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니다. 확인되면 바로…….”
무미건조한 남자의 목소리에 대인은 정신이 들었다. 팔다리가 저렸지만 어디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아직 제대로 뜨지 못한 눈꺼풀 사이로 의자에 묶여 있는 자신의 사지가 언뜻 보였다. 이윽고 방 안의 풍경이 들어왔다. 단순한 구조의 책상, 문 앞에 서있는 남자 둘, 방구석에 놓인 이질적인 화분 하나, 그리고 책상에 기대어 휴대폰으로 통화하고 있는 안경 쓴 남자가 차례로 보였다. 방은 티끌 하나 없는 깨끗한 흰색이었지만 어딘가 어두웠다.
“예, 일어났습니다.”
통화하던 남자는 대인을 힐끔 보고는 더 무어라 얘기한 뒤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메마른 목소리. 그가 일어날 때 들었던 것과 똑같았다.
“곧 있으면 지부장님께서 오실 겁니다.”
남자가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말투는 공손했으나 안경에 어린 눈빛은 경멸이 어려 있었다.
“불편하더라도 잠시만 기다리세요.”
대인은 이게 다 뭔 일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재갈이 물린 입에선 웅얼거리는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안경 쓴 남자가 그를 무시하고 나가자 대인은 포기하고 가만히 있기로 했다. 쓸데없이 체력을 낭비해선 안 된다. 그 체력을 아껴서 지금 사태를 빠져나올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대인은 숨을 고르며 기억을 더듬었다. 그와 동료들은 사냥을 하고 있었다. 식량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조직에서는 이미 충분한 양을 비축해두었기에 그런 수고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재미로 하는 사냥일 뿐이다.
세상이 이 지경이 되기 전에 대인이 한 사냥이라곤 강변가에서 한 낚시가 전부였다. 조금 지루하긴 했지만 상대가 붙잡혔을 때의 쾌감은 어느 때보다도 짜릿했다. 지긋지긋한 회사 생활의 유일한 숨구멍이었다. 그러나 조직에 들어와 사냥을 시작하면서 그는 그런 생활들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한심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시체를 사냥한다는 것, 이건 살면서 그 어느 때도 느껴보지 못한 쾌락을 선사했다. 낚시와는 비교과 되지 않았다. 한 순간 한 순간이 긴장으로 꽉 차 지루할 틈이 없었다. 언제 사냥감으로 전락할지 모르는 긴장 속에서 시체의 머리를 으깰 때 느껴지는 전율과 안도감은 황홀 그 자체였다. 게다가 사람 형태를 하고 있단 것도 매력적이었다. 사람이지만 동시에 사람이 아닌 존재를 죽인다는 것은 오래된 금기를 깰 때 느끼기 마련이 해방감을 주었다. 이 모든 게 그와 동료들에겐 일상이요, 권리이자 삶의 낙이었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동료들과 함께 대학생 쯤 보이는 계집애를 쫓아갈 때였던가. 앞서가던 동료가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에 머리에서 피를 쏟아냈다. 이어 수십 발의 총알이 동료들의 몸을 찢어발겼다. 자신이 확실하게 고깃덩이로 전락한 것은 처음인지라 그는 눈앞에 벌어지는 광경을 넋 놓고 바라봤다. 핏빛으로 온 풍경이 붉은데 머릿속은 새하얬다. 곧 무장한 남자들이 거리 곳곳에서 튀어나오더니 그를 에워쌌다. 그때 그가 뭘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사냥을 할 때처럼 곡괭이를 마구 휘두른 것 같기도 하고, 살려달라고 빌었던 것 같기도 했다. 확실히 기억나는 건 남자들 중 하나가 개머리판으로 그를 후려쳤고 거기서 정신을 잃었다는 것이다.
대인은 다시 문 양 옆에 서 있는 남자들을 보았다. 붉은 진압복으로 전신을 무장한 그들의 손에는 소총이 들려 있었다. 총도 진압복도 군인의 것이 아니다. 그들의 왼쪽 가슴팍에는 새모양의 검은 무늬가 달려 있었다.
