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됐다!”
나는 폴짝 뛰었다. 나카스 도시 입구에 선 다른 플레이어들이 나를 이상하다는 눈으로 보았다.
내가 기뻐할 만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텔레포트]는 한 번 가본 적 있는 장소만 가능.’
이것은 [텔레포트]의 절대 규칙이다. 교육술이나 [지식 공유] 주문 등으로 기억을 공유하지 않는 한, 플레이어는 한 번 가본 적 없는 곳에는 절대 [텔레포트]를 하지 못한다.
그리고 나는 니크나메 퀀텀으로서 이곳에 와본 적이 없다. 단, 예전에 퀀텀 코어시커 시절에는 와본 적이 있다.
다시 말해, 캐릭터는 다르지만 플레이어 ‘나강일’은 동일하다. 즉 캐릭터가 달라도 플레이어가 동일하다면 기억의 공유가 인정된다는 의미다. 이것은 내게 의미가 크다.
‘적어도 퀀텀 코어시커 시절에 갔던 곳 어디든, [텔레포트]로 이동 가능하다. 이건 나중에 그 계획을 실행하는데 큰 도움이 될 거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나카스 도시로 들어갔다. 그리고 도시 입구 근처에 있는 마법사 길드 건물을 슬쩍 보았다. 2층짜리 목조 건물로, 중소 규모였다. 포션이나 연금술 재료, 마법서를 구매하기 위해 드나드는 플레이어가 있었지만 숫자는 많지 않았다.
‘여기가 정말로 줄리아나 마법사 길드의 본부인가?’
너무 크기가 작았다. 들은 바로는 내가 지배하던 마법사 길드는 4등분되었고, 그중 흑마법 학파를 이끄는 것이 줄리아나 마법사 길드라고 들었다. 4분의1 치고는 너무 작았다.
‘길드 내분 도중에 크기가 작아진 모양이군.’
나는 그렇게 생각한 뒤 도적 길드로 갔다.
도적 길드는 사거리 한복판에 위치한 5층짜리 석조 건물이었다. 하얀 대리석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드나드는 플레이어와 NPC가 무척 많았다.
나는 ‘의뢰접수부’라고 적힌 쪽으로 들어갔다.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린 곳이었다. 그곳은 또다시 일반의뢰접수와 특수의뢰접수로 나뉘어졌다. 안내문에는 다음과 같이 정리되어 있었다.
-일반의뢰 : +5 이하의 아이템 찾기. 레벨 50 이하의 사람 찾기. B등급 이하의 단체 관련 정보. B등급 이하의 지역 관련 정보.
-특수의뢰 : 일반의뢰를 제외한 모든 의뢰.
나는 피식 웃었다. 일반의뢰창구에 몰린 사람들이 압도적이었다. 줄은 두 개였다.
하나는 도적 전용접수창구였고 다른 하나는 공용접수창구였다.
나는 당연히 도적 전용접수창구로 갔다.
“실례합니다.”
접수창구에 앉아 있던 NPC가 싱긋 웃었다.
“어서 오십시오. 의뢰하시겠습니까?”
“예. 사람을 찾으려 합니다.”
“우선 신분 확인이 있겠습니다. 스테이터스 창을 띄워주십시오.”
나는 그렇게 했다. 그녀는 내가 트리플 클래스이며 도적 레벨 7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확인했습니다, 니크나메 퀀텀 님. 무엇을 의뢰하시겠습니까?”
“라이젠이라는 플레이어에 대해 궁금한 게 있습니다. 가격이 얼마인가요?”
창구 직원은 마력석으로 작동하는 컴퓨터를 두들겼다. 도적 길드 연합회의 데이터베이스와 연동되어 있겠지. 그리고 창구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착수금은 5백만 골드입니다. 총 48시간이 걸리며, 추가 경비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48시간? 너무 오래 걸리는군요.”
“긴급 조사를 원하신다면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습니다. 단, 그 경우에는 가격이 보통 비용의 10배가 소요됩니다.”
“그렇게 하죠.”
