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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게임판타지
착한 놈은 없다
작가 : 하노리
작품등록일 : 2017.12.11

※ 한줄 요약:
착한 놈, 착했던 놈, 나쁜 놈이 현실과 신세계(인공지능이 만든 가상현실)에서 벌이는 생존 투쟁기입니다.

※ 소개:
“만약 가상현실에서 게임을 한다면, 간디처럼 행동할 것인가 히틀러처럼 행동할 것인가.”
GTA5를 하던 중 심심풀이로 NPC들을 차로 깔아뭉개는 제 모습을 보며 문득 이러한 물음이 떠올라 끄적이기 시작한 소설입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배경, 지명, 이름 등은 모두 제멋대로 차용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

 
7화 직업 선택
작성일 : 17-12-11 19:39     조회 : 389     추천 : 0     분량 : 5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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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화 직업 선택

 

 *** < 현실과 신세계의 중간지점 > 선택의 방 ***

 

 토군은 주머니에서 꺼낸 직업 카드를 한 장씩 탁자 위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기껏해야 카드 덱에 열장 정도 있는 걸로 봤는데 카드는 끊임없이 올려졌다. 카드 마술을 보는 것 같았다.

 

 “도대체 몇 장을 올려놓으려는 거냐? 직업도 더럽게 많네.”

 

 탁자를 수북이 덮고도 남을 정도로 카드가 놓이자, 보다 못한 태조가 나섰다. 토군은 어깨를 으쓱했다.

 

 “이정도 가지고 뭘 그러십니까. 앞으로 486장 더 남았습니다.”

 “헤~~에. 무슨 직업이 그렇게 많아.”

 “일반 직업, 드묾 직업, 희귀 직업 전부 보여드리는 거라 많습니다.”

 “다 설명해 주려면 얼마나 걸릴 거 같냐?”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 그 직업이 가지는 장점과 단점, 스킬 조합, 직업군끼리의 상생, 상극 등 상세히 설명 드릴게 많아서 시간이 좀 걸립니다.”

 “됐어. 됐어. 일반 직업은 설명해줄 필요 없고 희귀 직업으로만 추려봐. 나한테 추천해 줄만한 걸로. 시간 없으니까.”

 

 태조가 손사래를 치며 탁자에 올려놓은 카드를 정리했다.

 

 “테스터들이 만찬장에서 기다리고 있긴 합니다만, 지금 이 순간은 엄연히 태조님만의 시간이라 충분히 시간을 쓰실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 급하게 진행하실 필요가 없다 이 말씀입니다. 물론 모든 테스터가 직업에 대해 전부 듣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테스터들이 30개 이상의 직업에 대해 설명을 들었습니다.”

 

 토군의 설득에도 태조는 카드를 정리했다. 토군이 태조를 말리며 말을 이었다.

 

 “태조님, 직업 선택은 우승으로 가는 길에 있어 중요한 갈림길이기에 신중히 선택할 필요가 있습니다. 뭐에 쫓기듯이 촉박하게 하시면 안 된다 뭐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나한테 맞는 희귀 직업으로 추려보라니까.”

 

 태조는 ‘나 잡아봐라’ 퀘스트 생각에 일반 직업이나 드묾 직업을 듣는 시간이 아까워 빨리 넘어가려고 했다. 조금 전 붉은 복도에서 손에 잡힐 듯 말 듯 했으니 혹여나 직업 선택이 끝나고 복도가 또 나온다면 그녀를 잡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도 언뜻 들었다.

 

 “안 됩니다. 무조건 희귀 직업이라고 좋은 게 아닙니다. 희귀한 직업은 그만큼 커다란 대가를 바랍니다. 일단 일반 직업 중 마음에 드시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무난한 방법입니다. 게다가 희귀 직업으로 초반부터 치고 나간다면 다른 테스터들의 이목을 끌게 됩니다. 그러면 게임의 방에서 태조님이 투표로 탈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괜찮다니까. 시간 없으니까 그냥 희귀 직업만 보여 줘. 나도 다 생각이 있어.”

 

 태조는 완고했다. 그러자 대체로 태조의 물건에만 시선이 가있던 토군이 처음으로 태조의 눈을 보았다.

 

 “태조님 제 눈을 똑바로 바라봐 주시겠습니까?”

 “왜?”

 

 태조는 의아해하며 토군의 눈을 바라보았다. 태조의 검은 눈동자와 토군의 푸른 눈동자가 한동안 서로를 마주보았다.

