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몸이 뚱뚱해서 가슴도 컸다. 남정네들이 음침한 눈빛으로 어머니를 훔쳐보는 것도 가슴 때문이었다.
“이놈 새끼, 왜 이렇게 더럽게 하고 다녀?”
김체건이 코를 흘리고 돌아다니면 어머니는 사납게 목덜미를 낚아채 사타구니에 얼굴을 처박고 치맛자락으로 코를 닦아 주었다. 그래서 어머니의 치맛자락은 항상 더러웠다. 어머니에게서는 언제나 생선 비린내와 젖냄새가 풍겼다.
“김체건이 놈은 분명히 다리 밑에서 주워왔을 거야.”
장사치들은 걸핏하면 어머니를 힐끔거리면서 낄낄거렸다. 김체건은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그런 말을 듣게 되자 정말 다리 밑에서 주워 왔나 하고 의심이 들었다. 멀찍이 떨어져서 친어머니가 맞나 하고 의뭉스러운 눈길로 장사를 하는 어머니를 살피기도 했다.
한번은 김체건이 열병을 앓게 되었다. 온몸이 불덩어리처럼 달아오르고 몸이 떨려 이빨이 딱딱 부딪쳤다.
“아이고, 우리 막둥이… 크느라고 그러는 것이니 조금만 참아라.”
어머니가 김체건을 안아서 커다란 가슴에 얼굴을 문질러댔다. 어머니의 몸에서는 생선 비린내와 함께 젖냄새가 풍겼다. 그러나 김체건은 어머니의 품속이 아늑했다. 눈물이 나올 정도로 전신이 아팠으나 어머니의 품에 안기자 스르르 잠이 왔다. 어머니는 김체건을 끌어안고 밤새 선잠을 잤다. 이튿날 눈을 뜨자 김체건은 몸이 개운했다.
‘나는 다리 밑에서 주워오지 않았어.’
김체건은 비로소 친어머니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마포나루 근처에 심술이 사나운 돼지장사가 있었다. 마포나루 사람들은 그를 돼지장사 박가라고 불렀다. 박가는 김체건을 볼 때마다 공연히 양반 자식이 아니라 상놈 자식이라고 욕을 했다. 김체건은 그가 함부로 욕을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이들은 그의 엉덩이가 쳐졌다고 해서 돼지 오줌통이라고 불렀다. 돼지 오줌통처럼 엉덩이가 축 늘어져서 생긴 별명이었다. 마을에서 돼지를 잡을 때면 돼지 오줌통을 묶어서 발로 차곤 했는데 심하게 차면 오줌보가 터졌다. 박가의 엉덩이가 동그래서 아이들이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박가는 돼지 오줌통이라는 말을 가장 싫어했다.
“이놈, 너는 니 에미가 다리 밑에서 주워왔어. 그러니 개차반이지.”
하루는 박가가 또 다시 김체건을 보고 비아냥거렸다.
‘망할 놈의 영감탱이, 내가 그냥 두지 않을 거야.’
김체건은 아이들을 동원하여 박가의 돼지 울타리를 열고 마포나루로 돼지를 몰고 갔다. 갑자기 돼지 떼가 마포나루로 몰려오자 난전이 발칵 뒤집혔다.
“이 미친놈의 새끼들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네 에미가 그렇게 가르치든? 젖통 큰 니 에미가 새끼는 싸질러놓고 사람 되는 법은 가르치지 않아?”
돼지 장사 박가는 노발대발했다. 어머니가 젖통이 큰 여편네라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으나 박가가 입에 올리자 김체건은 부아가 치밀었다.
“돼지 오줌통. 돼지 오줌통… 발로 한 번 뻥 차면 오줌이 터져….”
김체건은 박가를 약 올리다가 냅다 달아났다.
“대체 자식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거요?”
김체건이 달아나자 박가가 어머니에게 달려와 삿대질을 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애들이 자라면서 말썽을 부리는 것은 흔한 일이요, 병가지상사라 할 것인데 왜 소리를 지르시오? 영의정을 지낸 오성 대감도 어릴 때는 천하의 개망나니였소.”
어머니는 돼지 장사 박가에게 콧방귀를 뀌었다.
“오성 대감이 누구요?”
박가가 어리둥절하여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누구긴 누구야? 김체건이 증조할아버지지. 그러니 우리 김체건이 건드리는 놈은 이렇게 토막을 낼 테니 그런 줄 알아. 어디서 감히 양반 자식을 능멸해?”
어머니가 눈알을 희번덕거리면서 생선을 토막 내는 칼로 명태 머리를 탁 잘랐다. 돼지 장사 박가는 그 서슬에 놀라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고 가버렸다.
“엄마, 오성 대감이 진짜 우리 증조할아버지야?”
김체건이 쭈뼛거리면서 물었다.
“무슨 헛소리야? 오성대감은 이씨고 너는 김가잖아?”
어머니는 마포나루에서 장사를 하면서 과부라고 집적대는 사람이 있으면 생선을 토막 치는 칼을 휘둘렀다.
