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기타
<단편>해변의 고래
작가 : 건강한참취
작품등록일 : 2017.12.17

어느 날 죽음을 그리게 된 소녀와 글을 쓰는 소녀의 이야기

 
해변의 고래(3) (end)
작성일 : 17-12-17 14:59     조회 : 252     추천 : 0     분량 : 7046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시간이 흘러 8월 말이 되었다. 나의 부고를 새벽 5시 41분에 받았다. 침대에 누운 채로 잠결에 받은 전화였다. 자신을 경찰이라고 밝힌 남자는 내가 4시간 전쯤에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졌다고 전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도플갱어가 죽었는지는 몰라도 내 의식과 몸은 성한 곳 없이 멀쩡하다. 어째서 시체를 나로 착각했을까. 죽은 사람 얼굴이 나랑 닮았나. 나는 경찰에게 사람이 떨어진 아파트 이름을 물었다. 스카이 빌리지. 내 집은 아니지만 아는 아파트 단지다. 그곳에 아는 사람이 딱 한 명이 있다. 그 애는 아니겠지. 불안이 복제를 거듭하며 부피를 팽창시켰다. 나는 경찰의 말을 무시하고 전화기를 껐다. 황급히 옷가지를 챙겼다.

  걷히지 않은 어슴푸레한 밤이 세상을 감싸고 있었다. 불빛 한 점 없는 상가들이 비석처럼 어둠을 반사했다. 길거리에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술집을 지나가면서 병조각을 밟는 취객도, 놀이터 벤치를 차지한 학생 무리도 보이지 않았다. 도로 위를 주행하는 택시만이 움직였다.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던 세상이 낯설게 변했다. 나를 태운 아버지의 차는 도로가 제 것인 양 마음껏 속도를 냈다. 사건현장에 가까워지자 사이렌 소리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차에서 내려서 곧바로 아파트 뒷마당으로 달려갔다. 경찰 제복과 실험복을 입은 어른들 틈을 비집고 들어와서 그들이 보고 있는 것에 다가갔다. 가까이 갈수록 웅성거림이 곡소리 비슷하게 변했다. 어른들은 나를 막지 않았다. 이파리가 다 떨어진 헐벗은 나무 아래로 나왔다. 교복을 입은 소녀가 풀이 듬성듬성한 흙바닥에 누워있다. 팔다리가 버려진 마네킹처럼 뒤틀려있었고 흰 교복과 풀잎은 액션페인팅 같은 혈흔이 낭자했다. 살아날 가능성이 절대로 없는 자명한 시체였다. 얼굴은 뭉개져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가슴에 달린 명찰이 눈에 들어왔다. 플라스틱 명찰 모서리가 혈흔으로 흐려졌지만 내 이름 석 자를 또렷하게 읽었다. 그 명찰은 내가 그녀의 생일날에 장난삼아 주었던 선물이었다. 그녀는 자인이었다.

 

  9월의 첫 날 아침에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자인의 빈소는 2층에 있었다. 검은 상복을 입은 어른들 사이에 고등학생은 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보다 똑같은 복장을 한 어른들이 더 학생다웠다. 빈소 안쪽으로 들어가서 자인의 부모님을 뵈었다. 두 분 다 얼굴이 수척했고, 목과 두 손이 말랐다. 몰골은 거미에게 체액을 빨리고 버려진 껍질 같았다. 나는 국화꽃에게 둘러싸인 자인의 영전사진을 마주했다. 영정사진은 원래 내년에 나올 졸업사진집에 실릴 예정이었다. 내가 보기엔 사진은 잘못 올려졌다. 한동안 죽은 사람을 그려오던 내 눈에는 너무 생생하게 살아있는 사진이었다. 하지만 상단 두 모서리에 각각 두룬 검은 띠가 사진 속 인물이 죽은 사람임을 알렸다. 자인이 죽었다는 실감이 밀려왔다. 자인은 자살했다. 내게 작별인사도 없이. 잊고 있었던 추억들이 되살아났다. 고래그림을 보는 자인이, 아이스크림 막대를 입에 물고 글을 쓰는 자인이, 함께 장난치다가 내 치마에 물통을 엎지르고는 휴지로 닦아주는 자인이. 1년도 안 되는 시간동안, 추억은 고드름처럼 자라나고 있었다. 죽음의 진동은 고드름을 우수수 떨어트려 가슴을 찔렀다.

