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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회색순찰자
작가 : 이현주s
작품등록일 : 2018.5.7

숲에 스산한 어둠이 내려앉거든, 작은 소리도 가벼이 여기지 말라.
순찰자의 화살이 그대의 심장을 찾는 소리일지 모르니.

 
7화
작성일 : 18-10-18 20:01     조회 : 308     추천 : 0     분량 : 4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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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변을 빈틈없이 에워싸는 적군들. 어느 샌가 아군은 주변에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된 일일까?

  전투 시작 전 빅터는 순찰자들을 쪼개 디귿(ㄷ)자 형태로 배치하였다. 로저가 이끄는 키프로스군은 ‘ㄷ’ 형태의 중앙으로 치고 들어갔지만, 이내 양쪽에서 퍼붓는 공격에 병력이 자연스럽게 좌, 우, 중앙으로 나뉘어져 돌격하게 되었다.

  명령에 의한 배치가 아니라 적의 의도에 의한 분열이다. 병력 배분은 원활치 못했고, 그 결과 키프로스 병력은 그들에게 맹렬한 공격을 가하고 있는 좌우측으로 몰리게 되었다. 로저를 따라 돌격한 병력은 불과 삼사백 정도.

  로저가 홀로 날뛰는 사이 이백의 순찰자들은 빅터와 부장들에게 로저를 맡기고 침착하게 그 삼사백을 상대하였다. 시체 방패 덕에 당장 전멸시키기는 어려워도 무찌르는 데는 충분했다. 공격에 견디지 못한 키프로스군은 서서히 물러났고, 그 결과 로저 혼자 적진에 고립된 것이다.

  “개새끼들…….”

  아군에게 하는 것인지 적군에게 하는 것인지 모를 욕설을 중얼거린 로저가 창을 허공에 붕붕 휘둘렀다.

  “덤벼! 어디, 한꺼번에 다- 덤벼보라고!”

  훌륭한 기백이었지만 애석하게도 빅터는 기사의 로망은 1도 없는 인간이었다..

  “생포해.”

  사방에서 로저를 포위한 순찰자들이 그물과 밧줄을 꺼내들었다.

  ‘끝인가?’

  절망한 로저가 속으로 탄식했을 때였다.

  거대한 그림자가 땅을 박찼다. 사람보다, 그 어떤 맹수보다 큰 그 그림자는 땅을 박차고도 수 초간 공중에 머물렀다. 그리고 그 그림자가 땅에 내려서자 모든 게 바뀌었다.

  “컥!”

  “으아악!”

  “흐읍…….”

  그림자가 앞발을 휘두르자 로저를 둘러싸고 있던 순찰자들이 갈가리 찢겨 흩어졌다. 순간적인 틈을 포착한 로저가 즉시 창을 머리 위로 들어 회전했다. 회전 범위에 걸린 적들이 목을 감싸 쥐며 물러났다. 그들의 손가락 사이로 피가 배어나왔다.

  그러나 정작 로저가 노린 빅터는 재빠르게 공격 범위에서 벗어났다. 그는 손에 쥔 빈 쇠뇌를 버리고 옆의 순찰자에게서 쇠뇌를 빼앗아 들었다. 그리고는 로저 대신 짐승의 그림자를 겨누었다.

  “죽어!”

  이제까지 여유롭던 표정은 완전히 무너지고 악귀 같은 얼굴을 한 빅터가 고함을 질렀다.

  짐승의 그림자 위에는 또다른 그림자가 있었다. 명백히 인간의 형태를 한 그 그림자는 빅터가 쇠뇌를 들었을 때 이미 그에게 활을 겨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쇠뇌의 방아쇠를 당기자 그 즉시 화살을 잰 시위를 놓았다.

  쐐액!

  정확히 눈을 노리고 날아드는 화살에 빅터는 반사적으로 손을 들었다.

  퍽!

  “으아아악!”

  손바닥을 관통해 눈에 화살이 박힌 빅터가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그를 잠시 보던 인간의 그림자는 활을 내리며 짐승의 갈기를 쥐었다. 짐승이 포효하며 땅을 박차 올랐다.

