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같던 네명의 악당들, 는 그야말로 학교 내에서 거침이 없었다.
마치 하이에나와 초식동물들만이 존재하는 생태계에서 갑자기 나타나 최고의 포식자의 위치에 올라선 늑대처럼 그렇게 무리 지어 학교를 어슬렁거리며 다녔다. 그들이 나타나면 하이에나도 토끼들도 모두 다 꼬리를 내리고 낑낑 대며 숨기 바빴다.
그들은 늑대만큼 힘이 셌고 무리 지어 행동했으며 교활하기까지 했다.
하물며 이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피라미드의 최하단에 위치한 나의 처지야 이루 말할 나위가 없었다. 난 그들에게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해 그들이 출몰하는 곳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마주치지 않기를 바래야 했다.
불과 열일곱, 고1학생들이 그렇게 학교를 휘젓고 다녀도 상급생이나 선생들로부터 아무 제지도 받지 않고 탈이 없는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V4중에 우선 민변구. 이름조차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역겨운 놈이다.
아버지가 부산 팔성파 부두목이였다. 그 놈 아버지는 인맥관리는 어릴 때부터 해야 한다고 성적도 안되는 자식놈을 이사장한테 돈을 처먹이고 협박해서 뒷문으로 입학시켰다. 이 놈이 얼마나 미친놈이냐 하면 어린 놈이 벌써부터 어깨 상박부에 야쿠자 문신을 하고 다녔다. 자랑하기 좋아하는 자기 말로는 정통 야쿠자만이 하는 <이레즈미>라고 했다. 학교에서는 문신한 것을 분명히 알았을 텐데 묵인하고 아무 조치도 하지 않았다.
민변구는 아침 등교 때마다 금장색 장식이 덕지덕지 붙은 검정색 크라이슬러300C를 타고 왔다. 깍두기 머리를 한 운전수가 문을 열어 주면 그 거들먹거리는 자세로 뒷자석에서 기어나와 팔자걸음을 하고 학교문을 들어서곤 했다.
수업시간 중에그는 공공연히 자기 아버지가 별이 몇 개고 이번에 서울에 무슨 식구네하고 연합을 한다는 등을 떠벌리고 다니는데 정말 이 놈이 대한민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는 그도 조심하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높은 공무원 자리에 있는 아이들이였다. 그런 아이들 앞에서는 민변구도 마치 새색시마냥 조용히 처신했다. 하지만 나같이 아버지가 없거나 별 볼일 없는 집안아이들에게는 굶주린 늑대처럼 행동했다. 그런 민변구를 선생 중에는 터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두번째 V4 놈은 차동팔. 차동팔의 아버지는 차씨가 아니다. 내가 알기로는 ‘신’씨로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차동팔이냐구. 자기 엄마의 성을 땄기 때문이다.
차동팔의 어머니는 우리나라 다섯 손가락안에 드는 재벌의 첩이였다. 그 재벌이 나이 일흔여덟에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던 차동팔의 어머니를 화장품 광고모델 시켜준다고 호텔방으로 꼬셔서 겁탈해 나은 자식이라고 들었다. 처음엔 겁탈이었는지 몰라도 나중에 그녀는 아예 첩으로 들어앉아 치매에 걸린 할배를 가지고 놀면서 본처 자식들과 재산 다툼 중이었다.
세번째, 나를 야릇하게 괴롭히던 반장놈, 신영귀. 셋 중에서 가장 허접한 놈이다. 눈이 송아지처럼 커다란게 한눈에 봐도 겁 많은 놈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이놈이 무리에 가담한 건 순전히 차동팔 덕분이다. 차동팔이 자기 시다바리로 써먹기 위해서 만만한 놈 하나를 무리에 끼워 넣은 것이다. 바로 신영귀의 아버지가 차동팔의 어머니,즉 재벌의 첩이 소유한 호텔의 객실 담당 상무였던 것이다.
신영귀는 차동팔이 가래침이라도 뱉을라치면 재빨리 자기 손바닥이라도 고이 모아서 갖다 대령하는 타고난 아부꾼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자신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아버지가 세상 모든 월급쟁이는 다 이렇게 산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릭 방…내가 신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고도 살인을 할 수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놈…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자비조차 베풀 필요가 없는 놈…한 때 난 그 놈 때문에 괴물이 되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았다.
