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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은혈록
작가 : 실라인
작품등록일 : 2017.12.14

비일상적인 일 없이 평온한 나날을 보내는 게 나의 작은 소망이다.
그래. 내 일상은 그 누구도 부수지 못 한다!
…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금액이었다.

어느 날. 평번하던 소년의 인생이 뒤바뀌어 버렸다.
세계의 그림자. 그 속에서 새로운 이레귤러가 된 소년은 오늘도 살아남기 위해 싸운다.

 
40. 컴퍼니(4)
작성일 : 17-12-30 04:11     조회 : 309     추천 : 0     분량 : 4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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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사람의 호의를 원으로 되갚아주는 배은망덕한 사람이 정말로 싫다. 어린 시절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한 적이 수도 없이 많았던 게 그 이유다. 그 덕분에 앞의 삼인조는 나의 분노가 마음껏 담긴 모습이 되어있다.

 “이쪽에선 접촉할 수단이 없다고?”

 내 말에 입술이 벌에 쏘인 것처럼 퉁퉁 부운 털북숭이 남자가 침을 튀길 정도로 빠르게 말했다.

 “맞습니다. 브로커는 한 달 후 다시 사무소를 방문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떠났습니다. 그 때가 20일 전이니 앞으로 10일 정도 남았습니다.”

 “사무소가 어딘데?”

 “동서울 쪽에 있는 바분 빌딩입니다.”

 “…여긴 제주도인데? 너희 제주도에 사는 거 아냐?”

 내가 건틀릿을 들어 올리며 말하자 삼인조는 기겁하며 몸을 낮추더니 내 주먹이 떨어지기 전에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었다.

 “진짭니다! 저희도 여러분처럼 사원여행 겸 해서 제주도에 놀러온 겁니다! 여행을 즐기던 와중 위마 추적 어플에서 은혈귀가 이곳에 나타났다는 정보가 떠 빠르게 달려온 겁니다! 동서울 바분 빌딩 검색하시면 건물 위치랑 건물주인 제 사진까지 전부 나옵니다! 비교해 보시면 알 수 있으실 겁니다!”

 털북숭이 남자는 자신의 말이 사실이라는 듯 스마트폰을 주머니에서 꺼내 레이드 컴퍼니에서 만든 소속 회원 전용 어플을 열어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제주 지부 순례자들의 위치와 성지 발현 예상 지점, 현재 위마 정보 등이 적혀있었다.

 또한 털북숭이 남자는 모두가 애용하는 포털 사이트를 킨 다음 자신들의 빌딩을 검색해 빌딩 위치와 자신의 사진을

  연달아 확인시켜주었다.

 “거짓말 아냐? 만약을 대비해서 짜놓은 걸 수도 있잖아?”

 나는 혹시나 해서 찔러봤지만 남자는 거짓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처절하게 부정했다.

 “아이고! 결단코 아닙니다! 거짓 한 톨 없는 진실입니다요!”

 하긴 그렇겠지? 누가 이런 걸 미리 만들어 놓겠어.

 내가 뒤돌아보자 한소윤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 건은 여기서 끝.

 “아직 더 캘 게 남아있나?”

 “없어. 있더라도 제주 지부가 알아서 할 거야.”

 “그럼 이제 뭐해?”

 “제주 지부 순례자들이 도착할 때까지 대기.”

 “…언제 오는데?”

 한소윤은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더니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한 시간 후.”

 “진짜? 졸려 죽겠는데.”

 현재시각 새벽 2시 10분. 새 나라의 어린이라면 한참 꿈나라에 빠져있어야 할 시간이다. 이제까지 밤샌 적이 없던 것도 아니고, 갑옷 덕분에 육체적인 피로는 심하게 느껴지진 않지만 야심한 밤은 그것만으로도 정신에 부담을 주었다.

 한 시간 동안 계속 서서 감시하는 것도 뭣하기에 나는 아래층에 내려갔다 오기로 결심했다.

 “지원팀 안전도 확인할 겸, 관리사무소에 노끈이나 밧줄 같은 거 있으면 챙겨올 겸 해서 잠깐 내려갔다 올게.”

 “노끈은 왜?”

 “저 사람들 묶어놓으려고.”

 “왜?”

 내 말에 한소윤이 연달아 의문을 표했다. 한 사람만 있어도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데 굳이 포박할 필요성이 있냐는 듯이.

 “이곳에 은혈귀가 나왔다는 정보가 컴퍼니 전용 어플에 떴잖아? 그럼 다른 컴퍼니가 찾아올 수도 있고, 그 사람들이랑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그때 기회를 타서 저 사람들이 도망가면 어떻게 해?”

 물론 몇 명이 와도 한소윤 혼자서 정리할 수 있을 테고, 신분이 다 까발려진 만큼 이 사람들은 도망칠 엄두를 내지 못 하겠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법이니까.

 “…알았어.”

 만약의 만약까지 생각한 내 의견에 한소윤은 반대할 명분이 없는지 순순히 허락을 내렸다.

 그래. 적은 가능성이지만 위험에 대비하겠다는데 그 누가 막을 수 있을까.

 한소윤의 승낙을 받은 나는 세 사람과 한소윤에게서 멀어지며 주위를 느긋하게 구경했다.

 ‘사실 시간 때우려는 거지만.’

 고작해야 한 시간이다. 집중 감시 하라면 못 할 것 없지만 그대로 있기에도 좀이 쑤셨다. 그렇기에 이왕 이렇게 된 거 먼저 지원팀의 위치와 생사를 확인하고 시간이 되면 노끈이나 밧줄 등을 찾는다는 핑계로 다신 오지 못 할 수도 있는 이 박물관을 깊이 탐구하면서 즐길 셈이다.

