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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더 비너스 쇼
작가 : sat0523
작품등록일 : 2017.12.17

105년 만에 금성일식이 시작되던 그 순간 자신의 몸으로부터 탈락된 승아의 영혼은 한 여우의 몸에 갇혀 잊고 지냈던 과거와 기억들을 강제로 직면하고 만다. 원치 않는 운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인 몸부림을 쳐보지만 그녀가 정녕 받아들여야만 하는 운명은 따로 있었으니... 더 비너스 쇼.

 
불리한 기억들 02
작성일 : 17-12-18 00:57     조회 : 309     추천 : 0     분량 : 5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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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뭣들하고 있던 거야! 당장 찾아! 정신 나간 새끼들아 당장 잡아오라고!!”

 

 잔뜩 성이 난 살기어린 목소리에 등줄기를 타고 오싹함이 흘러내렸다. 뒤를 돌아보니 집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남자들의 수가 상당했다. 이젠 정말 죽자고 달려야만 저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승아는 코너 벽을 짚고 돌며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달리고 또 달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도 승아는 멈출 수가 없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그들의 발자국 소리에 또다시 밀려오는 공포로 터져 나오는 울음 또한 멈출 수가 없었다.

 

 “시발 어디로 숨은 거야. 쥐새끼같이 도망가더니 숨기도 잘 숨네.”

 

 이미 저만치 앞서 달려가 숨을 고르며 전방을 주시하고 있던 재혁의 뒤통수를 발견하고 뜀박질을 멈춘 승아가 바들바들 떨며 걸음을 물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뒤를 돌아볼 것만 같은 불안감에 그에게서 겁먹은 시선을 뗄 수 없던 승아였다. 담장을 더듬거리며 물러나던 승아의 손끝에 차갑고 거친 감촉의 철문이 닿았다. 아직 사람이 떠나지 않은, 누군가가 살고 있어 집 안에 환하게 불이 켜져있는 집의 문이 열려있었고 급히 그 안으로 숨어들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린 승아가 주저앉고 말았다.

 

 또각또각.

 

 재혁은 구두를 신고 있었고 굽 소리는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심장이 내려앉을 듯이 쿵쾅거리며 가슴 벽을 쳐대기 시작했다. 덜덜 떨리는 두 손으로 뜨거운 숨이 새어나는 입을 틀어막은 채 담벼락에 뒤통수를 댄 승아가 어느 곳에서 멈춰버린 그의 발자국 소리에 집중하던 순간이었다.

 

 “어디 숨었을까? 이 앙큼한 쥐새끼가?”

 

 바로 머리 위에서 들려온 재혁의 목소리에 기어코 심장이 내려앉은 듯 하얗게 질려버린 입술을 깨물며 승아가 가슴자락을 세게 쥐었다. 흐느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승아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빠르게 굳어가기 시작하는 몸이 담벼락에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이 느껴진다.

 

 지잉-

 

 재혁이 주머니에서 울어대는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수훈임을 확인하고 통화버튼을 누르자 고르지 못한 숨을 토해내는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형님 지하차도 위에서 타깃과 흡사한 여자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확실해?”

 [비틀거리는 게 약에 취한 것 같았다고...]

 “바로 이동한다. 놓치지마라. 이번에도 놓치면 정말 우리 모가지 날라가는거 시간문제라고.”

 

 전화를 끊은 재혁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입술을 매만졌다. 예상시간보다 마취에서 먼저 깨어난 몸으로 벌써 산동네를 벗어나 대로변까지 나가있다는 말에 그다지 신뢰가 가진 않았지만 포박도 풀고 감금됐던 방을 탈출한 아이니 전혀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리라.

 

 “다시 잡히면 개 고생시킨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해주겠어.”

