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종전
사인참사검이 오랜만에 검광을 번뜩였다.
사인검의 소리없는 빛의 포효가 해명과 종희의 곁눈가에 들어왔다.
“해명ㅡ!”
“.......이런 이런....... 여기서, 이 시점에서, 저 양반이 끼어들다니.......”
해명의 표정이 난감하기 이를 때 없었다. 그리고 병사들을 다시 위에서 훑었다.
빨리 비합을 찾아 해결하고 물러날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지껏 안 찾아지던 비합을 급하다고 갑자기 찾을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결국 지근거리까지 항현이 뛰어들자 해명은 나모가비들로 시간을 벌기위해 항현의 앞을 막았다.
다시 두 나모가비가 땅에서 솟아나 항현의 앞을 가로 막았다. 그러나!
“크워어어어어~~~~”
“우으으으으으........”
“귀문을 지키는 영수여!
이 세상을 떠도는
가지 않는,
가지 못하는,
가야만 하는,
가여운 넋을 인도하라!
귀인일진격ㅡ!”
사인참사검에서 한 줄기의 검기가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앞의 나모가비와 뒤의 나모가비가 동시에 검기에 꿰어 뚫렸다.
“피이이이잉~!”
“투캉ㅡ! 퍼어어엉ㅡ!”
“끄어어어어어~~~~~”
두 길이 넘는 거대한 두 나모가비가 항현의 한방에 동시에 관통당해 무너져 내렸다.
그 모습에 해명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해명ㅡ! 더 이상 죄업을 늘리지 마라ㅡ!”
두 나모가비가 동시에 주저앉는 것을 보더니 갑자기 진압군의 선봉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진압군들의 절반이 살아 돌아갈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굳게 단단해진 진 안에 희망의 움직임이 움트기 시작했다.
그런 선봉대를 준모와 수빈이 본진쪽으로 이끌기 시작했다.
“아니~ 꽤 오래 누워 계실 줄 알았는데 어째 이리 일찍 일어나셨습니까?”
해명이 시무룩한 타박을 뱉은 뒤 바로 마각견을 불러 다시 항현의 앞에 세웠다.
“이리로 와라ㅡ!”
“크르르르~~~~ 크웡~! 컹~! 컹~! 컹~! 컹~!”
“해명 도련님ㅡ!”
종희도 놀라 뛰어오려고 했지만 해명이 말렸다.
“종희누나! 오지마요ㅡ!”
종희가 멈추자 해명이 다시 지시를 해주었다.
“저도 더 싸울 생각이 없어요! 비합만 처리하고 가고 싶어요! 비합을 찾아줘요!”
종희가 해명의 지시를 듣더니 잠시 머뭇대다가 이내 사사모를 휘두르며 갑사들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해명이 마각견이란 한 수를 던지고 종희에게 지시를 내리던 그 짧은 시간에 항현도 바로 대항의 한 수를 내었다.
“흩어진 악을 쫓아 귀인의 범 떼를 푸노라,
하나가 쫓아 잡아 악을 하나 찢었도다!
하나는 하나를 뿌리치지 못하니 얼마라도 찢기리라.
귀인천망격~!”
항현의 부름의 주, 귀인천망격이 짧게 하나만을 불러내자 바로 저승의 호랑이가 지상에 소환되었다.
“어~~~~흥ㅡㅡㅡ!!!!”
저승의 호랑이라도 지상으로 부름을 받았을 때는 지상의 형태의 법을 따르게 된다.
지옥의 호랑이 귀신이라도 지상으로 올라오면 지상의 호랑이의 꼴을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항현이 부른 호랑이들은 저승의 귀신 꼴을 갖추고 있었다.
세로줄이 쇠창살처럼 빽빽하게 쳐져 있었고 몸속에 붉은 불이 이렁이는 것이 보였다.
특별한 방향없이 사방으로 마구 솟아있는 이빨과 발톱은 함부로 접근하기 힘든 혐오감을 불러일으켰고 한 눈꺼풀 안에 두 개의 눈동자가 데글거리는 눈빛은 이 세상에 없는 번뜩임과 매서움이 보였다.
