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석이 무강을 들처 업었다.
그리고 달렸다.
점태가 따라가며 물었다.
"어디로 가는 거야?"
"숲에 작은 호수가 있다. 계곡을 타고 흘러 든 물이라 차갑기가 이루 말할수 없다."
"그건 언제 본거야?"
"어제 석이와 함께 산에 나무하러 올라갔다가."
"무강은 살수 있는 거지?"
철심이 물었다.
"무강은 죽지않아."
"손이, 손이 불덩이 같아... 어떻게 이럴수가 있지."
"나도 몰라, 아마 그 자가 사용한 내공의 힘 일꺼야."
공터를 지나 숲으로 들어갔다. 무강을 업고 달리는 봉석의 얼굴에서 땀이 비오듯 흘러 내리고 있었다. 무강에게서 뻗어나온 화기가 봉석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었다.
숲길을 따라 한참을 달리자 계곡이 나왔다. 계곡을 따라 위로 올라가자 작은 호수가 나타났다. 봉석은 무강을 업은 채로 호수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휴우.."
봉석이 길게 숨을 내뱉었다.
차가운 물을 손으로 뜨서 무강의 멀굴을 적셨다.
"무강, 정신좀 차려...무강."
무강은 여전히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붉게 타오른 얼굴은 불덩이 처럼 뜨거웠다. 입으로는 뜨거운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차가운 물을 퍼부어도 나아질 기미가 없자,
이대로 죽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봉석을 엄습하여 왔다.
한번 들기 시작한 불안한 마음은 분노로 표출되어 호수를 내려치며 고함을 질렀다.
"무강!!!"
물이 튀어오르며 의식을 잃은 무강의 얼굴을 때렸다.
봉석의 행동에 점태와 철심이 뛰어들며 무강에게 물을 퍼부었다.
"무강! 무강! 죽으면 안돼... 정신 차려."
세 아이가 흥분하여 무강에게 물을 퍼붓으며 고함을 질러대었다.
그때 숲에서 백발의 노인이 걸어 나오며 소리를 질렀다.
"이놈들아! 네 놈들이 시끄럽게 떠뜨는 통에 다 잡은 천백사를 놓쳐 버렸잖아."
오척의 작은 키에 허리에는 새끼줄을 감고, 호리병을 매달고 있었으며 손에는 키만한 용의 머리가 조각된 용두신장을 들고 있었다.
얼굴은 어린 동자처럼 주름하나 없었으며 흰 눈썹은 길게 꼬리를 그리며 쳐져 있었다.
"네 놈들 때문에 다 망쳐 버렸다. 다 망쳤어."
괴노인이 용두신장으로 땅을 두둘기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 놈을 잡을려고 칠일 동안 기다렸는데, 네 놈들이 다 망쳐 놓았다. 아이구 아이구.."
발을 동동구르며 미친듯이 소리치던 괴노인이 갑자기 소리를 뚝 그쳤다. 그리고 물속에 있는 아이들을 보며 눈을 번뜩였다.
"내 일을 망쳤으니 혼 좀 나야겠다."
괴 노인이 몸을 흔들자, 마치 바람이 몰아치듯 물속에 있는 아이들 에게로 날아왔다.
세 아이는 순식간에 숲에서 호수까지 날아온 괴노인을 놀란 눈으로 쳐다 본 순간 몸이 공중에 붕 뜨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놈들아, 어디 혼좀 나봐라."
물위를 밟으며 아이들의 주위를 한바퀴 돌며 호수 밖으로 집어 던졌다.
으악...
놀랄 틈도 없이 세 아이가 호수밖으로 날아가 땅바닥을 굴러 떨어졌다.
괴 노인이 마지막으로 무강을 잡았다.
"이놈아, 너도... 잉...화기에 쏘였구나. 그래서 네놈들이 소리를 질렀구나."
무강을 잡고는 호수 밖으로 날아와 내려 놓았다.
세 아이가 땅바닥에서 벌떡 일어나 싸울 준비를 했다. 조금이라도 의식을 잃은 무강에게 위해가 되는 행동을 한다면 바로 공격할 기세 였다.
