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일단장의 진두지휘로 빠르게 적들을 제압해가고 있었지만, 중앙에는 거인의 압도적인 무력과 어디에서 날아오는지 좀처럼 찾기 어려운 화살 비에 애를 먹고 있었다.
“쓰벌!!”
거인에 의해서 이미 많은 수의 기사들이 죽고 다치다 보니, 동료들의 욕짓거리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왔다.
“크다고 다 강한 것도 아닌데, 저 자식은 큰 만큼 힘도 비례하다 이거냐고!”
상상속의 골렘이 있다면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에게는 어떠한 공격도 통하지 않았다.
날카롭게 벼려진 바바로트의 시선이 하일에게 닿았다.
하일이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을 주시하던 바바로트의 눈썹이 구겨지면서 하일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하일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의 앞으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기척을 완벽하게 숨기고 숨어서 적을 공격하는 능력이 기반이 되지만, 생각의 전환으로 기척을 숨긴다면, 반대로 기척을 더 강하게 비칠 수도 있지 않을까로 시작해 만든 능력이었다.
“사람의 눈으로 얻는 정보가 뇌에 착각을 일으켜 멍청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그동안 몰랐지.”
너무 강한 기척과 존재감이 사라진 기척의 두 가지를 동시에 병행하니 반대로 눈앞에 버젓이 있음에도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는 기현상과, 눈에 보이는데도 보이지 않는 이상함에 혼란이 더 가중됐다.
지척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바바로트는 손을 휘둘렀지만,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우위를 점하고 있어 보이는 하일이지만, 그렇다고 그를 쉬이 공격하지는 않았다.
아직 바바로트를 공략할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하일은 그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려, 피해를 막고 시간을 끌었다.
상대의 마력이 다 할 때까지 버티다가 끝을 보자는 생각을 했지만, 멀리서 날아오던 화살이 자신에게 집중이 되기 시작하면서 곤란해졌다.
자신의 능력의 범위에서 멀리 벗어나서인지, 화살은 정확하게 하일을 노렸고, 바바로트는 화살이 꽂히는 방향을 기점으로 하일을 압박해갔다.
“쯧.”
한 방향에서 화살이 날아온다면 그나마 낫겠지만, 여러 방향에서 날아오는 통에 집중하지 못하고 시간과 마력만 허비하고 있을 때였다.
하일의 바로 등 뒤에서 목과 어깨의 틈으로 날카로운 검이 찔러 들어가 바바로트의 팔에 푸욱 박히고 빠져나왔다.
“단장님?”
피신해 계실 것이라 생각했던 알바트론이 싱글싱글 웃으며 검을 머리 위로 치켜 올렸다.
그리고 그대로 하일의 정수리를 노리고 내리꽂혔다.
하일은 검면으로 얻어맞아 얼얼한 머리를 잡고 너무 놀라서 넋을 빼는 그의 머리를 알바트론은 사정없이 또 두들겼다.
하일이 정신을 차리고 바바로트에 집중해서야 그의 폭력이 멈췄다.
그리고 그 중간중간에 날아오는 화살들을 다 쳐내던 알바트론은 다리를 길게 벌려 상체를 낮추고 창을 집어 던지는 자세를 유지하면서 날아오는 화살들 중 가장 마지막에 날아오는 곳으로 방향을 잡더니 그대로 던졌다.
슈웅 날아간 검이 눈에 보이지 않게 되자마자 화살비가 자연스럽게 멈췄다.
그것을 확인하고 바닥에 다리를 벌리고 대충 앉은 알바트론은 양손바닥을 짝짝 마주치면서 방긋 웃었다.
“역시. 주인님을 위해서 너희들은 필시 제거해야한다.”
성인 남성만한 주먹을 그러쥐고 으르렁 대는 그의 말에 하일은 한껏 비웃었다.
“우리가 해야 할 말 같은데? 주군을 위해서 너희들이 없어져야지.”
알바트론이 상처 입힌 팔을 집요하게 공략하면서 방도를 찾아 머리를 굴리던 하일은 갑자기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하하.”
어렵게만 생각하다가 단순한 것이 오히려 답일 수 있다는 세이나의 말이 퍼뜩 떠오르자, 정말 답이 쉬웠다.
아무리 상대가 한참 강하다 하더라도 약점은 있는 법이었고, 약한 사람이라고 강자를 못 이기라는 법은 없었다.
알바트론단장님이기에 저 거죽과 근육을 뚫고 상처를 낼 수 있었지만, 자신의 본신의 능력으로는 어렵다.
그렇다고 그에게 맡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런 단단한 근육과 거죽을 둘러 쌌다 하더라도 그 속까지 단단하게 만들 수 있을까? 로이에의 능력이라면 가능 할 지도 모르지만, 저 사내는 아니다.
“미친 것이냐?”
“뭐, 마음대로 생각해.”
다시 그의 시야를 혼란스럽게 하여 기척을 숨긴 하일은 바닥에 박혀있는 화살 하나를 집어 들고 뛰어 올랐다.
뒤늦게 발견해서 팔을 휘두르는 바바로트보다 더 빠르게 그의 얼굴에 매달리자마자 그대로 눈에 박았다.
하일은 박은 상태에서 화살 끝을 잡고 힘주어 더 깊게 박아 넣었다.
“크아악!”