  자인의 어머니는 나에게 기묘한 얘기를 해주었다. 자인이 자살하기 전에 미용실에서 머리끈을 풀었다. 줄곧 고수해오던 긴 머리를 짧게 잘라서 집에 돌아왔다. 어머니는 자인의 행동이 자살하기 전의 의식적인 행위였는지 다른 의미였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는 알았다. 내 머리가 짧았기 때문이었다. 자인은 내 머리와 내 명찰과 내 교복을 모방했던 것이다. 내가 내 시체를 목격하게 만들었다. 자인아, 나를 그토록 미워했니. 내게 지울 수 없는 죄책감을 심어놓은 복수였니. 왜 나에게 직접 화풀이를 하지 않았어. 나를 따로 불러내서 욕을 하고 머리끄덩이를 당기고 침을 뱉을 수도 있었잖아. 자인은 나에게 전하지 못한 말이 남아있을 것이다. 나를 모방한 행동은 일종의 텍스트라고 생각이 들었다. 텍스트를 해석하기 위해서 자인에 대해서 알아내야 한다. 자인은 누구인가.

 

  일주일 후에 나는 스카이 빌리지를 방문했다. 이곳에서 자인이 살았고 죽었다. 단지에 들어서고 바로 아파트 뒤편으로 갔다. 자인의 몸이 누워있었던 자리는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혈흔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흙바닥에 풀이 무성하게 자라서 죽음의 흔적을 지웠다. 다만, 앙상하게 마른 나무는 처음 봤을 때와 똑같았다. 나무껍질은 쉽게 으스러질 듯했다. 이파리가 나지 않는 걸보면 이 생물도 죽어있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나는 자리를 떠나 아파트 안으로 들어왔다. 마침 1층에 정지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12층을 눌렀다. 사방이 밀폐된 공간에서 부유감을 느꼈다. 자인의 집에 가까워질수록 하늘에 가까워졌다. 12층에 도달한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나와서 자인의 집을 찾았다. 자인의 어머니는 나를 반겨주었다. 그녀는 상복차림이 아니라 일상복차림이었다. 자식을 잃은 슬픔 때문인지 얼굴이 매우 늙어보였다. 거실은 냉기가 가득 찼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냉기였다. 거실 벽에 덩그러니 있는 텅 빈 소파가 적막함을 배가했다. 자인의 어머니에게 자인의 방에 들어 가보고 싶다고 말을 했다. 자인의 방은 ‘자인이`s room’이라는 문구가 적힌 나무푯말을 보고 찾았다. 나는 방문 앞에서 심장이 요동쳤다. 의식할 수 있을 정도로 호흡이 두 배로 늘었다. 자살의 비밀을 풀어줄 단서가 저 너머에 있다. 나는 오른손으로 가볍게 문손잡이를 쥐고 시계방향으로 돌렸다. 문손잡이가 돌아가다 걸려서 멈췄다. 반대방향으로 돌려도 걸렸다. 나는 반대편에서 손잡이를 잡고 있는 무언가의 존재가 느껴졌다. 뒤에서 어머니가 열쇠를 들고 왔다. 어머니는 열쇠를 손잡이 열쇠구멍에 넣고 돌려보았으나 열지 못했다. 나는 열쇠를 받아서 구멍에 잘 끼우고 손에 힘을 주었다. 문에서 철컹 소리가 났다. 우리들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자인의 방은 내 방과 다른 점이 별로 없었다. 하얀 시트 침대와 앤티크한 책상이 눈에 들어왔다. 책상 위에는 샤프와 뜯어진 노트 페이지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나는 자인이 책상 앞에 앉아서 글을 쓰는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 책상 옆 책장에 책들이 빽빽하게 꽂혀있다. 보기 만해도 답답했다. 책 종류는 다양했다. 식물비교도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코스모스, 비행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전집, 자아의 초월성……. 자인이 글을 잘 쓰는 비결이 여기에 있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자인에 대해서 물었다.

  자인은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해서 책을 달고 살았다. 단어를 쓸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는 집안을 낙서천지로 만들어서 많이 혼났었다. 아버지는 미래에 훌륭한 학자가 될 거라고 좋아했지만 어머니는 우려가 컸다. 자인은 밖에서 또래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주로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글만 썼다.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쓴 글의 양이 줄었다. 폐쇄적인 성격이 좀 나아지는 듯싶었는데, 3학년으로 올라와서 한 친구와 어울리면서 원상태로 돌아갔다. 하지만 어머니는 전과는 달리 우려가 없었다. 오히려 그 친구를 만난 뒤로 성격이 활발해져서 전보다 나아졌다. 언제는 밥상머리에서 어머니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를 닮은 친구를 만나서 좋다. 계속 함께 하고 싶다.

