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르륵-
건물에서 내려와 지원팀에게 배주를 전해주고, 서유진의 차에 탄 우리 6팀 전원의 귀에 허기 가득한 소리가 들려왔다.
“배고파.”
발원지는 바로 내 뒤에 타고 있는 서민아의 배.
이해는 한다. 벌써 저녁 8시. 밥 타임 놓친 만큼 나 또한 정말 배가 고팠다. 원래 이럴 때면 연구소나 성지 근처 어딘가의 적당한 식당에서 끼니를 때웠을 우리지만 이렇게 굶주리고 있는 이유는….
“회식 장소 너무 멀지 않아?”
“금방이니까 참아.”
그렇다. 우리는 팀원 환영회 및 친목 도모 겸 안녕 기원 월말 회식을 하러 간다. 어째서 이제 와서 회식을 하냐면, 내가 협회에 정식으로 가입했기 때문이다.
나는 결국 요 한 달간의 직무체험 기간이 끝나기도 전 협회에 들어왔다. 망설임 따윈 없었다. 위험한 일이긴 하지만 그 만큼 보수가 높았고, 요즘 서유진이 폭언을 많이 삼가고 있는 덕분에 크게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었으니까.
누군가가 그랬지. 삶은 긍정적이고 도전적이어야 한다고. 그렇게까지 공감되는 문구는 아니었지만 이번엔 참고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소극적이고 방어적이었던 나를 바꿔보기로.
뭐 정 안 되면 도중에 슬쩍 내빼면 되고. 솔직히 몇 년 만 일해도 평생을 먹고 살만한 자금이 모이니까.
어쨌든 그렇기 때문에 나는 조금 거북한 이 회식을 거절 할 수 없었다. 주인공까진 아니어도 조연 이상은 될 입장이니까.
차에 대해 잘 모르는 서유진이 지인의 말만 듣고 샀다는 벤츠 S클래스가 카레이싱에서나 들었던 묵직한 중저음 배기음을 내며 출발했다. 흔들림 없는 차체에 만족한 나는 뒤에 있는 한소윤의 양해를 구한 뒤 조수석 의자를 살짝 눕히고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게임 하려고?”
“아니. 그런 거 안 해.”
“진짜로 재미있는데.”
이미지와 다르게 서민아는 스마트폰 게임을 즐겨하는 모양이다. 자투리 시간에 간간히 하기 좋다나. 언젠가 한소윤한테도 권하더니 요즘에는 나를 타겟으로 삼은 것 같다. 인용이도 한참을 꼬셨기에 관심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아직 하고 싶은 마음까진 안 생겼기에 나는 에둘러 거절했다.
“시간나면.”
“또 그런다. 이상한 유머사이트나 보고 있으면서.”
“그래그래.”
“쳇.”
서민아는 내가 적당히 받아넘기자 혀를 차더니 한소윤과 떠들기 시작해 드디어 나는 평화롭게 스마트폰 화면에 집중할 수 있었다.
우리들이 도착한 곳은 강남의 한 한정식집.
최대 6명이서 앉을 수 있는 VIP 룸으로 우리를 안내한 종업원은 친절한 미소와 함께 곧 준비된 음식이 나올 거라고 말하며 돌아갔다.
원목을 사용해 아늑하고 따스한 느낌을 은은한 조명으로 강조해 살리는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이 식당은 마치 상견례처럼 중요한 누군가를 접대할 때를 위한 자리 같이 품격이 있었다.
“서있지 말고 가서 앉아.”
가만히 구경하던 나는 강압적인 서유진의 말에 냅킨과 수저 등이 깔끔히 세팅된 자리 중 출입구와 가장 가까운 곳을 골라 앉았다.
이런 곳에 처음 오다보니 행동이 어색한 나와는 달리 다른 셋은 익숙한지 자연스럽게 소지품을 내려놓고 용무를 보러 나갔다오거나 편하게 앉아 있다.
‘음. 모르겠다.’
나는 괜히 식당의 분위기에 압도당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비싼 곳 같은데 쓸데없이 긴장해 음식 맛을 제대로 못 느끼면 나만 손해니까.
최대한 여유로운 척 하기 위해 이러저러한 잡담을 하고, 요리가 나와 식사를 시작한지 얼마 후.
“파륜(波輪)은 어때?”
