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욕심
다음 날부터 난 그동안 나를 무시하며 도도하게 문을 걸어 잠갔던 텐프로의 문을 당당히 열고 들어갔다.
“얘들아~ 내가 왔다!”
“뭐야, 이 아저씨. 또 왔어?”
나는 노골적으로 싫은 기색을 보이는 텐프로 여자들 눈앞에 잘 세공 된 호박 반지 몇 개와 돈다발을 흔들어댔다.
그 순간.
그녀들의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어머, 오빠?! 어디서 큰돈이라도 번거야?”
“상속 받았지.”
“그랬어?”
“어머, 어머. 오빠……. 부자였구나?”
“몰랐냐? 겉만 봐선 모른다니까.”
“어머, 진짜 그랬나봐. 내가 너무 모르고 있었나봐.”
콧소리를 내뱉는 여자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었다.
‘그래. 난 원래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였어. 대학교를 나와서 작은 공방을 키우기 위해 애썼지만, 아버지의 완강한 태도 때문에 본의 아니게 찌질 한 인생을 살아왔으니…….이제는 날개를 펴고 제대로 살 때가 되었어. 이제 아버진 없으니까. 이 재산도 모두 내 것이니까. 공방과 호박 모두 다, 내 거야!!’
***
돈을 주면 최상의 서비스가 뭔지 알려주는 여자들에 둘러싸여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직 공방 안쪽에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철제 상자 안에 급속냉각 시킨 시체가 들어 있다는 것도 모를 것이고 돈을 만들어주는 호박을 숨겨놓은 사실을 아는 이들도 없다.
그것이 너무나 좋아서 난 쉴 새 없이 돈을 뿌리며 즐겁게 이 시간을 즐겼다.
“얘들아! 돈 받아라~!”
“꺅! 오빠 멋져~”
“내거야. 이거, 울 오빠가 나한테 준 거거든?”
“내거는 무슨 내 거! 먼저 짚는 사람이 임자지.”
“내거거든?”
“이리 안 내?”
“꺄-악-! 너, 내 머리 안 놔?”
“너부터 놔! 왜 이렇게 욕심이 많아? 돈을 집었으면 반지 정도는 내놓는 게 상도에 어긋나지 않잖아.”
아비규환이다. 돈 때문에 다정해지고, 돈 때문에 집요해지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결국 돈이 있어야 모든 것은 성립 되는 거야. 하하하하!”
8시간 후.
나는 새벽 어스름한 달빛에 겨우 시야를 확보 할 수 있을 때가 되어서야 텐프로를 벗어나 집으로 돌아왔다.
얼큰한 취기가 감돌았다. 몸이 붕붕 뜨는 느낌이다. 허탈함과 만족감이 공존한다. 중독되는 느낌. 무엇을 찾기 위해서인지 알 수 없지만 간절해진다.
다시 갖고 싶다. 그 느낌을.
비틀거리는 몸으로 호박이 있는 곳에 걸어갔다.
그녀는 깊숙이 몸을 웅크리고 잠들어 있다.
아니, 잠들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날 기다리고 있었나?’
왠지 슬퍼진다. 환영과 다름없어서 호박의 겉 표면이 아닌 그녀의 살결을 만져 볼 수 없다는 것이. 텐프로 여자들처럼 현실감 있게 내 곁에 존재하지 않는 그녀가 화가 날 정도로 미워진다.
“너는 왜 그 안에 있는 거지? 혹시 무슨 죄를 지어서 저주라도 받았던 거야? 남자를 홀렸나? 그 미모로 전쟁이라도 일으켰어? 응?”
괜한 화풀이를 한다. 그녀의 죄가 아닐지도 모르는데. 그냥 그녀가 그 안에 있다는 것이 화가 난다.
“호박은 호박대로, 당신은 당신대로 내게 있으면 얼마나 좋아. 그러면 이 공허한 감정도 사라질 텐데. 당신이 내 옆에 있으면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시시때때로 악몽같이 기억하지 않아도 될 텐데. 그런데 난, 앞으로 악몽을 기억하지 않기 위해 절박해질지도 몰라. 다른 사람들의 가식적인 행동에 기대어서 그렇게 잊으려 애쓸지 모른다고.”
그녀가 가까이 다가와 다시 얼굴을 호박 앞에 대라는 시늉을 한다.
‘그런다고 내게 위로가 되는 건 아니야.’
나는 설핏 비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런 건 애들한테나 써먹으라고. 난 이미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남자야! 어른 여자의 위로가 필요하다고. 엄마가 아이를 달래는 방법이 아니라. 어른 여자의 위로가 뭔지 알아? 살을 비비고 깊숙이 받아들여 주는 거야. 입술을 맞대고 혀를 얽는 거라고. 너의 깊숙한 곳에
내가 허리를 흔들고 박으면 네 존재가 더 확실해지는 거야. 비명을 내지르고 환희에 불타올라서 네 존재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거야. 그런데 넌…….
그런 어른 여자가 아니잖아? 환상일 뿐이지.”
그 순간 내 눈은 위험스럽게 빛나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 그때의 난 제정신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