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모텔 1104호는 생각보다 깨끗했다. 하얀 침대에 하얀 시트, 그리고 정면에 위치한 커다란 TV와 방안을 꽉 매운 갈색 빛의 벽까지. 남의 시선이 완벽하게 차단된 모텔 방 안엔 정체를 알 수 없는 피 비린내가 풍겼다.
머지않아, 모텔의 방문이 열렸다. 어둠이 시야를 덮고 있던 그 공간에 희미한 실루엣이 비추었다.
딱 보기에도 여리 여리한 몸 선과 긴 다리, 그리고 짧은 단발머리와 무쌍의 눈, 시선을 사로잡는 까무잡잡한 얼굴까지. 갈색 가죽 재킷과 청바지를 차려입은 유연이 방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서며 인상을 구겼다.
“여기서 강간 사건이 일어났단 말이지?”
기분이 바닥을 쳤다. 굳이 현장을 살펴보지 않아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던 탓에 금세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코끝까지 내려온 안경을 손끝으로 쭉 밀어 올리며, 유연은 매서운 눈길로 침대 시트를 훑어 내렸다.
형사, 차유연. 그녀는 성범죄 수사팀의 유일한 여자 형사로 뛰어난 체력과 날카로운 촉을 가진 무서운 신예 중 한명이었다.
유연은 형사가 된지 한달 만에 10명의 범인을 체포한 거물이기도 했는데, 체포한 범인들을 어찌나 묵사발로 만들어놓았는지 범인 분쇄기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유연은 실력 있는 형사임에도 불구하고, 성범죄수사팀을 직접 만들고 그 곳에서 활동을 했다. 강력계에 들어간다면 훨씬 많은 돈과, 명예를 얻을 수 있었지만 유연은 그 많은 걸 포기한 것이었다. 남들은 미쳤다 했지만, 사실 그건 유연에게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유연은 성범죄의 피해자였으니까.
과거를 생각하면 한없이 끔찍했다. 유연은 아파트 12평, 한 방 안에 갇혀 학교도 나가지 못한 채, 지옥 같은 시간을 견뎌야만 했다. 삼촌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남자는, 늘 유연을 방으로 불러 기괴한 짓들을 시켰으니까.
“삼촌이 이러면 좋지?”
처음엔 그저 놀이인줄만 알았다. 그때 유연은 9살이었고, 성폭행의 가해자는 삼촌이었으니까. 아무런 의심 없이 다가간 것도 사실이었다.
짧은 스포츠머리와 짙은 쌍꺼풀, 그리고 한없이 차가운 손까지. 뱀의 형상으로 변한 흉물스런 손은 미끄러지듯 얇은 옷 속을 파고 들어와 유연의 살갗을 부유했다.
“으악! 싫어!”
눈앞이 핑핑 돌았다. 싫다고 발버둥을 친 적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거부하면 거부할수록 그는 재밌는 광경을 목격한 사람처럼 킬킬대는 웃음을 흘렸다. 모든 게 끔찍했다. 삼촌은 유연의 다리를 만지고, 가슴을 만졌으며, 결국, 유연의 아래 춤까지 손에 쥐었다.
끔찍한 성추행이 끝나게 된 건, 유연이 14살이 되던 해였다. 유연은 이제 꼬마라고 부를 수 없을 만큼 성숙해졌고, 삼촌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게 될 만큼 똑똑해졌다.
“차유연, 너 이리 안와?”
이제 삼촌이 부르면 달려가는 유연은 없었다. 그 날도 삼촌에게 잡히지 않으려 어찌나 집안을 뛰어다녔는지 모를 정도였으니까.
싫다고 발악을 하는 유연을 보며, 삼촌은 미친 사람처럼 분노를 쏟아 냈다. 확 돌아간 흰 눈깔이 시퍼런 살기를 내뿜으며 버럭버럭 소리를 쳤다. 남의 새끼 키워봐야 아무소용 없다면서.
