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르르릉~!”
“쾅-!” “쾅-!” “쾅-!” “쾅-!”
번개가 수빈의 주변으로 마구 떨어졌다.
마치 커튼이 둘러치듯 떨어져 내려 해명조차도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비합님! 다음은 저기~!”
첫 부적을 파괴한 후 해명이 비합에게 다음 목표를 정해주었다.
비합도 첫 파괴시킨 부적과 가장 가까운 부적을 목표로 번갯불을 피해 접근해 뛰어 갔다.
“하이얏~!”
첫 번째 목표를 기습적으로 파괴에 성공시킨 비합은 큼지막한 기합을 지르며 멋지게 뛰어 나갔다. 그러나 상대는 부처를 마구니로부터 지키는 전쟁의 신!
당연히 첫 공격 후, 가까운 다음 목표를 노릴 것이라는 것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콰ㅡ쾅ㅡㅡㅡ!”
앞을 감싸듯 번개가 비합의 길목을 가로 막았다.
기세 좋게 뛰어가던 비합이 자신의 달리는 관성력을 멈추느라 이를 악 물었다. 아니면 내리치는 번개의 기둥에 머리부터 들이밀 참이었다.
가까스로 섰으나 정지된 비합은 비사문천의 좋은 밥일 뿐이었다.
두 번째 번개!
“콰르르르르~~~!”
“으허어어~!!!!!”
해명이 달려들어 비합의 목 뒤를 끌어 당겼지만 비합은 아무 피해 없이 빠져 나오지 못했다.
얼굴이 검게 그을리고 온 몸의 근육이 긴장되어 돌멩이처럼 굳어져 굴러 나왔다.
결정을 짓겠다는 듯, 번개의 기둥이 그대로 전진하여 두 사람을 노렸다.
해명이 다시 자신의 사술극을 앞으로 뻗어 비사문천의 번개를 막았다.
“쿠르르르~~~~~”
해명은 사술극에 다룸(몸 내부의 힘을 이용하는 주술방법, 기를 말한다.)의 방법으로 비사문천의 번개를 가까스로 막아냈다.
이리저리 불어 닥치는 바람에 끓는 듯한 번갯소리가 울려 산짐승의 효후성같은 소리를 냈다.
“수빈님, 이거..... 너무 하시네요.... 우리가 그렇게 미웠습니까? 이런 무시무시한 신을 소환까지 하셔서는......”
“네 놈들은 절대로 도망치지 못한다~!”
비사문천은 이미 수빈이 아니었다.
감정에 호소해보려는 해명의 언변에 휘둘릴 귀가 없는 무정한 신이었다.
그럼에도 해명은 수빈에게 칭얼거리길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사내를 돌려받기 위해 기꺼이 무서운 신을 내림하여 접신한 여인에게 진심으로 감탄했다.
‘정말, 대단한 여인이 아닌가?’
무궁한 가능성을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만 쓰는 여인!
해명은 그 마음을 보듬고 싶었다. 또한 해명은 수빈이 내린 비사문천과 싸우며 그 만큼 강력한 신이 현세에 구현될 수 있도록 하는 수빈의 잠재된 힘도 탐이 났다.
힘과 마음이 동시에 욕심나는 여인, 그 품안에 피 흘리는 항현에게 하염없이 샘이 났다.
‘머리에 총 맞은 사람을 샘내다니......., 내가 어쩌다가 이런.......’
자신의 속마음에 혼자 창피해진 해명의 뒤에서 비합이 겨우 몸을 풀며 일어났다.
“해...... 해명님.......”
“거사님, 어떠세요? 움직이실 수 있으시겠어요?”
“겨...... 겨우.......운신은 합니다만......”
말도 더듬거리는 비합의 안 좋은 상황이 해명을 다시 신과 맞선 현실로 되돌려 세웠다.
“해.... 해명님, 제가 움직이기에 상태가 조금 안 좋습니다.”
“예? 그래서요?”
“그.....러니까......”
비합이 해명의 귀에 대고 뭔가를 속삭였다. 그리고 듣고 난 해명이 비합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해볼 만 하네요. 해 봅시다! 거사님!”
“교활한 머리를 힘들게 굴리는 구나~! 저승길을 고되게 가겠구나~! 어서 해 보거라~!”
비사문천의 쩌렁쩌렁한 노성이 두 사람의 귓전을 때렸다.
해명이 비사문천의 왼 쪽으로 돌아 전속력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 순간 비합도 주문영창을 시작했다.
“정북방 북극성의 신수여......
세상이 너를 중심으로 돈단다.
정북방 모든 것의 죽음이여, 물이여......
네가 끝날 때 모든 하루가 끝난다.
나와 너의 적에게 모든 끝을 지우라.
암천자 포연무~!”
비합이 쥔 사자추에서 기름에 갈아낸 먹물같은 끈쩍끈쩍한 안개가 피어나오며 비합을 감싸기 시작했다.
“더러운 술수를 쓰는 놈이구나~! 살려고 용을 쓰는 구나~! 구차한 놈~!”