 

 이를 바득바득 갈며 재혁이 멀어지고 또각 거리는 구두 굽 소리조차 희미해질 때쯤 그제야 깊은 숨을 토해내며 승아가 헛구역질을 해댔다. 터져 나오는 눈물을 문질러 닦아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가 사라져 간 길을 고개만 빠끔히 철문 사이로 내밀어 바라보던 승아가 반대방향으로 빠른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와 반대방향으로만 계속해서 걸어 나간다면 다시 붙잡힐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기에 무작정 걸어 나가던 승아의 눈 앞에 8차선 도로가 펼쳐졌다.

 

 많진 않지만 한 두명 정도의 사람들이 지나가고 차량 또한 강한바람을 일으키며 스쳐지나갔다. 살았다는 생각에 감격하기도 잠시 택시를 잡기 위해 저 먼발치를 바라볼 때였다. 천천히 어슬렁거리는 걸음걸이로 다가서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한 곳으로 향해 있는 것만 같이 느껴지며 불길한 예감이 치솟고 있었다. 돌아보니 양쪽에서 에워싸듯 점점 가까워지는 그들의 눈과 하나, 둘씩 마주쳐가자 승아는 결심한 듯 이를 악물고 8차선을 횡단하기 시작했다.

 

 빵-

 

 클랙슨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지만 그들의 손에 다시 잡히느니 차라리 차에 치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온 이성을 지배하고 있었다. 승아는 돌아보지도 않고 그렇게 건너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다 달려가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방가.’

 

 반대편에서 입술을 벙긋거리며 소름끼치는 미소를 짓고 있는 재혁과 마주쳤다. 잠시 시간이 멈춘 것도 싶었다. 그 잠깐동안의 시간이 지나고 승아는 실소를 터뜨리며 도로 한복판에서 우뚝 멈춰섰다.

 

 애초에 불가능했던 일이었을까? 저들에게서 달아나는 것이 정말 불가능한 일이었다면 차라리...

 

 “이런 시발.”

 

 재혁의 얼굴이 구겨지며 입에서 낮게 욕지걸이가 튀어나왔다. 멍한 얼굴로 그런 재혁을 바라보던 승아가 눈부신 빛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전조등 빛이 쏟아지며 고막을 찢을 듯이 울려대는 경적소리에 귀가 멀 지경이었지만 승아는 환하게 미소 지으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물가에 내놓은 애마냥...”

 

 이미 트럭에 치여 의식이 몸으로부터 분리된 것은 아닐까? 라는 의문이 들어올 때 쯤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부신 불빛도, 시끄럽게 울어대던 경적소리들도 모두 사라져버린 순간에 질끈 감았던 눈을 살짝 뜬 승아는 코앞에서 멈춰버린 덤프트럭을 올려다 보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곁에서 도무지 자리를 뜰 수 없게 만드는 건 그의 뜻인가, 너의 뜻인가?”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먼저 다가와 승아를 품에 안아든 목소리의 주인공은 창백한 낯빛이지만 선한 눈매와 인상을 가진 남자였다. 조금 전 자신을 쫓던 무리들과 옷차림새는 비슷했지만 풍겨지는 이미지에 위협적인 느낌은 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에게서 풍겨오는 진한 바닐라 냄새.

 

 “어떻게 된 거죠?”

 

 멈춘 것은 덤프트럭만이 아니었다. 덤프트럭과 함께 온 세상이 멈춰 있었다. 질기게도 차로까지 횡단하며 쫒아온 사람들과 영문도 모른 채 놀란 얼굴로 인도 위에 서있는 사람들, 그리고 막 차로로 뛰어들려했던 재혁과 도로 위의 수많은 차들까지.

 

 “매번 물어오는 질문에 답해 줄 만큼 내가 그다지 친절한 편이 아니라서.”

 “이건 꿈인가요? 아님... 내가 죽어버린 건가요?”