  크릉!

  천지를 진동하는 폭군의 포효소리. 그 소리를 듣고도 감히 떨지 않을 수 있는 자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으리라.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뒤 제국 순찰자들은 혼비백산해 흩어졌다. 오직 하나, 작은 체구의 순찰자 한 명만 죽었는지 살았는지 꼼짝도 않는 저희들 대장을 수습할 뿐.

  적들이 모두 사라지자 긴장이 풀린 로저는 그대로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그는 한동안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짐승과 사람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았다.

  ‘방금 그건 분명…….’

  틀림없다. 그 커다란 덩치와 공포스러울 정도로 위엄 있는 포효. ‘늑대’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는 다음 두 가지 사실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첫째, ‘늑대’에 올라탄 자는 분명 ‘인간’이다.

  둘째, ‘늑대’를 타고 다니는 ‘인간’은 이 세상에 오직 한 명뿐이다.

  ‘그치만 그놈이 전장에 나다닐 리가 없는데……. 보석안을 쓸 수 없어 답답하군.’

  ‘눈’의 힘을 끌어올리면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반드시 부작용이 잇따른다. 그의 부작용은 ‘일주일간 평범한 인간의 눈과 다름없어지는’ 것. 만약 보석안이 제대로 있었다면 누군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을 텐데.

  그러나 정황만으로 봤을 땐 명확해 보인다. 특히 활을 썼다는 점, 그것도 어둠 속에서도 표적을 확실히 맞출 정도의 수준이라는 점에서.

  ‘끙, 그러면 뭐하누. 아무것도 못하는데.’

  아군은 순찰자 쫓아다닌답시고 사방팔방 뛰어다니고 있고, 자신은 손가락 하나 까딱일 힘도 없다. 그림자의 주인이 누구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에라 모르겠다. 자고 일어나면 알아서 돼 있겄지. 아무나 와서 주워가라.”

  벌러덩 누운 로저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곧 시체들 사이에서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찰나를 가짐으로써 모든 것을 얻는다.

  어렸을 때 아버지는 내 ‘능력’을 보자 이렇게 평하였다. 울며 불며 반항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다른 형제들에 비해 시답잖은 능력을 거창한 말로 포장한다 생각했으니. 돌이켜 생각해보면 누구라도 되레 화를 낼 만 했지만, 아버지는 그저 조용한 웃음을 지으실 뿐이었다.

  ‘능력’의 진면목을 알게 된 건 검을 쥔 지 스무 해가 지난 후였다. 그 무렵 내 검은 정점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마주하는 내 적수들 또한 그러했다. 일 초, 아니, 그 반의 반도 안 되는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세계에서 내 ‘능력’은 그야말로 ‘사기’라 할 수 있었다.

  그 ‘능력’ 덕분에 난 검의 정점에 이른 뒤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그러나 눈앞의 적은 ‘능력’을 쓰고도 버거운 자였다. 짧은 순간 놈의 심장을 얻음과 동시에 내 목이 날아가는 모습이 그려졌다.

  별 수 없다. 공격이 안 된다면 방어를 하는 수밖에.

  풍문을 찌르려던 헨리의 검이 왼쪽으로 당겨져 내리치던 장도를 베었다. 마치 뱀처럼, 미끄러지듯.

  치이이이-잉!

  “……!”

  장도의 옆면이 긁히는 모습을 본 풍문이 눈을 부릅떴다. 팔이 어긋나는 고통보다도 경악이 앞섰기에.

  ‘내가…… 움직임을 놓쳤다고? 이 내가…… 풍문이?’

  동시에 한 가지 생각이 본능처럼 머리에 떠올랐다.

  ‘‘초가속’이 아니다!’

  그러나 머리와는 달리 몸은 상대의 공격에 반응하고 있었다. 풍문은 이를 악물고 팔에 힘을 꽉 주었다. 헨리의 공격에 튕겨나가던 장도가 우뚝 멈추더니 다시 헨리에게 쏘아졌다. 두 사람의 무기가 충돌했다.

