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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Andrea
작가 : 체리씽
작품등록일 : 2017.12.9

bal AceTy, 황제의 반려 가문에서 태어난 소녀가 이름없는 황제에게 이름을 지어주면서 생기는 판타지 로멘스.
아트랑, 이 대륙에서 유일한 제국. 여태까지 많은 아세티를 배출했던 발 아세티(bal acety) 가문에서 태어난, 안드레아는 뜻하지 않은 일로 인해 집을 나와 거리로 갈 수 밖에 없었다. 7개의 고대 귀족 가문이 천 년에 한 번 내려오는 신탁에 따라 아트랑의 영광을 위해 황성으로 모이게 되는데...

 
[서장] 클로이 04
작성일 : 17-12-09 13:40     조회 : 227     추천 : 1     분량 : 5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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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 결속이었다.

 

 그리고 로라 또한 그 결속의 희생자였다.

 우리는 희생자라고 하지만, 아펠에서는 희생의 의미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신의 정기를 받아 아이를 잉태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에게는 가장 큰 축복이자 권리였다.

 아버지가 나간 날이면, 로라는 자신의 큰 아들을 옆에 앉혀놓고 흰 옷의 사내들을 불러들였다.

 

 제이크는 그런 방식이 잔인하고 이해할 수 없었다고 생각했다.

 처음에 아이는 엄마를 지키기 위해 나쁜 흰 옷을 물리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때마다 엄마는 축복이라며 제이크에게 소리쳤다.

 

 지금도 그랬다.

 딜런에게 어머니의 얼굴로 이야기를 하며 뒤로는 엉덩이를 빼고, 축복을 기대한다는 듯 같잖은 웃음이 역겨웠다.

 

 “전야제에 제이크도 나오다니. 신앙심이 깊어졌구나.”

 “네, 뭐.”

 “제이크 또한 축복입니다.”

 “신관님! 오랜만이네요!”

 “전야제에서 마주치는 것은 오랜만이군요, 부인.”

 

 통이 넓은 흰 옷을 입고 흰 색 숄을 두른 신관이 와서 로라와 인사하는 것을 보면서 제이크는 오랜만에 드는 살심에 기분이 썩 좋지 않음을 강하게 어필했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그들이 물러설 만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제이크도 어느덧 강한 남자가 되었군요.”

 “그럼요, 샐리와는 결혼을 생각하는 것 같더라구요.”

 “부인께서는 좋으시겠습니다, 망나니 둘째와 착실한 첫째라니, 슈미즈의 축복입니다.”

 “영광이에요.”

 

 딜런은 그저 웃으며 신관을 바라볼 뿐이었다.

 어릴 때 일도 생각이 안 난다는 듯이, 웃으며 얘기하는 꼴이 제이크는 보기가 싫었다.

 가벼운 전야제일 뿐인데, 사람들은 마치 결속의 밤이 오늘이라도 된 듯 벌개진 눈을 하고 로라와 딜런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 역시나 싫었다.

 

 “내일 일이 급해서요.”

 “어어, 그래 제이크 이따 보자?”

 “네. 빨리 들어오세요, 밤길은 위험하니까.”

 

 제이크는 로라의 팔을 붙잡으며 신관을 노려봤다.

 신관은 허허 웃으며 태연하게 “제이크 걱정말거라. 신관은 이 아펠에서 절대 죽지 않으니.”하고는 로라의 어깨를 뭉근하게 쓸어 내렸다.

 

 로라의 몸이 움찔거라는 것이 제이크의 손에 느껴졌다.

 제이크는 굳이 이 이후의 광경을 보고 싶지 않았다.

 가볍게 목례를 하고 신전 밖으로 나와 집으로 걸었다.

 

 이유 없이 눈물이 맺혔다.

 과연 슈미즈는 여신이었을까?

 아펠의 사람들은 멍청했다.

 그들이 간과하는 것은 아트랑의 건국신화였다.

 제이크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형은 쓸 데 없는 걱정이 많네요.”

 “그러니 딜런 네가 잘 이끌어줘야지.”

 “당연하죠. 신관님, 오늘 전야제에는 사람들이 많이 왔나요?”

 “예전같지가 않구아. 다들 슈미즈의 결속을 외면하고 있단다.”

 

 “특히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 신앙을 가져야 슈미즈께서 우리 아펠을 굽어 살펴주실 텐데.”하고 웃어 보이는 신관을 로라가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며 이내 손을 잡아챘다.

 

 “그런 말 마세요, 신관님. 안그래도 저희 마을에 딜런 또래의 아이가 하나 왔으니까요.”

