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거야?”
“언니가 아니라 누나ㅡ! 그리고 나만 가는 거야~! 넌 돌아가~!”
앞선 소녀 해운이 뒤에 따르는 꼬마 꼭지에게 쌀쌀맞게 말했지만 꼭지는 전혀 기죽지 않고 씩씩하게 따라갔다.
“언니만 보내면 내가 마음이 안 편해. 같이 갈 꺼야~!”
이제 대 여섯 쯤 된 꼬마 꼭지가 제법 의젓하게 이야기하자 소녀 해운이 시답잖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난 오빠를 보러 가는 거야! 가서 자고 올지도 몰라~!”
“어~! 오늘? 자고 와~? 음.......”
언니만 보내면 마음이 안 놓인다는 의젓한 남자아이가 집 말고 다른데서 자야한다니까 심각하게 고민을 한다. 그러나 곧 결심!
“그래도 안돼~! 언니랑 같이 갈 거야~!”
잠시 고민하던 꼬마꼭지가 조그만 눈, 코, 입을 한껏 오므리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는 고민의 결론을 통보했다.
그 모습이 재미있어서일까? 소녀 해운은 피식 웃더니 할 수 없다는 듯이 가던 자국을 다시 밟아 와 꼭지의 손을 잡아주었다.
“집에 간다고 보채면 안돼~! 알았지~?”
“응~ 언니~”
해운이 손을 잡아주자 꼬마 꼭지가 금새 해실거리며 웃는다.
그렇게 두 아기가 금강산의 흙바람 속으로 발을 옮기며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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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와아아아아~!!!!!”
“쿠ㅡ쿵ㅡ!”
“어어어어.......”
비합의 나모가비가 해명의 나모가비를 밀치며 성문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이시애가 다급한 눈빛으로 해명을 쳐다보았다.
해명 또한 마음을 다스리며 상황을 호전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현재 이시애군이 단 하나 상대를 이길 지도 모른다고 마음잡을 단초하나는 나모가비, 창귀호같은 기이수들이었다. 그런데 상대도 같은 기이수로 반격을 나왔고 또, 이 서전에서 지게까지 된다면 믿고있던 마지막 심적 보루까지 무너지며 군심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것이다.
‘역시 주력으로만 싸운다면 비합님도 약한 사람이 아니야. 생각을 잘 해야 해!’
해명이 지금 상황에 걸려있는 여러 의미와 이익을 셈하며 다시 하나의 나모가비를 더 불러들였다.
“이승이 타향이 된 원혼의 울음소리
나직이 들리는 건 망자의 부름소리
황야에 나부끼는 노녁의 바람소리
모두에게 명하는 지옥의 귀신소리
나모등령주-!”
“쿠워어어어어~~~~!!!!”
또 다른 나모가비가 하나 일어나자 비합도 물러서지 않았다.
“작은자가 다다모여
한무게가 되는 것은
세상이치중 가장 특별하며
세상별리중 가장 평범하도다.
서령천근추ㅡ!”
“피윳ㅡ!”
“콰릉ㅡ!”
“크워어어어.......”
비합의 손에서 떠난 작은 유성추가 천근의 힘으로 나모가비의 동체를 때렸다.
거대한 나모가비가 둔중한 소리를 내며 엉덩방아를 찧듯, 주저앉았다.
‘해명, 네가 강한 것은 알지만 주법의 싸움이라면 나도 쉽게 질 생각이 없다. 후후후......’
비합이 해명의 나모가비를 뒤로 주저 앉히자 갑자기 해명의 나모가비가 땅속으로 스르르 가라 앉아 들어갔다.
비합이 눈을 가늘게 뜨고 그 모습을 살피는 순간, 비합의 나모가비 앞에서 나무줄기들이 촉수처럼 뻗어 나와 비합의 나모가비를 겹겹이 결박하기 시작했다.
“끄워어어어어~~~~!”
“콰당탕ㅡㅡㅡ!!!”
“아니ㅡ!”
나무줄기들이 비합의 나모가비를 끌어당기자 태산이 무너지는 소리를 뿜으며 앞으로 엎어져 쓰러졌다.
나모가비의 넘어지는 소리에 방패를 들고 서있던 군진 중앙의 진압군 갑사들이 깜짝 놀라 주변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비합이 산개된 군사들 사이에 홀로 남게 되자 다급히 주문을 외웠다.