서유진이 전채로 나온 쇠고기 편채를 오물거리고 있던 한소윤에게 갑작스럽게 물었다. 천천히 씹어 목으로 음식을 넘긴 한소윤은 젓가락을 내려놓더니 한참을 고민하다 겨우 입을 열었다.
“아직…. 잘 모르겠어요.”
소모한 시간에 비해 허망할 정도로 간단한 답변이지만 서유진은 이해한다며 나긋나긋 말했다.
“그래. 천천히 익숙해지면 되니까 조급해하지 말고. 민아 넌? 아직도 불발탄 나와?”
“집중 안 하면 백에 한두 번 정도? 헤헤.”
서민아는 아직도 엣지드 리볼버를 완벽하게 컨트롤 하지 못 하고 있는 자신이 부끄러운지 어색하게 웃었다. 하지만 서유진은 그냥 넘어가지 않고 오늘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말했다.
“웃을 일이 아니야. 그 한 번이 생사를 가를 수 있다는 거 몰라?”
“당연히 알고 있지! 내가 누구야? 할 때는 다 한다구.”
가슴을 툭툭치며 말하는 서민아지만 서유진은 턱도 안 먹힌다는 듯 코웃음쳤다.
“할 때는 뭘 해? 어제 청소도 안 했으면서.”
“소윤이 언니도 안 했는걸!”
“소윤이는 방을 깨끗하게 쓰잖아.”
듣는 바와 같이 지금 내 옆과 앞에 있는 여자 셋은 한 집에 살고 있다.
한소윤은 친오빠를 제외하면 연고가 없는 복잡한 가정사를 가지고 있다. 그 친오빠도 몇 년 전 세상을 떠났고 말이다. 그렇게 세상에 혼자 남게 된 한소윤을 두 자매가 자기네 집으로 끌고 오다시피 데려 왔다고 한다.
서민아의 말에 따르면 그 당시 한소윤은 툭하면 부셔질 것 같았다나 뭐라나.
여하튼 그런 사정이 있다 보니 지금의 상황을 나는 이렇게 판단 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 회식이 아니라 그냥 가족끼리 외식 나온 거다.’
졸지에 나 자신이 불청객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가족이 사정이 있어 잠시 맡은 이웃 아이를 데리고 외식에 나온 그림인 것이다.
사적인 대화가 가득해 도저히 끼어 들 틈이 나지 않아 대하선을 씹고 있던 난 그냥 음식이나 즐기며 가만히 있기로 결정했다.
“언니도 샤워할 때 속옷 그냥 소파위에 올려두잖아!”
“푸헙.”
쿨럭쿨럭.
와. 나오려는 거 간신히 틀어막았네.
서민아 폭로에 사례가 걸린 나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사생활이 폭로되어 답지 않게 당황한 서유진은 서민아에게 소리를 꽥 질렀다.
“야!”
“헤헤. 오빠 있는 거 까먹었다.”
그래. 나 존재감 없다. 근데 이거 일부러 그런 거지?
서민아에게서 반성의 기색이 느껴지지 않는 걸 보니 백 퍼센트 고의다. 화제를 돌리기 위해 극약처방을 쓴 게 분명하다. 그리고 그 계략은 성공했는지 서유진은 더 이상 서민아를 몰아치지 않고 옆에 있는 나를 향해 물었다.
“쯧. 그래서 넌. 불편한 거 없어?”
불편한 거?
“딱히 없는데요?”
그야 힘들고 피곤하긴 하지만 그 옛날 아침저녁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할 때와 비하면 편하고, 설령 그렇지 않은 날이 있더라도 급여가 많은 걸 생각하면 불만이 절로 스르륵 잠재워진다.
“그럼 건의 사항은?”
“기초트레이닝 시간을….”
“안 돼.”
다 듣지도 않다니.
요즘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바로 기초트레이닝이다.
이 한 달간 나는 수많은 실험을 겪어왔다. 대다수가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몇 가지 수확도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내 기본 신체능력이 높아지면 갑옷을 입은 상태의 능력치도 증가한다는 것이다.
현재로서 가장 쉽게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이라 나는 임무가 없는 날이거나 훈련 시간이 되면 어느 정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기본 전투 훈련 대신 기초트레이닝을 행하고 있다.
문제는 서유진 아니랄까봐 그 트레이닝의 강도가 매우 험악하다는 것이다.