 “아, 이름이 클로이라고 했던가요?”

 “어머, 신관님도 알고 계시는군요! 안그래도 대니얼의 여관에서 지내고 있답니다.”

 

 딜런은 잠깐 딴 생각을 하다가 클로이의 이름에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클로이와 결속의식을 행한다면 본인은 좋겠지만, 이상하게 신관들과 공유하고 싶지 않은 답답함에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을 느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딜런은 클로이의 그 순수함을 지켜주고 싶었다.

 물을 닮은 순수함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슈웨이 중앙의 아세티 강을 생각나게 했다.

 파란 눈동자 안에 자신이 비칠 때 더욱 그랬다.

 말간 눈동자에 자신이 오롯이 비출 때면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대니얼의? 아아, 대니얼은 신앙심이 매우 강한 사람이죠.”

 “맞아요,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착한 아이를 돌봐준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도 아직은 아니에요.”

 “응? 딜런 그게 무슨 말이니?”

 

 “아, 아무것도.” 딜런은 그냥 웃으면서 화제를 돌리려고 애를 썼지만, 그러지 못했다.

 딜런은 괜히 가슴이 뛰는 기분이었다.

 여신을 향한 향이 짙게 맡아졌다.

 매혹적이었다.

 

 “내일 결속이 기대되는 구나. 분명 많은 사람들이 망나니 딜런을 보기 위해 몰려들겠지.”

 “제 아들이지만, 딜런은 그만한 가치가 충분한 아이니까요.”

 “역시 부인은 아들을 참 잘 키우셨습니다. 내일이 기대되는 군요.”

 “아니요, 과찬이세요. 신관님.”

 

 딜런은 일련의 대화를 듣다가 눈을 감았다.

 왠지 모르게, 클로이의 이름을 신전에서 듣자마자 여신을 향한 맹목적인 믿음이 그의 순수함에 무너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딜런은 여신을 향한 믿음을 거둬들일 수 없었다.

 이유가 어떻더라도 상관없었다.

 

 아침이 밝았다.

 클로이는 머리를 쥐어짜는 것 같은 통증에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통증에 헛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술을 마시면 견디지 못하는 몸처럼, 극심한 숙취에 클로이는 몸서리 쳤다.

 아직도 술이 몸에서 이리저리 흘러 다니는 것 같았다.

 

 “원래 술 먹으면 이런 건가?”

 

 클로이는 헛구역질이 나오는 속을 부여잡으며 빨리 통증이 가시길 소망했다.

 뭐라도 먹고 싶은데 힘이 없어서 못 먹을 것 같았다.

 

 계속 핑핑 도는 속과 머리에, 클로이는 일어나보려 하다 다시 누웠다.

 

 천장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통증을 지우려고 생각이라도 해보려고 관자놀이 께를 눌렀지만, 더 큰 통증이 오는듯하여 포기했다.

 

 다시 눈을 감으려 할 때, 똑똑 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어줄 힘도, 대꾸할 힘조차 없었다. 어제를 생각해보니 그냥 잠든 것 같았다.

 

 그래도 술버릇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하고 클로이는 쓴웃음이 나왔다가도 다시 밀려드는 통증에 머리를 부여잡았다.

 

 “클로이. 나 들어갈게.”

 “...누..누구..”

 

 클로이가 힘없이 누구냐고 말할 때 쯤 들어온 것은 딜런이었다.

 혀를 차며 들어온 딜런은 자연스럽게 클로이의 이마를 짚었다.

 열은 나지 않지만, 머리가 아픈 듯 했다.

 이렇게 숙취가 심했으면 애초에 먹이지 않는 것이었는데.

 딜런은 그렇게 생각하며, 속이 아프지 않게 로라에게 부탁해 끓여온 닭고기 스프를 내려놓았다.

 

 스프의 냄새에 클로이는 속에서 스프를 빨리 넣어달라는 요청을 강하게 받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딜런은 웃으며 스프를 싸온 천을 풀었다.

 

 “내가 먹을게..”

 “웃기지 말고 입이나 벌려, 어지러우면서 뭘 먹겠다는거야?”

 “아니.. 그냥 내가 먹을 수 있는데..”

 

 딜런은 클로이의 말을 무시하고 나무로 된 스푼으로 후후 불어 클로이의 입가에 가져다 댔다. 클로이는 마지못해 입을 벌려 스프를 받아먹었다.

 눈을 조금 동그랗게 뜬 클로이가 작게 맛있다며 웃었다.