갑자기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이 구역을 관리하는 인간들에게 잡혀들어간 녀석들이 있다고 들었다. 들어오려는 인간들을 제대로 막지도 못 하는 놈들한테 왜 잡혀 들어 가냐고 그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가볍게 비웃었다. 하지만…….
문이 열리고 마찬가지로 붉은 진압복을 입은 남자가 들어왔다. 남자가 손짓하자 나머지 둘은 고개 숙여 인사한 뒤 밖으로 나갔다. 남자는 문이 닫히는 걸 확인한 뒤에야 벽에 세워져 있던 접이식 의자를 펴서 대인의 맞은 편에 앉았다. 뭐라도 말할 줄 알았는데 남자는 그 상태로 몇 분 동안 침묵했다.
화가 나 있는 건지 걱정하고 있는 건지 알기 힘든 표정이었다. 남자의 코는 독수리 같은 매부리코였는데, 주름보다도 흉터가 많아 나이 대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한참을 기다리다 참지 못한 대인이 소리를 내자 남자는 말없이 검지손가락만을 내밀었다. 좀 더 침묵이 지난 뒤에 그가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이남빈, NOUN 제3지부장이다.”
거의 쇳소리에 가까운 거친 목소리.
“지금부터 뭘 좀 물을 거다. 묻는 말에 대답만 잘 해주면 살려줄 거야. 대답은 무조건 Yes 아니면 No다. Yes면 고갤 끄덕이고, No면 흔들어. 어때, 협조할 건가?”
생각해볼 것도 없이 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봐도 선택지가 하나다.
“좋아, 그럼 우리 NOUN이 뭐하는 덴 줄을 알지?”
고개를 끄덕였다. 외부에서 온 녀석이 신문을 가져온 적이 있어 그도 대강은 알고 있다.
NOUN은 B구역의 연구원들과 시체들을 보호하는 민간군사기업이다. 시체가 걷기 시작했던 날, 적지 않은 군인들이 사망했고(정확히는 그 후 다시 걸어 다녔지만) 이후 입대자가 크게 줄어들었다. 그러면서도 시체들의 인권을 주장하며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자, 국가에선 서둘러 B구역에 인원을 배치하려 했지만 인원이 부족했다.
하지만 그보다도 어머니들이 문제였다. 자신들의 아들들이 시체가 득실거리는 사지로 끌려가는 걸, 그 참사를 보고도 가만 둘 어머니가 어디 있으랴.
결국 국가에선 기존에 있던 민간군사기업 하나를 선택하여 국가 협력 관계로써의 특수 경비 회사로 탈바꿈시켰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게 NOUN이다. 그 때 신문에 적혀 있던 이니셜의 뜻도 기억난다. New Optimal Unit for Necro, 즉 시체를 지키기 위한 새로운 최고의 부대라는 뜻이다. 가슴에 단 솟대 모양의 마크 때문에 B구역 내에서는 그냥 솟대라고 불렀지만.
“네가 뭔 짓을 했는지도 알 테고.”
다시 끄덕. 입이 말랐다.
“아, 그렇게 겁먹을 필욘 없어.”
막한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그의 입꼬리가 움직였지만 웃는 건지 그냥 경련이 일어난 건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네놈들처럼 사냥하는 건 분명 잘못된 일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아까처럼 니들한테 총질하진 - 일단 그 점에 대해선 미안하게 생각해 - 않아. 그냥 체포 되서 A구역에 빵으로 보내면 되지. 근데 나는 왜 네들을 죄다 갈겼을까?”
대인은 고개를 저었다. 애시 당초 왜 그가 지금 살아있는지도 모르겠는데 남이 죽어야 했던 이유를 알 턱이 없었다.
“최근에 니들 행동이 과해지고 있는 거 같아서야. 이 정도까지 말하면 알겠나?”
