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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무협물
축귀의 검
작가 : 후우우우니
작품등록일 : 2017.12.4

세조 10년 현덕왕후의 저주로 나병에 걸려 문둥이가 된 세조.
설상가상으로 왕에 오르며 저지른 짓들이 다시 세조와 조선에 앙갚음으로 돌아온다.
적의 무기는 위대한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한글을 주문으로 사용하여 고대의 악한 마법을 되살린

"언문주"

언문주로 조선과 조선의 7대 임금 세조의 정권을 붕괴시키려는 적들.
그들로부터 국가의 안정을 지키고 사악한 주법을 막기 위해 언문주를 사용할 줄 아는 새로운 국가기관을 창설하는 데

그 이름은 "축귀검" 이었다.

 
8. 북청반란전 11. 수빈 전력(全力) (다리)
작성일 : 18-01-08 20:15     조회 : 488     추천 : 0     분량 : 7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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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났다고!? 네 놈들은 무얼하는 물건들이냐! 그냥 멀건히 보내주었단 말이냐!?”

 

  도총사 이준이 주변의 경계병들을 몰아 세워놓고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이준 앞의 한줄로 선 경계병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자기 발끝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고개를 반 쯤 들고 겨우 한 마디 대꾸했다.

 

 “그 분이 가신다는 데 저희가 무슨 힘으로 막겠습니까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에 도총사 이준도 그 말을 반박하지는 못하고 얼굴만 구기고 있을 뿐이었다.

 화포나 있어야 겨우 대항할 수 있는 나모가비나 창귀호를 맨몸으로 상대하는 난힘자를 무슨 힘으로 막을까?

 뒤에서 강순이 말도 못하고 시큰덕대고만 있는 도총사 이준을 진정시키며 다른 논의로 상황을 진행시켰다.

 

 “도총사~ 지금 그 새타니 처자를 놓친 것은 지난 일입니다. 이젠 적의 기이수가 내습해오면 어찌 할 지를 논의해야 합니다.”

 “......”

 

  도총사 이준이 고개를 뒤로 돌려 강순과 휘하 제장들이 대기하고 있던 총사군막을 한 번 보고는 말없이 총사군막으로 걸어갔다.

 옆의 하급 장교가 모여 있던 경계병들에게 눈짓을 주어 해산하도록 하자 경계병들은 어마 뜨거라~ 잽싸게 흩어졌다.

 

 “자~! 지금 우리 군은 적의 주술 공격에는 거의 방비가 안 되는 상황입니다. 의지하던 전력이 잡혀가고, 빠져 버린 상황이니 앞으로 어찌 일을 해나갈지 궁리들을 해봅시다!”

 

  강순이 회의주제를 잡자 지휘관들이 서로의 눈만을 바라보며 답이 나오기만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답이 있을 수가 없었다.

  나모가비같은 경우 움직임이 느리고 둔중하여 화포같은 중화기로 상대가 가능했지만 하나의 나모가비를 무력화 시키기 위해서는 굉장히 많은 화약이 필요했다.

  화약은 조선 국내의 자체생산이 잘 안 되는 유황과 염초같은 원재료로 다량 확보가 어려운 물자였다.

  무턱대고 후방의 지원을 요청할 수도 없는 자원을 믿고 진격할 수도, 제자리를 고수할 수도 없었다. 더구나 나모가비는 화약병기로 어느 정도 방어가 된다지만 창귀호는 무거운 화포로 제압하기에는 아예 불가능했다.

  범이 가로세로 날아다니며 움직이는 데에 쇳덩어리 총통을 휘두르며 조준하기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화살같은 작은 소병기는 이미 죽어 고통을 모르는 창귀호에게는 아예 무용지물, 결국 사람이 달려들어 칼과 도끼로 직접 물리적인 앞, 뒷발의 힘줄과 근육을 자르고 끊어야 겨우 가만히 시킬 수가 있었는데 그러다보면 군졸 서른 명 정도는 우습게 죽고 상했다.

