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나는 바위를 냈다.
반면에 코어마스터는 가위를…….
‘이겼다!’
나는 고갈되어 가는 마력 공급을 중지. 주문을 해제했다.
시간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내가 이겼군.”
코어마스터가 말했다.
“뭐……!”
코어마스터는 손을 활짝 핀 보자기를, 나는 주먹을 쥐고 바위를 낸 상태.
“에?”
“에? 라니. 내가 이겼잖아? 봐.”
코어마스터는 싱글벙글 웃었다.
“어, 어떻게?”
“어떻게라니? 보는 그대로야. 나는 보자기를 냈어.”
“그럴 리가. 바, 방금…….”
“방금 뭐?”
코어마스터는 태연했다. 나는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말도 안 돼!’
나는 분명히 봤다. 분명히 코어마스터는 가위를 내고 자신은 바위를 냈다.
‘환각? 나한테 환각을 걸었나? 아니면 초고속 손가락 펴기 기술?’
둘 다 가능성이 없었다. 환각이었다면 내 몸에 걸려있는 정신 방어형 주문들과 서클릿 등이 방어력을 발휘했어야 했다. 무엇보다 [트루 비전] 주문이 그것을 감지했을 것이다. 그리고 코어마스터는 손가락을 아주 빠르게 펴거나 하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그 동작이 [하이퍼소닉 헤이스트]를 발동한 내 눈에 보였어야 했고, 나보다 빠르게 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었다.
“하하하. 납득하기 어렵다는 표정이군.”
코어마스터는 웃었다. 내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 승리. 이걸로 끝. 수고했어.”
코어마스터는 가볍게 손을 털었다.
“5000억 골드짜리 수표, 내놔.”
“……그러죠.”
나는 수표를 코어마스터에게 건넸다. 코어마스터는 전철역 앞에서 휴지를 받은 사람처럼 수표를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이제 가보도록 해. 혹시 칭찬이나 격려가 필요한가?”
“됐습니다.”
“필요할 텐데?”
“됐다고 했습니다.”
“들어. 나의 칭찬과 격려를. 패자에게 칭찬과 격려를 하는 것은 승자의 권리다.”
“……들어보죠.”
“네가 5000억 골드만 걸었던 건 엄청 잘한 일이다. 꼴같잖게 ‘내 모든 걸 걸겠다.’ 같은 발언을 했다면 뒷감당이 되지 않았을 거야.”
내 안의 인내심이 박살나는 소리가 들렸다.
“앞으로도 방금처럼 그런 삶의 태도를 유지하도록. 리스크 관리하면서 적당히 살아. 초월마도사라는 칭호와 마법사 길드 그랜드 마스터 지위를 즐기면서 코어월드를 즐기도록 해. 괜히 모든 건답시고 날뛰지 말고.”
코어마스터는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진심으로, 격려의 의미가 가득 담긴 두드림이었다.
내 안의 증오가 솟구쳤다.
“칭찬과 격려는 이걸로 끝. 이제 가봐.”
“아직입니다.”
“음?”
“코어마스터가 되기 위해서는 총 세 가지 방법이 있죠.”
나는 잔뜩 쉰 목소리로 말했다. 코어마스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그렇지. 첫째, 코어마스터로부터 코어마스터 권한을 평화롭게 [이양] 받는다. 둘째, 코어마스터에게 공식적으로 [도전]해서 승리한다. 셋째, 코어마스터를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살해]한다.”
“둘째 방법이 실패했으니, 셋째 방법을 시도하겠습니다.”
“허허. 이제 와서 나를 죽이겠다고?”
“네.”
나는 플랜 B를 발동했다.
코어 마스터에게 도전해서 실패한 경우, 코어마스터를 죽이기 위해 따로 준비해 둔 ‘스펠 압축기’가 두 개 더 있었다.
마법사와 성직자를 모두 레벨 99로 달성한 더블 클래스 마스터 ‘타르와’조차도, ‘그 스펠 압축기 연속기는 너무 위험하니까 쓰지 마.’ 라고 경고했을 정도.
하지만 나는 지금 그것을 쓰기로 결심했다.
‘더블 캐스트!’
퀀텀은 양손으로 주문을 맺었다. 마법사 길드 간부급이나 그 이상에 도달한 자들만이 쓸 수 있는 기술로, 주문을 한 번에 하나씩만 발동하는 일반적인 스펠 캐스팅 방식과 다르게 양손에 따로 하나씩 주문을 발동하는 주문발동기술이었다.