학교에 있다는 파란 눈의 외국인이 바로 에릭 방이였다. 이 놈은 처음부터 이름 외에는 모든 사생활이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아버지가 누군지, 국적이 어딘지, 어떻게 한국에 오게 되었는지, 왜 방씨 성을 쓰고 있는지…제대로 알려진 것이 별로 없었다. 집만 도곡동 주상복합 69층 펜트하우스에 산다는 것만 알려져 있었을 뿐 학교의 소식통들도 그에 관해서는 통 아는 바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앞서 세명과는 차원이 틀린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나도 그의 정체를 알기까지는 한참 동안 아주 오랜 시간과 인내가 필요했다.
내가 그를 몰래 곁눈질로 관찰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나는 교실 벽 쪽 중간 정도 열에 앉아 있었는데 덩치가 큰 에릭 방은 항상 교실 뒤 창가쪽 로얄석에 앉아 있었다. 뒤쪽에 있는 그를 보기 위해서는 고개를 돌려 봐야만 했다. 가끔씩 힐끔 거리며 고개를 돌려 볼 때마다 그 놈과 눈이 마주쳤다. 그 놈은 서늘한 눈빛으로 나를 향해 미소를 지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마치 그놈도 나를 관찰하고 있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난 그 놈들의 관심을 끌지 않기 위해서 옷도 최대한 수수하게 입고 다녔고 특별히 눈에 뛸 만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사실 이것은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본능적으로 터득한 생존 본능 같은 것이였다. 굳이 따지자면 주위의 환경에 맞춰 진화한 동물이 보호색 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그렇게 놈을 몰래 관찰하면서 한가지 의문을 가졌다. 내 경험한 바로는 이런 부류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군림하면서 얻고 싶어하는 것은 우쭐거리는 약간의 우월감과 아이들을 갈취해서 얻는 약간의 금전적 이익이다.
그런데 V4가 그깟 돈 몇 푼이 아쉬울리는 없었다. 우월감? 내가 보기에는 나머지 세명은 그렇다 해도 에릭 방은 전혀 그런 것과는 다른 존재였다. 그는 민변구가 얘들을 괴롭히고 겁주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단 한 번도 자기가 직접 앞에 나서지 않았다. 그는 마치 과학자처럼 뒤에서 그 상황을 관찰하고만 있었다. 그리고 모든 상황은 그로 인하여 완벽하게 통제되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그는 마치 <우리>라는 표본을 관찰하러 학교에 오는 실험실의 과학자 같았다.
도대체 그 놈의 담대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는 무엇인가를 실현함에 있어서 한치의 주저함이나 두려움도 없었다. 열일곱 짜리 학생이라면 경험도 없고 생각도 짧아 주저할만도 한데 그는 매사에 그런 것이 없어 보였다. 항상 확신과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내가 그는 차원이 다르다고 한 이유이다.
여기까지가 그 때 당시 내가 듣고 관찰한 것의 전부이다. 이런 정보는 내 옆자리에 앉은 맹기남이란 녀석, 바로 아버지가 스포츠신문의 편집국장이라는 그 떠벌이 녀석이 나를 붙잡고 떠들어준 덕분에 더욱 쉽게 얻을 수 있었다.
<되도록 멀리하고 눈을 마주치지 말아라.> 그 녀석이 나에게 해 준 충고였다.
나는 그 충고를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내가 무슨 힘으로 그들에게 대적하겠는가? 나는 그들에게는 한입거리도 되지 않았다. 그저 살기 위해 빨리 달리고 재빨리 숨어야 하는 초식동물 이였을 뿐이다. 난 이 악몽같은 고등학교 시절이 어서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랬다. 졸업을 해도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없었지만 어쨌든 시간이 빨리 흘러가 숨도 제대로 못 쉴 답답한 상황이 끝나기 만을 원했다.
한편으로 전학이나 자퇴를 심각히 생각해 본적도 있었다. 하지만 전학을 하면 어디로 한단 말인가? 거기서도 내 별명이 심장이 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었다.
자퇴? 그것은 내가 하루 종일 집안에서 어머니와 같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당시 어머니는 지인이 알려준 종목의 주식에 손을 댔다가 심각한 곤경에 처해 있었는데 나는 그런 어머니에게 또 다른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또 모든 일에 사사건건 간섭하는 어머니와 24시간을 같이 생활하다는 것은 역시 상상하기 싫은 일이였다.
그래서 일단 학교에서 뭉개기로 했다. 난 학교를 다니는 보람도 희망도 목표도 없었다. 성적도 그저 그런대로 중위권 정도였고 학기초에 제출하는 미래의 희망란에는 공란으로 남겨두었다. 남에 눈에 띄지 않고 졸업 하기가 유일한 목표 였을 뿐이다.
그녀를 처음 만나기 전까지 정말이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