 “그래 이건 꿈이야. 곧 깨고 말 지독히도 끔찍한 꿈. 그리고 이제 다신 꾸지 말았으면 하는 꿈.”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세상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깜짝할 새에 인도로 옮겨와 품에서 승아를 내려주며 그는 가볍게 손가락을 부딪쳤다. 그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차량들과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도로로 뛰어들기 전의 상황으로 모두 돌아가는 시간의 역행 중이었다. 그 기이한 광경에 정신이 팔려있기도 잠시 경쾌한 핑거스냅 소리에 잠에서 깬 듯 정신을 차린 승아는 두 눈을 비비며 제자리에서 계속 뱅뱅 돌았다.

 

 어둡고 깜깜하던 밤하늘은 어느새 눈부시게 떠오른 태양이 강렬하게 비추고 있었고 눈앞에 펼쳐져있던 8차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초등학교 앞 한적한 2차선도로만이 펼쳐져 있었다. 인도 위에서 교통봉사중인 학부모와 눈이 마주친 승아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걸음 내딛다 비틀거리며 주저앉고 만다.

 

 “괜찮으세요?”

 

 부축해오는 그녀에게서 달달한 냄새가 나던가싶었지만 이내 곧 지독한 알코올 냄새로 바뀌어 승아의 코를 자극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어딜 간거지...?‘

 

 “야! 정승아! 넌 도대체!...”

 

 다시 눈을 떴을 땐 가로막힌 하얀 천장이 처음으로 시야에 들어왔고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보았을 땐 사방에서 응급시술 중인 응급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심각한 얼굴로 침대 맡을 응시하며 멍 때리다 깨어난 승아를 발견한 미윤까지.

 

 “여긴 또 어디야...”

 “어디긴 내가 묻고 싶은 소리다. 다치기라도 했으면 어쩔 뻔 했어? 이런 외딴데서 다쳐 수혈이라도 받아야했으면 어쩔!...”

 

 그렇지 않아도 당황하고 잔뜩 긴장해있는 승아의 얼굴을 본 미윤이 한참 쏟아내려던 말들을 삼키며 헝클어져 있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연락받고 차로 내려오는데 두 시간 반이나 걸렸어. 아니 아저씨한테는 집에 오는 길이라고 했었다며? 근데 왜 넌 생전 와보지도 못한 데를 와서는 사람을 보고 놀라서 쓰러져? 그 아줌마가 무슨 해코지라도 한거 아냐?”

 “아줌마?”

 

 승아는 잠시 과부하상태인 머릿속의 기억을 되짚으며 교통봉사 중으로 보였던 젊은 여자를 떠올렸다.

 

 “아니... 그 분은 날 도와주신 것 같은데... 난 단지 덤프트럭에 치일 뻔해서 놀란데다가...”

 “덤프트럭?... 가벼운 뇌진탕정도라더니 너 쓰러지면서 머리 다친 거 아니야? 덤프트럭이 다닐 만한 곳이 아닌데... 니가 쓰러진 곳은 아파트 단지 내 초등학교 앞이었어.”

 “그건 그 사람이 날 거기에 데려다 놓은 거고 그 전에 덤프트럭에 치일...”

 

 고개를 갸웃거리다 놀란 눈을 한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미윤이 승아의 이마와 얼굴의 곳곳을 짚어보며 도움 청할 곳을 찾는지 주위를 살폈다.

 

 “검사라도 해야 하는거 아닌가? 진료를 다시 받아봐야 할 것 같은데.”

 “나 지금 멀쩡해. 우미윤”

 “니가 멀쩡하다고? 내가 병원에서 연락받고 너 데리러 그냥 내려왔을 것 같아? 이미 동기한테 초등학교 앞 CCTV 확보해서 확인하고 너 깨어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고.”

 “그래서?”

 “뭐가 그래서야? 깨어나서 계속 횡설수설만 하고 있는데 그럼 가만히 둬?”

 “그럼...”

 

 사고가 날 뻔 한 현장의 기록까지 뒤져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들에게 잡혀갔고 또 탈출하려 했던 그 곳 또한 자의로 찾아간 것이 아닌지라 그 낯선 곳이 어딘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럼 뭐?”