  사람이 많이 상하다보니 창귀호가 나타나면 훈련받은 정병들도 먼저 나서길 꺼려하며 움츠러들어 장교들이 부하들을 지휘하기가 한층 어려워졌다.

  적의 공포에 전진도, 지휘관의 공포에 후퇴도 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움직임의 군대는 피해만 더욱 커질 뿐, 기이수와의 싸움은 언제나 이런 어려움이 있었다.

  전술상의 이런 난망을 해결해주던 난힘자, 항현과 수빈의 부재는 진압군의 앞에 짙은 어두움일 수밖에 없었다.

 

 “...... 후퇴를 하심이 어떨 런지요.....?”

 

  군관하나가 넌지시 의견을 올리자 다른 장교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의견에 수긍했다.

 장교들도 난힘자들이 없이 상대의 난힘에 대항하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일단은 후퇴를 한 후, 다른 대책을 찾은 후에 다시 싸움을 시작하는 것이 나은 방법이라는 것이 현장, 일선의 대체적인 시각이었다.

 

 “안돼ㅡ!”

 

 이준의 일갈로 후퇴 논의가 멈췄다.

 

 “이곳은 서수라대로(한양과 서수라, 한국지도 토끼귀의 끝을 잇는 도로)의 끝자락이오! 철령만 넘어 물러나면 바로 한양으로 접어드는 길목인데 절대로 안될 말! 무조건 사수해야하오!”

 

  이준은 자신이 책임을 지고 있는 전쟁의 패자로 남고 싶지 않았다. 아마도 전쟁의 지휘관으로 임하는 모든 사람의 소망일 것이다.

 강적을 만났으니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물러서지 않았다는 이름정도는 얻고 싶은 것이 도총사 구성군 이준의 바램이었다.

 이를테면 개인적 욕심인데, 자고로 군은 이런 지휘관의 개인적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도 얼마든지 움직이는 집단이었다.

 

 “...... 버티기는 불가능하오만...... 조금씩 물러나 위치를 다시 잡는다면......”

 

  가장 연장자인 강순이 다시 젊은 도총사 이준과 현장 최일선의 장교들의 의견의 절충안을 조심스레 읊조렸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유격부대를 이끄는 남이가 강순의 의견을 묻는 형태로 계획의 세부안을 말하기를 권했다.

 남이는 이미 강순의 작은 읊조림에서 작전의 대강을 추측했다.

 

 “내가 싸워보기에는 저 쪽도 한계가 없이 그런 기이수를 마구 쏟아 넣을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소이다. 우리가 물러난다고 그 진공을 자신들의 힘으로 마구 채울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말이죠.”

 “적의 한도를 추량하며 조금씩 물러나지만 방어선은 계속 유지한다면 곧 저 쪽도 공세한계선에 다 달을 것이란 말입니다.”

 

 강순의 얘기에 남이가 보충을 더했다.

 이준도 전혀 전략전술의 문외한이 아니니 전략을 금새 알아들었다.

 

 “지공으로 적의 예봉을 무디게 하자는 말이군요......”

 “그리하시면 적을 막으며 한 편으로는 한양에 완전히 후퇴했다고 알리지 않아도 되니 도총사 어른의 체신도 상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ㅡ!”

 

  이준이 강순을 향해 대답한 것에 남이가 다시 대꾸를 했다.

 패장의 불명예를 짊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말인데, 듣기에 따라서는 마치 너 때문에 쉽게 후퇴도 못한다는 식으로 이죽이는 소리로도 들렸다.

 남이의 말투에 이준이 남이를 강하게 째려보았다.

 남이가 그 눈빛에 맞서지 않고 고개를 돌리긴 했지만 입가에는 비웃는 미소는 지우질 않았다.

 누가 봐도 건방진 행위였다.

 강순이 서둘러 전략의 다음 의견을 개진하여 나이가 비슷한 두 젊은 지휘관의 묘한 충돌을 재빠르게 지워버렸다.