“저건...... 지옥의 형태인데...... 어떻게 이 땅위에......?”
흑암지옥에서 이미 한 번 싸워 봤던 해명도 항현이 방금 소환해낸 지옥호랑이에 당혹감을 느꼈다.
흑암지옥에서는 지옥이다보니 그 형태 그대로 부름에 응했지만 지금은 지상아닌가? 지상에서 어떻게 저런 흉측한 모습이 유지되는 건지 의문이었다.
‘설마..... 항현님의 주력이 지상의 일부를 이계화하고 있는 건가.....?’
해명의 의문에 아랑곳없이 항현의 한 수는 해명의 한 수를 압도했다.
“컹~! 컹~! 컹~! 컹~!”
“귀인~! 쫓아라ㅡ!”
“어~흥ㅡ!”
“깨갱~! 갱~! 갱~! 갱~! .......”
항현이 지옥호랑이에게 지시를 내리자 지옥호가 마각견을 쫓아갔다.
마각견은 애처로운 울음소리를 내며 쫓겨 갔다.
두 마리의 주력 영수가 쫓고 쫓기며 사라지자 마침내 두 사람만이 서로를 노려보게 되었다.
“해명~! 여기에 갑사들을 뒤로 무르겠다. 이 사람들의 목숨을 바라지 말아라!”
“훗~!”
항현의 말에 해명이 코웃음을 치며 항현을 째려보았다.
“그 까짓 미물들의 목숨을 바란 적은 애초에 없었습니다. 난 지금 저 중에 숨어버린 한 사람이 필요해요!”
“......?”
“그 중에는 공간을 비틀어 숨어버린 비합이 있습니다. 그 늙은이만 죽일 수 있다면 어찌되든 상관없습니다.”
“.......”
항현이 칼을 겨눈 상태에서 뒤를 힐끔 쳐다보며 비합을 찾아보았다.
“이 뒤에 비합이 있다고~?”
“그 노인은 산 하나에 모두 기문둔갑팔진을 칠 수 있는 사람이에요. 지금 자기 한 몸을 가리기 위해 공간을 작게 일그러뜨린 거죠.”
항현이 보지는 못했지만 해명이 말하는 것이 아마 틀림없을 것이다.
이미 피끝마을에서 경험한 바가 있으니까.....
“네가 찾을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줄 수 없다!”
“찾기 전까진 절대 보내줄 수 없죠~!”
“.......”
“.......”
항현이 사인검을 꼭 쥐고 해명을 쳐다보자 해명도 지지 않고 사술극을 양손에 움켜잡았다.
“사술극공참ㅡ!”
해명의 공기의 대검이 그대로 항현에게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항현은 숨을 한 모금 삼킨 후에 단전에 단단히 힘을 모았다. 그리고 사인검을 일자로 내리쳤다.
“사인주철격ㅡ!”
“키이이이이잉ㅡㅡㅡㅡㅡㅡ!!!!!!”
북청성 벌판에 울려퍼지는 금속성 굉음! 해명도 눈살을 찌푸리고 귀를 가리며 뒤로 한 발 물러났다.
항현또한 한쪽 눈을 질끈 감으며 굉음을 버텼다.
바람의 검과 바람의 검이 맞서 어마어마한 파공음과 함께 서로 사라졌다.
“내 극공참과 같은 기술입니까?”
“그래...... 바람의 대검....... 그거지.....”
“이렇게 베끼는 거 창피하지 않나요......?”
“아직 젊은 주술법인 언문주가 발전하려면....... 부지런히 베끼는 수 밖에~......”
항현이 장난스레 말하며 입가가 올라왔다.
동시에 해명의 표정은 굳어졌다. 그리고 용수철이 튀어 나가듯 해명이 뛰어 나갔다.
해명의 왼손의 철극이 온 몸의 체중을 싣고 가로로 허공을 갈랐다.
항현이 사인검을 끌어 안 듯이 내략의 방법으로 허리의 회전과 발바꿈으로 흐르듯 살상범위의 밖으로 몸을 피했다.
이어지는 오른 손의 철극이 세로로 항현의 정수리를 노리고 그어졌다.