“[스펠 압축기 쌍장사출]!”
총 3개의 주문을 압축해서 저장한 것을 급격히 압축 해제하는 것이 [스펠 압축기] 주문이다. 그리고 [스펠 압축기 쌍장사출]은 말 그대로 양손에 서로 다른 종류의 스펠 압축기를 동시에 발동하는 거이다.
내가 왼손 스펠 압축기에 압축해 둔 주문은 [최상급 약화 저주 : 마력], [최상급 약화 저주 : 체력], [최상급 약화 저주 : 신성력]이었다. 주문명 그대로 상대방의 마력과 체력과 신성력을 동시에 약화시키는 디버프 계열 흑마법 주문들.
그리고 내 오른손 스펠 압축기에 압축해 둔 주문은 전부 공격기였다. 백 톤이 넘는 분량의 용암을 전방을 향해 쏟아내는 [마그마 스트림]. 백마법 라이트닝 볼트와 쇼크 블래스트를 근거리용으로 융합한 [광뢰장] 주문을 빠르게 연쇄적으로 뿜어내는 [연쇄광뢰장]. 강력한 중력의 장을 생성해서 특정 좌표 범위 내의 빛을 포함한 모든 것을 극한으로 압축시키는 [블랙홀].
총 여섯 가지 강력한 주문들이 양손으로 발동한 [스펠 압축기 쌍장사출]을 통해서 코어마스터에게 쏟아져나갔다.
‘끝이다. 원 턴 킬이다.’
나는 확신했다.
내가 원 턴 킬을 확실한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거리가 너무 가깝다. 절대 못 피한다.’
1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스펠 압축기 쌍장사출]이 제대로 터지면, 주문 발동 속도가 가장 빠른 마법사가 있다고 해도 대응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애초에 코어월드 마법사 길드 그랜드 마스터인 내 주문 발동 속도가, 코어월드 동부지방에서 가장 빠르다.
뒤늦게 코어마스터가 광역 디스펠을 시도해도 여섯 개의 주문이 너무 강력해서 전부 처리하는 것은 무리다. 그리고 텔레포트 계열의 주문은 [블랙홀] 주문의 중력장의 영향을 받기에 사실상 사용 불가능하며, 각종 신성 기적을 쓰려고 해도 [약화 저주 : 신성력] 때문에 신성 기적을 터뜨리기도 어렵다.
세 종류의 저주 주문이 방출하는 보라색, 남색, 검은색 마력, 백 톤이 넘는 주황색 마그마가 공기를 팽창시키고 잔디밭을 불태우며 뿜어져 나갔으며, 연쇄광뢰장이 내뿜는 전자기력의 기류와 충격파는 1km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몸에서까지 정전기를 일으킬 정도였고, 블랙홀이 발생시키는 초고압 중력파는 이 모든 것을 끌어당기고 압축시킬 터였다.
하지만 코어마스터는 가만히 서서, 그리고 눈을 감고 미소 지었다.
나는 그 찰나의 순간 코어마스터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았다.
그 일그러짐의 이유는 코어마스터가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움직여서 잔상이 남았기 때문인데, 그 잔상은 코어월드라는 게임 이펙트가 아니라 코어월드 서버가 데이터 처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빠르게 움직인 나머지 생겨버린 현상. 통칭 ‘글리치’ 현상이었다.
코어마스터는 미소 짓는 모습을 잔상으로 남긴 채 엄청난 속도로 손날을 허공에 그었다.
스걱!
손날만으로 허공 자체를 갈라내는 소리는 비현실적이리만큼 종이 자르는 소리를 닮았다.
공간이 찢겨지고, 붉은색 데이터 오류 경고창이 그 틈새를 통해 쏟아져 나왔다. 경고창의 글씨는 붉은색 실밥처럼 작고 무수했다.
“디버그는 나중으로 미룬다. 30초 전으로 복원.”
코어마스터가 짜증스럽게 선언하며 손짓을 하자 잘려나갔던 공간이 ‘봉합’되었다. 마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아!”
나는 뒤늦게 상황을 파악했다. 발동한 모든 저주와 마그마의 격류, 뇌격과 충격파, 블랙홀을 포함한 전부가 단 한 번의 코어마스터의 손날치기 한 번에 공간째 절단되어버렸다.
