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게 깔린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면서 햇빛이 밀림촌을 비추어 들어갔다. 아침 일찍 일어난 밀림촌 사람들은 산에 설치한 덫을 살피러 문을 나서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것은 매일 아침마다 울리던 무강의 도끼질 소리가 오늘은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강의 도끼질 소리를 듣고 매일 일어나던 사람은 늦잠을 자기도 했다. 아이들은 빈터에 모여들었다. 밀림촌의 다섯 아이들은 사냥을 나가지 않는 날은 빈터에 모여 운동을 했다. 봉석은 큰 돌들을 들어 옮기고 있었고, 점태와 우석은 죽창을 들고 찌르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철심은 빈터를 달리며 높게 솟은 나무에 메달아 놓은 표적을 활로 쏘고 있었다. 그러면서 무강이 살고 있는 집 쪽을 한 번씩 바라보고 있었다.
매번 제일 먼저 빈터로 나와 죽창술을 연습을 하고 있던 무강이 오늘은 해가 중천에 떠올랐는데도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해가 중천에 떠오르자. 마을 제일 위쪽 무강의 집 문이 열리며, 허리에 붕대를 감은 소년이 나왔다.
어제 들개떼 무리들과의 싸움에서 등에 칼을 맞은 무강이었다.
어제 일을 떠올리며 무강이 피시 웃었다.
칼자국을 주먹으로 때려 눕히고 나서 통쾌한 기분에 사지에 있는 것도 잊어버리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 다가온 들개 무리 중 한 사내가 내려친 칼에 등을 베이고 말았던 것이다.
"흐흐, 이번에는 단단히 천 아저씨에게 신세를 졌는걸. 그런데 그거...천아저씨 손에서 쏟아지는..그건..뭐였지...."
숲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들개 무리를 순식간에 해치운 혁우천이 쓰려지는 무강을 보고는 분노를 터뜨렸던 것이다. 내공을 운용하지 않고 순수한 힘 만으로 싸우던 혁우천이 무강이 칼에 맞아 쓰려지는 것을 보고는 분노하고 만 것이다.
무강의 흐릿한 의식 속에 폭음이 들리며 칼을 든 사내들이 공중으로 날아가는 것이 비춰들었다.
혁우천이 날아오며 주먹을 뻗어 내려치던 모습을 기억해 내며 무강이 주먹을 앞으로 뻗었다.
"윽!" 칼에 맞은 상처에서 오는 고통으로 무강의 안색이 붉어졌다.
다행히 상처는 뼈를 건들지 않고 살만 베인 것이라. 어젯밤 혁우천이 노계 시장에서 사 온 가루약을 상처부위에 뿌리고 천으로 감아 상처를 치료했던 것이다.
"당분간, 사냥을 못하겠는걸."
몸을 움직이는 것을 포기하고 빈터로 내려갔다.
빈터로 무강이 들어서자, 활을 쏘고 있던 철심이 쏘던
활을 멈추고 무강을 향해 뛰어왔다.
"무강, 너 다쳤어?"
무강이 무슨 말을 하기 전에 봉석 점태 우석이 다가오며 붕대를 감고 있는 무강을 보고 한마디씩 던졌다
"뭐야! 무강, 어떻게 된 거야?"
"많이 다친 거야?"
"노계현에서 무슨일이 있었던거야?"
무강이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괜찮아, 칼에 스친 것뿐이야."
대수롭지 않다는 무강의 말에 철심이 화가 난 듯 쏘아 붙였다.
"어떻게 된거야, 노계현에서 무슨일이 있었던거야, 이건 괜찮지 않잖아!...천 아저씨하고 같이 다닌거 아냐."
"그래, 무강 어떻게 된 거야, 곰도 잡은 네가 다쳐서 오다니 믿기지 않아, 그리고 천 아저씨는 우리 밀림촌의 전설인데, 천 아저씨와 같이 가고도 네가 다쳐서 오다니..."
점태가 말했다.