항현이 칼을 오른 손에 틀어쥐며 부채꼴로 칼을 머리위에 둥글게 원을 그렸다.
원이 절반쯤 그려졌을 때!
“캉ㅡ!”
“!”
“......”
사인참사검과 사술상우극이 불꽃을 튀기며 두 젊은이의 사이에 찰나간의 빛을 선물했다.
“.......”
“.......”
항현과 해명, 둘다 아무 말이 없었지만 표정은 서로 달랐다.
항현은 은은한 미소가 샘물을 머금듯 입가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해명의 표정은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검과 극이 맞부딪히던 순간, 그 느낌은 땅에 깊이 박혀있는 무쇠기둥이라도 때린 것 같았다.
해명은 가늘게 떨리는 오른손을 겨우 진정시키고 놀라 물었다.
“도대체 무슨 단련을 하신겁니까? ”
“그저 기연이지......”
항현의 얄미운 대답에 해명은 두 극을 들고 다시 일어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함부로 달려들지 않고 주변을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항현은 해명의 발놀림을 찬찬히 관찰하며 앞으로의 검리를 살폈다.
곧 해명의 공격이 다시 몸의 회전에 맡겨져 항현의 급소를 노리기 시작했다.
“비합만! 비합만 절 주시면 됩니다! 어차피 별로 정이 있는 사이도 아니시잖아요!”
“너는 죽이겠다고 말하는 데 이젠 네 업을 더 늘지 않도록 하고 싶다! 비합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그럼 이미 늦었잖아요? 벌써 이 북청성 평야에 얼마나 많이 시체가 누웠는데...... 하나만 더 죽이게 해줘요? 비합만 죽이면 바로 돌아갈테니~!”
“해명! 너 어쩌려고 그러냐ㅡ!”
항현의 책망에 그제야 해명의 낯빛이 환하게 풀렸다.
힘이 나는지 사술극이 사정없이 항현을 노렸으나 사인검은 넉넉하게 그 검로를 앞질러서 막았다.
항현이 속상해하는 얼굴에 짖궂은 신명을 내 보았지만 해명은 검의 활로가 뚫리지 않는 데에 갑갑해하기 시작했다.
그때 사사모로 갑사들을 이리저리 밀어 붙이던 종희가 해명에게 외쳤다.
“해명님ㅡ! 여기에ㅡ!”
해명이 쉴 새 없이 공격을 가하다가 종희의 말 한마디에 귀를 쫑긋세우더니 뒤로 돌아 뛰기 시작했다.
“해명ㅡ!”
“종희누나ㅡ!”
해명의 뒤를 쫓아 항현이 뛰어가자 해명이 종희에게 도움을 청했다.
“핏빛 하늘을 날으는 시작의 뱀이로다
구름 섞어 독을 끊이며 달디 단 복수 꿈꾸노라
분출을 기다리며 먹구름같은 분노를 애무하노니
검게 깊은 물속에서 익사하는 입을 벌려 삼키라
비천사탄령ㅡ!”
하늘에서 검은 먹구름이 피어나더니 그 속에서 날개달린 뱀이 나타나 항현의 앞을 막았다.
“더이상 접근하지 마시길ㅡ! 제 하늘의 뱀이 다신을 먹어치울 수 도 있어요.”
“크~흥........ 크르르르르........”
“끄으으으...... 낑~”
그 때 항현의 지옥범이 마각견을 물고 나타났다.
번개와 불로 수많은 무장갑사들을 해치던 마각견은 범의 아가리에서 물려 죽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에 종희가 놀라 움찔 물러났다.
그 순간이 항현에게 틈이 되었다.
“동북방 지옥문을 지키는 범의 성난 울음
괴로운 인생에 괴로워하는 산자들의 울음
남겨진 원한에 격노하는 남은 자들의 울음
불길에 몸을 태울 죄인들의 두려운 울음
달님만이 위로하며 소리 없이 우노매라ㅡ!”
종희가 사사모를 몸의 측면에 붙이고 태공조어세로 창끝을 앞으로 향했다.
그 향하는 데에는 항현의 얼굴이 달려오고 있었다.