“이 기술의 이름은 [공간절리참]이라고 한다. 전사 레벨 99-마법사 레벨 99. 또는 무투가 레벨 99-마법사 레벨99를 달성하면 자동으로 습득되는 비기야. 그리고 찢어진 공간을 수습한 부분은 코어마스터의 권능이고.”
나는 전율했다. 코어마스터는 최소한 2개 직업의 레벨을 99까지 달성한 괴물이며, 그 괴물 같은 힘을 써서 세상을 망가뜨리면 즉시 그걸 복원시키는 초월적인 권능의 소유자란 말이다.
“코어마스터 당신은 전사-마법사이거나 무투가-마법사 라는 거군요.”
나는 냉정을 되찾기 위해 분석조로 말했다.
“응.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무투가-마법사-성직자이지만.”
나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트리플 클래스?! 어떻게!”
그것도 코어마스터의 권능이란 말인가!
“몰랐나? 하드코어 플레이어가 되면 될 수 있는데.”
“하드코어……!”
“그래, 퀀텀. 하드코어 모드 알지?”
“목숨을 거는 대신, 더 강한 보너스를 주는, 그 캐릭터 생성 방식 말입니까?”
“그래그래, 지금 그거 시켜줄게. 일단 능력치 두 배랑 극한 가속 정도를 주면 되겠지?”
“하하하! 허풍이 심하시군요. 아무리 코어마스터라고 해도 그런 게 가능할 리가.”
가능했다.
믿기 어렵지만 코어마스터는 나의 스테이터스를 조작했다. 그리고 나는 일시적으로 하드코어 플레이어가 되었다.
“뭣……!”
코어월드를 하면서 이렇게 놀란 적은 없었다.
능력치 전체를 두 배로 부스팅하는 능력이 새로 생겼다. 그리고 [극한 가속]이라는 능력이 새로 생겼다.
“이, 이건……!”
“하루에 한 번 5분간 모든 능력치를 두 배로 부스팅 할 수 있어. 그리고 마찬가지로 하루에 한 번 5분간 극한으로 가속할 수 있지. 해봐.”
“자, 잠깐. 이건……!”
“진지하게 하는 편이 좋아. 나도 조금은 진지하게 싸울 테니까. 와라! 폭풍신 우라노스!”
그 순간.
하늘에서 지름이 5미터 이상 되는 굵은 뇌격이 퀀텀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
콰콰콰콰콰쾅!
말 그대로 마른하늘에 날벼락.
“크윽?!”
나는 충격에 무릎을 꿇었다. 옷 안쪽에 입고 있는 이너아머인 원소 저항의 이너아머가 없었다면 충격 정도로 끝나지 않았으리라.
나는 재빨리 각종 보호 주문을 걸고 거리를 벌렸다. 코어마스터가 내게 준 능력은 아직 사용하지 않았다.
나와 코어마스터 사이에 파직거리는 황색과 청색이 어우러진 금속 피부를 한 근육질 남자가 있었다.
“소개하지. 내가 자랑하는 사천왕 중 하나인 ‘폭풍신 우라노스’라고 하네.”
“뭐?!”
코어월드에는 4대 상위신과 8대 주신, 그리고 적지 않은 준신들이 있었다. 그중 기상현상을 총괄하는 신이 8대 주신 중 하나인 ‘폭풍신 우라노스’.
“말도 안 돼. 코어월드의 8대 주신 중 하나를 부하로 삼고 있다고……!”
“훗. 코어마스터니까 이 정도는 해야지.”
코어마스터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나는 저 높은 곳에서 모두 지켜봤다.”
우라노스가 화난 표정으로 말했다. 금속광택의 피부에서 노란색과 파란색의 신성력이 끊임없이 꿈틀거렸다.
“가위바위보로 도박하는 부분까지는 공정했다. 그러나 너는 도박에서 패배한 뒤, 불시에 코어마스터를 공격했다.”
우라노스가 쿠르릉거렸다. 코에서 푸르스름한 번개가 파즈즈즈 소리를 내고, 입가에서 흰색 정전기가 딱딱 거렸다.
“코어마스터의 명령이 떨어졌으니 너를 제거하겠다.”
“아, 기왕이면 반만 죽여줘. 끝장은 내가 내지.”
코어마스터는, ‘고기는 포장만 해줘. 손질은 내가 나중에 하지.’ 하는 말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