 

 “만일 도총사 어른이 허락하신다면 이곳에서 10리나 20리 단위로 천천히 물러나며 방어진을 구축하겠습니다. 적은 감히 그 진공을 마구 채우며 나오진 못할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 자들의 빈약하기 때문입니다!”

 

 강순은 마지막 문장을 말하며 남이를 사납게 째려보았다.

 남이는 이 눈빛도 비웃지는 못하고 살짝 실쭉하게 눈을 뜨며 고개를 돌렸다.

 이를테면 최고지휘관의 위엄을 함부로 손상하지 말라는 연장자의 경고였고 남이가 그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강순의 눈빛과 남이의 눈빛 접수를 보고 이준은 더 남이를 째려보지 않았다. 그리고 강순에게 상찬을 하며 작전을 받아들였다.

 

 “가장 연장자이신 장군께서 지혜로운 작전을 제안해 주셨습니다. 이 작전이 현 시점에서 가장 맞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세부 사안을 정교하게 다듬어 행하는 것이 최선이겠습니다.”

 

  이준이 강순의 계획의 실행을 결정하자 각 지휘관들이 회의를 파하고 바로 자신들의 단위부대로 흩어졌다.

  이준도, 강순도 남이의 무례를 따로 불러 지적할까하는 생각을 했지만 이 자리에서 바로 꾸짖어 지적하는 것은 지휘부의 불협화음을 밖으로 내비치는 결과로 이어질 것 같아 둘 다 남이를 놔둘 수밖에 없었다.

 남이는 자신을 바라보는 그런 눈을 아는지 모르는 지 자신의 유격대가 있는 북청성 서쪽의 주둔지로 내달려갔다.

 

 ------------------------------------------------

 

 “항현형님이 적에게 붙들리고 수빈 누님은 그걸 찾으러 가요?”

 

 준모가 남이에게 되묻자 남이가 선선히 대답을 해주었다.

 

 “그렇다네. 수빈님이 혼자 갔다더구만.”

 “그런 말도 안되는ㅡ! 제가 따라가 돕겠습니다ㅡ!”

 “어딘지는 알아?”

 

 남이의 한 마디에 준모는 입을 반쯤 벌린 채 멍하니 서있었다. 그러다 말을 이었다.

 

 “나으리께선 아시지요? 모르신다면 아예 본진의 항현 형님과 수빈누님의 상황을 제게 말해주실 리가 없습니다! 아시니까! 제게 뭔가 원하시는 것이 있으시니 제게 형님과 누님의 상황을 말해주신 것이겠지요ㅡ?”

 

  항현이 어느 집단 안에서의 흐름을 알아채는 눈치가 빠른 편이라면 준모는 개인 대 개인으로 맞상대를 할 때 눈치가 빠른 타입이었다.

 준모가 남이의 말을 찬찬히 듣고는 확실히 정확한 지점을 짚어내었다.

 남이는 준모의 힘을 어떤 식으로든 이용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이보시게, 나는 위험할 것이란 생각에서 말하는 것일세....”

 “저는 용의 칼인 사진멸악도의 소유자로 악을 멸하는 데에 한 치의 물러남도 없었던 사람입니다! 위험하다는 것을 몰라서 가려는 것이 아닙니다! 제 몸 하나에 위험이 닥치는 것을 두려워하여 제 전우들이 싸우는 뒤로 숨을 사람이 아니란 말입니다ㅡ!”

 “...... 아니, 아니......”

 

 남이가 준모를 진정시키며 말을 다시 이어갔다.

 

 “자네가 아니라 우리가 위험하다고.....”

 “......”

 

 다시 준모가 멍한 눈으로 입을 반 쯤 벌리고 남이를 바라보았다.

 

 “자네가 없는 때에 기이수의 습격을 받으면 우리가 위험해져..... 우리가 위험해.....”

 “..... 아니......!!!”

 “일단 우리와 행동을 같이 하세! 그리고 우리가 일단 회산봉의 옆까지 전진하는 거야!”