비사문천의 비웃음섞인 일갈에 비합의 표정이 한순간 꿈틀했지만 이내 냉정을 찾고 정신을 사자추에 집중시켰다. 그러나 비사문천의 권능의 바람이 비합의 검은 안개의 포진을 날리기 시작했다.
비합이 필사적으로 정신을 집중시켜 주문을 계속 내깔렸다.
“정북방 북극성의 신수여...... 정북방 북극성의 신수여...... 정북방 북극성의 신수여......”
그런 비합을 엄호하기 위해 해명이 공격에 들어갔다.
“번개치는 하늘아래
하염없이 울부짖는
홀로 된 들개처럼
선지피가 흐르도록
서러움이 달라붙다
날카로운 칼바람에
가루처럼 날리네
사술극공참ㅡ!”
“뛰어다니는 것이 날따람쥐 같구나ㅡ!”
해명의 음속의 칼날 공격에 비사문천이 손을 한 번 휘젓자 회오리가 일어나며 공기의 대검이 날이 무뎌지며 마침내 흩어져 버렸다.
해명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긴 했지만 필사적인 비합의 영창에 안개가 바람을 견디며 드디어 비합을 완전히 가리고 비사문천의 왼쪽으로 침투해 들어가던 해명도 완전히 감싸며 비사문천의 앞에 포진을 펼쳐냈다.
일찍이 창경궁 앞에서 항현과 준모를 곤경에 빠뜨린 오백 일십 두 갈래 팔문진이었다.
“손을 쉬지 않는다고 다 부지런한 것이 아님을 모르는 구나~! 작은 호미로 사래질하여봤자 큰 삽이 한번 파는 것만 하겠느냐~!? 지 분수도 모르는 것아~!”
비사문천의 일갈이 떨어지는 순간, 안개 속에서 해명이 솟구쳤다.
검은 물 밑에서 잉어 뛰어 오르듯, 힘차게 날아오르며 비사문천, 수빈의 머리 위를 노렸다.
“어딜 감히ㅡ!”
번개가 해명을 노리자 해명이 공격하던 수를 거두고 상우극을 교차하여 비사문천의 뇌격을 막았다.
열, 전기, 그리고 압력.
해명이 공중에서 그대로 날아가 뒤로 떨어졌다.
“콰ㅡㅡ당ㅡㅡㅡ!!!”
“크헠ㅡ!”
멀찌감치 나가 떨어진 해명이 외마디 비명을 지를 때 조청같이 끈끈한 검은 안개 속에서 한 줄기 주문이 흘러나왔다.
“곳 아닌 곳으로 가는 자.
그 길을 인도하여 바른 곳으로 가도록
목이 터지게 부르짖어라.
불러도 듣지 않는 옳지 않는 것들은
단단히 묶어 내어 제 갈 길로 끌어라
포자편결박ㅡ!”
사자추가 꼬리에 불붙은 쥐처럼 빠르게 달려나와 의식이 없는 항현의 발목에 감겼다. 그리고는 검은 안개의 진으로 끌고 들어갔다.
“안돼ㅡ!”
항현을 뺏긴다는 위기감에 수빈의 의식이 일시적으로 돌아왔다. 그 순간, 접신된 비사문천의 힘이 약해졌다.
“지금이다ㅡ!”
누워 있던 해명이 상우극을 거머쥐고는 노려 던질 찰나, 끌려가는 항현의 머리를 두 손으로 감아 가슴에 당겨 안은 수빈의 얼굴이 해명의 얼굴과 정확히 맞보게 되었다.
해명, 수빈.
눈빛과 눈빛이 덩쿨처럼 얽키며 해명의 손의 흐름이 멈칫, 끊어졌다.
“던지십시오ㅡ! 해명님ㅡ!”
‘제길~! 늦었다! 틀렸어ㅡ!’
해명은 그 잠시의 흐름의 단절이 상황을 무위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어째서 멈칫거린 것인가?
안개의 포진 속에서 비합의 울부짖는 듯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콰르르르릉ㅡㅡㅡㅡㅡㅡ!!!!!!!!”
안개 포진의 입구로 번개가 날아 들어갔다.
오백 일십 두 갈래의 문을 모두 일순간에 통과하더니 바로 외침의 주인공을 추적하여 응징을 가했다.
“파캉ㅡㅡㅡ!!!”
“끄아아아아ㅡㅡㅡㅡㅡㅡ!”
“푸스스스.........”
뇌격성이 울리고 비명이 뿜어지더니 안개가 공중으로 증발되듯 사라졌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비합이 천천히 걸으며 자신의 몸을 두 손으로 더듬더듬 만지다가 얼굴 쪽으로 풀썩, 쓰러졌다.
“......거사님......”
해명이 겨우 일어나 쓰러져 있는 비합에게로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맥을 짚어 보았지만 거의 뛰지를 않았다.
“하~!”
해명이 한숨을 쉬었다.
슬픔과 아쉬움의 울음이었다.
