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부활한 범
수빈이 뒷통수에 칼이 닿은 해명을 옆으로 밀치고 항현의 옆으로 뛰어갔다.
해명도 천천히 뒤로 돌아 항현과 눈을 마주 했다.
머리에 감은 붕대 사이로 항현의 눈이 기름먹은 횃불처럼 빛나고 있었다.
“악행이 점점 수준이 떨어지는 구나~! 해명”
“......”
해명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을 겨누고 있는 칼을 보았다.
기실, 할 말도 없었다.
죽었다고 생각하고는 주인 없는 집 안방으로 뛰어 들어가다 뒷덜미를 잡혔으니......
해명 자신이 생각해도 창피한 일이었다.
“...... 죽이실 겁니까?”
꽤 많은 호흡이 지나고 겨우 입을 띠어 한 말이 이거였다.
그만큼 떳떳치 못한 일이란 죄책감 때문이었다.
“죽을죄라고는 생각하는 거냐?”
“..... 흠~!.....”
해명은 항현이 정면으로 파고 들자 비로소 얼굴에 웃음을 찾았다.
사람이 사경을 헤매며 누워 있을 때, 손을 뻗은 것이 마음에 걸리던 차에 노골적인 적의를 맞닥뜨리자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
해명은 꺼리끼는 무거운 마음을 떨치고 항현에게 대꾸했다.
“항현님이 거의 죽어가고 있었으니 제가 위로라도 해드리려는 마음이었습니다. 아직 수빈님이야 임자없는......”
“내 여자다!”
싱글거리며 지껄이는 해명이 입을 다물었다.
해명의 눈은 말을 뱉은 항현이 아니라 같이 말을 들은 수빈에게로 꽂혔다.
“내 여인이고 내 정인이다! 네가 함부로 넘볼 여인이 아니다!”
“....... 뭐........ 그렇다면 그런 거고요.....”
항현의 단호한 말에 해명의 대답은 이죽이듯 대꾸했다.
항현의 옆에서 항현의 팔을 꼭 끼고 눈물을 그렁거리는 수빈을 봤기 때문이다.
가슴의 뜨거움이 맑은 이슬로 배어 나오는 감격은 서로간의 사랑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서로가 못되고 외사랑만을 슬쩍 품었던 해명이 아쉬움에 빈정거릴 수밖에 없었다.
잘못하면 해명 자신도 가슴 한쪽의 아픔에 눈물을 왈칵 쏟을 것 같았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항현님은 칼로 저는 맨손으로 죽기로 싸워 볼까요?”
항현이 해명의 야유같은 제안을 받아 대꾸를 했다.
“내가 누워 있을 때 너는 나를 죽이지 않았다. 지금 내가 칼을 쥐고 맨손의 너를 베는 것은 떳떳하지 못한 일!”
“......”
“가라! 네가 택해라! 그 철극을 들고 다시 오면 싸우는 것이고 아니라면 가지고 떠나라!”
“......흠~......”
해명은 항현이 겨눈 칼을 피해 옆으로 게걸음을 걸어 반대쪽 움막 문을 향해 갔다.
문을 열고 나가다가 문득 서서 수빈에게 한 마디를 건넸다.
“항현님이....... 돌아오시니 기쁩니까?”
“...... 당신이..... 무슨 상관이에요......”
해명이 서운함에 촉수를 거두며 수빈에게 한번 어깃장을 놓아 보았다.
수빈은 울먹이며 쏘아 붙였다.
마지막까지 면박을 주는 것이 서운할 만도 하건만, 해명은 울만큼 기쁜 일을 맞은 수빈을 보며 미소를 지어주는 여유를 보였다.
“기뻐하시니 싫진 않네요...... 그래도 내.....”
“어서 가요ㅡ!”
해명의 말을 끊고 수빈이 가기를 종용했다.
항현은 자신의 팔에 매어 달린 수빈을 자신의 품속으로 더 가깝게 안아 들였다.