“이승이 타향이 된 원혼의 울음소리
나직이 들리는 건 망자의 부름소리
황야에 나부끼는 노녁의 바람소리
모두에게 명하는 지옥의 귀신소리
나모등령주-!”
“크워어어어어~~~~~”
비합의 뒤에서 다시 두 개의 나모가비가 음산한 포효를 울리며 일어났다.
비합이 자신의 뒤를 쳐다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가진 밑천을 전부 꺼내 이겨봐야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닌데......’
해명이 비합쪽 두 나모가비가 일어나는 모습을 보며 사술극을 양손에 꼬나 쥐었다.
“바람잃은 구름이여!
메어마른 산구릉에
검은바위 맨얼굴로
삭풍바람 맞대본다.
검은들개 긴다리로
구름위를 훔쳐보니
붉은해는 빛을잃어
핏빛달에 비키노라!
마각견청주ㅡ!”
“캬아아아앙ㅡ! 캬-헝ㅡ! 캬-헝ㅡ!”
해명의 부름의 주문에 다리가 말처럼 길고 일그러진 얼굴을 가진, 괴상하게 우는 짐승이 나타났다.
비합이 그 모습에 입술을 실쭉거리며 입맛을 다셨다.
“쯧쯧쯧쯧...... 저것을 연구할 때 해명에게 가르쳐주지 말 것을......”
“비합! 내 가족들에 대해서 다시 얘기해봐라ㅡ! 해운을 어쩌겠다고~!”
분노의 고함과 함께 흉측한 얼굴의 마각견이 비합을 노리고 뛰어 들어갔다.
애당초 큰 덩치의 나모가비로 막을 수 있는 크기와 속도가 아니었다.
크게 휘두르는 나모가비의 팔로 쓰이는 가지 사이로 파고들어 그대로 비합의 목을 노렸다.
비합이 다시 자신을 지킬 주문을 읊조렸다.
“크게 일어 병풍같이
세게 날려 성벽같이
안개 검게 물들이니
작은 이는 볼 수 없다.
철추봉인자ㅡ!”
비합의 사자쾌속추가 검은 안개를 뿌리며 마각견의 눈 사이를 노리며 들어갔다.
마각견이 고개를 비틀어 쾌속추를 피하는 순간, 검은 안개가 몇 개의 줄기로 갈라지며 그물처럼 펼쳐졌다.
“캬흥~!”
사납게 달려들던 마각견이 검은 긴 꼬리의 쥐들에게 묶여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비합이 바닥에 쓰러져 크르릉거리는 개의 모습을 보며 한 숨을 돌릴 때, 해명이 나모가비의 어깨 부분을 타고 진압군의 중앙으로 전진하여 들어왔다.
“쿠쿵ㅡ!”
가마를 들고 있던 병사가 놀라 비합이 타고 있던 사인교가 기우뚱하며 하마터면 비합이 떨어질 뻔했다.
“나를 믿으시게~! 여차하면 아무도 못 잡도록 도망칠 수법도 하나 있으니~!”
비합의 장담에 불안한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도 사인교를 맨 병사들은 그 자리에서 버틸 수가 있었다.
“한양 경군들은 이 동북면에서 하나도 살아가지 못하리라~!”
우렁하면서도 섬뜩한 나모가비 어깨 위에 서있는 해명의 학살장담에 북청성을 공박해 들어가던 선두 중갑사들의 걸음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 순간!
“피융ㅡ!”
어디선가 화살 하나가 해명의 얼굴어름으로 날아갔다.
가까스로 고개를 돌려 화살을 피한 해명! 화살이 날아온 궤도를 거꾸로 셈하여 시선을 쫓아보니 거기에는 남이가 있었다.
“저 나무 위에 역적 놈은 화살이 통한다ㅡ! 전 궁수들은 저 놈에게 사격을 모아라ㅡ! 쏴라ㅡ!”
궁수들이 남이의 지시를 알아듣고 활을 나모가비에 타고 있는 해명을 노렸다.
“.......황야에 나부끼는 노녁의 바람소리
모두에게 명하는 지옥의 귀신소리......”
해명이 주문을 읊조리자 나모가비가 양 팔을 들어 해명을 향한 피격 각도를 모두 가려주었다.
“슈와아아앜ㅡ! 슈슈앜ㅡ!”
“타닼ㅡ! 딱ㅡ! 딱ㅡ!”
바람을 일으키며 화살이 해명을 둘러싼 나모가비의 팔 가지에 박혔다.