  어머니의 말에서 나온 친구는 나다. 내가 자인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자인은 내게 영향을 주었다. 우리는 서로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자살이라는 인간이 직면한 죽음의 현상에 저항하는 인간이 되고자 했다. 결국 한 명은 포기했고 한 명은 자살했다. 나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다. 어머니는 우리가 헤어진 후로 자인은 평소와 똑같았다고 말했다. 머리를 자르기 전까지 자인은 특별한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말을 통해 알아낸 자인의 모습은 극히 일부였다. 아무래도 자인에 대해 알려면 말보다 글이 더 효과적이다. 나는 자인이 들고 다녔던 도라에몽 노트가 생각났다. 그것은 방안 어딘가에 있을 터였다. 나는 어머니에게 양해를 구하고, 방안을 뒤졌다. 책상서랍을 뒤적거리다가 맨 밑에 잠겨있는 서랍을 찾았다. 연필꽂이에서 열쇠를 찾아서 서랍을 열었다. 안에는 자인이 그동안 사용한 노트가 들어있었다. 색깔, 크기, 형태가 모두 달랐다. 꺼내보니 족히 20권은 되었다. 노트표면은 바래거나 찢어진 흔적으로 더러웠다. 적혀있는 노트이름의 글씨체 변화가 노트의 나이였다. 노트뭉치를 찬찬히 살펴보았으나 모두 도라에몽 노트가 아니었다. 나는 다시 서랍을 열고 손을 넣었다. 안쪽에 꺼내지 않은 노트가 만져졌다. 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꺼냈다. 그것이 내가 찾고 있던 눈에 익숙한 도라에몽 노트였다. 내가 마지막으로 읽은 페이지로 넘겼다. 그 뒤로도 글이 써져있었다. 모두 죽음과 관련되었다. 자인은 내가 포기한 작업을 이어갔던 것이다. 맨 앞에서 삼분의 이 쯤에 마지막으로 쓴 글이 남아있다. 나는 글을 읽었다.

 

  지구상에는 온갖 종류의 신들이 있다. 어떤 신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믿어지고, 어떤 신은 가짜 신이라고 사람들에게 부정 당한다. 공교롭게도 신(神)과 신(信)의 음이 같다. 신은 믿어지는 존재다. 하지만 신이 사람들에게 믿어지려면 먼저 신의 존재가 증명되어야 한다. 그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다른 방법으로 대체되었다. 존재증명을 대체한 방법이 바로 기적이다. 즉, 기적을 일으킨 자가 신이다. 논리비약적인 명제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다. 내가 은주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나는 은주를 잃어버렸다. 은주가 왜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는지 이해는 된다. 자살을 이해하는 일이 부질없게 생각하는지도 마찬가지다. 은주가 떠난 뒤로 나는 은주가 팽개친 작업을 이어받았다. 은주에게 보여줄 기적을 찾기 위해서다. 자살의 실행 원리를 탐구해서, 십대 연쇄 자살사건을 막는다면, 은주는 나에 대한 믿음을 되찾고, 내 곁으로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문제가 버거웠다. 정신의 실행 의지가 어떻게 육체의 거부를 넘어서는가. 왜 고등지능을 가진 생물이 자살을 하는가. 자살은 생을 뛰어넘는 해방인가. 풀어야 될 문제가 계속 불어났다. 그렇지만 은주를 위해 참고 견뎠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결론을 내렸다. 그것은 은주의 말이 맞았다는 것이다. 은주의 말대로 나는 자살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자살에게 패배한 후유증이 생겼다. 절망감 비슷한 감정들이 모여 응축된 충동이. 그래서 여기에 내가 자살을 결심하게 된 계기를 남겨놓는다. 은주가 죄책감을 갖지 않도록. 하지만 나는 실행 원리를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성공할 수 있을지는 장담을 못한다. 만약에 실패한다면 이 글을 찢어서 인멸할 것이다. 이 글이 다른 사람에게 읽혔다면 나는 성공한 것이고, 내가 그토록 바라던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 뒤로 이 작업이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은주가 나 대신에 계속 해줬으면 한다. 은주를 떠올렸다가 나는 불현 듯 은주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자살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직접 자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자신의 자살을 경험한다면 어떨까. 연구자와 자살자를 동일화시킨다면. 이 방법은 혼자서 할 수 없는 방법이다. 나에게 은주의 도움이 필요하다. 원래 사전에 은주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지만 불가능하다. 은주는 당연히 나를 막아설 것이다. 허락을 받지 않은 점과 은주가 받을 상처에 미안하게 생각한다. 정말 미안하다. 그리고 함께 한 모든 일에 고맙다. 내 마지막 날에도 은주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다음 날, 9월 모의고사로 교내가 시끌시끌해졌다. 자인이 자살한 사건은 잊혀 졌고 모두들 머릿속에 최대한 많은 단어와 요약자료를 욱여넣는데 혈안이었다. 종이 치기 전에 영어선생이 노란 서류봉투와 편지크기 봉투를 가지고 들어왔다. 반 애들은 조용해졌다. 영어선생은 맨 앞자리 학생에게 문제지를 나눠주고 뒤로 돌리라고 지시했다. 내 앞으로 시험지 7장이 도착했다. 영어선생은 감독하러 우리들 사이를 어슬렁거리다가, 나랑 내 등을 치는 뒷자리 애를 보고, 내 앞에 멈췄다.