“네 어미는 이쪽에서 보면 왼쪽 젖통이 큰 것 같고… 저쪽에서 보면 오른쪽이 큰 것 같은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혹시 짝짝이 아니냐? 네가 한 번 알아볼래?”
한 번은 박가가 김체건에게 엿가락 한 토막을 주면서 야비하게 웃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돼지 장사 박가는 과부인 어머니에게 은밀하게 수작을 부렸으나 야멸차게 거절하자 심술을 부리게 된 것이다. 김체건은 어머니가 장사를 하는 곳에 와서 은밀하게 가슴을 살폈다. 형은 어머니 옆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김체건은 어머니의 가슴을 왼쪽에서도 살피고 오른쪽에서도 살폈다. 한여름이었다. 어머니는 검정색 홑치마에 삼베 홑저고리를 걸치고 있었다. 옷고름을 맨 것이 허술하여 저고리 밑으로도 가슴이 드러나고 앞섶으로도 허연 살덩어리가 드러나 있었다. 김체건은 어머니의 가슴이 어느 쪽이 더 큰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이놈아, 뭘하고 있어? 정신 사납게 왜 왔다 갔다 하고 있어?”
어머니가 눈살을 찌푸리고 김체건을 쏘아보았다.
“엄마 가슴이 어느 쪽이 큰지 모르겠어. 왼쪽이 큰가 오른쪽이 큰가?”
김체건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머니가 한참 동안 눈을 끔벅거렸다.
“이놈 새끼가 실성을 했나? 더위를 처먹었나?”
어머니가 갑자기 노발대발하여 칼을 들고 소리를 질렀다. 김체건은 깜짝 놀라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새우젓 냄새가 가득한 난전을 지나 강둑으로 달려갔다. 돼지 장사 박가 때문에 공연한 짓을 한 것이다. 날씨는 후텁지근했다. 몇 걸음 달리지 않았는데 이마에서 땀이 흥건하게 흘러내렸다. 천천히 걸으면서 이마의 땀을 훔치는데 서광표와 아이들이 누렇게 익은 보리밭에서 나타났다. 서광표와 아이들은 강둑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어디 가냐?”
김체건은 서광표를 따라 뛰었다.
“헤엄치러 간다.”
서광표가 뒤를 돌아보고 소리를 질렀다. 날씨는 숨이 막힐 듯이 더웠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데 보리밭에서 매캐하게 탄내가 풍겼다. 김체건은 온 몸으로 땀이 비오듯이 흘러내렸다. 김체건은 숨이 가빴다. 그때 망원정 쪽에서 터벅터벅 걸어오는 이금이 보였다.
“어디 가니?”
이금이 반색을 하고 물었다.
“청파천.”
김체건은 이금의 옆을 지나 강둑의 갈대숲으로 달려갔다. 갈대숲 옆은 오이밭이었다.
“같이 가자.”
이금이 김체건을 따라 뛰었다. 이금은 멀리 구름재 쪽에서 살고 있었다. 때때로 마포나루에서 어슬렁거리고 돌아다니다가 김체건이나 서광표 등과 어울렸다. 옷차림이 호사스럽고 얼굴이 허얘서 서광표와 아이들이 흰둥이라고 불렀다. 나이도 어린데 통영갓을 쓰고 부채를 흔들고 다녀 대갓집이나 부잣집 아들놈이 틀림없어 보였다.
이금은 서광표가 사납다고 싫어하고 김체건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 김체건은 한참을 뛰다가 코를 훌쩍이면서 이금을 기다렸다. 이금이 어슬렁거리고 느릿느릿 다가왔다. 도무지 급할 것이 없는 양반걸음이었다.
“빨리 와.”
김체건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이들은 벌써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청파천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강에서는 놀지 못하고 골짜기에서 흘러내려 강으로 들어가는 냇물에서만 놀았다. 청파천은 물이 깊지 않아 좋았다.
“우리도 들어가자.”
김체건이 이금에게 말하고 옷을 벗고 뛰어들었다.
첨벙.
김체건은 온몸을 물속에 뛰어들었다가 솟구쳤다. 땀으로 흠뻑 젖었던 몸이 시원했다. 이금은 수양버들 그늘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너는 안 들어와?”
서광표가 이금을 향해 소리를 버럭 질렀다.
“나는 구경이나 하겠다.”
이금이 뒷짐을 지고 대답했다.
“흰둥이는 덥지도 않냐?”
서광표가 소리를 지르자 아이들이 손가락질을 하면서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 * * *
냇물에서 눈이 벌게지도록 뛰어놀다가 돌아가는 길이었다. 김체건은 이금과 나란히 아이들을 따라 걸었다. 이금이 항상 뒤처졌기 때문에 김체건도 뒤처졌다. 강가의 채마밭에 오이가 열려 있었다. 아이들은 배가 고팠던 참이라 우르르 몰려가 오이를 따서 먹었다.
