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총사 구성군 이준이 이끄는 반란진압군은 다시 철령을 출발하여 함흥땅을 지나 북청을 바라보며 전진했다.
중앙의 1만의 군사가 더 지원된 이유도 있지만 그 1만병과 같이 전달된 이유의 독촉의 전교 때문이었다.
“잘 조련된 정병 1만이니 마구 뽑은 10만보다 나으리라~ 화약또한 3천근을 모아 보내니 요긴하게 쓰도록 하라~ 서둘러 난을 평정하여 나라의 어지러움을 바로 잡으라~!”
임금의 전교에 이준은 더 망설일 수가 없었다.
아직 상대의 기이수가 얼마나 있는 지, 어느 지역에 배치되어 있는 지,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전진할 수밖에 없었다.
구성군 이준은 지원군 1만을 더해 거의 5만에 달하는 군에 전진령을 내렸다.
‘과연 전진이 수월할까? 적의 기이수들과 부딪혀 사기가 저하되면 북청에 도달한 후에 거꾸로 일패도지 당할 수도 있다! 과연 강한 적을 맞아 아군은 얼마나 잘 싸워줄 것인가?’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이준의 걱정은 그저 기우로 끝났다.
이준의 중앙군은 상대의 그 어떤 견제도 없는 편안한 진공이었다.
이준은 북진하는 본진의 왼쪽, 즉 서쪽 내륙을 남이의 유격조로 엄호했고 본진의 오른쪽, 동쪽을 장군 어유소의 유격조가 엄호했는데, 동쪽의 어유소 유격조는 아무런 충돌없이 이준의 본진을 따라 올라왔다.
남이의 왼쪽 유격조가 그야말로 좌충우돌, 그야말로 유격이었다.
적의 무장정찰대와 나모가비, 창귀호와 계속해서 맞닥뜨렸다.
그야말로 전투가 흐르듯이 계속 닥쳐왔다.
1천의 유격조는 며칠만에 3백여의 사상자를 내었다.
사망자를 묻고 부상자는 본진으로 보내며 본진의 좌익을 엄호하는 악전고투였는데 이준은 그런 남이에게 화약 이상의 지원은 보내지 않았다.
‘거 사람이 뒷끝이 좀 있구만, 조금 개겼다고 이리 지원을 끊을 수가 있나.....?’
남이가 속으로 도총사인 이준을 섭섭하게 생각했지만 이준의 이 선택도 전 군으로 시야를 넓혀보면 올바른 선택이었다.
이준은 좌 유군 1천을 모두 잃을 것을 각오하고 북진한 것이었다.
임금의 명은 떨어졌으니 무조건 전진해야하는 상황이었고 가서 패했다가는 아니간만 못한 상황이니 최소한의 손실이란 조건으로 적의 본거지까지 도달해야 하는 까다로운 조건이었다.
이준은 그 답으로 일부 희생 각오라는 약간 잔인한 용병을 선택한 것이다.
좌, 우 유격조의 전멸도 각오하고 2천의 병력 희생으로 5만을 전진시킨다는 것이 이준이 낸 해답이었다.
그 잔인한 선택에 결과가 남이의 좌군 유격대에 집중되었다.
물론, 이준이 남이를 별로 좋게 보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으나 기실, 수빈을 찾는 남이와 준모의 욕심에 너무 깊숙이 내륙으로 들어가며 안 싸울 싸움도 싸운 면이 더 컸다.
다대한 기이수와 적의 갑사대와의 교전을 겪은 것이 결과적으로 유군 1천중 3백여의 희생으로 본대를 무사히 지켜 전진시킨 결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남이의 공이 되었다.
구성군 이준의 원한 바와는 다른 결과였지만 아무튼 진압군 본대는 북청성에 큰 피로나 손실없이 그 전모를 드러냈다.
이렇게 되니 급한 것은 이제 이시애의 반란군이 되어버렸다.
적의 이동 중에 계속 견제하여 병력을 깍고 저미어 손실도 입히고 피로도 가중시키며 제자리에 앉아서 적을 맞는 편안함이라는 잇점이 사라지고 더 많은 숫자의 아무 손상 없는 적과 마주하게 되었다.
해명에게 한 바탕 당한 이시애는 공포에 얼이 빠져서인지 북청성에서 움직이지 않으며 더는 진취적으로 상황을 움직여 가지 못하고 적의 전진을 허용했다.