다시 고개를 저었다. 정말 모르는 일이었다. 불안했다. 사타구니 쪽 근육이 팽팽하게 일어서는 것이 느껴졌다.
“연구원 한 명이 다리 하나가 병신이 돼서 발견됐어. 그 사람 말로는 자신을 쏜 놈이 자기 자신을 사냥꾼이라 불렀다더군. 편견은 나쁜 거지만 듣자마자 네들 짓이라 확신했다. 예술가니 자유인이니 하면서 지랄하는 게 니들 특기잖아.”
대인이 뭐라 웅얼거렸다. 남빈은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물론 네가 속한 조직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건 우리가 알 바 아니야. 생각해봐야 할 건 네놈들 족속들이 도를 지나쳤단 거지. 시체 사냥 정도야 애교로 봐주겠는데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을 쏘는 건 매너 위반 아니야? 덕분에 내 밥줄 끊기면 책임져 줄 거냐고!”
막한이 양 손으로 책상을 치며 소리쳤다. 대인은 고개를 돌린 채 눈을 감았다. 볼에 침이 튀기는 것과 동시에 그의 아랫도리가 축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소리 질러서 미안한데 아무튼 그것 때문에 열 받아서 좀 갈겼어. 어차피 네들 죽는다고 신경 쓸 사람들도 없고. 우리 고객들도 인권 인권하면서 정작 그런 쪽을 좋아하거든.”
그렇게 말하며 남빈이 씨익 웃는다.
“그러니까 지금도 너는 간단하게 죽을 수 있어. 그런데 여기서 내가 따로 기회를 주는 거야. 만회할 수 있는 기회. 살고 싶지?”
끄덕.
“잘 들어. 얘기가 좀 샜는데 내가 널 살려둔 건 딱 하나 때문이야. 어차피 그 사냥꾼이라는 놈이 누군지는 너도 모르지?”
끄덕끄덕.
“나도 잘은 모르지만, 우리 고객님 말씀이 180넘는 키에, 수염 덥수룩한 중년, 거기다 긴 저격총이 특징이래. 확실하진 않은데 목 주변에 흉터도 있는 것 같더군. 아무튼 가서 이런 놈을 잡아야 한다고 동료들한테 전해. 안 그럼 몽땅 다 몰살이라고. 이게 네가 할 역할이야. 일종의 전령인 거지, 알겠어?”
끄덕끄덕끄덕.
“할 수 있겠냐?”
대인은 될 수 있는 한 격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열렬한 광신도처럼. 재갈만 없었더라면 울부짖어대며 소리 질렀을 지도 모를 일이다.
“좋아, 얘들아!”
좀 전의 남자 둘이 다시 들어왔다. 막한이 턱짓을 하자 그들은 의자에 묶여 있던 밧줄을 풀기 시작했다.
“아 맞아. 하나 깜빡했는데,”
나가다 말고 그가 말했다.
“그 놈 잡아다가 주는 놈들에겐 당분간 건들지 않는다고도 전해. 너무 몰아대면 의욕이 안 나니까.”
재갈이 풀리고 대인이 감사하다하려 했으니 남자는 이미 나간 뒤였다.
***
“괜찮겠습니까?”
익현이 안경을 고쳐 쓰며 물었다. 그의 눈은 CCTV에 찍힌 남자를 쫓고 있었다.
“거기다 마지막 약속은 왜 하신 겁니까? 정말 지킬 생각이시긴 한 겁니까?”
“글쎄, 그거야 결과를 보고 정할 일이지.”
막한은 찌푸둥하게 의자에 앉아 자신의 부하에게 히죽 웃어보였다.
“떡밥을 뿌려야 고기들이 모이지. 어쨌건 이거 때문에 서로 죽이고 난리 치겠지. 만약 내가 제시 안했잖아? 그러면 한 놈만 죽이려고 달려들지, 서로 죽이려곤 안 할 걸. 이쪽이 우리한테 훨씬 이득이야. 뭣보다 재밌기도 하고.”