그 모습에 해명이 더는 말 없이 고개를 돌리고는 열어 놓은 문을 나가 크게 소리 나도록 문을 닫았다.
“콰ㅡㅇㅡ!!!”
작은 움막이 떠르르 울렸다.
동시에 항현이 무릎이 꺽여졌다.
“후~우~!”
“항현님~!”
수빈이 깜짝 놀라 항현을 부축했다.
주저앉아 호흡을 조절하는 항현을 수빈은 품안에서 받쳤다.
수빈은 그제서야 아직 항현이 온전한 상태가 아님을 알았다.
해명과 자신의 상황에 칼을 들고 무리한 것임도 그제야 알았다.
“항현님......”
수빈은 울고 싶었다.
항현이 총을 맞은 것도 자신이 사격선에 노출되었기 때문이지 않던가?
항현이 밤새 비를 맞고 응급조치를 바로 받지 못한 것도 비사문천을 접응했던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이젠 해명과 추태까지......
수빈의 눈에 후회와 미안함의 눈물이 다시 흘렀다.
“수빈님! 절 자리에 눕혀주세요. 울면 이불 옆에 쿵! 떨어뜨릴지도 모르잖아요? 눈물을 닦으시고 절 일으켜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항현은 어줍잖게 위로나 하는 것이 수빈의 마음을 가볍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수빈의 후회가 어떤 것인지 알고 있는 항현은 도리어 수빈에게 도움을 청했다.
첨벙, 빠져있는 두 눈으로 항현을 본 수빈은 항현이 자신을 보며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을 알았다.
값싼 용서 따위가 아닌 당신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이 통하는 정인의 여유있는 미소에 수빈이 눈물을 떨쳐버렸다.
“....예....옛~! 일으켜 드릴께요~! 저한테 몸을 기대세요!”
“몸에 진짜 힘이 없어요. 체중을 완전히 실을 겁니다.....”
“문제.....없어요! 맡겨..... 맡겨주세요~!”
수빈이 항현을 일으켜 이불로 데리고 갔다.
항현은 최대한 자신의 발로 걸으려 했으나 수빈은 항현의 가슴께를 붙들고 자신의 어깨위로 확, 잡아당겼다.
수빈은 항현의 무게만큼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고 항현은 품안에 자신을 벼텨주는 부드러움에 포근한 향기마저 느꼈다.
수빈이 항현을 부축해 이불위로 다시 눕힐 때, 항현이 수빈의 손을 잡았다.
“.....!”
“오늘 내 품안에서 나를 받쳐준, 이 찰나를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
“.......”
“이 찰나를 평생으로 갚겠소. 평생 당신을 받치고, 받들며 살겠습니다.”
“......”
말을 대꾸하지 못하는 수빈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일 때, 움막의 문이 왈칵, 열렸다.
“일어났다고ㅡ!? 항현이ㅡ!”
“정말이우~? 수빈 언니~! 항현님 일어 나셨수~?”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온 은씨 일족의 눈에 항현과 수빈이 손을 맞잡고 있는 것이 들어왔다.
움막 안의 셋과 둘이 서로 뻘쭘하게 쳐다보았다.
지란이 둘에게 피식거리며 말했다.
“우리가 방해했나? 자리 좀 비켜줄까?”
“....... 아닙니다.......”
항현이 누워서 붕대 사이에 겨우 나온 눈마저 감으며 조용히 거절했다. 그러자 뒤에 검지가 수빈에게 말했다.
“언닌 겨우 손만 잡고 얼굴이 그리 벌개서 눈물을 그렁거리우~? 합방하면 정수리에 불붙겠네~”
“너는 뭘 안다고~!”
“무슨 소리에요~! 망측하게~”
항현이 지그시 눈을 감고 얼굴만 붉히고 있었고 지란이 피식거리며 미소만 지으며 검지와 수빈은 서로 찌그락 짜그락 소소한 말장난에 여념이 없었다.