해명도 언문주를 이용한 기이묘사에는 전문가지만 동북 지역 토박이들로 구성된 군대를 움직일 인맥, 연이 없어서 결국 반란군은 북청성에 앉아서 관군을 맞이하는 사태를 보고 관망만 하는 신세가 되었다.
‘제길! 화가 난다고 마구 질렀던 게 잘못이었군. 저리 겁에 질릴 줄이야......“
해명은 철극을 들고 장군막으로 들어가 칼춤을 한 바탕 춘 것이 후회가 되었다.
사실, 해명으로서는 크게 화가 나는 일도 아니었다.
물론 항현을 보내주어 해운의 안전을 보장받으려던 원래의 계획은 어그러졌지만 총격도 자신을 노린 것은 아니었고 비합의 죽음도 슬프긴 했지만 비합을 죽인 것은 수빈, 혹은 수빈이 빙의한 비사문천이니 이시애를 탓할 일도 아니었다.
비사문천에 빙의한 수빈과의 한 바탕 싸운 것도 굳이 이시애를 원망할 일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장군막에 잠입해 들어가 철극을 쥐어 보인 건, 이시애가 그 즈음에 자신의 말, 혹은 최소한 동업자로 대하질 않고 자신의 주인행세를 하는 것이 거슬렸던 데다가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자신의 일에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 약간의 경고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경호병들이 뛰어 들어와 자신에게 칼을 들었을 때 갑자기 화가 뻗쳐올랐다.
‘나를 얕보는 거냐? 칼 들고 소리지르고 뛰어 들어오면 내가 겁낼 사람으로 보이냐~!’
속에서 울컥, 갑작스레 솟구친 노기에 해명은 누군가의 줄에 걸려 움직이는 듯 철극을 사납게 휘둘렀다.
자신이 위맹하고 정교하게, 그리고 잔인하게 움직이는 데에 자기 자신도 놀랐다.
곧 팔뚝마다 피 범벅인 무사들의 눈빛과 겁에 질린 이시애를 보며 해명도 아차싶었다.
무엇 때문에 이리 화가 나는가?
당황하는 얼굴을 노기서린 얼굴로 가리고 자신의 분노에 원인을 가만히 생각했다.
떠오르는 얼굴은 하나였다.
수빈.
그녀의 매몰찬 거절이 마음속을 공허하게 구멍을 내버렸다.
여지껏 몰랐지만 그 움막에서 자신의 추태와 그녀의 거절이 마음속에 제법 큰 열상을 내놓은 것을 그제야 알았다.
‘이 사람들에게 화풀이 할 게 아닌데...... 좀 미안하구만......’
너무 날뛰었다는 느낌에 곧 이시애가 안심할 수 있도록 몇 가지 조건을 내걸려는 차에 자신을 믿는 사람들이 바로 장군막을 들이닥쳤다.
건암과 종희.
둘의 놀란 얼굴이 해명을 당황시켰다.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결코 보이고 싶지 않은 번뇌와 분노가 가득한 얼굴.
그 두 사람 앞에서 이시애와의 갈등, 해운의 피신을 항현에게 부탁한 점, 그 외에 둘에게 말 없이 다른 일을 했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자신을 믿는 두 사람의 신뢰를 기대어 대충 몇 마디를 둘러대고는 그 자리를 떴을 때, 걷잡을 수 없는 분노는 둘에 대한 죄책감으로 포근히 덮혀졌다.
이후에 이시애는 해명의 실력에 얼이 빠진 듯, 멍하게 북청성에서 그 어떤 군사행동도 명하질 않고 시간만 보냈으며 그건 결국, 적군이 탈 없이 자신의 목줄에 칼을 들이대는 것을 허락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제 목숨이 걸린 일이기도 한 데 이리 망연히 있다니..... 멍청한 늙은이 같으니라고.....’
해명은 성벽위로 올라가 적이 몰려오는 남방을 바라보며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그제어제 같은 풍경이 오늘은 괴상하게 무섭게 보였다.
“후우~ 점점......”
이시애를 추돌질하여 난을 일으킬 때는 밤에는 털옷을 입어야 하는 늦은 겨울, 이름 봄이었다.
