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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게임판타지
코어월드
작가 : 재시작
작품등록일 : 2017.12.8

“코어월드의 최강자가 되겠다. 하드코어 모드로!”

세계 최대 VRMMORPG 코어월드.
전업 게이머 나강일은 코어월드에서 레벨 99를 돌파한 초월마도사 ‘퀀텀 코어시커’다. 최강을 추구하는 그는 최강자인 코어마스터에게 도전했으나 압도적인 힘에 밀려 패배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잃는다. 돈과 건강과 캐릭터까지.
좌절한 폐인이 된 나강일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다.
그것은 하드코어 모드. 더 어려운 대신 두 가지 보너스를 지급 받는 모드다. 단, 하드코어 모드로 게임하다가 죽으면 현실에서도 죽는다.
나강일은, 자의반타의반의 심정으로, 다시 한 번 모든 것을 걸고 코어월드에 재접속한다. 레벨 1의 하드코어 플레이어로서.

 
16화
작성일 : 17-12-13 20:21     조회 : 617     추천 : 1     분량 : 5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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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당신이 정말 한다고 하면, 코어월드 정복에 얼마가 걸릴까요?”

 “한 6개월?”

 “제가 도우면, 6개월 만에 코어월드를 정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건가요?”

 “아, 저 혼자 할 때 6개월입니다. 도와주면 뭐, 더 짧은 시간 만에 정복할 수 있겠죠. 말 나온 김에 바이코뮤닉 길드에 대해 물어도 될까요? 바이코뮤닉 길드의 전력에 따라 제 전략이 바뀌겠죠.”

 데이나의 얼굴에 혼란이 떠올랐다. 내가 말하는 게 너무나도 터무니없이 느껴지는 것이겠지.

 “당신이 보통 플레이어가 아니라는 건 나도 알겠어요.”

 데이나가 말했다.

 “하지만 대단한 플레이어라고 해도 코어 월드 정복은 완전히 다른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거절?”

 “아뇨. 최전성기의 당신에 대해 궁금하군요.”

 “최전성기라면 레벨 100 초월마도사였던 코어 퀀텀시커 시절의 저 말입니까?”

 “그래요. 당신이 가장 강했던 순간은, 역설적이지만 패배하기 직전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예리하군요. 사실입니다. 코어마스터에게 도전하고 패배한 그 순간까지 가장 강했죠.”

 “……그 기억을 보여주겠어요?”

 데이나는 내 옆으로 오더니, 스크린의 터치 패널을 꾹꾹 눌렀다. 그리고 기억 재생 모드로 변경했다.

 “코어마스터와 싸우던 당신의 기억을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싶군요. 그걸 보고, 당신이 정말로 초월마도사라는 명성에 걸맞는 사람인지 확인하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강함을 보고 난 이후에, 당신에게 투자할 것인지 말지를 결정하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 전송은 불법 아닙니까? 하고 되묻지 않았다. 그렇게 따지자면 내가 받은 줄기 세포 치료도 불법이니까.

 “그럼.”

 나는 디바이스를 머리에 썼다. 데이나 또한 여분의 디바이스를 연산 장치에 연결하고 머리에 썼다.

 “정확히, 내가 코어마스터와 싸우던 시점의 기억뿐입니다. 다른 기억은 보여줄 수 없습니다.”

 “좋아요.”

 데이나는 즉시 실행 버튼을 눌렀다.

 내 기억이.

 가장 짜릿하고 괴로운 기억이.

 강제로 햇빛 아래로 드러내졌다.

 왠지 부끄러우면서도 자랑스러웠다.

 나는 코어마스터와의 대결을 회상했다.

 

 

 코어월드의 대륙 모양은 거대한 도넛 모양이다.

 대륙 중앙에는 거대한 중앙호수가 있었고, 단 하나의 중앙섬이 있었다. 중앙호수는 작은 바다를 연상시켰다.

 수많은 사람들이 호수를 통해 중앙섬에 상륙하려 했지만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코어월드의 중앙호수는 중앙으로 갈수록 풍랑이 거칠었기 때문이다. 시공을 넘나드는 마법사도, 강건한 전사도, 신의 권능을 빌리는 성직자도, 모든 걸 속이는 도적도, 중앙호수를 통해 중앙섬에 도달하지 못했다.

 단 한 명을 빼고는.

 내가 어떻게 중앙섬에 도달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중앙섬에 코어마스터의 코어 팔레스가 있었다는 것이며, 코어마스터는 늘 코어 팔레스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코어 팔레스의 아름다운 정원에서 나와 코어마스터는 만났다.

 “먼 길 오느라 수고 많았네, 퀀텀.”

 내 나이 또래의, 후즐근한 슈트 차림의 청년이었다. 주머니에 두 손을 넣은 채로, 웃으며 나를 맞이했다. 따지고 보면 나는 침입자이지만, 그는 상관하지 않는 듯했다.

 “맞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코어마스터.”

