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청을 점령한 강순은 여줄현이란 마을에 전시 역마참을 만들었다.
함관령너미 신원땅의 구성군의 본진과 자신들이 머문 북청성의 중간 마을이었는데 본진과 북청사이의 연락을 하는 전령들이 만에 하나의 사태가 발생하면 그 마을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한 것이었다.
신원과 북청은 짧은 거리였지만 적군이 횡행하는 상황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므로 나름의 준비를 갖춘 것이었다.
약간 명의 군졸이 말먹이 풀과 조금의 식량을 가지고 마을의 한 집을 징발하여 지내고 있었다.
한 시진(두 시간)마다 강순군과 이준군은 전령을 주고받으며 상황을 주시하기로 계획을 맞춰 놓고 있었다.
야간에 북청을 점령했던 강순은 이후에 점령완료의 전령과 이후 이상 없음의 전령을 네 번 정도 주고받은 터였다. 그리고 다섯 번째의 전령.
항현과 약간의 대화를 나눈 직후, 묘시(아침 5시~ 7시)의 끝에 보낸 전령이었는데 사시(아침 9시~ 11시)의 중간까지도 다음 전령이 오질 않았다.
‘뭔가 이상한데.......’
강순은 전령이 제 시간에 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최악의 상황을 각오했다. 그래서 다음 전령을 손수 뽑아 다음 지시를 전달했다.
“일단 우선시 할 것은 본진과의 연락이다! 그러나 이미 먼저 간 전령이 귀환하지 않고 있는 바, 중간에 어떤 변고가 생긴 것을 가정하고 경계하거라! 중간이 변고로 막혀 본진에 이르지 못할 경우 다시 돌아오되 무슨 변고인지, 만일 적군의 수작으로 그리 되었다면 적의 수가 어느 정도인지 지휘관이 누구인지, 목측(눈으로 관측함)으로 파악 가능한 정보는 최대한 많이 가져 오너라. 알겠느냐?”
“옛-! 나으리-!”
제법 다부지게 생긴 기병하나가 다시 신원 땅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고삐를 잡아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2각(1각=15분, 2각=30분)이 안 되는 시간이 흐르고......
“나으리-! 진북장군 나으리-!”
방금 보낸 전령이 다시 급하게 구르듯, 돌아 와버린 상황에 강순이 눈살을 찌푸렸다.
상황이 어느 정도 짐작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너는 어찌 그냥 돌아왔느냐? 까닭을 고하라-!”
“여줄현에 온통 병사들입니다-!”
“여줄현이-!”
아쉬움과 분노, 당혹감이 뒤섞인 탄식이 강순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 뒤에 이어지는 보고가 강순을 더욱 안타깝게 만들었다.
“각 병사들이 깃발들이 어지러이 휘날리는 데 기병이 도열하고 보군이 앞을 서 진용을 이루었사온데 진의 크기가 1만은 반드시 넘을 양이었습니다!”
“네가 허장성세에 속은 것은 아니냐-?”
“군진 안에 병사들이 가득한 것이 1만은 많이 넘고 2만도 될 만해 보였나이다!”
“......”
강순이 병사의 보고에 입을 다물었다.
여줄현이면 신원본진과 북청진군의 딱 중간, 그곳에 병력을 배치했다는 것은 본진과 선봉을 분리하겠다는 의도가 분명했다. 다만 그 병력의 양!
‘1만 이상이라고......? 2만까지 볼 수 있다.......? 그럼 그것이 본진이란 말인가? 아니면 그보다도 더 많은 다른 병사가......?’
“나으리!”
항현의 부름에 강순이 퍼뜩 정신이 들어 항현은 쳐다보았다.
“나으리! 여줄현에 적이 진주한 것은 분명 본진과 우리 북청 선봉을 나누려는 전략이옵니다!”
“그래....... 나도 그리 생각하네......”
“그렇다면 이젠 이성(북청의 북쪽)쪽에 물러나 있던 무리가 곧 밑으로 내려올 것입니다. 마땅히 대비를 해야 합니다!”
“차라리 지금 북청을 버리고 여줄현을 들이치면 본진의 군대가 북진하여 여줄현의 적을 앞뒤로 협공할 수 있지 않겠는가?”
“여줄현에 병사들이 제법 많이 배치되었다는 것은 아마도 적의 의견의 맞춤이 있는 일일 것이옵니다. 그리 시간을 주겠습니까?”
항현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반대쪽 성벽의 망을 보던 장교 하나가 강순에게 뛰어 왔다.