 한소윤이 볼 수 없는 거리까지 멀어진 난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

 

 

 

 

 “…별 거 없네.”

 삼인조의 말대로 입구에 모여 곤히 자고 있는 지원팀의 모습을 확인한 나는 박물관을 둘러보다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전시물을 상태가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퀄리티나 고증, 관리 문제가 아니다.

 그저. 그저.

 “전기가…. 내려가 있었지.”

 조명의 문제가 아니다. 강화된 시력 덕분에 이 정도 어둠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전기가 내려가 있는 것으로 야기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홀로그램 등 영상 처리가 가미된 작품들을 제대로 즐길 수 없다는 것에 있다. 심지어 이곳은 최근 개관한 곳이라서인지 대다수의 전시물들이 그런 방식을 추구하고 있었다.

 나는 움직이지 않는 전시물을, 때때론 텅 빈 공간을 바라보며 박물관 안을 하염없이 걸었다.

 ‘그냥 한소윤 옆에 앉아서 스마트폰으로 웹사이트나 둘러볼 걸.’

 잔꾀를 부린 대가인가.

 한탄하고 있는 내 귓가에 이상한 소리가 들린 건 그 순간이었다.

 쉬잉!

 무언가가 공기의 장벽을 빠르게 가르며 내 지척까지 접근했다. 그것은 바로 조금 짧은 길이의 브로드 소드.

 나는 내 뒷목을 향해 주저 없이 찔러 들어오는 검을 바라보며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정말로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협회원이라면 이렇게 문답무용으로 공격할 리가 없다. 분명 또 다른 컴퍼니거나, 아니면 저 위에 있는 삼인조의 일행이겠지.

 검을 막지도 않고 그냥 갑옷으로 받아낸 나는 공격이 씨알도 먹히지 않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남자를 똑바로 쳐다봤다.

 나이는 나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많아 보이는 남자였다. 키는 평균치였지만 군더더기 없는 몸은 오랫동안 관리해온 사람의 것으로 보였다.

 외견에 신경을 많이 쓰는지 얼굴의 모든 잔털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가볍게 화장까지 한 그 남자는 고급스런 반지를 가득 낀 오른손으로 자신의 브로드 소드를 고쳐 잡았다.

 ‘그건 그렇고 바로 목을 노릴 줄이야.’

 마음에 안 드네.

 아무리 돈 벌이에 방해가 된다고 해도 이쪽은 공익을 표방하는 대위마 정화협회의 협회원이다.

 정도를 걷는 사람의 목숨을 아무 주저 없이 뺏으려 하다니.

 아까 삼인조 덕분에 컴퍼니에 악감정이 생겼는데, 더 증폭 시켜줘서 아주 고마워 죽겠다.

 ‘먼저 제압부터 해야지.’

 제압 도중 약간의 폭력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그건 저쪽이 감내할 문제고.

 정비를 마친 남자의 브로드 소드가 내 안면으로 들어왔지만 난 구태여 막지 않고 오히려 남자의 명치를 주먹으로 올려쳤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미쳐도 이런 미친 짓이 없다. 머리와 명치. 칼과 주먹. 조금이라도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이 교환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건 내 앞에 있는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유리한 교환비를 가진다고 여겼는지 명치의 방어를 포기하고 온 힘을 브로드 소드에 실었다.

 퍼억!

 하지만 결과는 상상과 상반됐다. 이쪽의 피해는 고무줄 총을 얼굴에 맞은 거 같은 따가움 뿐. 반면 저쪽의 피해는 딱 봐도 심각해보였다. 벽에 부딪칠 때 다친 건지 머리에 피를 흘리고 있으며 내상을 때문에 입 밖으로 피를 토하고 있다.

 ‘그렇게 쌔게 때리진 않았는데?’

 남자의 가슴에 있는 은장도는 아무리 못 해도 최소 C급은 되어 보였다. 적당히 장식도 있지만 삼인조의 은장도처럼 탁하지도 않았다. 그걸 감안해서 힘 조절을 한 건데 남자는 큰 충격을 받았는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 하고 있다.

 “너 이 새끼….”

 여차하면 긴급회복 스펠 사용을 고려하고 있던 내게 욕설이 들렸다. 피를 토하는 남자 있는 곳이 아닌 다른 방향에서.

 ‘…이건 또 뭐야? 쌍둥이?’

 고개를 돌려 바라본 그곳엔 내가 쓰러트린 남자와 똑같은 외모, 똑같은 옷, 똑같은 은장도를 가지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한쪽이 다친 상태란 것만 빼면 완전히 판박이였다. 새로 등장한 남자는 아까 전 그 남자와 같이 브로드 소드를 들고 내 앞에 섰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었다.

 한 명. 두 명. 똑같이 생긴 남자의 숫자는 점점 더 늘어갔다.

 쌍둥이라 보기는 너무 많잖아?

 이윽고 쓰러진 자를 포함해 12명까지 늘어난 남자들은 브로드 소드를 뻗듯이 들고 나를 포위해 나갔다.

 그것까지 지켜본 나는 마른 침을 삼켰다.

 ‘분신? 환영? 은장도의 고유 능력인가?’

 만약 그렇다면 남자의 가슴에 박혀있는 은장도는 최소한 B급 이상이라는 뜻이다. 고등급이라 부를 수 있는 은장도를 인조적으로 만들고 유통하고 있다면 사태의 심각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아니. 단정하지 말자.

 원래부터가 컴퍼니의 일원이다. 은장도가 아닌 본신의 기술로 위마를 정화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만큼 마법이나 주술적인 힘일 가능성도 있다.

 ‘아까 짠 작전? 대로 제압한 뒤 캐묻는 수밖에.’

 생각을 정리한 나는 포위망을 좁혀오는 열 한명의 남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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