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몇 번을 왕복했을까. 마지막으로 돌아온 싸움판은 그 어지러웠던 난리판이 꿈이라도 되는 것처럼 조용하게 마무리 되고 있었다.
아직도 서로를 향해 사납게 으르렁 거리는 녀석들이 있지만 극히 소수였고, 경찰관까지 와서 상황을 통제하고 있는 이상 더 큰 불상사가 생기진 않을 거라 보았다.
경찰까지 오게 된 건 의외였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학생들 때문에 가려져서 나는 보지 못 했지만 패싸움에 참여한 사람들 중에는 2반과 6반의 담임선생님도 있었다고 한다. 아이들을 바른 길로 선도해야 되는 입장인 선생님들까지 이성을 놓고 싸움판에 참여했다는 점이 이 사건을 단순 폭력사건이라고 여기지 않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양호 선생님은 2반과 6반이 어떤 바이러스에 감염 되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얼마 있지 않아 여러 대의 엠뷸런스가 찾아와 아직까지 정신차리지 못 하고 있는 학생들을 실어 날랐다.
선생님들은 우리들에게 대기발령을 냈다. 정말로 바이러스 등의 문제라면 신체적으로 접촉했던 우리들도 감염 되었을 수도 있으니 각자의 방 들어가 대기하며 상황을 지켜보자고 말이다. 혹시라도 무언가 몸상태가 이상해지면 숨기지 말고 바로 말하라는 엄중한 주의와 함께.
마침 취침시간이기도 하니 아이들은 큰 불만 없이 흩어졌다.
그건 나와 인용이도 마찬가지. 방에 들어온 우리는 이미 다시 씻고 누워있던 한솔이와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한솔이 같은 경우는 밖에서 우리 조로 꼬시는대 실패한 여자애와 떠들다가 사건에 휩쓸렸고, 그 이후엔 여자애와 같이 흥분한 애들을 옮겼다고 한다.
유대감이 늘었다나 뭐라나 하며 좋아하고 있는 한솔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지 인용이는 화제를 돌리며 스산하게 말했다.
“개네 말이야…. 거기 있던 그 귀신들한테 씌인 거 아냐?”
“설마. 장소가 그런데 귀신이 나올까.”
2반과 6반이 함께 모인 관광지는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박물관이다. 최근 개관한 그 박물관은 제주도의 역사나 생활양식들을 퀄리티 높은 모형으로 재현해 놓은 전시관 자랑이라고 한다. 그런 현대적인 박물관과 귀신은 매치가
잘 되지 않았다.
한솔이도 내 생각에 동의하는지 귀신 따위는 별 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런 귀신보다 수학여행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게 더 무섭고 말이야.”
그렇다. 여자애와 조별 활동 날 둘이서 돌아다니기로 약속한 한솔이에겐 안 된 말이지만 사건이 사건인 만큼 수학여행은 흐지부지 끝날 가능성이 높았다. 비행기 예약 건 때문에 바로 집으로 돌아갈 순 없으니 제주도에 남긴 하겠지만 어디 돌아다니지도 못 하고 게스트 하우스 안에서 계속 죽치고 있어야 할 게 분명하다.
“아. 진짜 이대로 끝나나.”
인용이는 투덜거렸지만 나는 말리지 못 했다. 나도 이렇게 수학여행을 끝내는 건 상당히 아쉬웠다. 가득이나 날씨도 안 좋아서 제대로 즐기지도 못 했는데 말이다. 이대로 돌아가기엔 돈도 아깝고.
“내일 알려준다니까. 이제 그만 자자.”
아직 수학여행을 지속할지에 대해선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상태다. 결과적으론 내일 공지한다고 하니 평범한 학생인 우리로서는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어휴. 그래 자자.”
인용이의 한숨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쁴쁴븽 쁴쁴삉븽~
아씨 깜짝아.
익숙한 벨소리에 나는 눈을 크게 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한참 잘 자고 있었는데 누구야?
“뭐야….”
“아냐. 자.”
인용이가 힘없이 말하자 나는 먼저 재빨리 스마트폰을 조작해 불륨을 낮춘 뒤 누가 내게 전화를 걸었는지 확인했다.
발신자를 확인해주는 곳에 적혀 있는 이름은 바로 한소윤.
‘이게 뭔 짓거리야.’
현재시각 새벽 1시 27분.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내게 전화를 거는 것으로 이 방 모두에게 폐를 끼친 한소윤에게 나는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왜.”
