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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며칠 째 같은 생활 패턴을 고수 하고 있었다. 꾸준히, 지칠 정도로 아주 많이.
극도로 예민한 모습으로 미친 듯이 일에 몰두하거나, 불완전한 몰골로 손톱을 물어뜯고 어느 한 구석에 숨어 울음을 삼킨다.
그러다가 나와 눈이라도 마주칠라치면 ‘절대로 너 같은 것에게 도움을 요청 하지 않을 거야.’ 라던가.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같은 도전적인 시선을 보내면서도 정작 폭력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울화가 쌓여도 단단히 쌓인 얼굴을 하고서도 어딘가에 폭력적인 행동을 하려는 마음은 손톱만큼도 갖지 않으려는 의지가 엿보여서 참을 수가 없다.
“날 때려. 분이 풀릴 만큼.”
“시끄러워.”
“때리는 게 싫어? 그럼 할퀼래?”
“시끄럽다고 했다.”
“그럼, 나랑 대화라도 나눠.”
“호박 주제에 잔소리는. 아, 귀찮아!”
“호박 주제니까. 말 하라니까? 말이라도 하면 후련하다고. 응? 어이, 이봐!”
“됐어! 날 그냥 내버려 둬.”
그녀는 모든 것을 거부한다. 그러면 난 또 집요하게 그녀에게 칭얼거린다.
‘이게 뭐 하는 짓이냐. 100년 전에도 안 하던 짓을. 쯧.’
너무나 모양 빠지고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지만 인간 축에도 못 끼던 과거의 내 모습을 회상하며 견뎠다.
지금은 그녀를 달래고 조금이라도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게 중요하니까.
그러나 그녀는 절대 틈을 주지 않는다.
‘왜 이렇게 벽을 치고 있지?’
솔직히 답답했다. 그러나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100년간 원혼인 그녀들이 쉴 새 없이 늘어놓던 말대로라면, 여자는 나를 비롯한 누구라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무슨 말을 하든, 행동을 하든, 그 어떤 감언이설조차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누구보다 진심을 갈구하지만, 누구보다 상처를 다독여줄 대상을 갈구하지만, 절대로 남자를 믿을 수는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바람에도 바랄 수 없이…….
자연적으로 그리 되어 버린 것이다.
그녀의 얼굴이 초췌하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당장이라도 부서져 버릴 것처럼 흐릿하고 아스라한 모습이다.
너무나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나는 그 예감의 실체를 머지않아 마주 할 수 있었다.
“겨우 이게 다야?”
“이 이상 뭘 바라? 없어. 더는.”
“씨발. 없어? 진짜 없다고! 이게 구라를 까네. 너, 돈도 많은 애가 왜 이렇게 저렴하게 굴어. 좀 더 관대할 수 없어?”
“내가 돈이 많다고 누가 그래.”
“너, 돈 많은 건 누구나 알고 있지.”
“그래서?”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나한테 적선 좀 하라 이거지.”
“내가 돈 많으면…….너한테 돈을 줘야 해?”
“아이, 썅! 존나 말 안 통하네. 야! 어차피 썩어 나는 돈. 그까짓 거 몇 푼주고 말면 되지. 이렇게 나와야겠냐?”
그녀의 몸이 덜덜 떨린다. 분노를 참는 것일까. 울음을 참는 것인가.
그녀의 옆얼굴에서 눈물이 비친다.
‘울음을 참았구나.’
그녀가 가라앉은 목소리를 숨기지도 못한 채 남자에게 물었다.
“너……. 돈 때문에 날 만났던 거니? 사랑하는 감정은 없었던 거야?”
그녀의 목소리는 버석하게 말라버린 심장마저도 눈물에 푹, 젖을 만큼 애절하게 울려왔다. 그러나 남자는 그 감정에 동요한 기색도 없이 비웃음을 내비쳤다.
“내가 네 얼굴에 반하기라도 했을까봐? 널 절절하게 사랑이라도 할까봐? 나보다 열 살이나 많고 별로 예쁘지도 않은 너한테 내가? 야, 좆까라고 그래.”
“뭐?”
“객관적으로 생각을 좀 해 보세요, 이 아줌마야. 나같이 잘생기고 싱싱한 영계가 너 같은 평범하고 돈 말곤 볼 것 없는 여잘 좋아하겠느냐고.”
“…….”
“딱 봐도 감이 안 와? 돈이잖아.”
남자의 표정이 비열하게 느물거린다.
“야! 너 정도 얼굴은 길거리에 널리고 널렸어. 여기 봐! 나? 객관적으로 특A급 미남 아니냐? 이정도면 가만있어도 예쁜 애들이 줄을 선다. 서! 사람 피곤하게. 그런데 내가 노땅 아줌마랑 사랑을? 미친 거 아니냐?”
“아니라……고?”
“당연하지.”
“한 번도 없었다고?”
“말이라고 하냐. 그걸?”
그녀가 절망감에 치를 떨며 또다시 울먹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