“북쪽에서 적군이 내려옵니다! 적의 대기에 동북면 함길도 병마절도사 이시애 대장군이라 적혀있사옵니다!”
“뭣-!?”
강순이 비명처럼 뱉은 후, 항현을 쳐다보았다.
항현과 눈이 마주치고는 바로 항현과 다른 장교들을 이끌고 북쪽 성벽으로 달려갔다.
“동북면의 이시애 대장군이 현영휘와 신숙주의 역모를 토벌코자 의병을 일으켰다-! 정말 이 나라에 충성하는 군사라면 성 밖으로 나오라-!”
“.........”
성벽의 돌들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큰소리로 항복을 종용하는 이시애의 목소리에 강순의 북청점령군은 침묵으로 대응했다.
강순이 성벽 너머로 눈을 들어 적의 전 병력을 셈해 보았다.
잠시 목측을 이어가더니 곧 성벽뒤로 몸을 감추고 휘하의 장교들에게 말했다.
“3만도 넘는 구나...... 여줄현에 2만이라면..... 다 합쳐 5만이니..... 동북면의 군사들은 모두 저 자의 손에 들어갔다는 말인가?”
“나으리~! 실망하실 일이 아니옵니다.”
항현이 강순의 기운을 북돋기 위해 힘차게 이야기했다.
“지금 이 성의 밖에는 사슬로 묶어 녹각거를 배치하고 성 벽 위에는 총통이 여섯 개가 올라와 있습니다. 미리 방어의 준비에 나서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으니 적을 쳐부수어 공을 이루실 수 있사옵니다!”
“그렇습니다!”
“버티시며 본진의 구원을 바라시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공을 이루소서-!”
“공을 이루소서-!”
항현이 앞을 잡자 다른 장교들도 다투어 강순의 기운을 북돋었다.
강순이 잠시 생각을 하더니 다시 명을 내렸다.
“그래, 일단 버티며 구원을 기다려야겠군. 빈틈을 노려 본진에 구원을 보내고...... 지금 식량을 다시 셈해 보거라!”
“지금 100석을 싣고 왔으니 급양을 하루 일곱 홉에서 다섯 홉으로 줄이면 1만 군사가 이틀은 버틸 수 있습니다.”
이미 계산을 다 한 항현이 바로 대답하자 강순이 혼잣말처럼 웅얼거렸다.
“비상식량에다가 말을 잡아먹고, 굶고 버티는 것까지 생각한다면..... 열흘도 바라볼 수 있겠군......”
“......”
장교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강순의 각오가 녹록치 않음을 감지했다.
“좋다! 전 군을 성벽 위로 배치하라! 지금부터 역도들과 자웅을 겨루리라-!”
“우아아아아~~~~!!!!!!”
성벽 아래에 있던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올라올 수 있는 최대한 성벽 위로 올라왔다.
병사들이 거대한 함성을 지르자 말들이 놀라 날뛰었다.
강순은 성벽 밑을 내려다보며 크게 고함을 질렀다.
“말들을 외양간에 넣고 그 앞 다리를 새끼줄로 묶으라! 만일 말의 다리를 푸는 자가 있다면 도망병으로 간주, 바로 다스릴 것이다-!”
병사들이 강순의 명령을 듣고는 말들을 몇몇 군데로 몰아넣고 앞 다리를 묶기 시작했다.
강순이 명을 이행하는 모습을 보고 이번에는 반대쪽 성벽 밑, 적을 보고 크게 고함을 질렀다.
“나라에 법도와 제도가 있고 역적이 있다면 그 법도에 맞춰 처결하면 되는 것이다. 정말 나라를 위하는 충의의 군사라면 이제라도 무기를 거두고 원래 위치로 돌아가라! 생업으로 돌아가라-!”
“역적들이 스스로를 반성치못하고 아직도 궤변을 일삼는 구나-! 용서를 하려해도 하늘이 그것을 시키지 않는다-! 쳐 없앨 뿐이다-!”
“우와아아아아-------!!!!!!!”
북도의 병사들이 이시애의 꾸짖음에 함성을 더해 기염을 뿜었다.
양쪽이 함성을 지르며 서로의 기선을 제압하는 고성전을 벌였다.
서로가 조선왕조, 전주 이씨 왕실에 더 충성하는 신하라고, 상대를 역적으로 칭하는 촌극에 하늘은 쓸쓸한 가을바람만 던져주었다.
“공격하라-!”