어차피 2억이나 있으니까. 나는 5천만을 긴급 조사 비용으로 지불했다. 그러자 즉시 정보를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라이젠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그리고 라이젠의 이름, 레벨, 현재 위치 등에 관한 정보가 대부분이었는데, 가장 중요한 정보는 이것이었다.
‘현재 에센드라 길드에 소속되어 있음. 길드 총합 레벨은 약 600. 길드의 본부는 없음.’
그리고 나는 안심했다. 라이젠의 뒤에 위험한 어떤 조직이나 강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으니까. 일단 에센드라라는 이름을 나는 들어 본 적도 없다. 그리고 총합 레벨 300짜리 길드는 레벨 30짜리 열 명 정도인 셈이다. 게다가 길드의 본부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정기적으로 모여서 활동하는 거점도 없고 주요 수익도 고만고만한 사냥에만 의존한다는 뜻. 본격적인 강한 길드는 아닌 셈이다.
‘라이젠 본인 외 1명의 플레이어와 함께 가까운 은신처에 숨은 듯. 은신처의 위치는 불명.’
나는 우선 버시스 테번으로 향했다. 도적 길드의 정보에 의하면, 라이젠이 나카스 도시에서 머물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2층짜리 테번이었다. 1층은 주점 겸 식당이었고, 2층은 객실이었다.
물론 1층에는 라이젠이 없었다. 2층에도 없었다.
“그 망할 놈! 숙박비도 다 떼어 먹고 도망갔어!”
뚱뚱한 테번 주인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NPC였는데, 너무 분한 나머지 눈물까지 흘렸다.
“그놈, 어디로 도망쳤는지 아십니까?”
내가 물었다. 그리 멀리 도망치진 않았을 텐데.
“그건 나도 모르오. 그놈 친구하고 도망친 것 같더군.”
“그건 어떻게 아십니까?”
“어떻게 알긴! 라이젠의 친구놈도 돈을 떼어 먹고 도망쳤으니까 알지!”
“……그, 그랬군요.”
나는 뭐라 말하기 힘든 기분으로 10만 골드짜리 지폐를 내밀었다.
“이걸로 눈물을 닦으십시오.”
“음.”
10만 골드짜리 지폐를 받은 NPC는 눈물을 딱 그쳤다. 그리고 정보를 제공해주기 시작했다.
“1km 북쪽에 있는 숲에 은신처가 있다고요?”
“그렇다네.”
코어월드에서는 필드에서의 PK는 전혀 위법한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긍정한다. 그래서 대규모 파티나 길드는 필드에서 사냥할 때 대형 텐트를 치거나 임시 요새를 건설한다. 그래야 로그아웃했다가 다시 접속하기 편하고, 몬스터를 사냥하느라 약해진 틈에 습격당하는 불상사를 피할 수 있으니까.
단, 어중간한 30 레벨대의 2인조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래서 ‘은신처’를 짓는다.
라이젠과 그의 동료는 아마도 1km 북쪽의 필드에 은신처를 지어 둔 모양이다.
“흠. 쉽군.”
나는 계획을 실행했다.
2시간 뒤.
내 앞에는 팔다리가 찢긴 채 죽음을 겨우 면한 라이젠이 있었다. 남은 HP는 16 정도일까?
“여어, 라이젠.”
“어, 어떻게…….”
“어떻게 너를 2시간 만에 너를 잡았냐고?”
나는 히죽 웃었다. 2시간 동안 내가 한 일을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다.
2시간 전, 나는 도적 길드와 전사 길드에 퀘스트를 신청했다.
<공개 퀘스트>
-목표 : 범죄자 라이젠을 생포해서 버시스 테번 1층으로 끌고 올 것. 단, 2시간 이내에 해내야 하며 반드시 생포해야만 한다. 그 이외의 경우에는 무조건 퀘스트 실패로 간주.
-보상 : 1억 골드.
-기타 : 라이젠의 예상 위치에 관한 정보는 별지에 첨부.