 

 답답한 마음에 승아는 탄식만 흘릴 뿐이었다. 걱정되어 애가 타는 미윤의 얼굴과 마주하던 승아가 상체를 일으키며 링거바늘을 빼내려하자 미윤의 굵은 손이 양 손목을 잡으며 막아냈다.

 

 “일단 좀 쉬자. 이 수액 다 맞을 때까지만. 나도 갑자기 이게 무슨 상황인건지 모르겠지만 쉬고 나서 다시 얘기하자.”

 “믿질 않잖아. 지금 네가.”

 “내가 언제 네 말 안 믿은 적 있었어?”

 “그런데 왜 못 믿냐고. 나도 지금 답답해 미칠 지경인데 왜 내 말은 믿으려하질 않냐고!”

 

 미윤은 잠시 잡고 있던 승아의 손을 내려 봤다. 가는 손목을 가리고 있는 엄지손가락을 치워내자 점차 희미해져가는 붉은 자국이 양 손목에 나있었다. 의아했지만 자신이 눈으로 확인한 CCTV 속 동행 없이 자의로 이동해온 승아의 행적으로보아 의심을 더는 증폭시킬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자신과 마주한 승아의 눈빛은 이대로 묵인시킬 수 없는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다시 믿어볼게.”

 

 휴대폰이 주머니 속에서 지잉-거리며 울어대기 시작했다. 눈물이 약간 배어든 승아의 시선이 미윤의 재킷으로 향하자 그제야 가는 두 손을 풀어주며 휴대폰을 빼 든다.

 

 “받아. 난 괜찮으니까.”

 

 다시 침대 위로 누운 승아가 반대편으로 돌아누우며 말했다. 십년이 넘는 세월동안 봐온 바로는 승아는 지금 뱉은 말과는 반대로 서운함을 토로하는 중이 확실했다.

 

 “금방 올게. 서에서 온 전화라...”

 

 급히 응급실을 빠져나와 받은 전화기 너머 동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속 역추적을 하다 승아씨 회사 앞까지 돌려봤는데 퇴근 루트 중간부터 사라져서 터미널을 혼자 찾아가기 전까지의 4시간이 빈다? 그 공백동안 근처 CCTV를 다 들쑤셔 봐도 나오질 않아.]

 “사각지대에서 납치되었을 가능성은? 협박? 운반책으로 이용이라도 당한 걸까?”

 [글쎄... 그건 확신할 순 없지만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

 

 미윤은 승아의 입에서 나온 그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해 의구심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건 그 사람이 날 거기에 데려다 놓은 거고 그 전에 덤프트럭에 치일...‘

 

 승아를 뭔가의 운반책으로 이용하고 덤프트럭으로 처리하려 들었다면 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 앞뒤가 바뀌어 있다. 덤프트럭에 치일 뻔하고 그 뒤에 승아를 홀로 타지로 멀리 향하게 했다? 누군가 중간에서 승아를 도와주기라도 했다는 걸까...

 

 “현민아 한번만 더 부탁하자. 승아가 사라진 그 사각지대 일대에서 말썽 일으키는 놈들 리스트 좀 부탁해.”

 [승아씨 일인데 이미 알아봤지. 그런데 하필이면...]

 

 전화가 끊어지고 전해 받은 파일을 확인한 미윤의 얼굴이 급속도로 굳어지기 시작했다.

 

 ‘최근에 제스트까지 땅따먹기하고 근방 유흥가 섭렵한 놈들 있잖냐. 갑자기 과거세탁하고 양지로 뻗어 나온 놈들.’

 ‘양두일파 말하는 거야?’

 ‘그래. 그 사각지대가 양두일파 본거지더라고.’

 

 손에 들린 휴대폰이 부서져라 꽉 쥐어든 미윤이 돌아섰다. 멀리 투명한 출입문 너머 기어코 링거바늘을 빼내고 수납 창구 앞에서 쭈뼛거리며 서있는 승아의 모습이 들어왔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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