이시애의 공격령에 일정 간격으로 늘어서 있던 호각과 나팔수들이 일제히 소리를 내뿜었다.
“뿌우우우~!”
“빠아아아아앙~~~!!!!”
“공격하라-!”
“공격-!”
북청성을 둥글게 둘러싼 이시애군이 동시에, 동일한 압력으로 북청성에 쇄도해 들어갔다.
사다리가 세워지려고 했으나 성벽에 붙여 사슬로 묶어 설치한 녹각거(칼, 창을 꽂아 고슴도치처럼 만든 수레)의 방해로 성벽에 오르도록 사다리를 붙일 수가 없었다.
“사슬로 묶인 부분을 부수고 녹각거를 제거하라-!”
이시애군이 사다리군을 뒤로 물리고 망치와 철편을 든 병사들이 달려들어 녹각거를 부숴 치우려고 했다. 그러나 성벽위의 강순군이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쏴라---!”
성벽뒤에 숨어있던 궁수들이 일성지휘에 일제히 몸을 들어내어 밑의 녹각거 철거군에게 화살을 쏘아 붙였다.
“으악-!” “아이고---!” “아앜---!”
“우리 병사들을 엄호하라-! 활을 쏴라-! 성벽 위로 고개도 쳐들지 못하도록 해라-!”
성벽아래 병사들이 성벽위의 병사들에게 사살(射殺)당하자 뒤에 있던 이시애군의 궁수들이 성벽위의 강순군의 궁수들을 향해 사격을 시작했다.
중간에 어정쩡하게 사다리와 방패를 들고 있던 이시애 보군은 그 자리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있었다.
전투의 문법이 성 밑 병사의 녹각거 제거와 성 윗 병사의 사격저지로 자리잡혔다.
“준비-!”
항현의 성벽위에서 그들만이 들을 수 있는 크기의 목소리로 지시를 내리자 궁수들이 성벽에 바짝 붙어서 활시위에 화살을 재었다.
“쏴-!”
“피융-!” “쉬--이잌-!” “슝-----!”
“으악-!” “아앜---!” “허엌-!”
일성군호에 궁수들이 튀어 올라 성 밑의 녹각거 제거 병들을 사살했다. 그러나 성벽위의 궁수들도 상대의 화살세례를 받았다.
“휘융~!”
“으헉---!”
항현의 옆에 있던 궁수가 왼쪽 가슴에 화살을 맞고 뒤로 넘어졌다.
항현이 어깨를 붙잡아주지 않았다면 성벽 아래로 굴러 떨어졌을 것이다.
“아이구구....”
“자네..... 화살이 박혔네! 여봐라-! 이 사람의 갑옷을 벗겨라-!”
항현이 옆의 병졸에게 부상부위를 볼 수 있도록 조치를 명하고는 자신의 활을 들어 밖에 궁수들을 향해 쏘았다.
먼발치의 적의 궁수가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명중이오~!”
항현의 사격을 지켜본 궁수가 너스레를 떨며 화살을 맞고 누워있는 궁수에게 위로처럼 한 마디 건넸다.
“여보시게~! 자네의 원수를 여기 교위 나으리가 갚아주셨네. 허허허~”
“별 소리를 다하는 구먼......”
“감사합니다요. 교위 나으리~!”
병졸들과 아직은 서먹했던 항현이 그 한 화살로 꽤 많이 거리를 좁히게 되었다.
아직 왼쪽 가슴에 화살을 꽂고 있던 병사가 피를 쏟으면서도 실실거리며 고맙다고 항현에게 인사를 건네자 피투성이의 상황이 되려 우습게 여겨졌다.
“상처는 어떤가?”
“깊이 박혔습니다. 억지로 뽑으면 상처가 아물기 전에 피를 흘려 죽을 테니 지금은 그대로 놓는 것이 낫습니다.”
옆에서 상처를 본 늙은 병사가 항현에게 말하며 화살을 짧게 부러뜨려주었다.
“뚝!”
“아야-!”
화살이 부러지는 진동에 상처가 움직이자 피격된 병사가 짧게 비명을 질렀다.
화살을 부러뜨린 늙은 병사는 싱글거리며 아직 피 흘리는 병사를 일으켜 활을 잡게 했다.
항현이 그 모습을 동그란 눈으로 바라보자 늙은 병사가 항현에게 말했다.
“전투가 길어지면 이 정도 일은 다반사가 됩니다. 빨리 적응하셔야 될 겝니다. 나으리...... 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