  깡! 묵직한 쇳소리와 함께 검과 장도가 허공으로 튕겨 올라갔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도 두 사람은 신속하게 무기를 거두어 방어 자세를 취하였다. 무지막지한 힘이 풍문을 덮쳤다.

  “큭!”

  장도를 후려치는 압력에 풍문은 뒤로 쿵쿵거리며 물러났다. 미지의 개입자가 거대한 할버드를 바닥에 쿵, 내리찍었다.

  “못난 놈 같으니. 이런 놈 하나 처릴 못해서 내가 나서게 만들어?”

  ‘이 목소리는…….’

  ‘능력’을 사용한 탓에 잠시 시야가 흐릿해진 헨리가 눈을 끔뻑였다. 그는 혹시나 하여 자신이 추측한, 절대 여기 있어선 안 되는 인물의 이름을 입 밖으로 내었다.

  “오즈릭 백작님?”

  기다렸다는 듯 의기양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냐! 이 오즈릭 님께서 친히 너흴 구하러 왔노라!”

  맙소사! 믿고 싶지 않은 현실에 헨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설마 병사들을 다 이끌고 오신 건…….”

  “암! 저쪽을 봐라!”

  오즈릭이 할버드로 가리킨 쪽, 키프로스군 뒤쪽으로 수백 명의 인영이 꾸물거리는 게 보였다. 오즈릭의 군대임을 확증이라도 하듯 배에 창이 꽂힌, 십자가 형을 당한 피투성이 남자가 그려진 깃발이 보였다.

  상상 그 이상의 최악에 헨리가 마침내 욕을 쏟아내려던 참이었다.

  “당신이 오즈릭인가.”

  장도를 고쳐 쥔 풍문이 나직이 말하였다. 그러자 오즈릭의 눈썹이 꿈틀했다.

  “어딜 새파란 놈이 어르신 존함을 찍찍 불러 싸?”

  풍문이 픽 웃었다.

  “나잇값 못하는 꼰대 말투는 듣던 대로군.”

  오즈릭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이런 천둥벌거숭이 같은 노옴!”

  붕! 할버드가 오즈릭의 어깨 너머에서 풍문에게 날아갔다. 똑같은 자세로 공격한 풍문의 장도가 할버드와 부딪혔다.

  힘과 힘이 충돌하는 순간, 두 쇳덩이는 쇳소리 대신 징- 하는, 무기와 무기, 손과 손, 서로의 몸, 그리고 주위의 모든 것을 진동하는 소리를 내었다. 진동 뒤로 들리는 이명에 헨리를 비롯한 양쪽 병사들이 귀를 쥐었다.

  “으으으!”

  “귀가…….”

  그렇게 이 초, 삼 초? 그리 오랜 시간을 붙어 있진 않았다. 굉장한 소리와 함께 격통이 밀려들었으니까.

  우드드드득!

  “크윽…….”

  “헉!”

  오른팔 전체가 뒤틀리는 통증에 오즈릭과 풍문이 동시에 무기를 놓쳤고, 멀쩡한 다른 팔로 부러진 팔을 쥐며 주춤주춤 물러났다. 헨리가 재빨리 오즈릭을 부축하였다.

  “괜찮으십니까, 백작님?”

  “나보다 저놈을…….”

  오즈릭이 식은땀을 흘리며 풍문을 가리켰지만 그의 손가락은 어느새 그를 빈틈없이 에워싼 제국군을 향할 뿐이었다. 분에 못 이긴 오즈릭이 버럭 소리쳤다.

  “죽여라! 다 쓸어버려!”

  “와아아아아아!”

  오즈릭이 이끌고 온 동벽 수비군이 합세한 키프로스군이 제국군에게 달려들었을 때였다. 성벽 쪽에서 우르릉! 하는 굉음이 들렸고, 누군가가 외쳤다.

  “방벽이-!”

  숨을 삼키는 목소리에 모두가 성벽을 보았다. 똑같은 것을 본 모두가 절망하였다.

  방벽이 무너져 있었다. 그리고…… 거대한 마법이 성벽을 삼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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