 

  준모가 남이의 말에 바로 반박을 못하자 남이가 자신의 주장을 밀어 붙이기 시작했다.

 

 “내가 몇몇 병졸들을 잡고 살짝 캐본 바로는 석벽계곡의 회산봉이라는 곳에서 사흘 뒤에 만난다고 하더군. 지금 움직이면 회산봉까지 이동가능하다네.”

 

  남이는 본진을 드나들며 수빈과 친하게 지내는 붙임성있는 몇몇 군졸들을 눈여겨 보아두었다.

 수빈이 본진을 떠났을 때, 남이는 미리 찍어놓은 병졸들을 직접 불러다 수빈의 행방을 캐내었다. 그리고 그 정보를 이준이나 다른 지휘부에는 알리질 않았다.

 그런 정보를 준모에게 말한 것이다.

 

 “회산이라........., 같이 가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남이가 준모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가서 무슨 도움이 되겠냐만은..... 그래도 자네들을 데리고 돌아올 때 말동무는 해 줄 수 있겠지...... 더구나 본군은 철령까지 후퇴할 계획이라 자네들만 놓고 갈 모양이네. 누구라도 동행을 해야겠지.....”

 “.......”

 

  남이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준모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이후, 남이의 유격부대는 북청의 서쪽 변을 따라 움직이며 자잘한 적의 특공 부대와 나모가비등의 기이수들을 만났지만 남이의 노련한 지휘와 준모의 우악스러울 만큼 강력한 난힘으로 모두를 분쇄하며 전진했다.

 사흘 후, 남이의 부대가 회산의 기슭에 주둔하고 준모가 홀로 회산봉에 올랐다.

 그곳에서 준모는 이미 무너진 산과 약간의 피 얼룩을 제외하고는 누구의 흔적도 찾을 수가 없었다.

 

 -------------------------------------------------

 

 “하아~!”

 

 수빈이 눈을 떴다.

 수풀을 엮어 만든 움막.

 작게 모닥불을 피워 만든 온기가 움막 안을 가득 채워 훈훈했다.

 

 “...... 여기가 어디지......”

 “일어나셨는가~?”

 

  머리맡에 있었는데도 수빈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수빈이 깜짝 놀라 돌아보니 한 노파가 웅크리고 앉아 약사발에 약탕기의 약재를 짜내고 있었다.

 

 “......누구시죠?”

 “열이 아주 높아~. 처자, 이거 좀 마시게. 쓰더라도 꾹~ 참고~......”

 

  노파는 누구냐는 수빈의 질문에 대답도 없이 약사발을 그 앞으로 죽~ 들이 밀었다.

 수빈이 잠시 가만있다가 약 사발을 두 손으로 받았다.

 

 “마시게, 열이 아주 높아...... 어서......”

 

  노파의 거듭된 권유에 수빈이 약사발을 입에 대고 한 모금을 삼켰다.

 엄청 쓴 맛에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 졌다.

 

 “쓰더라도 마시시게. 해열을 위한 거야.......”

 

  수빈이 눈을 꼭 감고 약사발을 모두 비웠다.

 

 “자네는 너무 열이 나는 것이 문제지만 약으로 열을 낮출 수 있지..... 저 쪽은 너무 식은 것이 문제야...... 그건 어찌할 방도가 없어.....”

 “.......저 쪽......!? 항현 나으리!”

 

  수빈이 놀라 일어나려다가 휘청이더니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 그 순간 움막의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들어왔다.

 

 “수빈 언니! 일어나시었소~?!”

 “괜찮으십니까? 처자.”

 

 은검지와 은엄지, 안면이 있는 두 사람이었다.

 수빈은 반갑다는 인사도 안하고 항현의 행방부터 다급히 물었다.

 

 “저기...... 저기....... 항현님은요? 항현님 지금 어디계셔요? 검지씨~! 항현님 지금 어디 계세요?”

 

 넋두리처럼 항현의 행방을 묻는 수빈에게 검지가 진정시키며 항현에 대해 말해 주었다.