“대체 어디가 재밌는 겁니까?”
“그럼 재미없다는 거야?”
“예, 하나도.”
“너 낚시 해본 적 없어?”
“예, 한 번도.”
“진짜 뭐하면서 살았냐.”
“성실히 살았습니다. 앉아서 가만있는 게 어디가 재밌는지 모르겠습니다.”
“기다림의 미학이지. 한참을 기다렸다가 월척이 팍 하고 걸려들면 그거야 뭐……. 이런 게 낚시의 묘미지. 나중에 한 번 데려가 줄게.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결혼한다며. 결혼해서 낚시 할라고 하면 마누라한테 바가지 긁힌다고.”
“미혼이시지 않았습니까?”
“우리 형이 늘 그러고 살더라고. 그래서, 언제 한 번 갈래?”
“됐습니다.”
“아, 재미없게 왜 그래? 정부 소속은 다 그러냐?”
“글쎄, 같이 파견된 동기들 중에 유며 감각이 뛰어난 친구들은 많았습니다. 그냥 지부장님이 운이 없으신 겁니다.”
“그럼 네 동기들이랑 바꾸면 안 되냐. 바꾸는 김에 우리 마크도 좀 바꾸자고 하자.”
남빈이 가슴에 마크를 툭툭 쳤다.
“솟대가 뭐 어때서 그러십니까? 옛날부터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존재지 않습니까?”
“그게 마음에 드냐?”
“저는 마음에 듭니다. 저랑 닮은 듯해서. 정부랑 여길 이어주는 역할이니 제법 비슷하지 않습니까?”
“뭘 이어주는 거냐? 그냥 일방적으로 감시하는 거지. 완전 스파이네.”
“정보국에서 하는 일이 원래 감시니 말입니다. 하긴 스파이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농담한 거야. 부탁이니까 농담 좀 알아들어라. 제발.”
남빈이 한숨을 쉬며 턱을 괴었다.
“아무튼 내 말은, 좀 멋있는 동물들 많잖아. 솟대가 뭐야, 솟대가. 그냥 잡새잖아.”
“아, 그렇습니까.”
익현은 시큰둥하게 대꾸하고는 다시 자신의 일로 돌아갔다. 남빈이 여러 가지 잡다한 얘기를 해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반응을 보인 건 지루함을 못 참고 담배를 빼들었을 때뿐이었다. 그것도 다른 말없이 ‘금연구역입니다’ 한 마디. 별 수 없이 쫓겨난 남빈은 옥상으로 올라갔다. 정보국 소속이면 죄다 저리 깐깐한건가.
옥상에 서니 도시의 모습이 한 눈에 보였다. 야경이랄 것도 없는 야경이었다. 해가 막 져 내린 도시는 윤곽선만 간신히 보일 뿐이었다. 그가 서있는 건물을 중심으로 도시 전체를 벽이 둘러싸고 있었다. 벽만 넘으면 모든 게 달라진다는 게 아직도 신기했다. 죽은 자들이 자유롭게 도시를 활보하고 잘 됐던 통신 장비들이 죄다 갑자기 먹통이 된다. 운석이 문제라고 했던가. 그로써는 도저히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내뿜은 담배 연기 사이로 종종 비명이 들려왔다. 죽은 것들의 비명소리다. 이런 걸 들을 바에야 차라리 공포에 질린 절규가 듣고 싶다고, 그는 종종 생각했다.
저런 것들이 보호대상이라니.
어느덧 짧아진 담배를 버리고 새로 불을 붙였다. 국가에선 시체들에게도 살 권리가 있다면서 운석이 떨어졌던 구역을 죄다 폐쇄하고 보호하고 있다. 진압 완료 초기에 있었던 그놈의 휴머니즘 열풍 탓이다. 통제 할 수 있는 대상은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사람들은 영화 속처럼 시체를 ‘좀비’나 ‘괴물’이 아니라 ‘환자’로 보았다. 여전히 자신들의 소중한 가족으로 보았다. 지금은 국민들 중에 그렇게 관심 가지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지 의문이지만.