“이야ㅡ!”
“귀인참월격ㅡ!”
종희의 사모가 뱀이 먹이를 낚아채듯 쭉 뻗었을 때 항현의 사인검이 둥근 달처럼 빛무리를 뿌렸다.
사모의 끝을 사인검끝으로 쳐내며 참월격의 빛무리가 날개달린 뱀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구름속의 뱀이 네 토막이 나 그대로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런 항현이 종희를 지나치자 종희는 그 뒤를 따라가려고 했지만 종희에게는 항현의 짝이 덮쳐들었다.
“어흥ㅡ!”
“이야아아아아~!!!!”
퇴산색해세와 창룡파미세가 이어지며 지옥범의 앞을 막는 종희를 뒤에 두고 해명의 뒤를 바짝 쫓아 들어간 항현은 해명을 큰소리로 불렀다.
“해명ㅡ! 그만ㅡ!”
“번개치는 하늘아래
하염없이 울부짖는
홀로 된 들개처럼
선지피가 흐르도록
서러움이 달라붙다
날카로운 칼바람에
가루처럼 날리네
사술극공참ㅡ!”
바람의 대검이 아무것도 안 보이는 공간으로 빨려들 듯, 스며들 듯, 사라지자 허공에서 핏줄기가 솟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비명.....
“으읔~!”
“으....으허엌~!”
“해명ㅡ! 너ㅡ!”
솟아나는 피보라에 안타까운 항현의 고함이 나오고는 공간에서 비합의 사자추가 날아들었다. 그러나 빠르고 매섭다기보다는 그저 되는 대로 던진 돌팔매질과 같은 수준이었다.
해명의 철극이 가소롭다는 듯 그 구리추를 쳐 떨어뜨렸다.
허공에서 나머지 가마꾼들과 비합이 구르듯 피를 흘리며 나타났다.
“으흨~!”
“해명! 안돼!”
항현의 사인검이 해명의 다리와 팔 같은 체절을 노렸다.
목숨이 아닌 행동의 제약을 노린 것이지만 해명은 바로 몸을 빼 뒤로 피해 버렸다. 그리고 비합에 더 가까운 해명이 사술극을 천천히 들어 비합의 머리를 노렸다.
“자~ 이젠 헤어지죠. 비합만을 죽이면 전 물러날겁니다.”
“으으으...... 지난 정을 생각해서......”
해명은 목숨을 구걸하는 비합의 모습이 측은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지난 세월 스며든 정 또한 얕은 것이 아니었으니...... 그러나 해운의 목숨을 노리겠다고 말한 것 자체가 해명에게는 그 어떤 용서도 허락 못할 대죄이며 죽음밖에는 없는 일이었다.
더 대화를 나누면 마음도 약해질 것 같아 사술극을 쥔 손에 힘을 가하려는 그 순간!
“안돼ㅡ!”
“흐헠~!”
전음, 어마어마한 전음이 해명과 항현의 머릿속을 직격했다.
이만한 전음은 천하에도 결코 둘이 있을 수 없었다.
“해운!”
해명과 항현이 뒤를 보자 거기에는 새초롬한 다홍치마를 입은 어린 소녀와 그 소녀의 한 팔을 꼭 쥐고 있는 더 작은 꼬마가 서있었다.
소녀의 얼굴에는 노기가 서려있었다.
해명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고 항현과 비합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두 꼬맹이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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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저녁 겨우 생환한 병사들의 무용담이 저녁상을 받은 병사들의 맛나는 반찬이 되어주었다.
“죄송해요. 저희는 아무 도움도 못되어 드리고.....”
수빈이 미안한 눈으로 항현을 보자 준모가 바로 말을 이어갔다.
“형님이 너무 빨리 뛰어나가셔서......”
“아아...... 괜찮습니다. 수빈 아가씨. 어차피 해명은 전투가 목적이 아니었어요. 전력으로 싸운 것도 아니고.....”
항현이 말을 하며 비합을 힐끗 보자 붕대투성이의 비합이 고개를 떨궈 눈을 피했다.
“온교위, 이리로 작전회의에 참석하시게.”