 

 “음... 누군가를 갈망하는 눈빛입니다. 욕망에 불타오른 눈빛, 여인을 품고 싶어 하는 그런 눈빛 말입니다. 혹시 여인을 품기 위해 쫓고 있습니까?”

 

 태조는 뜨끔했다. 관심법을 당한 기분이었다.

 

 “여인은 무슨.”

 “태조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욕망은 눈을 통해 드러납니다. 눈은 욕망의 거울입니다. 저는 그 거울을 통해 상대방의 욕망을 잘 읽는 편입니다.”

 “말도 안 돼.”

 “믿지 못하시겠지만 이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의 눈을 잘 안 봅니다. 상대방의 욕망을 다 알면서 대화를 하면 재미가 없지 않겠습니까?”

 “쳇.”

 “상대방의 진심을 전부 알면서 하는, 진실만 있는 대화는 대화가 아닙니다.”

 

 토군이 태조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아, 거 아니라니까.”

 

 태조는 부담스러운 시선을 피하며 답했다.

 

 “거짓만 있는 대화도 대화가 아닙니다.”

 

 시선을 애써 피했지만 토군의 눈동자가 태조를 끊임없이 따라왔다. 태조는 토군의 집요한 추궁에 결국 두 손 두 발 들었다.

 

 “아 진짜. 그래, 어떤 벌거벗은 여인이랑 ‘나 잡아봐라’하고 있었다. 됐냐?”

 “흠...”

 

 토군은 갑자기 팔짱을 끼며 뭔가 골똘히 생각했다.

 

 “눈동자 들여다보면 욕망이 뭔지 알아 낼 수 있으면서 부끄럽게 왜 묻냐. 게임 시작 전에 가상현실에서 한 번 할 수도 있는 거잖아. 범죄도 아니고 말이야......”

 

 태조는 궁시렁궁시렁거리다가

 

 “근데, 너 그 여인 어디로 갔는지 아냐?”

 

 슬쩍 토군에게 말을 붙였다. 이왕 여인 이야기가 나온 김에 어디로 갔는지 알면 쫓는데 도움이 되니까.

 

 “부질없는 쫓음이었습니다.”

 

 토군의 입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대답이 흘러나왔다.

 

 “뭐가 부질없어. 벌거벗은 여인을 쫓고 있었다니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가상현실은 섹스와 살인이 전부라며?”

 “이곳으로는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제 방에서부터 말입니다.”

 “뭐? 분명 난 칵테일바에서부터 여인을 따라 왔는데.”

 

 태조가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토군은 뭔가 생각난 듯한 표정으로 손뼉을 쳤다.

 

 “태조님이 뭐에 홀린 듯 왜 이렇게 빨리 가나 싶었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거 같습니다.”

 “이유를 알다니?”

 “태조님 저를 처음 본 게 언제입니까?”

 “여기서 처음 봤지.”

 “이런이런, 저는 제 방에서 태조님을 처음 봤습니다.”

 “나를 방에서 봤다고?”

 “예. 제 초상화가 그려져 있는 방이 제 방입니다.”

 “말도 안 돼. 그 방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너 그림이 걸린 액자만 있었어...”

 

 토군은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저는 방 한편에서 졸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문이 ‘철컥’ 하고 열리는 소리에 깨어나 보니 이미 태조님은 복도로 나가신 뒤였습니다. 저는 서둘러 쫓았습니다만 태조님은 거울의 방도 모든 설명을 건너뛰며 빠르게 앞으로 나가셨습니다. 하여 발가벗은 상태로 직업도 고르지 않은 채 만찬장으로 가는 불상사를 막고자 지름길을 통해 이곳에 먼저 와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다보니 태조님이 곧 오셨습니다. 그런데 태조님은 제가 분명히 벽난로 옆에 서 있는데도 저는 못 보고 두리번거리셨습니다.”

 “거짓말 하지 마. 너 여기 처음부터 없었잖아. 분명 내가 먼저 왔는데...”

 “사람은 때때로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봅니다. 태조님은 여인에 홀려 저를 보지 못했던 겁니다. 제가 말을 걸 때까지 말입니다.”

 “말도 안 돼...”

 

 태조는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꼴렸다고 해도 청맹과니도 아닌데 어떻게 저만한 변태토끼를 못 볼 수가 있단 말인가.

 

 “누군가 태조님의 욕망을 한껏 끌어 오르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테스터들의 도우미 중에 상대편 테스터를 방해하기 위해 초장에 모략을 꾸미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스타팅 포인트부터?”