 나는 정중히 인사했다.

 “그나저나 코어월드의 지배자가 사는 궁전 치곤 조금 삭막하군요.”

 “나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거든.”

 “제가 코어마스터가 되면 사람들로 가득 채울 겁니다.”

 내 가벼운 도발에 코어마스터는 킥킥 웃었다.

 “코어마스터가 되고 싶은가?”

 “딱히 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저는 평화주의자라서요. 코어마스터께서 자리에서 물러나시면 모든 게 해결되겠지요.”

 코어마스터는 어깨를 떨며 웃었다. 하지만 주머니에 넣은 손을 빼지는 않았다.

 “역시 그건가.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나에게 도전하려는 거로군.”

 “그렇습니다. 도전을 받아주시겠습니까?”

 “그러지. 자네가 이기면, 그 순간 코어마스터 자격을 물려주도록 하지. 그리고 내가 이기면……?”

 “일단 5000억 골드짜리 수표를 준비했습니다. 제가 패배할 경우, 이것을 드리겠습니다.”

 “흐응…….”

 아주 조금, 코어마스터의 얼굴에 짜증이 스쳐지나갔다.

 “자네 전재산은 1조 골드로 알고 있는데. 왜 전부를 걸지 않는 건가?”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서요. 코어마스터라는 직함은.”

 나는 일부러 오만하게 대답했다. 코어마스터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보다 나에게 도전하는 이유는? 나는 딱히 악행을 저지르는 폭군도 아니고…… 뭐라더라? ‘군림할 뿐 지배하지 않는다.’ 같은 캐릭터인데. 왜 굳이 나에게 도전하는 거지? 나는 이 섬 바깥으로 거의 나가지도 않는데. 솔직히 내가 있는지도 모르는 플레이어도 부지기수고.”

 “제가 최강을 추구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길 수 있는 싸움이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흐흐. 좋은 도발이었네. 그에 대해 답례를 해도 될까?”

 “뭐죠?”

 “우리가 전력을 다해 ‘듀얼’ 방식으로 싸우면 약 97.6% 확률로 내가 이긴다. 그러니 승부 방식을 네가 정하도록 해.”

 “뭐라고요?”

 “자네가 유리한 쪽으로 승부 종목을 정하라고. 거기에 맞춰서 어울려주지. 가령 많이 먹기 시합이나 달리기 시합, 졸음참기 시합 같은 것도 괜찮겠지. 흐아아암……!”

 코어마스터는 처음으로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입가를 가리며 하품을 했다.

 “졸립군. 졸음 참기 시합이라면 자네가 이길지도?”

 코어마스터의 역도발에, 나는 사납게 미소를 지었다.

 “그럼 간단하게 가위바위보로 합시다. 단판 승부로.”

 나는 코어마스터를 일부러 흘깃 보면서 말했다. 코어마스터의 특정 반응을 기대했다.

 ‘가위바위보라고?! 코어마스터 자리를 걸고 그토록 간단한 게임을 하자는 건가!’

 따위의 반응은 없었다.

 “가위바위보? 좋아.”

 코어마스터는 손가락에서 뚜둑 소리를 내며 말했다.

 “폭력은 원칙적으로 금지. 무기는 전부 풀고 하도록 할까?”

 “좋습니다. 그럼 무기부터 빼죠.”

 나는 ‘초월마도사의 지팡이+7’을 해제했다. 그것은 코어월드의 화폐인 ‘골드’로 환산하면 대략 15억 골드에 달하는 초월급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가장 비싼 무구가 아니었다.

 왼손 약지에 낀 120억 골드짜리 ‘명왕의 반지+8’이나, 16억 골드짜리 ‘초압축 마력 재생의 펜던트+5’, 35억 골드짜리 ‘유아독존의 서클릿+6’, 50억 골드짜리 ‘대마도사의 망토+7’, 화산 지대를 지배한 레드 드래곤 크라투스트의 가죽으로 만든 93억 5000만 골드짜리 ‘크라투스트의 가죽 부츠+7’ 등에 비하면 겨우 15억 골드인 초월마도사의 지팡이+7은 지나치게 싼 물건이었다.

 초월마도사의 지팡이가 겨우 15억 골드의 저렴한 물건인 이유는 그것을 오직 초월마도사만 다룰 수 있다는 제약이 붙은 물건이기 때문인데, 코어월드에 초월마도사 칭호를 지니고 있는 인간은 나 한 사람뿐이다. 어차피 코어월드에서 초월마도사의 지팡이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의 숫자가 한 명 뿐이다 보니, 가격이 겨우 15억 골드인 것이다.

 “좋은 아이템들이 많군.”

 코어마스터가 중얼거림에 가까운 어조로 칭찬했다.

 “감사합니다.”

 “준비 됐나? 아, 대답하기 전에 잘 생각해. 자네가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코어게임 도전을 철회하도록 해주지.”