거의 부사령관 택인 강순이 항현을 부르자 항현은 장군막으로 뛰어 들어갔다.
장군막 안에는 혁춘과 광조가 이미 들어와 있었다.
“선배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광조의 인사를 눈짓으로 받으며 항현도 혁춘에게 인사를 드렸다.
“선배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낮에는 덕분에 살았네그려..... 그 해명이란 놈 기이수에 부림에 체술까지 정말 난 놈이더구만.......”
“예~”
“자~! 이젠 전력이 완전히 갖춰졌네~! 이젠 끝을 볼 때가 온 게야~!”
이준이 반가와 계집애들처럼 재잘대는 항현과 광조, 혁춘을 회의로 주목시켰다.
일신된 분위기에서 이준이 앞으로의 전술을 피력했다.
“이젠 우리의 전력이 모두 갖춰졌으니 더 이상은 기다리지 않겠소! 내일 모든 걸 끝냅시다.”
“옛!”
다른 모든 지휘관들도 더 이상 이견을 달지 않았다.
적의 기이수는 대응할 모든 전력이 귀환하여 완전 편성되었고 상대의 주력전력을 웃돌았다.
이젠 거리낄 게 없는 것이다.
“내일 지금 저녁을 먹은 병사들을 초병을 제외한 모두를 재우고 인시에 다시 깨워 밥을 먹인 후 일출과 함께 공격을 개시하겠소!”
“옛! 하명, 받들겠나이다~!”
전날에 이견과 알력을 보였던 회의에 비하면 깔끔하고 군더더기없이 끝났다.
그만큼 전략적 조건을 확실하게 갖춰놓은 쪽의 여유였다.
깔아놓은 포진으로 전부대가 목표를 향해 직진하면 되는 간단한 상황이었다.
거기에 비해 모든 방향에서 직격을 받게된 북청성의 상황은 녹록치가 않았다.
해명이 돌아온 이후에 바로 시작된 작전회의는 난항에 난항을 거듭했다.
일점돌파를 통한 포위탈출부터 접근 적 우선의 영격전술, 성내 유인작전까지 기기묘묘한 책상 위 입으로만 작전이 수놓아졌지만 어느 하나 결정이 내려지지 못했다.
결국 걱정과 불안의 지휘부를 총지휘관이 압도하여 단안을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성이란 시설의 우위가 있으니 이것을 십분활용하는 방법을 써야겠소! 그러나 이 성안에 해명도령이 갇혀있다면 그것도 우리의 전력에 도움이 안 되니 성 밖에 목책진을 설치하고 그곳에 해명도령이 계시며 적의 확점을 요격해주시오!”
“기각지세로군요?”
두 개의 뿔이 서로를 돕는 형세라는 기각지세에 다른 의견을 냈던 지휘관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하기 시작했다.
최고 지휘관의 의견인데다가 다른 작전들의 도박성보다는 가장 안정된 배치였다.
“그리고 새로 온 해명도령의 누이는 성 안에서 보호할테니.....성에 놓고 가시길.....”
“인질이란 건가요ㅡ?”
언성을 높인 건 해명보다 종희였다. 그러나 해명이 도리어 종희를 말렸다.
“인질이라니.... 보호겠죠? 그죠?”
해명이 노려보며 말하자 이시애와 나머지 부하들이 해명의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무..... 물론이지..... 우리는 해명도령과 한 식구 아닌가?.....”
“그 아이는 저보다 주력이 강한 아이입니다. 각별히 비위를 맞춰주세요. 공연히 그 아이가 불러낸 흉한 귀신을 보고 미치거나 하지 마시고......”
“......!.....”
해명의 얘기에 지휘관들이 낯빛이 핼쑥해졌다. 아무리 기이수를 부리는 동료가 있다해도 산 사람이 저승의 것을 보는 것은 조금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었다.
그런 그들을 내버려두고 해명이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내가 밖에서 나모가비와 창귀호를 움직여 싸우고 성에서 원격하여 적을 치면 승산이 없진 않아요. 다만 서로의 호흡이 중요하니 각별히 보조를 맞춰주세요!”
해명의 말에 지휘관들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마지막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