무강이 빈터의 큰 바위 위에 걸터 앉으며 노계현에 나갔던 일들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노계 시장에서 들개 3인조가 마차를 도둑질할려다 자신과 싸운 이야기, 그리고 소녀가 나타나 순식간에 들개 3인조를 제압한 이야기를 할 때는 네 명이 동시에 소리쳤다.
"소녀가!"
철심이 물었다.
"몇 살쯤이야, 이뻐?"
"어!"
철심이 묻는 말에 무강이 소녀의 얼굴을 떠올리자, 얼굴이 붉어지며 얼버무렸다.
"어떻게 그렇게 강하지. 무강 너 보다 더 강하다니 믿기지 않아."
점태가 말했다.
"그건 아니지, 소녀는 칼을 들고 있었다잖아, 무강은 맨손이 였고, 무강이 죽창이라도 들고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우석이 말했다.
"그래도 우리와 같은 또래의 여자가 그랬다고 하니 믿기지 않아."
"흥! 그래도 내 화살은 피하지 못할걸!"
"하하하!"
철심의 한마디에 네 아이가 웃었다.
"그래서 그 다음에 어떻게 되었어."
점태가 뒤가 궁금하다는듯 물었다.
노계 시장을 나와 밀림촌으로 들어가는 숲 초입에서 칼을 든 수십 명의 사내 들이 가로막자, 혁우천이 맨손으로 칼든 자들을 쓰러뜨리는 것을 보고, 자신도 칼 든 무리들 속에 뛰어들어 노계 시장에서 싸운 칼자국이란 사내를 맨손으로 쓰러뜨린 이야기를 했다.
"맨손으로!"
네 아이들의 입에서 동시에 흘려 나왔다.
"응!"
무강이 아픈 몸을 움직여 머릿속으로 혁우천의 동작들을 떠올리며 천천히 팔과 다리를 움직였다.
무강이 보여주는 생소한 동작들이 아이들의 눈에 신기하게 여겨졌다.
"그럼 어떻게 다친거야?"
무강이 주먹을 들어보이며,
"주먹에 맞고 칼자국이 쓰러지자, 가슴이 벅차오르며 통쾌하게 웃고 싶은거야, 그래서 크게 소리내어 웃는데...등이 갑자기 화끈 거리더라고."
"그때 칼에 맞았구나?"
"응."
봉석이 바위에서 일어나 주먹을 뻗었다.
"흠! 맨손이라고....."
강해지고 싶은 욕구는 넘치는데, 배움이 없는 봉석은 답답한 듯 말했다.
"도시로 나가고 싶다. 도시로 나가서 그 소녀처럼, 천 아저씨 처럼 강해지는 법을 배우고 싶다."
무강이 그런 봉석을 보며 말했다.
"봉석아! 노계 시장 쌀가게 어른이 말하던데, 북두상단에서 힘이 있는 아이들을 받아들인다고 한다."
"무슨 말이야? 성인이 돼야 일을 할 수 있는거 아냐?"
"아니야! 그 어른이 말했다. 힘이 있는 아이들도 받아들여서 무공을 가르치고 상단 일을 배우게 한다고, 그리고 성인이 되면 상단 호위무사로 일을 할수 있다고 말이야!"
봉석의 눈빛이 달라졌다. 옆에서 듣고 있던 점태가 짝! 하고 손뼉을 치며 말했다.
"정말! 상단 호위무사면 전국의 이름난 도시나 여러 지방을 다닐 수 있는 거잖아, 그리고 운송뿐만 아니라 상품 거래도 한다고 알고 있어."
우석이 말했다.
"야아아아! 좋은 기회인데, 이곳 밀림촌을 성인이 되기 전에 떠날 수 있는 기회잖아!"
그러나 점태가 의기소침해지며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기회가 와도 어른들은 우리가 이곳 밀림촌을 떠나는것을 원치 않을꺼야."
철심이 화가 난듯 나섰다.
"흥! 언제까지 어른들의 말을 들을 거야, 저번 큰 짐승을 잡을 때도 어른들은 우리들에게 성인이 되기 전까지 잡지 말라고 했잖아, 그런데 우린 큰 짐승을 열 마리나 잡았잖아, 어른들의 말도 가끔은 틀릴 때도 있어."