1억짜리 퀘스트이고, 라이젠의 예상 위치에 관한 정보까지 제공되자, 수많은 전사, 도적 플레이어들이 우르르 달려 들었다.
전사와 도적들이 지나치게 경쟁하느라 사태가 악화되면 어쩌나 싶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라이젠을 생포할 것.’
죽이는 게 아니라 생포다. 총합 레벨 30대인 라이젠을 죽이지 않고 생포하는 일은 전사 길드원과 도적 길드원이 합심할 필요가 있었다. 그들은 나중에 퀘스트 보상금으로 싸우지 않기 위해 일시적으로 파티를 맺고 라이젠을 수색, 제압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들은 정말로 해냈다.
라이젠과 그의 친구 놈은 은신처에 숨어서 내가 공격해 올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라이젠은 자신이 은신처로 도망쳤다는 사실을 일부러 알린 것이었다. 내가 찾아가면 함정으로 죽이기 위해서. 정말로 나 혼자 라이젠의 은신처를 찾아갔다면 나는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무 명이 넘는 전사와 도적 플레이어의 연합에 라이젠의 친구 놈은 즉사. 라이젠은 팔다리를 절단 당한 채, 도시에서 로그아웃하지 못하도록 도적 비술로 만든 ‘강제접속마비독’까지 먹였다. 그 마비독에 당한 상태에서 억지로 로그아웃하려 할 경우 즉사하는 무시무시한 마비독이었다.
그렇게 라이젠을 처참한 꼴로 만든 채 생포하여, 내 앞에 끌고 온 것이다.
라이젠은 끌려오면서 고통보다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설마, 니크나메 퀀텀은 오지 않고, 전사와 도적들이 자기 한 사람을 잡기 위해 잔뜩 몰려 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겠지.
“수고했습니다, 여러분. 퀘스트 보상비는 1억 골드인데 여러분은 지금…….”
나는 몇 명이 모였나 세어 보았다.
“전사 13 명에 도적 12명이 모였군요. 총 25인. 퀘스트 보상에 별다른 말이 없었으니 25등분 해서 400만 골드씩 돌아갈 겁니다.”
그러자 투덜거리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겨우 그거야?”
“N분의 1 하니까 확 줄어드네.”
“뭐, 그래도 2시간짜리 단기 퀘스트 치곤 나쁘지 않았잖아?”
“그건 그렇지만.”
투덜거림은 그래도 금방 잦아들었다. 나는 퀘스트 스크린을 열고 퀘스트 완료 확인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자동으로 퀘스트 참가자들에게 400만 골드씩 분배되었다.
“오오!”
“하핫! 신난다!”
“좋아! 그럼 마시러 가 볼까!”
도적들과 전사들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각자 자신들이 자주 가는 주점으로 사라졌다.
이제 테번에는 나와 테번 주인, 그리고 라이젠만 있었다.
“그럼 라이젠. 나는 너를 내 고용주에게 데리고 가야 한다.”
“고용주라면…….”
“헬레나. 네가 뒤통수 친 그녀 말이다. 네놈을 죽일지 말지를 결정하는 건 그녀가 되겠지.”
“크윽……!”
“분한가?”
“당연하지! 퀀텀! 네놈은 나랑 정면으로 싸우는 대신 비겁하게 돈의 힘으로 사람들을 고용해서 나를 제압했잖아!”
“그렇게 따지면 너야말로 비겁하지. 너는 내가 나카스 도시로 찾아간다고 했을 때, 네 친구를 데리고 은신처로 숨어 들어가 함정 잔뜩 깔고 기다렸잖아?”
“그, 그건 하나의 전략이다!”
“그리고 물량공세만큼 뛰어난 전략은 없지. 전략과 전략의 대결이라고 보면, 결국 내가 이긴 거잖아? 그리고 내가 널 이긴 것도 전략이니까 비겁한 게 아니잖아?”
“크아아악! 빨리 죽여!”
“약한 놈 괴롭히긴 싫다. 그러니 기회를 주마. 나랑 듀얼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