 

 왠지 딜런은 얼굴이 벌개 지는 것 같은 느낌에 헛기침을 하고 클로이의 입술을 바라봤다.

 조용하게 씹는 모습이 괜히 불끈 대는 자신의 혈관들을 진정시켰다. 친구에게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나쁘다고 생각한 딜런은 괜히 여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러고 보니 클로이는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을까?

 엄마인 로라의 말대로 그저 귀족 도련님일까?

 정말 남자가 맞을까?

 의문을 가지면서도 딜런은 클로이의 입에 스프를 넣어주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제 그만.”

 “야 한 스푼만 더 먹어.”

 “그만. 토하면 어떡해?”

 “으.. 알았으니까, 나한테만 하지 마라.”

 

 딜런의 말에 클로이가 발끈하자, 딜런은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귀족 도련님이든, 제이크의 말대로 금방 떠날 사람이든 중요하지 않았다.

 제일 중요한 것은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순수함을 말이다.

 

 딜런이 사람을 판단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성실함이나, 선량함 같은 그런 이기적인 기준이 아니었다. 순수함이란 모름지기 때가 묻은 사람에게 없는 고귀한 것이었다.

 

 그런 순수함이 전쟁이 끝나고 난 뒤의 아펠에 불현 듯 나타났다.

 클로이의 눈동자는 순수 그 자체였다. 그의 눈동자로 반지나 목걸이를 만들어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딜런은 그럴 때마다 자신의 순수하지 못하고 어리석은 생각에 자책할 따름이었다.

 

 딜런은 클로이를 처음 만났을 때를 생각했다. 앙상해 보이기까지 하는 깡마른 몸이 사람들의 보호본능을 자극시켰다. 자신도 그래서 자주 데리고 놀러 다녔는지도 모른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자, 꽃이 만개하듯, 그의 순수함이 빛을 발했다.

 

 길을 지나갈 때, 들꽃이 고개를 숙이듯, 기품 있는 걸음과 우아한 손동작, 사과를 베어 물 때조차도 사랑스러운 순수한 아이.

 딜런이 그런 사람에게 끌리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딜런은 클로이의 방에서 시답지 않은 수다를 떨다가 거리로 나왔다.

 오늘은 결속의 날이었다. 마을의 어른들이 모여있을 회관으로 가다가, 왠지 모르게 클로이의 여관방 창문을 다시 바라봤다.

 

 왠지 오늘 이후로 꽤 오랫동안 못 만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기우겠거니, 생각하겠지만, 그래도 하염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딜런은 마음속으로 클로이를 아펠에 붙잡아두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간 하다가 관두기로 했다. 클로이는 클로이 자체로 흘러가야만 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 것 같았다.

 

 그냥 눈물이 나면 흐르는 대로, 바람이 불어오면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떠나가야만 하는 존재일 것 같았다.

 

 무엇보다 아펠에 있으면 클로이의 순수는 점점 타락할 것이었다.

 순수를 타락으로 물들이기엔, 그의 순수함을 누구보다 동경하는 딜런이라 진즉에 도망치게 만들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의 순수함을 잃는 것 보다 자신의 옆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결속의 밤이었다.

 하루를 정리하고 있을 클로이가 생각났지만, 제이크는 그냥 놔두기로 했다. 그들의 진실을 클로이는 감당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대니얼, 클로이는 잘 지내?”

 “오, 로라. 잘 지내지.”

 “역시 대니얼이야. 클로이의 밥을 챙겨주면서 알뜰하게 여관운영까지 하다니.”

 “아, 아아. 그렇지 로라.”

 

 로라의 말을 듣고 대니얼은 머리 속이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멍청한 것은 아니었는데, 클로이의 깜찍한 행태에 속아 넘어간 것 같았다.

 

 어쩐지 그 애는 어딘가 좀 이상했다.

 곱상하게 생긴 외모 하며, 예의바른 모습까지.

 아펠에서 그것도 자신의 여관에서 뭔가를 훔쳤을 것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더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로라의 앞에서 티를 낼 수 없었다.

 겉으로는 웃으면서 대니얼은 자신의 피가 차게 식어감을 느꼈다.

 

 “로라, 여기 있었군.”

 “어머, 테로만. 오늘 결속을 치룰 준비는 하고 온거야?”

 “당연하지. 로라와의 결속은 오랜만이니까.”

 

 테로만이 로라의 귀에 얕은 숨을 불어넣는 것을 보면서 대니얼은 짜증이 머리 속에 가득 차는 것을 느꼈다. 처음 이후로는 손도 못 대는 로라에게 테로만 같은 거지새끼가 손을 대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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