우석이 말했다.
"맞아! 어른들은 우리가 밀림촌에서 사냥꾼으로 살길 바래, 그러나 난 싫어! 좀 더 큰 도시로 나가 모험을 할거야."
철심이 말했다.
"나도! 어른들이 못 가게 하면 이곳 밀림촌에서 도망이라도 칠거야!"
봉석이 말했다.
"무작정 밀림촌을 떠나서는 안돼, 무강 말을 들어보니 도시는 위험해, 그리고 북두 상단에서 우리들을 받아준다는 보장이 없잖아...그래서 일단 어른들에게 승낙을 받는게 좋을거야, 그리고 도시로 나가게 되면 돈도 필요할거야, 지금 부터 도시로 나갈 준비를 해서 내년 봄에 나가는것이 좋을 것 같아."
"봉석이 말이 맞아, 노계시장에서 짐승가죽을 파는곳을 알아, 특히 곰과 호랑이 가죽은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고."
무강이 말했다.
"그럼! 내일 부터 사냥을 해서 가죽을 모으자."
"좋아!"
봉석의 말에 네 아이가 다 같이 소리쳤다.
"천덕봉 호랑이 부터 잡자!"
"호랑이!!"
아직 아이들에게 호랑이는 힘겨운 상대였다. 그러나 도시로 나갈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 아이들에게 호랑이는 두려움의 상대가 아니었다.
아이들은 천덕봉에 오르는 것을 잠시 미루었다. 그것은 무강이 칼에 맞은 상처가 완전히 나은후에 올라가기로 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 밀림촌에 첫눈이 내렸다.
밤 늦게 내리기 시작한 눈은 새벽이 되어서야 그쳤다.
해가 떠오르면서 하얗게 덮은 밀림촌에 쿵! 쿵! 땅을 울리는 소리가 눈 덮인 산에 울려 퍼졌다.
칼에 맞은 상처가 완쾌된 무강이 아침 일찍 일어나 도끼질을 하고 있었다. 여느 때 보다 무강의 도끼질은 힘이 넘쳤다.
아니! 무강의 도끼질에 변화가 느껴졌다.
절정에 이른 고수가 검을 쓰면 검에서 검광이 번쩍이듯, 무강의 내려치는 도끼가 장작을 파고 들자, 두쪽으로 갈라져야할 나무토막이 수십 조각으로 쪼개져 날아가고 있었다.
쾅!
천무백서에서 이르길
권을 연마하는자. 10년을 하루같이 정권을 찌르면, 권에서 쇄기(碎氣)가 쏟아져 주먹이 물체에 닿기전에 물체는 권기에 의해 부서진다. 이것은 호흡을 통해 내기를 축적하는 내공과는 다른 외공에서 발현되는 현상이다.라고 적고 있다.
실례로 100여 년 전 권왕으로 불리는 추모현이란 자가 권 하나로 전국을 돌며 지역 문파에 도전장을 낸적이 있었다.
전국 100여 개 문파의 고수들과의 싸움에서 불패를 기록하고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는데, 권왕 추모현과 싸웠던 고수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그의 권은 아주 단순했다. 한가지 신법과 일권이 다였다. 그러나 그 일권은 삼장 밖에 있는 자 를 날려 버렸다."라고 전해지고 있다.
무강의 도끼에서 쇄기가 방출되고 있는 것이다.
아침 밥을 먹은 무강은 천덕봉으로 사냥을 가기 위해 준비를 서둘렸다. 긴 죽창을 손에 들고, 작은 단 죽창을 담은 주머니를 어깨에 둘러메고 작은 칼을 허리에 찼다. 그리고 발목까지 오는 가죽신을 신고는 집을 나섰다.
무강이 빈터로 내려오자, 저마다 사냥용 도구들을 챙겨들고 나와 있었다.
봉석은 죽창 하나와 자루를 들고 있었는데, 자루에는 미끼로 쓸 살아있는 토끼가 수 마리가 담겨 있었다.