하지만 감정이 가득 담긴 내 목소리에도 한소윤은 그저 묵묵히 자신의 용건을 전달했다.
-밖으로 나와.
“…지금?”
이렇게 늦은 밤에? 도대체 왜?
-급해. 빨리 나와.
한소윤은 그렇게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통화종료가 뜬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머리를 박박 긁고 2층 침대에서 내려갔다. 그 한소윤이 급하다고 할 정도면 예삿일이 아닐 테니까.
나는 문 앞에 잠시 가만히 서서 복도의 기척을 살폈다. 야심한 새벽이지만 선생님이 불침번을 서며 감시하고 있을 수도 있다. 아까 사단이 났으니 경계를 철저하게 하면 하지 소홀하진 않을 거다.
혹여 마주치면 화장실에 간다는 변명을 읊으면 되지만 선생님이 돌아오는 걸 확인 할 수도 있고, 그러진 않겠지만 같이 가자고 따라오는 등의 사유로 시간이 지체될 가능성이 있다.
‘아무도 없는 거 같긴 한데.’
나는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천천히 문고리를 돌렸다. 조금씩 열리는 문의 틈새로 주변을 확인했지만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아 나는 도둑처럼 까치발로 걸음을 옮겼다.
이러고 복도를 걸으니 옛날에 했던 잠입 게임이 생각나 조금 흥분 됐지만 게임처럼 특이한 이벤트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긴 선생님들도 피곤하실 거고. 이런 새벽에 누가 나갈 거란 생각은 보통 하지 못 하겠지.
그렇게 나는 그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고 게스트 하우스 밖으로 빠져나와 자고 일어난 걸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깔끔한 옷차림의 한소윤 앞에 당도하는 것에 성공했다.
“늦었어.”
한소윤의 작은 질책이 쏟아졌지만 나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기에 나는 넉살좋게 말했다.
“선생님들한테 걸리면 안 되잖아? 조심해서 오느냐 어쩔 수 없었어.”
그 말에 한소윤은 이상하다며 머리를 갸웃하고 기울였다.
“결계 유지해둔다고 내가 안 말했어?”
“…안 말했어.”
일찍 좀 말하지 그랬냐.
창문이 있는 복도를 걸을 땐 자세를 낮춰보기도 하고, 스마트폰 액정을 거울처럼 이용해 모퉁이를 탐색해보기도 했는데 그 행동들이 사실은 전부 뻘짓이었다니.
이게 다….
“…빨리 가야 돼. 늦었어.”
한소윤은 자신의 실책을 굳이 꺼내고 싶지 않은지 내 시선을 외면하곤 변명하듯이 말했다.
“후. 무슨 일인데?”
“가면서. 해방하고 뛰어.”
그렇게 말한 한소윤은 냅다 은장도를 해방했다.
‘다급한 일이긴 한가보네.’
나는 선이 되며 사라지는 한소윤의 뒤를 갑옷을 입고 쫒아갔다.
폼이 널널한 옷을 잠옷처럼 대충 걸치고 있었는데, 갑옷을 입게 돼서 다행인가? 뭐 됐고.
“왜 이런 새벽에 깨운 거야?”
애초에 성지라면 대위마정화협회 한국 본부 산하 제주도 지부….
그러니까 제주 지부가 알아서 관리하고 있지 않나? 나에게 갑옷까지 입히면서까지 급하게 달려가야 할 일이 도대체 뭐길래?
“은혈귀가 나타났어.”
“허….”
나는 탄식을 내뱉었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 말았다.
은혈귀는 몇 년 전 은혈전쟁 이후 대다수가 정화되었다지만, 아직까지도 협회 최대의 적이라 불리고 있다.
협회가 이토록 은혈귀에 신경을 기울이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가장 큰 요인은 은혈귀가 성지가 아닌 현실에서 활동하기 때문이다.
위마는 성지와 함께 등장한다. 그리고 성지는 지상의 변성도를 체크하는 걸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다. 가끔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성지도 있지만 그래도 대비할 수 있다. 하지만 은혈귀는 현실에서 인간과 다름없이 생긴 모습으로 세상을 활보하기 때문에 족적을 쫒기 까다롭다. 그런 만큼 대비하기가 어렵고, 설령 발견하더라도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은혈귀와의 싸움은 져도 문제고 이겨도 문제라고 한다. 결계로 사람을 물려 인명피해를 제로로 만든다 해도 건물 대여섯 채가 박살나있으면 큰 소란이 날 수밖에 없으니까. 싸움 그 자체로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현실에 영향을 미치게 되니 골치가 아플 수밖에.