궁수들이 자신들의 화살에 해명이 주저 앉아 몸을 숨기자 짖궂은 즐거움에 화살을 계속 쏘며 해명의 나모가비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해명이 나모가비의 둘러진 팔에 웅크리고 앉아 자신의 사술상우극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밖을 향해 던지며 주문을 외웠다.
“계절잃은 하늘없는 메어마른 골짜기에
하얀바위 날개벌려 삭바람을 맞서노라
부모없이 서로기댄 들개들의 효후성은
검은계곡 심골마다 피비린내 채우노라
사술소환령ㅡ!”
“크왕ㅡ! 커헝-! 컹ㅡ! 컹ㅡ!”
땅에 떨어지며 박힌 철극에서 네 마리의 커다란 흰 개들이 뛰어나오더니 가까이 접근한 궁수들을 물어뜯으며 덮쳤다.
“컹ㅡ! 컹ㅡ! 컹ㅡ! 컹ㅡ!”
“으아아앜ㅡ!”
“아이고~! 사람살려~!”
겁도 없이 해명의 나모가비에 다가갔던 궁수대 인원들이 단숨에 서넛 목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동시에 궁수대 전원이 죽어라 뒤로 뛰기 시작했다.
날아오는 화살이 없어지자 해명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밖을 쳐다보았다.
피투성이의 주변 상황을 보며 오만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러니까 이제야 전쟁같군. 후후후......”
그리고는 비합의 주법에 묶여있는 자신의 마각견을 보더니 다시 주문을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붉은해는 빛을잃어 핏빛달에 비키노라 붉은해는 빛을잃어 핏빛달에 비키노라.....”
그러자 비합의 검은 안개쥐에 묶여있던 마각견의 붉은 눈동자가 대글대글 굴러다니더니 갑자기 한 소리 기합을 내짖었다.
“캬하하앙ㅡ!!!!”
“찌륵ㅡ! 찍!찍!”
마각견을 묶고 있던 검은 긴꼬리 쥐들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검은 연기로 변하며 스르르 사라졌다.
해명이 전해준 주력으로 겨우 상대의 결박에서 빠져나온 마각견은 노기가 등등하여 주변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카우우우우우~~~~~~~~!!!!!!!!”
마각견은 개가 짖는 소리같기도 하고 뭔가 다른 이상한 소리이기도 한, 괴상한 포효일성을 하늘 향해 질렀다.
어느 동물 소리인지는 몰라도 화가 났다는 건 분명한, 거칠고 높은 분노성이었다. 그리고는 몇 호흡을 시큰덕 거리더니 갑자기 스르륵 사라졌다.
“..... 사..... 사라졌다....?”
흰 개들에게 쫓기는 궁수들을 통솔하며 중갑사들의 보병진 뒤로 피신시키던 남이가 마각견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다음 순간, 스르륵 병사들의 진영 사이에 하늘에서 내려오듯 나타나더니 빛나는 알을 뱉았다, 그리고!
“푸화아아앜ㅡㅡㅡ!!!”
“으아악~! 불이다~!”
“도깨비 불이다~!”
알에서 불의 화살이 특정 방향이 없이 무작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병사들이 갑자기 뿌려진 불길에 놀라 이리저리 뛰기 시작하자 마각견이 캬릉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바로 다시 사라졌다.
“또 사라졌다~!”
궁수들과 중갑보병들이 비명처럼 마각견의 행방을 쫓았다. 그러나 다름누리를 이용해 현세의 공간을 마음대로 나타나고 사라지는 마각견을 범인의 눈으로 쫓을 수가 없었다.
마각견이 갑사들의 뒤에서 다시 나타나더니 이번에는 푸른색이 도는 알을 또 뱉어냈다.
“캬아아앜ㅡ!”
땅에 떨어진 푸른 알이 빛나는 가 싶더니 갑자기 그 자리로 번개가 내리쳤다.
“콰쾅ㅡ!”
“히에에엨ㅡ!”
달리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갑자기 나타나 불과 번개를 부르고 다시 사라지는 기이수에 조선군의 선봉은 속수무책이었다.
“저 비합이란 놈이 상대의 기이묘사를 맡아줘야 하는 데 처음에는 좀 하는 것 같더니 결국은 상대에게 밀리는 군! 쓸모없는 놈!”
“기이묘법이 상대 쪽이 한 수 위인 듯합니다.”