엄지가 말없이 찬 바람 들어오는 움막의 문을 살짝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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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총사 이준은 군을 철령 바로 앞까지 빼내어 재편성을 하며 보고를 상신했다.
보고의 내용은
-적의 기세가 만만치 않음, 할 수 없이 병력을 철령에 후퇴, 재배치.
-적의 기이수에 대응할 축귀검의 인원이 피격, 손실.
-적의 기이수에 대응 방법이 없는 것도 후퇴의 한 원인.
-기이묘사에 대응병력을 포함한 병력의 지원이 필요함.
이준은 이 보고서를 올린 후에 자신의 직위에 걱정했다.
‘총 4만에 가까운 대군을 이끌고서 되려 후퇴라...... 뭐 왕족인 내가 견책이상의 처분을 받지는 않겠지만......’
이준은 이 일에서 손을 떼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다.
상대의 공격이 상식에서 많이 벗어난 이질적인 것인 데다가 대응방책도 자신이 뭐라 말할 수 없는 방법인 것에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다. 더구나 무관계열인 남이를 비롯한 부하장교들의 왕족 나부랭이의 지휘를 비웃는 듯한 미묘한 반항등에 신경이 많이 피곤한 상황이었다.
‘차라리 잘려서 후방으로 소환되었으면 좋겠군......’
아무튼 보고는 올리고 군은 후퇴했으니 자신이 할 일은 다한 것이다.
조정에서 결과를 검토하고 자신의 처우에 대한 명이 떨어지면 그대로 움직이면 그 뿐이다.
철령까지 후퇴하자 적의 기이, 요괴들의 공격이 없는 것도 이준의 신경 안정에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이준의 후방 소환 희망은 간단히 지워졌다.
보고를 보낸 지 하루도 안 되어 지원군이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북청진압군 도총사 구성군 이준은 어명을 받으오~!”
왕명차사의 우렁찬 구령에 이준이 멍석을 깔고 부복하여 엎드렸다.
군사 1만과 임금의 명을 가져온 차사가 보고를 보낸 다음 날 바로 들이닥치자 이준은 깜짝 놀랐다. 그리고 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이미 준비된 병력이 있었군, 상황도 계속 살피고 있었다는 얘기렸다...... 철저하시군.....’
어명이 이준에게 지시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보낸 1만의 군사를 지휘할 것
-현재의 지휘관과 장교단은 전원 유임, 임무를 수행할 것
-기이묘사에 대응하는 병력도 같이 보냄.
-그러니 무조건 앞으로 진격하라.
1만의 지원군은 자신의 지휘권 안에 흡수한 후에 이준이 더욱 주목한 것은 기이묘사 대응병력이었다.
사라진 항현과 수빈을 대신하여 두 명이 지원되었다.
“그대들은......?”
“예~ 저희도 축귀검의 인원으로 기이묘사와 맞서 봤던 경험이 있사옵니다.”
“온부위와 아시는 사이신가?”
큰 키의 장교가 작은 눈을 크게 뜨며 이준에게 되물었다.
“항현 선배께서 여기 계십니까?”
“있었다네, 난전중 적에게 사로 잡려 지금은 그 있는 곳을 알 수가 없다네.”
“예?”
옆의 사냥꾼 차림의 늙수구레한 사내가 한탄같은 혼잣말을 흘렸다.
“허어~ 이 사람이 어찌.....”
이준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차림을 살피자 두 사람이 곧 도총사 이준에게 군례로 무릎을 꿇고 관등성명을 대었다.
“신 적순부위 태광조 도총사께 인사 올립니다ㅡ!”
“소인 봉정대부 강혁춘, 행군선전관으로 배치되었습니다-! 견마지로를 다 하겠나이다-!”
광조와 혁춘도 해명의 기이수를 맞아 북청진압군에 배치된 것이다. 그리고 다시 북청진압군은 다시 진격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