“이년이 진짜!”
거친 손길에 붙잡힌 건 한순간이었다. 꽁꽁 잠겨있는 집 안에서 도망치려했던 게 바보 같은 짓일지도 몰랐다. 뱀처럼 튀어나온 손이 여린 몸을 마구잡이로 쥐어뜯었다.
유연은 곧장 침대로 내팽겨 쳐졌다. 삼촌이라는 이름의 악마는, 유연의 옷을 벗기고, 유연은 몸을 때리며, 끔찍한 짓을 일삼았다.
“아악! 싫어!”
지옥은 쉽게 벗어날 수가 없었다. 유연은 거부했고, 소리를 쳤으며, 삼촌을 떼어내기 위해 난리를 쳤지만 그럼에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애초에 100kg넘는 거구의 사내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았어야했다. 코끝으론 비릿한 피 냄새가 맴돌았고, 거친 손길에 의해 마구잡이로 범해진 아래 춤은 한없이 쓰라리기만 했다.
지옥, 그래 그 곳은 지옥이었다. 발버둥을 치고, 울고, 소리를 쳐도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지옥 말이다. 유연은 흔들리는 천장을 보면서 엉엉 울음을 토해냈다. 제발, 제발 살려달라고.
그때 유연의 나이는 고작, 14살이었다.
유연의 인생이 변하게 된 건, 우연한 신고로 부터였다. 102호에서 매일 같이 들려오는 비명소리를 이상하게 여긴 이웃주민이 신고를 하게 되면서, 5년간 꽁꽁 닫혀있던 지옥의 문이 열리게 되었다.
사건은 참혹했다. 경찰들은 급히 삼촌을 체포했으며, 유연을 병원으로 이송했다. 어찌나 많이 맞았는지, 시퍼런 멍이 든 얼굴에는 딱딱하게 굳어버린 핏물이 잔뜩 찌들어있었다.
“5년 동안, 성폭행을 당했어요.”
조사는 한없이 따분하기만 했다. 유연은 삼촌의 성폭행을 주장했지만, 그저 마음만 아플 뿐이었다. 아직까지도 못마땅한 얼굴로 온 몸을 훑어 내리던 경찰의 시선이 눈에 훤했다.
꽤나 냉철한 반응에도 유연은 한껏 몸을 움츠리며, 지난 5년간의 일들을 힘겹게 털어놓았다. 그게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지 알지 못한 채.
“하아.”
이야기를 끝낸 후, 경찰들의 반응은 딱 그것이었다. 하아, 하, 푹푹 내쉬는 한숨들 사이로 짜증나는 시선들이 꽂혀들었다.
경찰들은 귀찮아했다. 그저 가정폭력인줄 알고 넘어가려던 사건은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었으니까. 이번 사건에 성폭행까지 낀다면, 일은 생각보다 많아질게 뻔했다.
“근데 왜 도움을 청하지 않았죠?”
경찰들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탓했다. 사실, 사건이 쉽게 끝나기 위해선 그게 제일 편한 방법이기도 했다. 못마땅한 시선과, 짜증난다는 말투, 그리고, 귀찮아하는 표정까지. 유연은 그 짧은 순간 인생에서 쉽게 느낄 수 없는 가장 비참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오래전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면, 진작 신고를 했어야지.”
글쎄,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때 신고했다고 해서 뭔가 달라질 수는 있던 걸까? 경찰들의 행동을 보며, 유연은 점점 더 지옥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고 있었다. 슬프게도 유연은 부모가 없었다. 그래서, 도움을 요청할 곳도 없었다.
“형사님, 이 애가 성폭행을 당했다는데요?”
“뭐?”
세상은 불공평했다. 경찰들도 피해자의 편이 아닌, 가해자의 편에 서있었다. 형사라는 작자는 유연의 얼굴을 보자마자, 머리를 벅벅 헝클이더니 급히 삼촌을 유연의 곁으로 데려왔다. 그리곤,
“진짜에요?”