 코어마스터는 가볍게 말하고 한 번 더 하품을 했다.

 “도전 철회라 하신다면?”

 내 목소리에 날이 섰다.

 “그냥 없었던 걸로 해주겠다고. 자네도 알다시피 코어마스터에게 도전하는 건 장난이 아니야. 봐줄 생각이 없어. 자네는 아마 나한테 패배할 거야. 그것도…….”

 코어마스터의 눈이 번뜩였다.

 “보통 패배는 아닐 거야. 자네는 나에게 패배하고 난 다음, 이런 식으로 패배하는 것인 줄 몰랐다고, 처절하게 후회할 거야.”

 부끄럽지만, 나는 코어마스터의 말에 기가 눌렸다. 그리고 기가 눌린 채 차라리 도전을 철회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하는 훗날의 자신이 있었다.

 “각오했습니다.”

 나는 오기를 부렸다.

 “정말로 각오한 것 맞나, 퀀텀 코어시커? 자네의 각오가 오기가 아니라 진정으로 냉철하게 판단한 결과인가?”

 코어마스터는 질문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자신이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고민하느라 너무 시간을 줄 수는 없어. 정말로 한 판 할 생각이라면 지금 바로 하자고. 답변은 신중하게 하도록.”

 코어마스터는 진지한 눈으로 말했다. 나는 고민하는 자신을 벗어던지듯, 거침없이 대답했다.

 “네. 지금 저는 냉철하고, 각오는 진심입니다. 도전하겠습니다.”

 “좋아. 이젠 돌이킬 수 없어.”

 코어마스터는 주먹을 앞으로 내밀었다.

 “가위바위보를 준비하게.”

 나 또한 주먹을 앞으로 내밀었다.

 아름답고 고즈넉한 코어 팔레스의 정원 한가운데에서, 맨손의 두 청년은 주먹을 앞으로 모았다.

 우리는 눈빛으로 게임의 시작을 동의했다.

 나는 일부러 머릿속을 비웠다. 정신 방어 주문을 미리 걸어 둔 상태였지만, 코어마스터가 게임 규칙을 초월한 어떤 종류의 독심술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을 고려했다.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

 “주먹을―”

 “모아―”

 “가위―”

 “바위―”

 “보!”

 두 사람은 동시에 외쳤다.

 두 사람의 손이 내려쳐지는 순간.

 나는 머릿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스펠 압축기 해제] : [하이퍼 소닉 헤이스트]! [트루 비전]! [슬로우]!’

 나는 정말로 가위바위보를 하게 될 경우를 대비해 미리 [스펠 압축기] 주문을 준비해 두었다. [스펠 압축기]는, 최대 3개의 주문을 미리 압축했다가 해제하는 순간 한 번에 터져 나오도록 하는 주문이었다. [스펠 압축기] 속에는 육신의 움직임을 극초음속 수준으로 가속시키는 [하이퍼 소닉 헤이스트]와 거짓과 허상을 꿰뚫어보는 [트루 비전], 표적 1 개체를 느리게 만드는 간단한 주문인 [슬로우]를 동시에 사용.

 ‘보인다!’

 내 눈에는 코어마스터가 손가락 두 개를 펼쳐 가위를 내려는 것이 분명히 보였다.

 가위를 실제로 내보면 알겠지만, 가위를 분명하게 내기 위해서는 손가락 두 개를 확실히 펼치기보다는 나머지 3개 손가락을 확실히 접는 게 더 중요한, 귀찮은 동작이다.

 ‘절대 저 모양에서 갑자기 보자기로 손을 펴거나 할 순 없어. 나머지 3개 손가락은 확실히 접힌다.’

 나는 한없이 느려진 속도 속에서, 가속된 동체시력과 인지력으로 관찰하고 판단했다. 그리고 나는 결심했다.

 ‘나는 이대로 바위를 낸다. 그리고 내 승리다.’

 나는 이미 자신에게 발동한 [하이퍼 소닉 헤이스트]와 상대에게 발동한 [슬로우]에 마력을 한정 없이 추가 주입했다.

 ‘[마나 부스트]!’

 화염에 기름을 끼얹듯이, 발동된 주문에 마력이 다량 주입되었다. 이미 발동된 [슬로우]에 추가로 마력이 공급되자 표적, 코어마스터의 시간은 0.01초 단위로 쪼개졌고, 느려졌다. 이 짧은 순간 이미 발동된 3개 주문에 쏟아 부은 마력의 총량은 과거 유황굴의 지배자였던 레드 드래곤 발라크라스와 20시간 사투를 벌였을 때와 맞먹었다.

 나는 부정행위로 지적되지 않을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손가락을 펴지 않고 망설였다.

 코어마스터의 손이 막판에 초고속으로 바뀌는 것을 고려해서 마지막 순간까지 버텼다.

 그리고 확실하다는 판단이 섰을 때, 주먹을 말아 쥐었다. 자타공인 초월마도사인 나는―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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