무강을 내려놓은 괴노인이 세아이들 앞으로 바람처럼 다가왔다.
철심과 점태가 뒤로 주춤 거렸다. 봉석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노인은 누구요?"
말이 끝남과 동시에 봉석은 머리에 강한 충격을 느꼈다. 노인의 용두신장이 흔들 하더니 머리에 충격이 온것이다.
봉석이가 충격을 내색하지 않고 눈을 부릅 뜨고는 말했다.
"뭐하는 짓이오?"
"몰라서 묻는 게나, 네 놈들이 시끄럽게 구는 통에 다 잡은 놈을 놓쳐 버렸다..... 이놈들이, 그러고도 잘못을 빌지 않는단 말이냐."
괴노인이 눈을 치떠는 순간 용두신장이 다시 흔들 거렸다.
따따딱.
"아야! 이 노인네가."
"악!"
점태와 철심이 소리를 질렸다.
봉석이가 눈을 부릅뜨고 괴노인을 내려다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한번 더 그러면 노인이라도 용서하지 않겠소."
딱!
봉석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지팡이가 봉석이의 머리를 때렸다.
강한 충격이 뇌속을 울리며 봉석이가 얼굴을 일그러 뜨렸다. 말을 하면서도 노인의 손에 쥔 지팡이에 집중하고 있었다. 움직이는 순간 손으로 낚아 챌려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마음을 먹은 순간 머리에 충격이 전해진 것이다.
얼굴이 붉게 달아 오르며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가뜩이나 무강이 다쳐 심기가 편치 않은데 괴노인에게 다짜고짜 당하고 나니 이만저만 열이 뻗치는게 아니었다. 작은 노인만 아니였으면 벌써 주먹이 날아가 얼굴을 뭉개 놓았을 것이다.
"용서 하지 않으면 네놈이 어떻할건데... 한번 해보잔 말이냐?"
괴노인이 봉석이 앞으로 다가서며 고개를 쳐 들었다.
머리 하나가 더 큰 봉석이 눈을 부릅뜨고 내려다 보았다.
"노인과는 싸우기 싫소."
봉석이 시비를 거는 괴노인을 무시하고 무강에게로 걸어갔다.
"허어.. 이놈이 어딜..."
괴노인이 봉석이의 다리를 향해 용두신장을 휘둘렸다. 봉석이가 용두신장을 피해 위로 솟구쳤다. 봉석은 충분히 피할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미리 마음속으로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날렵하게 위로 솟구쳐 두다리를 당겼다.
그러나 위로 솟구치는 봉석이의 다리에 용두신장이 탁 붙더니 괴노인이 손으로 당기자 내 팽겨쳐진 개구리가 뻗듯 땅바닥에 쫙 뻗어 버렸다.
쿵!
봉석이가 벌떡 일어섰다. 보통 노인이 아니란 것은 생각하고 있었지만 머리끝까지 올라온 화가 화산이 폭발하듯 터지고 말았다.
"더는 못참아!"
괴 노인과 봉석이 실강이를 벌이는 사이 두 아이는 무강에게 와 있었다.
봉석이가 괴노인에게 연거푸 당하는 것을 보며 괴노인이 보통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봉석이가 힘으로 노인에게 질것 같지 않다는 생각도 갖고 있었다. 호랑이의 목을 죽창으로 한번에 꿰뚫어 버리는 괴력과 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봉석과 무강에게는 강한 상대를 만나면 더 강해지는 투지가 있었다. 그것은 자신보다 더 큰 짐승들을 상대하면서 단련된 것이었다.
"저 노인이 왜 그런거 같아?"
철심이 물었다.
"뭘, 잡을려고 하다가 놓쳤다고 했는데..."
"백사?"
"백사는 밀림촌 호수 근처에서 잡은 적이 있잖아?"
"아! 백사가 아니고 천백사라고 말했어."
"백사나 천백사나 같은 거 아니야? 그깟 백사 한마리 놓쳤다고... 다시 잡으면 되지."