“도적질이다.”
이금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오이 하나 따먹는데 무슨 도적이냐?”
김체건이 눈살을 찌푸리고 소리를 질렀다.
“좁쌀 한 톨을 훔쳐도 도적이다.”
이금이 지지 않고 대답했다.
“양반들은 천민들의 계집을 훔치고 땅을 훔쳐도 도적이 아닌데 오이 하나 훔친 게 무슨 도적이냐?”
서광표가 눈알을 부라렸다. 이금이 주춤하여 한 걸음 물러섰다.
“이놈들! 왜 남의 오이를 훔치느냐? 모조리 잡아다가 포도청에 넘길 테니 게 섯거라.”
그때 밭주인이 멀리서 소리를 질렀다.
“얘들아, 튀어!”
아이들은 함성을 지르면서 마포나루 쪽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그들이 한참을 달렸을 때 작은 개울에서 빨래를 하는 소녀가 보였다.
“얘들아, 장전하자.”
서광표가 아이들에게 말했다. 아이들이 낄낄대면서 엉덩이를 까내렸다. 김체건은 어쩐지 꺼림칙했다. 아이들이 깔깔대는 소리에 소녀가 고개를 홱 돌렸다. 소녀와 눈이 마주치자 김체건은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뛰었다. 눈이 선연하게 맑은 소녀였다. 김체건은 소녀를 뚫어질 듯이 응시했다. 소녀가 당황하여 고개를 홱 돌렸다.
“발사.”
아이들이 소녀가 있는 쪽을 향해 일제히 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소녀가 당황하여 빨래 그릇을 들고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손가락질을 하면서 웃었다.
“음란하다.”
이금이 마땅치 않은 표정으로 뒷짐을 지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흰둥이가 광표가 싫어하는 소리만 골라서 하네.’
김체건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이들은 소변을 보고 소녀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얼마 가지 않았을 때 검은 개 한 마리가 오두막 앞에서 무엇인가 먹고 있었다.
서광표가 밭에 울타리를 만들기 위해 쌓아 놓은 막대기를 하나 주워들고 검은 개를 때리는 시늉을 했다. 검은 개가 서광표를 노려보면서 으르렁거렸다. 그러나 서광표도 지지 않고 작대기를 휘둘렀다. 서광표의 눈에서 알 수 없는 광기가 뿜어지고 있었다.
김체건은 긴장하여 검은 개와 서광표를 응시했다. 길가에 막대기를 쌓아놓은 것이 보였다. 김체건은 혹시라도 검은 개가 달려들까 봐 막대기를 주워들었다. 막대기가 묵직했다. 그때 검은 개가 으르렁거리면서 서광표를 향해 사납게 달려갔다. 서광표가 깜짝 놀라 달아나기 시작했다. 검은 개가 사납게 달려오자 앞에 가던 아이들이 놀라서 밭으로 뛰어들고 강둑으로 굴렀다. 검은 개는 목표물을 놓치자 빨래 그릇을 들고 가는 소녀를 덮쳤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몰랐다. 아이들은 김체건을 항상 코찔찔이라고 불렀다. 겁이 많고 소심하여 무서운 것을 보면 가장 먼저 달아나거나 숨었다. 도망을 칠 때는 걸음이 하도 빨라 발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김체건은 검은 개가 소녀를 덮치자 막대기를 들고 소녀에게 달려갔다. 검은 개가 소녀를 덮쳐 다리를 물었고, 소녀는 빨래 그릇을 놓치고 길바닥에 쓰러져 울음을 터트렸다.
“이놈! 저리 가지 못해?”
김체건은 막대기로 검은 개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검은 개는 소녀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김체건은 그 짧은 순간에도 검은 개를 물리치려면 급소를 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체건은 막대기로 검은 개의 머리를 내리쳤다. 검은 개가 깨갱 하고 달아났다. 김체건은 가쁜 호흡을 고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소녀는 땅바닥에 쓰러져 울고 있었다.
“개에게 물렸으니 빨리 의원에게 데리고 가라.”
이금이 뒤에 와서 말했다. 소녀의 종아리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떻게 의원에게 데리고 가?”
김체건은 가쁜 호흡을 고르면서 어눌하게 물었다.
“업어서 가야지. 환자가 아니냐?”
“그럼 네가 업어.”
“남녀칠세부동석인데 내가 어떻게 업겠느냐? 네가 업어라.”
김체건이 이금과 옥신각신하고 있을 때 소녀가 울면서 일어서려고 했다. 그러나 소녀는 고통스러워하면서 다시 주저앉았다.
“소녀의 다리를 묶어 줘라. 다리에 피가 흐른다.”
“뭘로?”
“네 머리를 묶은 천을 풀어서 감아주면 되잖아? 우선 피를 멈추게 해야 한다.”
이금이 혀를 차면서 말했다. 김체건은 뒷짐만 지고 지시를 하는 이금이 얄미웠다. 그러나 소녀가 고통스러워하면서 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