이제는 여름의 한 가운데, 밤에 부는 바람조차 들척지근한 여름의 한 가운데에서 해명은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더운 바람이 해명의 머리를 스치며 남쪽으로 내려갔다.
해명은 그런 바람이 한도 없이 부러웠다.
어느 방향으로도 마음대로 흐르는 이동의 자유뿐 아니라 그만 불고 싶을 때 마음대로 사라질 수 있는 존재의 자유까지 부러웠다.
“...... 끝이 보이는 구나......”
혼잣말을 바람에 실어 남으로 흘려보낸 후, 해명은 성벽을 내려왔다.
그 아래에서 두 사람, 종희는 걱정스런 눈으로 건암은 더 바라는 것이 없는 여유있는 미소로 해명을 맞아주었다.
둘을 보고 해명도 편안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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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모와 항현, 수빈과 은씨가족은 움막 안에 들어와 둥글게 둘러앉았다.
움막 밖에는 지친 병졸들이 자신들의 야영용 군막들을 은씨 일족의 움막의 둘레를 감싸듯이 배치되었다.
움막 안에는 은씨일족과 항현, 수빈 외에 남이와 준모가 들어와 있었다.
항현의 붕대를 댄 머리를 향해 준모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았다.
“..... 어디서 그렇게 맞고 다녀요. 형님은.....”
“그리 되었네. 내가 워낙 칠칠하지 못하여.....”
준모는 입으로는 타박을 하며 비웃듯 한 쪽 입꼬리를 올렸지만 눈은 걱정하는 눈빛이 하나 가득이었다.
항현도 크게 걱정하는 듯이 징징거리는 소리보다는 타박하는 투가 되려 맘이 편했다.
울먹이는 소리는 수빈만으로 충분하니까.
“그래서...... 해명이 여기에 있었다고요.....?”
준모가 들었던 얘기를 다시 되묻자 수빈도 항현도 아무 대꾸를 하지 않았다.
수빈도 항현도 은씨네의 지란 할멈도 별로 할 만한 얘기가 아니니 아무것도 더 말하지 않았다.
준모도 눈치가 빠른 꾀돌이로 소문난 아이였다.
수빈과 항현의 눈치로 보아하니 대충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알 필요는 없는 일이라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잠시 입 다물고 있던 항현이 얼른 이야기의 머리를 다른 방향으로 바꾸었다.
“그래, 지금 우리 군은 북진하고 있다고?”
“에...... 예, 아! ...... 예..... 지금 북청성으로 북진하고 있어요. 지금쯤이면 도착 했을 지도 모르죠.”
“우리도 빨리 합류해야 겠군......”
준모의 대답에 항현이 혼잣말처럼 대꾸하자 준모가 다른 화제를 꺼냈다.
“저는 유격조로 따로 편성되어 본진에 가보질 못했는데 기이묘사에 대응하는 축귀검의 인원이 지원을 왔대요. 한 사람은 큰 덩치인데 무과에 합격하여 철릭을 입고 뭔가 이상한 쇠와 끈으로된 것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게 철각이라고 대답했대요.”
“광조!”
“예, 내 생각도 그래요. 그리고 말투가 불량한 총포를 만지는 아저씨가 하나.....”
“혁춘 선배님일까?”
“달리 누가 있겠어요. 총포만지는 불량아저씨가.....”
준모의 말에 항현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손을 쳐다보았다.
20년 조금 넘는 인생동안 계속해서 검을 쥔 칼못이 박힌 자신의 양 손, 지금은 힘을 잃고 수전까지 보이고 있었다.
‘다만 내 몸이 얼마나 돌아와 줄 것인가.....’
너무 머리에 큰 상처를 입고 오래 의식을 잃고 있었던 것이 아무래도 몸에 꽤 깊은 상흔을 남겼다.
확실히 돌아오지 않는 몸 상태에 항현의 얼굴은 조급함과 걱정으로 표정이 슬그머니 굳어졌다.
지란이 그런 항현을 바라보며 나지막히 말을 꺼냈다.
“다시 한 번 각오할 수 있겠나?”
지란이 항현에게 한 밑도 끝도 없는 질문에 항현은 그 속에 뭔가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그리고 기다리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란은 고목나무 등걸 같은 얼굴 틈에서 나온 차가운 시선이 자신의 힘을 되찾으려는 항현의 뜨거운 시선과 부딪혀 엉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