우석은 어깨에 밧줄을 메고 있었고 허리에 짧은 칼을 차고 있었다.
점태는 죽창을 들고 칼을 들고 있었고, 철심은 활과 전통을 어깨에 둘러메고 있었다.
다섯 아이들은 천덕봉으로 향했다.
천덕봉은 밀림촌 남쪽에 위치한 산으로 낮지 않은 산을 두 개 넘어가야 했다. 다섯 명은 구불구불한 소로를 타고 세 시진을 걷자, 무수히 자란 잡목들이 숲을 이루는 천덕봉 기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봉석이 천덕봉의 산기슭을 흩어보며 말했다.
"여기서 부터 흔적을 찾아 올라가자. 그리고 모든 대화는 수신호로 한다."
"좋아!"
다섯 아이들은 일렬로 넓게 퍼져 나가며 호랑이의 흔적을 찾아 천덕봉 기슭을 따라 올라갔다. 그렇게 한 시진 정도를 신기슭을 흩어 올라가던 중 한쪽기슭에서 찌루루르르르.... 새소리가 들려 왔다.
아이들은 새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모여 들었다. 그곳에는 우석이 무성히 자란 잡목숲에 난 발자국을 살펴 보고 있었다.
"호랑이 발자국이야! 발자국이 눈에 선명한 것이 얼마 되지 않은것 같아, 대락 한 두시진 쯤...그리고 저쪽을 한번봐."
우석이 가리킨 곳에는 눈이 심하게 파헤져져 땅이 드러나고 있었다.
"이곳에서 먹이를 발견하고 저쪽에서 먹이를 공격한것 같아, 그러나 호랑이는 먹이를 잡지 못한것 같아."
우석이 손으로 가리킨 방향으로 또 다른 발자국이 숲으로 이어져 있었다.
"녀석은 지금 사냥하고 있어, 아마 많이 굶주러 있는것 같아."
우석은 호랑이 흔적을 먼저 발견해서 인지 흔적들로 인한 분석을 끝내 놓고 있었다.
"그럼 호랑이는 이곳으로 다시 올 가능성이 있겠는데?"
"녀석은 분명 먹이를 잡지 못하면 숲을 배회하다 이곳으로 다시올거야, 그건 먹이를 발견한 장소를 다시 돌아보는 호랑이의 습성이다."
흔적을 살펴 보는 아이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봉석이 빠르게 주변을 살펴 보았다. 그것은 덫을 설치하기 좋은 장소를 찾고 있었다.
철심은 주위의 높게 자란 나무위로 빠르게 올라갔다. 나무위 올라간 철심이 주변을 둘러보며 손으로 신호를 보냈다.
'주변에 아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철심이 나무 위에서 경계를 서자, 봉석이 나무와 나무 사이의 작은 빈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에 덫을 설치하자, 그리고..."
호랑이가 덫을 피했을 경우의 동선을 예상하며 봉석이 말했다.
"저쪽 잡목숲으로 바닥에 망을 설치한다."
네 아이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어른 팔뚝 굵기의 나무를 잘라, 호랑이를 가둘 덫을 만들어 나무 위로 당겨 설치하고, 나뭇가지 풀들을 잘라 위장했다. 그리고 넝쿨을 길게 엮어 망을 만들어 바닥에 깔아 그 위로 눈과 낙엽을 덥어 위장했다.
덫이 설치가 되자, 봉석이 자루에서 살아있는 토끼를 꺼내, 칼로 목을 찔려 덫과 주변 숲에 토끼 피를 뿌렸다.
그리고 다시 자루에서 토끼를 꺼내 토끼 피를 자신의 몸에 뿌리는 것이었다.
"야! 뭐하는 거야?"
옆에서 보고 있던 무강이 말했다.
"토끼로는 걸려 들지 않아."
"뭐야! 네가 미끼가 되겠다는 거야?"
"응."
"위험해!"
"후후! 무강 난 강해질거다. 나 자신을 사지에 던져 스스로 강해지는 법을 알아 갈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