그때 봉석이가 괴노인을 향해 뛰어 들고 있었다. 화가 난 곰이 앞발을 들어 휘젓듯이 괴노인 앞으로 뛰어든 봉석이 주먹을 연속으로 휘둘렀다. 봉석보다 머리 하난 작은 괴노인이 커다란 봉석의 주먹을 작은 움직임으로 피하고 있었다.
주먹이 날아가다. 발이 날아가고, 무릅이 괴노인의 턱을 치고 들어갔다. 그럴때마다 괴 노인은 막을 필요도 없다는 듯 신형을 틀어 피해 내고 있었다. 화가 치솟은 봉석이 두손을 뻗어 괴노인을 잡아갔다. 그 순간 거짓말 같이 괴노인이 봉석의 시야에서 사라지면서 엉덩이에서 강한 충격이 전해왔다.
쿵!
봉석의 뒤에서 나타난 괴노인이 발을 들어 봉석이의 엉덩이를 걷어차 버린 것이다.
"히히, 느려터진 곰도 네놈보다 빠르겠다."
앞으로 한바퀴 굴러 자세를 잡은 봉석이 이를 드러내고 씩씩 거렸다.
"아직 끝나지 않았소."
봉석이 괴노인을 향해 달려 들었다.
휘... 팡팡....휙휙...
패왕구식의 기본동작들을 소나기 처럼 퍼부었다.
주먹을 휘둘렸다. 공중으로 뛰어 올려찼다.
몸을 회전하며 돌려찼다. 주먹을 연속으로 내질렀다. 괴노인을 잡아 던질려고 시도 했다.
순식간에 다가가 무릎으로 턱을 올려찼다. 손으로 후려쳤다.
마치 괴노인은 뻔히 눈앞에 있는데,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았다. 손만 뻗으면 사라지고 없었다.
퍼억!
봉석이 뒤에서 실실 웃으며 괴노인이 다시 한번 크게 발길질을 했다.
묵직한 힘이 엉덩이를 타고 머리로 전해지며 그대로 앞으로 날아가 굴렀다.
"하하.. 오랜만에 즐겁구나... 즐거워, 이 장아숙이 무림을 떠나 20년 만에 처음으로 네놈과 손을 써보는 구나....하하하"
괴노인이 장아숙 이라니.....
괴산노개 장아숙.
개방의 전대방주 이면서 천하에 둘도 없는 개방의 괴짜 방주가 괴산노개 장아숙 이었다.
30년전 소림의 무학대사와 무당파의 천풍진인과 함께 무림삼선으로 불리며 무공이 약한 개방을 당당히 천하제일방으로 우뚝 세운
장본인 이기도 했다. 개방이 천하제일 방파로 자리를 잡자, 자유분방하고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과 세속에 얽매이길 싫어하던 장아숙은 방주직을 강제로 칠보신개 노주명 에게 떠 맡기고 개방에서 도망쳤던 것이다. 그리고 이십년 동안 무림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 개방 방주직은 방주가 죽어야만 방주직을 물러 받을수 있기 때문이었다. 만일 개방 방도들이 괴산노개를 무림에서 본다면 당장 달려와 다시 방주직을 떠 맡길 것은 분명하기에, 그 일이 겁이 난 괴산노개는 무림에 나오지 않고 숨어 버린것이다. 그 괴산노개 장아숙이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봉석이 험악하게 인상을 쓰고 있었다. 상대가 강해도 너무 강했다. 전력을 다했는데도 한대도 때릴수가 없다니 갑자기 웃고 있는 작은 노인이 점점 커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우뚝 솟은 태산처럼....
"태산이라도 넘어선다. 난 밀림촌의 전설 이니까...."
봉석이가 기세를 끌어 올렸다. 괴노인이 사정을 봐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봉석이에게 싸움이란 장난이 될수가 없었다. 짐승들과의 싸움에서 철저히 경험한 것들이다. 싸움에서 지는 순간 죽는다는 것을.... 모든 싸움은 최선이 되어야 했다.
그때 호수에서 작은 물보라가 일었다. 물보라를 보는 괴노인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 순간 괴노인의 신형이 움직였다.
마치 시위를 벗어난 화살처럼 공중을 날아 물보라가 이는 호수위를 향해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호수에서 나온 천백사를 따라 숲으로 사라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