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으리-! 사자위장 나으리-!”
준모의 다급한 목소리에 야영을 준비하던 남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무슨 일인가?”
“지금 산 전체에 사기가 가득합니다.”
남이도 밤을 각오하고 있던 참이었다.
표정만큼 크게 놀라지는 않은 남이는 준모에게 더욱 많은 정보를 원했다.
“우리는 적의 선봉과 맞서는 것이 아니라 적의 후방을 교란 시키는 유격부대네! 적의 예봉의 위치와 진행을 정확히 셈하시게!”
“옛~ 나으리~!”
준모는 그 지점에서 사방으로 사기가 일었지만 일정한 방향성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 줄기의 흐름이었는데 하나가 북쪽으로 하나가 남쪽으로였다.
‘북청과 신원, 항현 형과 수빈누나네......’
큰일을 당할 만한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은근한 걱정까지 어쩔 수는 없었다.
준모가 느낄 수 있는 사악한 기운의 흐름이 산의 여기저기에서 튀어 나와 계속해서 방향성을 유지하며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괴이한 기운을 하나 포착했다.
사악한 기운 하나가 흐름을 역행하여 거꾸로 거슬러 남이의 진으로 올라왔다.
‘이건 뭐야?’
준모가 사진멸악도를 꺼내 오른 손에 잡았다. 그리고 남이에게도 바로 상황을 알렸다.
“사악한 기운 하나가 지금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습니다!”
“...... 전원-! 전투준비-!”
남이는 준모의 보고에 별다른 질문도 없이 바로 부대에 전투 준비 명령을 하달했다.
등패수와 창군이 방패를 겹쳐 막고 궁수들이 집중대형으로 조밀하게 섰다.
이미 어슴푸레 어둠이 내린 산 속에 파란 달빛이 준모가 가리킨 방향을 비춰주었다.
제일 앞에 서 있던 등패수의 눈에 말을 탄 사람의 그림자가 하나 나타났다.
“사람입니다-! 관복을 입고 있습니다-!”
“!”
준모가 놀랐다.
보기에 분명히 사람이었는데 그 사악한 기운은 상당히 이질적이고 기묘한 부분이 있었다.
‘뭐지? 이건? 분명히 사기가 이 자에게서 나온다......?’
말을 탄 사람은 길 반대쪽에 남이의 부대를 보고는 소리가 들릴 만 한 거리까지 말을 몰아 접근한 후 크게 소리를 질렀다.
“도총사 이준 나으리의 명으로 왔소이다! 반란진압 유격군이 맞소이까?”
남이가 궁수들이 재어 놓은 화살을 제지하며 앞으로 나섰다.
“난 진압군의 유격대장인 남이다! 그대는 누구신가?”
상대가 남이를 확인한 후에 말에서 내려 군례로 인사를 한 후 자기를 밝혔다.
“소인은 한양과 진압군 사령부 사이에 연락관의 소임을 맡고 있던 겸사복 유자광이라 하옵니다.”
“유자광~! 아~! 뵈었던 것 같소! 사령부에 장계를 갖고 오시던?”
“예, 그러하옵니다!”
“일단 들어오시오!”
남이는 유자광을 진 안으로 들이고 준모를 향해 물었다.
“어떤가? 아직 저 뒤에서 사기가 느껴지는 가?”
“......”
준모 입장에서는 겸사복이라는 상위계급의 당사자가 눈앞에 있는데 저자에게서 사기가 나온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아까까지 사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기운이 가셨습니다. 아무래도 다른 방향으로 간 듯합니다.”
“..... 그런가?”
남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준모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자 준모는 눈을 피하며 자신의 사진멸악도를 칼집에 다시 넣었다.
준모가 유자광을 다시 쳐다보며 찬찬히 살폈다.
은은한 사악한 기운이 피어오르듯 흘러나오는 데 확실히 요괴나 이매망량과는 틀린 묘한 느낌이었다.
준모의 머리에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고보니 산 사람이 원한을 깊이 가지고 오래 간직하면 생괴가 된다고 들었는데......’
유자광의 모습을 보며 준모는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
‘아직은 산 사람인데..... 무슨 원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있는 건가......? 괴이한 사람이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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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어지자 북청에서도 상황의 변화가 일어났다.
“크워어어어어......”
“나모가비다-!”
항현이 탄식처럼 내뱉었다.
항현은 지금 가지고 있는 위치적 잇점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에 걱정을 앞섰다.
‘우리가 가진 총통을 분산배치하면 안된다. 저 쪽의 나모가비 배치를 살펴서 집중운용을 해야 해!’
항현이 생각이 서고 바로 총통의 배치상황을 살폈다.
네 방향에 하나씩, 본진에 둘이 비상배치되어 놀고 있었다.
눈을 돌려 밖을 살피자 남문 쪽에 이미 나무가비들이 벽에 기대어 성벽에 비탈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거야! 이게 위험한 거야!’
남문 쪽에 배치한 총통을 장전한 후, 아래로 겨누어 불을 붙였다.
