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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이 흐르는 동안 아주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일단 난 죽었지만 죽지 않은 자이기도 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숨을 쉬지 않는데도 눈을 뜨고 고체와 액체를 넘나드는 호박 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상태라고 하면 맞을까?
자유라도 해봐야 둥근 원형의 호박 속의 한정 된 공간 안을 움직일 뿐이지만 어쨌든 나무 아래의 구덩이 속에서 잠들어 있는 호박 안에서 지난한 세월을 견디며 살아왔으니, 죽었지만 죽지 않은 자라는 말이 맞는 거겠지.
이 안에서 웅크리고 있는 동안에 난 아주 많은 일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생각 한 것보다 세상엔 나와 같은 남자들이 많다는 것과 그런 남자들에 의해 나무 밑 흙 속에 파묻히는 여자들 또한 넘쳐난다는 것을.
그것은 100년 전이나 100년이 지난 후에나 변함없는 진실이었다.
남자의 속성은 100년의 세월이 흘러도 별반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죽은 여자들은 날 처음 보자마자 비웃음을 흘리며 마치 내가 자신을 죽인 연인이기라도 한 것처럼 대하곤 했다.
복수 할 수 없는 남자들 대신에 난 그들의 분노를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했다.
내 몸을 감싼 호박은 흙에 파묻힌 그녀들의 시체에서 끝까지 사라지지 않는 손톱에 긁히고, 또 긁히며 크고 작은 상처를 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내 온 몸은 호박 안에서 찢겨져 한 움큼의 핏물을 쏟아냈다.
그녀들의 원한이 깊으면 깊을수록 내 몸의 상처는 더욱 더 커져갔고 그럴수록 나는 살아서 내가 해 온 잘못들을 더욱 반성하게 됐다.
그녀들의 원한을 들으며 반성하다보니 별 것 아닌 일에도 연인을 때리고 죽이는 그들을 증오하게 됐다.
‘내가 살아서 인간 세상으로 돌아간다면 저 나쁜 놈들을 불쌍한 여자들에게서 분리시켜 버릴 텐데.’
그러나 그녀들은 아무리 원한이 깊어도 정작 내가 연인을 죽여주겠다는 말에는 고개를 내저으며 쓴 눈물을 삼키곤 했다.
“죽이고 싶지 않아?”
“그러고 싶지 않아요. 그러면 그 사람이 너무 불쌍하잖아.”
“불쌍해? 그 쓰레기 같은 놈들이?”
“얼마나 불쌍한데요. 자신이 얼마나 가치 있고 좋은 일을 할 수 있는지도 모른 채, 가치 없는 일만 하고 있잖아. 인생 낭비를 하면서 그게 잘 하는 거라고……. 그래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잖아.”
“그게 불쌍하다고? 어째서?”
“날 죽였으니까. 그 사람은 영영 그 사람을 지지해줄 사람도, 바뀔 기회를 만들어줄 사람도 없을 거잖아.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불쌍한 사람이에요.”
“과연 그럴까?”
“그럴 거예요.”
바보 같을 정도로 그 남자들을 애처로워하는 여자들. 증오하고 원한을 품었으면서도 정작 그들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여자들.
어째서 그렇게 되었을까.
그러다 난 또다시 내 유일한 연인을 떠올리고 마는 것이었다.
‘그래. 그녀도 그랬지. 바보같이 내가 조금이라도 나은 남자가 되기를 기대하다가 죽임 당해버렸던 그녀도……. 아마 이런 심정이었겠지.’
100년 동안 나무 밑에 묻혔다가 흙으로 돌아간 여자들의 숫자만큼, 그녀들을 파묻은 비열하고 못나빠진 남자들의 숫자만큼, 나는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내게 다시 기회가 온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다시는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나와 그녀를 닮은 이들의 셀 수 없이 많은 사연들을 들으며 나는 비로소 성숙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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