온 힘을 다해 하일을 떼어 내려했지만, 마력으로 팔에 힘을 집중한 하일은 화살 깃까지 전부 박아 넣어 눈에서 뇌까지 뚫었다.
무너지는 거인에게 눌리기 전에 공중에서 한 바퀴 돌아 바닥에 착지하고 적당하게 손을 털었다.
“공략법만 안다면 쉽지.”
겉이 아무리 강고해도 속까지 강고할 수는 없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거늘, 그의 압도적인 모습과 분위기에서 오는 압박에 미처 그런 쉬운 부분을 생각하지 못했다.
검을 입속에 넣어 찔러 올리는 것이 더 쉬울 수도 있었지만, 찝찝해서 눈을 노린 자신이 무척 만족스럽다.
바바로트의 패인은 자신의 근육과 힘을 너무 과신한 점이다.
바닥에 쓰러져 힘이 빠진 그의 근육들이 수축하고 마른 몸으로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을 때, 하일은 그런 그에게 검을 들고 다가가 그의 목을 잘라 마무리를 했다.
“능력을 빼고 봐도 크긴 크네.”
2미터의 거구지만 키와 상반되게 마른 체구인 바바로트의 숨통을 상당히 애를 먹었다고 하기 뭐 할 정도로 쉽게 끊어냈다.
아직 활을 사용하는 적의 생사가 어찌 되었는지 확인이 되지 않아 기사들에게 명령해서 찾으러 가려했지만, 바이안이 궁으로 돌아오면서 옆구리를 부여잡고 도망치던 놈을 잡았다는 말에 곧 바로 정리로 돌아갔다.
수도부터 시작해서 피해를 입은 곳들의 복구와 터를 잃은 이들의 숙소나 식량등등 세부적인 것까지 빠르게 정리하기 시작했고, 황후와 에바는 궁 밖에서 백성들의 불안함을 달래주면서 그들의 편의를 도왔다.
바이안은 궁으로 돌아오자마자, 깨어나 있는 세이나를 뽈딱 안아들고, 그동안 못 본 만큼의 시간을 채워야 한다면서 집무실에서 부둥부둥 안은 채로 업무를 처리했다.
“남편..”
“응?”
“남편?”
“응.”
가슴팍에서 세이나의 포옥하고 나온 한숨에 입 바람이 목을 간질이자 펜을 내려놓고 내려다 봤다.
“내가 쪼꼬매서 한 품에 들어오는 것은 알겠거든? 그렇다고 남 보기 창피하게 계속 이렇게 있을 거야? 앙?”
필살 볼 잡고 늘리기를 연출 하면서 바이안의 볼을 괴롭히며 눈에 쌍심지를 키웠지만, 바이안은 아랑곳 하지 않고 실실실 웃어댔다.
볼멘소리를 하면서 궁시렁 대는 세이나의 정수리에 집중해서 노려보던 바이안이 충동적으로 정수리에 입을 대더니 뜨거운 숨을 후욱 불었다.
“워 뜨!!”
이놈의 남편이 결혼하고 나이를 역행하는 건가, 아이 같은 장난질에 얼척 없어하자, 모르는 척 서류를 들고 보면서 나는 열일 하는 멋진 남편이에요 하고 되지도 않는 연기를 했다.
대미지가 전혀 없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바이안을 열심히 뚜까 패고 난 후에 회의장으로 옮겨 전쟁터에서 올라오는 보고들의 안을 들고 회의를 열었다.
“이제 남은 적들은 대략 세명쯤 남았나?”
소강상태로 전열을 가다듬고 쉬고 있다는 보고를 받아 안심하고 있지만, 자연재해의 문제는 모두에게 어려웠다.
대륙 전체적으로 퍼져있는 이들의 소식엔 절망적인 심경이 그대로 드러났다.
마지막 희망이 세이나이기에 그녀에게 의지하는 눈빛이 강렬하다.
“넷이 아니고, 셋?”
바이안의 질문에 세이나는 셋이라고 확실하게 명시해 주었다.
한 관료가 조심히 손을 들자, 모두가 그를 집중했다.
“앞으로 시간은 얼마정도 남아있습니까?”
많은 뜻이 함축된 그의 질문에 세이나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앞으로 세달. 세달이 마지막이 될 것이고, 거기에 모든 것을 걸 겁니다.”
대륙이 서부로 시작하여 찢어져 거의 대부분 떨어져 나갔고, 그 곳에 있는 귀족들과의 통신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어려워져갔다.
잠에서 깨고 세상을 읽은 대로 동부의 해안가는 쓰나미에 모든 것이 쓸려나갔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땅이 갈라지고 꺼지더니, 새로운 땅이 솟아오르는 등 피해가 심했다.
현재에서 가장 멀쩡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 이곳 천공의 땅이 내려선 중부와 남쪽이다.
바이안은 자신들에게 다시 집중하고 있는 관료들에게 당당히 선언했다.
“마지막 계획대로, 여기에 남아 있는 모든 병력들을 이끌고 우리들도 전쟁터에 참전할 것이다.”
세이나가 두 개로 떨어졌던 힘을 완벽하게 하나로 만드는 시간도, 멸망의 마지막이라고 선언했던 세달과 거의 아슬아슬하다 알렸기에 모두가 가지는 마음은 무겁지만, 살기 위한 각오는 영혼마저 태울 정도로 강렬하게 불타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