 

 “수빈 언니, 이 옆 칸에 모시고는 있는데...... 용태가...... 좋지 않소.......”

 “......예?.......”

 

 검지가 수빈의 양 팔을 붙잡아 진정시키며 찬찬히 얘기를 해나갔다.

 

 “지금 맥이 아주...... 아주 약하게 잡혀요. 몸도 싸늘히 식었는데 도통 따뜻해지질 않고.....”

 “맘을 단단히 자시게...... 보내야 할 지도 모르니......”

 

 뒤의 노파의 한 마디에 수빈이 자지러지며 주저앉았다.

 

 “안돼요~! 안돼~! 저...... 검지씨 항현님! 보게 해줘요! 어디 계셔요~?”

 

  울음이 섞여 가랑비가 바람에 흩뿌리듯 수빈은 되는 대로, 원하는 대로 말을 뿌렸다.

 검지가 뒤의 노파를 쳐다보자 노파가 고개를 끄덕거려 주었다.

 

 “일단..... 수빈 언니도 안정을 취해야 하지만, 가봅시다..... 가서 소리지르고, 항현님을 흔들고 그럼 안돼요.....?”

 “.......”

 

 검지가 평정을 다짐받자 수빈이 그러고마고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검지는 비틀거리는 수빈을 부축하여 움막의 옆방으로 수빈을 이끌었다. 그리고 그 곳에 항현이 머리에 붕대를 감고 누워있는 모습을 보았다.

 수빈이 한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항현의 비참한 모습에 비명을 지를 뻔했다.

 얼마나 많이 피를 흘렸는 지 머리에 두껍게 감은 붕대조차 피가 배어 검붉게 비쳐 보였고 입술은 이미 새파래서 검게 보일 정도였으며 안색은 하얗게 색이 바래 이미 죽은 사람처럼 보였다.

 

 “이미 저승에 다 달은 상태라 큰 기대는 마시게......”

 

  뒤따라온 노파가 수빈에게 한 마디 던지자 수빈이 부축하는 검지의 손을 힘없이 뿌리치고는 항현의 곁으로 걸어갔다.

 크게 울고 싶었지만 항현의 영혼이 울음소리에 놀라 저승으로 넘어갈까봐 수빈은 여전히 한 손으로는 입을 막고 겨우겨우 흐느끼기만 하였다.

 

 “....... 항현님........”

 

 누워있는 항현의 가슴에 수선화 같은 작은 손을 살짝 올리고 계속 흐느꼈다.

 

 “...... 일어나세요....... 항현님........”

 

 맑그레한 눈물이 수빈과 항현의 사이에 소리도 없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항현님...... 제발....... 가지 마세요........ 일어나세요.......”

 

 ------------------------------

 

 항현이 일어났다.

 배에 힘을 주고 허리를 일으켜 일어나 앉았다.

 일어난 항현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돌아보았다.

 누워있는 바닥과 주변, 그리고 고개를 들어 올려 본 하늘까지, 온통 하얀 색이었다.

 자신이 앉아있는 바닥과 주변이 나뉘는 지평선조차 없이 새하얀 흰 세계였다.

 항현은 이 있을 수 없는 풍경에 자신의 상황을 직감했다.

 

 ‘......... 그렇구나.......... 나는......... 죽었.........는가.........?’

 “이보시게~! 오랜만일세~!”

 

 하얀 세계의 하얀 상념을 깨뜨리는 상쾌한 일성에 항현은 뒤를 돌아보았다.

 항현은 환성의 주인공을 바로 알아보았다.

 

 “그 동안 잘 지내셨는가? 아니, 잘 지냈으면 올 일이 없었으려나......?”

 “안평대군 어르신! 아니, 지장보살님!”

 “허허허허~ 이거 참 주책없이 반갑구만~! 허허허허~!”

 

 아주 까만 세계에서 만났던 그를 이번엔 아주 하얀 세계에서 만난 항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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