 “시험지 안 넘기고 뭐하니?”

  영어선생이 나에게 물었다. 나는 가만히 앉아있기만 했다.

 “뭐하냐고 빨리 시험지 넘겨.”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험지에 집중하고 있던 반애들이 전부 나를 쳐다봤다. 영어선생은 내 행동에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시험도중에 자리에서 일어난 학생을 대처하는 커리큘럼이 학교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대로 뒤로 갔다. 영어선생은 나를 멈춰 세웠다.

 “너, 뭐하는 거야. 반항하는 거야.”

  나는 영어선생을 돌아봤다.

 “선생님, 제 이름은 아세요?”

 “뭐?”

 “8월 말에 자살한 학생 이름은요. 선생님이 지도하신 학생입니다. 6월에 자살한 학생도 모르시죠. 알 필요가 없으니까요. 저처럼 이름도 없는 사람이 이 자리에 있어야 할까요.”

 “우리 학교와 관련된 안타까운 사건인 건 맞는데 그래서 어쨌다고? 너는 소란피우지 말고 시험을 봐야 해.”

 “저에게 시험보다 중요한 일이 있어요. 소란 피워서 죄송합니다.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나는 영어선생에게 고개를 숙이고 교실 밖으로 나갔다. 영어선생과 반 애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나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는 오랜만에 과학실 뒤편으로 돌아왔다. 나와 자인이 함께 앉았던 벤치는 낙엽과 거미줄이 차지했다. 내가 앉을 자리를 치우고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무릎 위에 도라에몽 노트와 드로잉 노트를 올렸다. 도라에몽 노트 스프링 위에 달아놓은 자인의 명찰이 햇빛을 반사했다. 내가 원래 있어야할 곳은 여기였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고래의 자살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어떤 의미로 한 번 죽었다. 스카이 빌리지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져서 죽었다. 자인은 내게 갚지 못할 빚을 주었다. 그 빛을 변제를 위해서 나는 그림을 그릴 것이다. 해변의 고래를 떠올렸다. 즉시 드로잉 노트 새 페이지를 펼쳐서 해변을 그렸다. 파도가 치는 해변에서 뭍으로 떠밀린 고래들을 그렸다. 뭍에는 산등만한 크기의 고래도 있고 어른 두 명 크기의 고래도 있다. 그리고 바다 한가운데에 아파트 한 채를 세웠다. 아파트 옥상에 자살을 대기하는 사람 여러 명을, 공중에 추락하는 사람 두세 명을, 고래들 사이에 시신 몇 구를 그렸다. 마지막으로 나의 시신을 두 고래 사이에 그렸다. 한 가지를 빼먹었다. 류자인. 자인을 물을 긷고 있는 사람들 틈에서 내 시신을 보고 있도록 그렸다. 그림 속에서 자인은 살아있다. 나는 죽어있다. 죽어있는 시신의 가슴에 달린 명찰이 희미한 빛을 띤다. 자인의 명찰이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3 해변의 고래(3) (end) 2017 / 12 / 17 253 0 7046   
2 해변의 고래(2) 2017 / 12 / 17 251 0 5447   
1 해변의 고래(1) 2017 / 12 / 17 396 0 6578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