인권. ‘환자’라는 단어를 쓰니까 그럴싸해 보이는 것뿐이지, 시체로 바꿔보면 누가 들어도 개소리로 들린다.
시체는 살 권리가 있다. 벌써부터 말에 어폐가 있다.
모순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시체들에게 살 권리가 있다 주장하지만, 정작 그 시체들을 도살해대는 구역 내 범죄자들의 소탕 건은 여태껏 한 번도 올라온 적이 없다. 물론 이유는 그도 알고 있다.
언제부턴가 범죄자들이 B구역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처음은 구역 내에 남아있던 빈집털이범들뿐이었지만 그들이 의외로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다는 소문이, 어떤 경로에선가 퍼져나가게 되었다. 소문은 점차 살이 붙어 B구역이 무법의 낙원정도로 묘사됐을 즈음에는 이미 수많은 범죄자들이 지옥으로 모여든 뒤였다. 좀도둑부터 성범죄자나 살인자 같은 죄질이 더러운 놈들, 거기에 사이비 단체들까지 쾌락과 이상을 위해 정착했고, 정말로 자신들만의 무법의 낙원을 만들어나갔다. A구역 내에서의 범죄 역시 눈에 띌 정도로 줄어든 건 두말할 것도 없는 일이었고 사실상 그게 핵심이었다.
현재는 범죄자들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B구역에 대한 지원도 끊어졌지만, 정부에서는 여전히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려 하지 않는다. 썩은 사과가 알아서 바구니에 들어가 준다면 바구니 하나 정도는 아까운 게 아니다.
인권이란 건 결국 입에 발린 소리다. 서로에게 보여주기 위해 잘 닦아놓은 가면에 불과하다. 그 잘 닦아놓은 가면들을 바라보면서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대해 감탄한다. 가면 뒤 추한 얼굴이야 진즉에 잊어버렸을 것이다.
차라리 저기 쓰레기들이 나아보였다. 도망친 범죄자를 떠올리며 그는 생각했다. 최근 들어 이런 생각이 자주 들었다. 확실히 제정신으로 버티기에는 힘든 직업이다.
보수가 짭짤한 건 좋지만 이래서야 정신 건강에 해롭다. 죽음조차 논리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논리를 외쳐봤자 미친놈이 될 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괜히 계약서에 사인한 게 후회됐다. 며칠 전 웬 애송이가 병신 돼서 왔을 때가 특히 그랬다. 다 같이 쉴 때 혼자 이탈해서 다쳐가지곤 제대로 일을 안 했다고 클레임을 걸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절차대로 휴식 때 가만히 이탈하지만 않았어도 해결될 문제였다. 위에서 병신 같이 빌빌대는 바람에 책임은 졸지에 그의 탓이 되었다.
약한 놈이 잘못한 거지. 비록 이 사태를 제공했지만 그 사냥꾼이 했다는 말에는 동의했다. 제 몸 하나 스스로 지키지도 못하면서 남 탓하는 것만큼 꼴사나운 추태도 없다. 그게 그렇게 분하면 차라리 힘을 기르든가. 또 다시 짧아진 담배를 튕기며 그는 몸을 떨었다. 이제 가을인데도 공기가 생각보다 찼다. 마지막으로 어둠을 응시한 뒤 그는 옥상을 내려갔다.
어쨌건 오랜만에 괜찮은 낚시가 될 것 같았다. 재밌는 녀석이다. 덕택에 위에서 욕 좀 먹긴 했지만, 녀석의 생각이나 배짱은 나름 마음에 들었다. 그는 가벼운 걸음으로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건져 올릴 걸 생각하니 새삼 즐거워졌다.
어떻게 생겼을까, 어떤 눈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얼마나 월척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