“콰릉----!”
“우지끈-----!”
“크어~!”
나모가비가 주저앉으며 한 쪽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바로 다시 일어나더니 성벽에 넝쿨과 가지를 계속해서 뻗어 올렸다.
항현이 옆의 병사하나를 골라 강순에게로 보냈다.
“장군께 말씀드리거라! 총통을 집중 운용해야 한다고! 이런 식으로 흩어 놓고는 일이 되질 않는다고-! 알겠느냐?”
“예!”
성벽을 타고 병졸이 뛰어간 자리에 나무넝쿨이 벌써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성벽을 올라라!”
상황을 살핀 상대 쪽의 지휘관이 병사들을 재우치자 병사들이 나모가비의 등을 타기 시작했다.
“계속 오르거라-! 승리가 눈앞이다-!”
후방에 위치한 이시애도 주변의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우며 맹렬히 지휘했다.
그 뒤에서 비합이 앞을 보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계속 이 상태로 몰아 부칠 수만 있다면 북청의 진압군은 섬멸할 수 있겠군....... 첫 걸음이 제대로 들어갈 것 같군.....”
이시애군의 월벽조가 드디어 성벽 위에 발을 올렸다.
항현이 검을 뽑으며 큰 소리로 고함을 쳤다.
“이대로 맡은 소임을 놓을 수 있느냐! 마땅히 싸워 일을 이룰 때다!”
“와아아아아~!!!!”
항현의 지휘에 성벽의 방어조가 칼을 뽑아 들고 성을 넘어 들어오는 이시애군과 백병전을 벌였다.
“챙-!” “챙-!” “챙-!”
“이야아아~! 죽어라~! 죽어~!”
“으아아아~! 사람살려~!”
칼과 창이 부딪히고 고함과 비명이 난무하는 혈해가 만들어졌다.
일부의 군사들이 강순의 지휘부에 보관하고 있던 총통 2기를 거두어 가지고 오다가 난전을 만나 배치 위치로 들어오질 못했다.
항현이 검을 앞으로 향해 발초심사세(칼을 좌우로 흔들며 베는 본국검세)로 좌우로 적을 흩었다.
발초심사에서 표두압정, 진전격적, 각 자세들로 흐르듯 움직이며 벽을 넘어 들어온 적들을 쓰러뜨렸다.
그 때였다.
“캬-항~!!!”
나모가비의 등을 타고 창귀호가 한 마리 올라왔다.
갑작스런 범에 항현의 군사들은 말 할 것도 없고 상대인 이시애군도 놀라 허둥거렸다.
“어이쿠야~! 범이다~!”
“사람살려~”
공포에 질린 비명이 피아간에 마구 튀어 나왔다.
항현이 사인검을 흔들어 피를 털어내며 가만히 주문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귀문을 지키는 영수여!
이 세상을 떠도는
가지 않는,
가지 못하는,
가야만 하는,
가여운 넋을 인도하라!......“
“콰-흥---!”
창귀호가 붉은 눈을 빛내며 항현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 듯이 뛰어들었다.
“귀인일진격-”
일기검광이 덮쳐오는 창귀호를 향해 뿜어졌다.
거대한 압력에 창귀호는 뛰어들던 힘도 아랑곳없이 뒤로 밀려 내던져졌다.
“깨~흥~!”
창귀호는 구슬픈 울음소리를 늘어뜨리며 성벽 아래로 떨어졌다.
항현의 절기를 본 모두, 피아간 너나없이 말을 잇지 못했다.
“감히 누가 내가 지키는 성벽에 올라 분탕질을 치느냐?! 모두 베어 죽이리라~!!!!”
눈을 부라리며 고함을 지르자 성벽을 오르던 이시애군이 와싹 얼어 뒤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적이 도망친 성벽 위가 한산해지자 항현은 가지고 온 총통을 배치해 기존의 총통과 합해 세문을 나모가비에게 겨눴다.
“발포-!”
“콰---콰---쾅---!”
“파캉-! 우지지짘----!”
“크어어어----!”
항현의 지휘에 세문의 일제사격에 다리가 부서져 끊긴 나모가비가 밑으로 쓰러져 성벽아래로 떨어졌다.
“와아아아아아-------!!!!!!!”
항현의 뒤에 있던 군사들이 환호를 질렀다. 그러나 항현은 환호에 동요하지 않고 눈을 들어 다른 성벽을 쳐다보았다.
“총통은 나를 따라 와라!”
항현이 총통을 든 병사들을 몰아 총통을 들고 서문으로 이동하며 나이 많은 연장자인 군졸에게 지시를 남겼다.
“지금부터 총통을 성벽에서 계속 돌릴 것이다! 상대병졸이 접근하거든 활을 쏘아 막고 다른 총통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나를 찾아라! 총통의 집중운용을 직접 지휘할 것이다!”
“예! 나으리!”
나이 지긋한 병졸의 은근히 힘 있는 대답이 항현의 마음을 든든하게 해주었다. 항현은 총통을 몰고 자리를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