싸움이 커지면 경위서를 작성해야 될 지도 모르기에 건물 지붕을 박차고 달리던 나는 부디 은혈귀가 인적 없는 곳에서 발견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담아 한소윤에게 물었다.
“어디서 나타났는데?”
백윤현 때처럼 아무도 없는 산에서 싸우게 되면 다운 레이를 펑펑 써도 문제없을 텐데 말이지.
그러나 한소윤은 내 기도와는 다르게 우리 반이 내일 들릴 예정이었던, 그리고 2반과 6반이 오늘 들렸던.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관광지의 이름을 말했다.
“한라 박물관.”
“뭐? 그럼 설마….”
나는 차마 말을 잇지 못 했지만 한소윤은 용케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밤의 소동은 은혈귀의 능력 때문이야. 그 사건을 조사하다 발견됐어.”
느긋하게 뒤처리 같은 걸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이렇게 큰 소란을 벌일 그릇의 은혈귀라면 앞뒤 가리지 않고 신속하게 제거하는 게 우선이다.
“등급은? 어느 정도로 강해?”
“금성급.”
“어? 의외로 약하네?”
은에 대한 내성도로 등급을 매기는 위마와는 다르게 은혈귀는 오로지 강함을 기준으로 등급을 매긴다. 지구를 뺀 수금화목토천해명 순으로.
금성급이라면 앞에서 두 번째. 많아봤자 중급 위마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뜻.
보통 이렇게 자신의 행적을 노출시킬 각오로 대대적인 사건을 벌이는 은혈귀는 도망칠 자신이 있거나 맞서 싸울만한 힘이 있는 고위 은혈귀 뿐이다. 그래서 은혈귀가 TV에 나올 정도로 대형 사고를 치는 날에는 협회에 비상이 걸린다고 이지인 누나가 말했다.
그런데 금성급이라니? 이건 은혈귀 입장에서 자살행위밖에 되지 않는다.
‘아무리 은혈귀의 등급이 유동적이고 정확하지 않다지만 정도가 있는 법인데.’
한소윤은 내가 그런 의문을 품고 있는 걸 눈치 챘는지 추가적인 설명을 더했다.
“은혈귀가 된지 얼마 안 된 모양이야. 숨기위해 펼친 환영 결계가 잘못 됐는지 2반과 6반 애들을 포함한 관광객, 직원 포함 전원한테 이상한 영향을 끼치게 됐어.”
“과연.”
학생들끼리 싸우도록 만드는 게 무슨 이득이 된다고 그런 일을 벌인 건지 조금 의아했는데 단순하게 실수였을 줄이야.
그 은혈귀도 운이 없네.
“그러고 보니 성하는?”
성하 또한 정식 순례자. 아무리 금성급이라지만 은혈귀는 은혈귀다. 어떤 변수가 일어날지 모르는 만큼 전력이 될 사람은 많을수록 좋을 텐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미리 가서 대기하고 있는 건가?
“아까 마법을 사용한 대가로 몸져 누워있어. 약하게 펼쳤다지만 의지 강제 같은 상위 마법을 전교생 대상으로 사용했으니까.”
그거 마법이었냐.
하긴.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이 몇 개 있었다. 그렇게 시끄러운데 귓가에 또박또박 박히는 목소리라던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고 지시를 잘 따라주는 점이라던가.
확실히 마법은 편리하다. 그렇지만 배울 엄두가 나지 않는 건 난이도도 난이도지만 은장도와 다르게 사용자에게 대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의지 강제. 이름만 들어도 어마무시한데 그걸 사용한 대가라니.
“성하는 괜찮은 거야?”
“괜찮아. 하룻밤 푹 자면 일상생활에 지장은 없을 거야. 다만 수학여행 끝날 때까지 전력으로 삼을 순 없어.”
“알았어. 그럼 제주 지부는? 그쪽도 못 오는 이유가 있어?”
제주 지부에도 분명 현장해결팀이 있을 텐데. 그 사람들은 다 어디 갔데?
“현장팀 모두 다른 성지를 정화하러 갔어. 현장지원팀만 주변에서 박물관을 봉쇄 중.”
끙. 휴가 받은 사람도 움직이게 만드는 이놈의 인력난이란.
“다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