“이젠 난힘자끼리 서로를 죽이는 군요. 세속의 범인들의 욕심에 휘말려서......”
“.......”
수빈은 항현의 얼굴을 가슴에 꼭 안고 있었다.
그녀의 몸은 비사문천이 내림하여 이미 그녀의 것이 아니라도 본능적으로 자신이 지키는 사람을 보호하는 동작을 취하고 있었다.
해명은 그녀가 수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을 계속 시켰다.
“거사님은요..... 우리 남매가 주력이 높은 것을 알아보시고 늘 우리에게 존대하셨어요...... 도련님, 아기씨하며.......”
“........”
“우리의 힘 때문에 우리도 우리 스스로를 두려워할 때 힘을 다루는 법을 가르쳐 주시고 우리의 할아버지로 살아주셨던 분이세요.....”
“.......”
“자기 계산이 많아 음침하긴 해도 우리 남매와 같이 있던 분들껜 늘 좋은 어른이었는데......”
“......”
수빈, 비사문천은 한 마디도 대답않고 그저 항현만을 안고 있었다.
눈물이 그렁거리는 해명은 서서히 수빈에게 다가갔다.
수빈은 여전히 항현을 안고서 아무런 말도 움직임도 없었다.
해명이 철극을 번쩍 위로 들었다. 그러자 수빈은 울음소리인지 비명인지 알 수 없는 기괴한 소리를 내질렀다.
“아아ㅡㅡㅡㅡㅡㅡ!!!!!”
“우르르릉........ 콰쾅ㅡㅡㅡㅡ!!!”
거대한 아름드리 나무같은 굵은 번개하나가 그대로 회산봉에 내리쳤다. 그리고 산이 무너져 내렸다.
“콰르르르르......... 쿠쿵.......!!!!!”
해명도 자신의 철극을 내리치지 못한 채 그대로 무너져 내리는 회산봉의 흙더미와 함께 밑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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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트는 무렵, 햇볕을 마주보는 방향에서 두 명의 사냥꾼의 복색을 한 자들이 회산봉을 보며 깜짝 놀랐다.
“이런 세상에...... 번개가 미친 듯이 발광을 하더니 동산 하나를 무너뜨려 버렸구나~!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산이 하늘에 무슨 죄를 그리 많이 져서 번개가 저리 산을 무너뜨렸데......?”
앞선 사람이 잠시 산을 바라보다 다시 걸어가려 하자 뒤의 사람이 앞 사람을 불러 발길을 세웠다.
“아니~? 오래비~! 가 보게? 다 무너진 산에 뭐하러.....?”
“그래도 어머니가 기운이 심상치 않아 우리를 보내신 것인데 직접 가봐야 뭐라도 말씀드릴 것 아니니~?”
“여기서 봐도 딱 알겠구만~ 뭐....... 산이 무너진 거...... 봤으니 가서 엄마한테 말씀드립시다.”
“가서 봐야 더 많이 말할 것이 생길테니 한 번 가보자~! 이 먼 발치에서 에둘러 보고 무슨 말씀을 드리겠니~?”
“........ 나 참...... 저기까지 가는 것이 다리 아프지도 않은가? 오래빈......?”
“그럼 넌 여기 있거라~!”
앞 사람이 다시 성큼성큼 걸어가자 뒷 사람도 한숨을 픽 쉬더니 어영버영 따라가기 시작했다.
산 위는 기괴하게 무너졌다.
오랜 풍화로 둥글게 자연스레 무너진 것이 아니고 외력으로 무너져 내려서인지 산의 암석들이 쪼개지고 뜯어져내려 돌의 이빨들이 날카롭게 하늘을 보며 삐죽삐죽 세워져 있었다.
두 사냥꾼이 기억하기로는 원래 산봉우리에는 아이들이 숨찰 만큼 뛰어다닐 넓다란 평지가 있었는데 지금은 스무 걸음도 채 못 걸을 작은 공간뿐이었다.
“오래비, 볼만큼 보셨수? 그럼 이제 갑......”
“....... 도와주세요........”
“쉿~! 잠깐~!”
아주 작은 소리.
정말로 귀 기울이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아주 작은 소리가 나무와 흙이 어지러이 쌓인 뒤에서 들려왔다.
앞선 자가 빠르게 걸어가 흙더미의 뒤로 가보고는 깜짝 놀랐다.
흰 장옷의 여인이 머리가 피범벅인 남자를 부여안고 누구에게 말하는 것인지 계속 도와 달라 읊조리고만 있었다.
“.......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흰옷의 여인의 앞섶도 남자가 흘린 피로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곧 뒤의 사람도 따라와 여인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수빈님 아니우~? 히익~! 안고 있는 그 사람..... 항현님 아니오? 이 피 좀 봐~!”
“.......... 살려 주세요........ 도와 주세요........ 살려 주세요........ 도와 주세요........”
수빈이 하염없이 읊조리는 가운데 두 사람이 놀라 멀건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두 사냥꾼은 엄지와 검지, 은씨 일족의 두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