하고 물었다. 삼촌은 며칠간 감방신세를 지어야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통하게 살이 오른 얼굴이 꽤나 좋아보였다. 하긴, 집에 있을 땐 끼니도 거르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이곳에선 끼니도 꼬박꼬박 챙겨주었으니, 몸이 나빠질 거라곤 없긴 했다. 유연은 흠칫 떨며 뒤로 물러섰고, 삼촌은 짜증을 한가득 담은 얼굴로 유연을 매섭게 훑어 내렸다.
“말이 됩니까? 얘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제가 키웠습니다!”
그래, 그게 시발점이었다. 삼촌은 여태까지 유연을 키운 건 자신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슬프게도, 삼촌이 유연을 키웠다는 증거는 많았지만, 유연이 삼촌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증거는 없었다. 도움을 청할 곳도, 어디다가 말할 곳도 없었다. 그래서, 결국 삼촌은 사회봉사의 가벼운 처벌을 받은 뒤 쉽게 풀려났다.
삼촌이 집으로 돌아오는 날, 유연은 도망쳤다. 살아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꾸역꾸역 모아놓았던 쌈짓돈을 털어 이름도 모르는 곳으로 무작정 도망을 쳤다. 그저 바다가 보고 싶다는 이유로, 혼자 버스를 타고 한적한 바닷가 근처에 도착했을 때 운 좋게 주름이 많은 할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할머니는 유연을 받아주었다. 왜 여기까지 온 것인지, 왜 혼자인건지, 할머니는 유연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원래부터 자신의 손녀였던 것처럼 할머니는 유연을 사랑으로 대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따뜻하고, 포근한 사랑으로 말이다.
할머니는 늘 유연의 곁에 있었다. 어린 것이 고생한다며, 밥이던, 돈이던, 모든 걸 지원해주기 위해 애를 썼다. 유연은 고시를 패스했고,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그 해, 경찰 대학교에 들어가 경찰이 되었다. 경찰이 되는 걸로 이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거 알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할머니 역시 유연이 경찰이 되길 바랬으니까.
그게 벌써 10년 전 이야기였다.
“형사님!”
“어?”
유연은 화들짝 몸을 떨었다. 깊게 빠져있던 과거의 기억에서 헤어나오기 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언제 온 건지, 허겁지겁 모텔 방안으로 들어선 2년차 경찰 민식이 그녀에게 흰 종이 한 장을 내밀었으니까. 사건 경위서, 라고 적힌 종이 위엔 작은 글씨들이 꽉 채워져 있었다.
“오늘 사건 경위서입니다, 강간을 당한 피해자가 직접 적은 내용이에요.”
고개가 끄덕, 유연은 희미한 미소로 고맙다는 말을 전한 뒤 다시 몸을 틀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등 뒤로 의아한 시선이 와 닿는 걸 느꼈지만, 꾸역꾸역 모른 척 할 수밖엔 없었다. 그도 그럴만한 게 민식을 마주하자마자, 손끝이 벌벌 떨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민식은 꾸벅 인사를 건넨 뒤, 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워낙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유연이었기에 이번에도 그런가 보다하고, 생각하는 게 다였다. 하여간, 늘 냉정하시다니까.
입이 삐죽, 민식은 뒷머리를 쓱쓱 매만지며 밖으로 향했다. 쾅, 문이 닫히고 금세 정적이 맴돌았다. 유연은 힘이 빠져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미치겠네, 정말.”
눈앞이 캄캄했다. 파르르 떨리는 손끝은 이제 숨길 수 없을 만큼 그 떨림이 심해져있었다. 유연은 바지 뒷주머니 속에 숨겨둔 흰 통에서 약을 꺼내 입에 탈탈 털어 넣었다. 물도 없이 삼켰는데도, 퍽퍽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아.”
이깟 진정제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먹지 않으면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어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유연에겐 언제나, 남자를 마주하는 건 한없이 힘들기만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