선봉의 뒤를 받치고 있는 중군에 있던 이준이 앞의 상황을 보고는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나 딱히 중군을 선봉구원에 투입하지는 않고 있었다.
보다 못한 강순이 이준에게 의견을 한마디 상신했다.
“중군을 전진시켜 선두집단을 구원해야하지 않겠습니까?”
“보통의 군대라면 그렇지요. 허나 우리쪽 기이묘사를 다루는 자가 적에게 눌렸으니 저쪽의 기이묘사에 휘말려 자칫 우리군의 핵심전력을 잃을 수도 있지 않겠소? 저 나무귀신, 호랑이 귀신 나부랭이만 어찌 할 수 있다면 지금 우리 수가 더 많은 상황 아니오? 비합이란 놈에게 그것만 해결해주길 바란 것인데.....”
“저희가 가 볼까요?”
이준이 뒤에서 무장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출진을 자원했다. 걸음을 걸을 때마다 쇠붙이가 땅에 부딪혀 맑은 쇳소리가 나는 무장, 사묘파암각을 이미 장비한 태광조였다.
“........”
이준은 광조를 보고 마음이 한결 복잡해졌다.
지금의 전세는 이준의 생각에는 이를테면 최고지휘관의 노름 같은 것이었다.
아군의 선봉에 나선 비합이란 패가 상대의 기이묘사의 기를 꺽어 준다.
이후 상대가 자기 쪽 난힘자란 패를 낼 때마다 아군의 대응 패를 투입하여 기이묘사 싸움은 난힘자들끼리 서로 맞찔러 없어지는 양패구상전으로 몰고 갈 생각이었다.
그럼 최종적으로는 병력의 우위에 있는 아군이 마지막 정규 공성전을 벌여 상대를 제압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제일 앞을 선 비합이란 패가 상대에게 밀려버렸다.
이때 중군의 난힘자를 투입했다가 상대도 대응하여 난힘자가 투입된다면?
대응기제를 아군의 패배를 때우리듯 소진한다면?
앞의 상황을 자세히는 모르나 이미 밀린 비합이 제거되고 상대에게 우리 쪽 난힘자가 2대 1의 상황으로 말려들어 전술 의미도 없이 소모된다면?
이준이 생각할 때 최악의 상황은 저들의 기이수들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대응할 아군의 난힘자가 없게 되는 상황이었다.
그 상황만큼은 피해야 했다.
나모가비나 창귀호가 전선에 투입되면 병력의 우위가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된다.
아군에게 숫적 우위가 있다한들 저 거대한 나모가비들이 들이닥쳐 전열을 흩고 그 뒤를 거칠기로 조선제일이라 소문난 동북면 군사가 달려든다면?
재수 없으면 일패도지할 공산까지 있다.
이준의 이름이 실록의 패장열전에 수록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선두집단의 소진을 멀건히 지켜보는 것으로 난힘자들을 보존해야하나?
아무리 난힘자들이 소중한 전력이라도 그렇게 까지 할 수는 없었다.
선봉의 지휘를 맡은 남이는 임금 이유의 총애을 받는 왕실 가의 먼 일원이기까지 하다.
왕실 가족이 포함된 선봉대는 이대로 소진시켜서는 안 되는 부대였다.
결국 고민하던 이준의 판단은 이 둘의 절충선에서 내려졌다.
“적이 싸움을 이쯤에서 거두도록 위력시위를 합시다!”
“그렇다면?”
“중군에 난힘자들이 같이하여 전진한 후 적을 뒤서게 하여 지금 나가있는 선봉만 데려 오세요. 선두를 귀환시키는 것을 우선 목표로 합시다! 적이 물러나며 그에 맞춰 우리도 후퇴합니다!”
“.......”
강순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고 지휘관의 판단이 내려지자 중앙군의 전력이 오와 열을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상대의 공격을 버티기 용이한 정방형의 중갑보병진이었다.
“알겠느냐! 성벽 위에 적의 사격 공격권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언제든지 후퇴할 수 있으니 각 부대는 지휘관의 호령에 주의를 집중하라ㅡ!”
“옛ㅡ!”
“전진~! 앞으로~!”
중군의 열이 차곡차곡 나모가비와 마각견이 날뛰는 앞으로 전진했다. 그리고 광조와 혁춘이 각각 배정된 말을 타고 정방진의 가운데에서 천천히 같이 앞을 향해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