% 정도로 나뉜다.
즉, 임무에 실패하면 용병은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지금 길상수 입장에서는 보수는 아무래도 좋았다. 골드 슬라임만 얻으면 충분한 보상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호위 임무에서 의뢰인을 잃는다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임무 실패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용병 등급도 떨어질 수 있다. 용병 등급이 떨어지면 평판이 떨어져 비싼 임무를 받을 수 없고 의뢰인들도 임무를 맡기지 않을 거다.
'그럼 곤란하지.'
이럴 때마다 길상수가 제안하는 것이 있다.
"고용주님. 의뢰비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까?"
"네? 그런 방법이 있나요?"
"그럼요. 수수료를 줄이면 저희도 좀 더 저렴한 비용으로 의뢰를 할 수 있죠."
길상수가 제안한 방법은 용병 길드를 통하지 않고 계약을 맡아 수수료를 아예 없애는 방법이었다.
지금 용병 길드을 통한 수수료가 10%인데 직접 계약하면 수수료 없이 하겠다고 말했다.
길상수가 이런 제안을 한 이유는 당연히 돈을 아끼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상행 도중에 상인을 죽여도 아무런 뒤탈이 없게 하기 위함이다.
간혹 이런 방법을 통해서 계약을 맺는 경우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건 대형 상회와 용병이 맺는 계약이라서 상회 쪽이 갑이고 용병들이 절대 아무런 수작을 벌일 수 없는 경우에 한했다. 보따리 상인처럼 혼자 다니는 상인은 반드시 용병 길드의 보호가 필요하다.
'안 해도 그만이지.'
길상수는 그냥 찔러본 거다. 그가 승낙하지 않아도 어차피 도중에 죽이는 건 변함이 없다. 하지만 이 멍청한 상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요! 내가 왜 이 생각을 못했 을까?"
일이 쉽게 풀리고 있다. 길상수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더 정중하게 말했다.
"그럼 바로 여기서 계약을 맺죠."
이제 사인만 하면 모든 것이 끝이다. 그런데 갑자기 상인이 주저했다. 그것을 보고 애가 탄 길상수가 물었다.
"뭐 다른 문제가 있습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이번 여정에 길드장님도 가시는 거죠?"
"저요?"
상인은 길상수가 이번 여정에 참여하길 원하는 눈치였다. 길상수도 처음에는 부하들만 보낸 생각이었지만 골드 슬라임이라는 말을 듣고 마음을 바꿨다. 혹시라도 부하 놈들이 자기들끼리 짜고 그것을 빼돌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하지만 믿을만한 놈들은 아니다. 그들이 트레져 헌터 길드에 가입한 이유는 도피처를 얻고 많은 돈을 벌기 위함이다. 의리 같은 것은 애초에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당연히 그래야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면 상인은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어차피 휴짓조각이 될 계약서지만 길상수는 소중하게 품에 넣었다. 그 모습을 보고 안심한 상인은 여정에 필요한 것들을 챙기기 시작했고 트레져 헌터 길드원들도 준비하기 시작했다.
약 2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골드 슬라임을 얻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구성원은 상인 한 명과 트레져 헌터 길드원 15명이다.
[테오 산]
산의 입구에 진입하자 길상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정확한 목적지가 어떻게 되죠?"
"아, 저는 퀘스트를 받은 거라서요. 정확한 위치는 근처에 가야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래요?"
길상수는 속으로 입맛을 다셨다. 정확한 위치만 알 수 있으면 선량한 가면을 벗고 바로 죽일 생각이었다.
'조금만 더 살려두지.'
어차피 골드 슬라임을 찾으면 저 어리바리한 상인인 자신들을 제치고 그것을 얻을 확률은 전혀 없다. 지금은 싱글생글 웃는 얼굴이지만 곧 고통으로 얼룩질 것이 눈에 훤했다.
"조심해라! 이제부터 몬스터가 나온다!"
길상수가 인간쓰레기인 길드원들을 이끌 수 있는 건 그만큼 실력이 있기 때문이다. 인성은 쓰레기지만 실력은 중앙 대륙을 활보하는 당당한 헌터답게 강했다.
도도가마루
(LV 730)
언뜻 보면 코뿔소 같은 짐승이지만 뿔이 여섯 개나 있고 몸길이가 7m가 넘는 거대한 괴수다.
이곳에 나오는 괴수들은 모두 공룡을 닮은 괴물들이다. 공격력, 방어력, 마법 저항력 등이 모두 높아서 흠잡을 곳 하나 없지만 대신 약점 부위를 공격당하면 추가로 데미지가 더 들어간다.
"꼬리를 잘라!"
상인이 뒤로 빠진 사이에 길상수가 능숙하게 부대를 지휘했다. 발 빠른 헌터가 시선을 끄는 사이에 다른 인원이 달라붙어서 꼬리와 배를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이런 괴수에게는 단검이나 얇은 검 같은 것은 효율적이지 못하다. 그래서 일행도 거대한 검이나 모루, 양날 도끼 같은 크고 묵직한 무기들로 무장했다.
쿵!!!
위험한 순간이 없던 건 아니지만 큰 피해 없이 도도가마루를 쓰러트렸다.
"정비한다!"
이곳은 사지다. 몬스터를 도축할 시간 따위는 없다. 다른 괴수들이 또 나타나기 전에 어서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출발!"
고레벨의 헌터들도 주변을 연신 살피면서 조심히 걸었다. 사냥이 목적이 아니니 전투는 최대한 피하는 것이 좋다.
레이기에나
[LV 700]
[키이익!]
새로운 몬스터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몸길이가 3m 정도로 도도가마루보다 훨씬 작았지만 거대한 날개가 있어 날아다니는 몬스터다.
"섬광탄을 던져!"
파직!
강력한 섬광탄이 눈앞에서 터지니 레이기에나가 균형을 잃고 떨어졌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헌터들이 달라붙었다.
"날개부터 잘라!"
헌터들이 날개를 집중 공략하니 놀란 레이기에나가 날개를 퍼득거리며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려 했다. 하지만 그것을 용납할 생각이 없는 헌터들이 레이기에나의 목 위에 올라타면서까지 나는 것을 방해했다.
퍽! 퍽!
날렵한 헌터 하나가 단검을 들어서 레이기에나의 목을 끈질기게 찔렀다. 많은 데미지가 들어가지는 않지만 수십 번을 찌르니 스턴에 걸려서 비틀거렸다.
"집중 공격!"
결국, 레이기에나는 날개와 꼬리가 다 잘려서 처참하게 쓰려졌다.
"헉~ 헉~"
산에 높이 올라갈수록 더 무서운 괴수들이 나온다. 전투가 끝난 헌터들이 휴식하며 상인만 쳐다봤다. 더 올라가면 사상자도 걱정해야 하는 무서운 곳이다.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듯이 상인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근처에 있습니다. 퀘스트가 갱신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