물론 운동선수라면 기본적으로 소화할 수 있을만한 플랜이지만 얼마 전까지 평범한 학생이었던 나에게는 고역이나 다름없었다.
갑옷을 입었을 때는 고통을 참기만 하면 됐는데 육체적인 피로가 몰려오니 감당이 안 된다.
‘플랭크 25분 버티기 했을 땐 정말 죽을 뻔했지.’
그렇다고 못 하겠다 내던질 수도 없는 게, 요즘 서유진은 완급 조절을 정말 잘하기 때문이다.
독설이 배제된 서유진은 날카로운 교관이었다. 내 한계를 어쩌면 그렇게 잘 아는지 포기하려고 하면 휴식. 못 하겠다고 하면 마지막이라고 유혹하는 등 교수법이 장난이 아니다.
그래도 힘든 건 힘든 거니까 넌지시 말해봤는데 역시 단칼에 잘렸다.
“대기실에 와이파이가 안 잡혀. 인터넷 증설해주면 안 돼?”
내 소원수리가 기각된 틈을 타 서민아가 건의했다.
지금 서민아가 말하는 대기실은 연구소 3층에 있는 6팀 전용 임무대기실을 말한다. 훈련이나 통상 업무가 없다면 보통 근무 시간이 끝날 때까지 대기실에서 긴급 발생 되는 성지에 대비한다.
뭐. 임무대기실이라고 하지만 사실 휴게실이나 마찬가지다. 그곳에 위마 관련 물품이라곤 각자 소지한 은장도 뿐. 나머지는 사적인 물건들로 가득 꾸며져 있다.
특히 서민아는 자신의 사비로 TV와 게임기 등을 가져다 놨는데, 요즘 들어 신호가 안 좋다고 자주 투덜거렸다.
얼마 전만까지만 해도 같이 있기 어색해서 연구소 1층 로비 옆 휴게실을 애용했지만 최근 들어 그곳을 조금씩 점령하고 있는 나에게도 저건 중요한 문제였다.
“한 칸은 좀 심했지.”
“맞아 맞아. 핑도 엄청 높고.”
내가 맞장구치자 서민아는 바로 그거라면서 말했지만 나는 핑이 뭔지 모르기에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하지만 그 행위를 동의한다고 판단한 서유진이 곧바로 우리 둘에게 반론을 제기했다.
“거기가 놀이터인 줄 알아?”
“언니도 인터넷 쇼핑 할 때 속도 느리다면서. 응? 응? 제발.”
서유진은 그 뒤에도 몇 가지 정론을 말했지만 서민아가 귀담아 듣지 않고 애교가 담긴 공격만 계속 지르기에 더 이상 토를 달지 않고 항복 선언을 했다.
“알았어. 말은 해둘게.”
“헤헤. 고마워 언니.”
자매의 흐뭇한 대화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나는 차돌구이를 씹으며 생각했다.
‘의외로 가족한테 약하단 말이지.’
정말로 냉정한 사람이라면 이런 사적인 이유 가득한 건의사항은 바로 기각할 텐데 말이다.
“아. 그리고 너.”
“네.”
“소개 해야지?”
“…예?”
뭘? 멍멍이랑 음메 말하는 건가?
두서없고 뜬금도 없는 서유진의 말을 난 이해할 수 없었지만 다행히 추가 설명이 늘어졌다.
“정식으로 팀에 들어합류 한 거잖아? 자기 PR 한 번 정도는 해야 되는 거 아냐?”
다행이 아니었군.
“맞아!”
확실히 서민아의 말처럼 확실히 맞기는 하다. 맞기는 한데…
“지금요? 이렇게 뜬금없이? 분위기도 안 잡혔고 준비 시간도 안 줬으면서?”
“지금 아니면 기회 안 줘.”
서유진은 선심 쓴다는 듯이 말했지만 나는 머뭇거렸다. 그도 그럴 게.
“이미 다 알잖아요?”
내 신상명세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왜 이런 번거로운 짓을 하는 건데? 부끄러워질 내 입장도 생각해 달라고.
“까라면?”
“…까아죠. 어휴. 모르겠다. 같이 죽죠. 갑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서민아가 오글거려서 더 이상 못 듣겠다며 몸부림칠 때까지. 나는 내가 생각해도 소름 돋는 연극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