 “예. 그러니 천천히 복기를 해보셔야 합니다. 여기 오기 전에 뭐 특별한 상황이 있었습니까? 제 방에 들어오기 전에 말입니다. 칵테일바에서.”

 “그냥, 칵테일 몇 잔 마셨는데. 여인과 키스도 하고...”

 “이런! 이런!”

 “왜! 왜?”

 

 토군이 휘둥그런 토끼 눈을 더욱 크게 뜨자 태조도 따라 놀랐다. 불현 듯 불길한 생각마저 들었다. 다른 테스터 도우미가 꾸민 계략이 아니라 정신병은 아닐까. 신세계에 접속할 때 머리가 깨질 듯이 엄청 아팠는데...

 

 “좋았겠습니다. 키스도 하고, 고추도 커지고. 흐흐흐.”

 “아씨 뭐야. 호들갑을 떨길래 잘못된 줄 알고 놀랐잖아.”

 “그나저나 무슨 칵테일을 드셨습니까?”

 “엔젤스 키스와 데블스 섹스.”

 “흠, 이름만으로도 욕망이 차오를 만하군요. 일단 들뜬 욕망을 가라앉혀야 하므로 이 차를 한 잔 드시겠습니까? 이 차를 드시면 직업 선택을 함에 있어 방해가 되는 헛된 욕망을 가라앉힐 수 있습니다.”

 

 태조가 토군의 말대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진짜 여기 벌거벗은 여인 안 왔어? 몸매 끝내줬는데.”

 

 차를 마시기에 앞서 한 번 더 토군에게 물었다. 헛것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도 현실적이었다.

 

 “예. 제 이름을 걸고 맹세합니다.”

 

 태조는 씁쓸한 마음에 차를 한 잔 마셨다. 차향은 감미로웠지만, 차맛은 썼다. 차를 마시고 나니 몸과 마음이 허탈했다.

 

 [‘나 잡아봐라’ 가짜 퀘스트가 간파 당했습니다.]

 

 더불어 ‘나 잡아봐라’ 퀘스트가 헛것이라는 사실까지 확인됐다. 태조는 심장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태조님 마음이 좀 가라앉으셨습니까?”

 “어. 아주 폭삭 가라앉았다. 심장이 없는 기분이야.”

 “잘됐습니다.”

 “잘되긴 뭐가 잘 돼.”

 “헛것에 당했다고 너무 상심 마시라 뭐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어차피 게임을 시작하면 고추를 쓸 일은 허다합니다. 오히려 들뜬 마음에 엉뚱한 직업을 골라 동네 바보 형이 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기셔야 합니다.”

 

 토군이 태조의 등을 쓰다듬어 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래... 어쨌든 고맙다...”

 

 태조는 변태토끼이긴 하지만 자신을 도와준 토군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신뢰감도 쌓였다.

 

 “별말씀을. 도우미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다고 경계심까지 늦추지는 않았다. 등을 쓰다듬는 토군의 손이 언제 사타구니로 내려올지 몰랐다. 조심해야 했다.

 

 “이제 헛된 욕망도 사라졌으니 직업이나 선택하자.”

 

 등을 너무 오래 쓰다듬는 것 같아 토군의 손을 슬쩍 치우며 태조가 화제를 원점으로 돌렸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반 직업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아니야. 그러지 말고. 내 성향에 맞는 직업들로 추려서 소개해 줘. 직업 등급에 상관없이 말이야. 다 듣는 건 시간 낭비일 것 같아. 어차피 듣고도 전부 기억 못할 테니까.”

 

 태조의 물건만 바라보던 토군이 다시금 태조의 눈을 바라보았다.

 

 “태조님의 진정된 마음도 그렇게 생각하신다면야, 알겠습니다. 태조님의 성향을 분석해 그에 맞는 직업들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태조가 헛된 욕망에 휩싸여 있지 않다는 걸 알아차린 토군은 태조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토군은 핑거스냅을 한 번 했다. 탁자에 어지러이 있던 카드들이 핑거스냅 소리에 카드 덱으로 일사분란하게 모였다.

 

 “태조님에게 적합한 직업, 즉 적합도 70% 이상인 직업이 총 25개 있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이 직업들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토군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카드 덱에서 카드를 한 장씩 탁자 위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차분한 마음으로 제 설명을 들은 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우승으로 가는 위대한 첫 발걸음은 신중해야 한다 뭐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토군이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태조는 언뜻 토군의 저 미소가 누군가의 미소와 닮았다는 것을 느꼈다. 선명히 기억나지 않았지만 분명 본 적이 있었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데자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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