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현은 전령하나의 안내를 받아 바로 회양에 주둔하고 있다는 북청반란 토벌군의 사령부로 달려갔다.
군의 전령이다보니 한 번도 쉬지 않고 그대로 서수라 대로(한양부터 서수라까지 연결된 조선의 10대 대로중 하나)를 따라 달음박질쳤다.
두 번에 걸쳐 역에서 말을 갈아타며 전령과 한마디 말도 나누질 못했다.
아예 전령이 항현과 크게 대화를 하려 들지를 않았다.
기묘한 긴장에 항현이 토벌군이 지금 사정이 어려움을 알았다.
그대로 뛰어 그 밤에 사령부의 외곽 초소에 도착한 항현은 졸린 눈을 부비며 안에 소리를 쳤다.
“전하의 서신을 가져왔소! 전령을 확인하시오!”
목책을 두른 진지의 문에서 사람이 빼꼼 얼굴을 내밀고 같이 간 전령을 확인하더니 이내 진문이 열렸다.
전령이 항현을 안내하여 가장 중앙의 유막을 친 장막으로 안내하자 그 곳에 앉아있던 한 사람이 일어나 항현을 맞았다.
“전하의 서신이라고?”
“그렇습니다. 도총사이신 구성군 대감께 전하라 명을 받았습니다!”
“내가 구성군일세, 서신을 주시게.”
항현이 주변의 분위기로 그가 모든 계급의 가장 윗사람인 도총사임을 알고는 서신을 건넸다.
분위기상으로는 가장 높은 서열일 것 같은데 얼굴은 항현과 비슷한 연배로 보였다.
‘상당한 동안인가보군......’
항현의 생각과 상관없이 구성군 이준은 서신의 봉을 서둘러 열어 그 안의 내용을 보았다. 한 동안 읽고 나더니 바로 항현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자네, 지금 우리 군이 왜 이곳에 이리 대기상태로 있는 지 아는가?”
“북청에 반란을 진압하기위해 가시는 길로 압니다만......”
“하하..... 하나도 모르는 구만......”
이준이 웃으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며 항현에게 조분조분 말해주었다.
“우리가 이곳에서 북청의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척후대를 몇몇 파견했었다네. 약 열에서 스물이 안되게 조직하여 먼발치에서라도 적의 군세를 알아보라는 의미였지......”
“예.......”
이준이 항현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천천히 훑었다.
항현도 그런 이준의 눈빛을 알고 있었지만 앞으로 자기 밑에 배속될 부하의 가능성을 살피는 것이리라 생각하고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간 놈들이 제대로 돌아오질 못한 게야. 두서넛, 대여섯, 제대로 수를 보존해오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요, 귀환한 놈들마저 헛소리를 지껄이며 몸져 누워버렸다네. 다른 이들이 적에게 당했냐고 물어봐도 호랑이가 쫓아온다는 둥, 나무거인이 잡아 갔다는 둥, 시체가 걸어와 잡아먹었다는 둥.......”
“.......”
항현이야 전문적으로 보아왔던 일이니 만큼 말만 들어도 상황이 손에 잡혔다.
지금의 토벌군의 안에도 아마 한양 출신의 병사들은 2년 전에 있었던 상황을 겪었을 테니 미루어 짐작은 할 것이었다. 그러나 이 구성군은 2년 전에는 아마 도성에 없었는 지 상황을 전혀 짐작도 못한 모양이었다.
“몇몇 참모들이 이런 일을 전문으로 처리하는 부대가 있다는 말을 해 주더군. 도성에서 큰일이 있을 때 활약했던 것을 봤다나? 그래서 도성에 연락을 했더니 전군 대기령이 떨어진 게야......”
“예~”
“여기 주상전하의 서신에는 자네가 이 일에 적임이니 함께 보낸다 하시었구만, 이런 일에 능숙하신가?”
“작은 재주가 있어 잘 간직한 바, 이런 일만은 제가 남보다 조금 나은 면이 있사옵니다.”
“음.......”
이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의 참모들을 모두 둘러 보았다.
“전하의 명이 이 사람의 재주를 믿고 대기를 풀고 작전을 다시 개시하라 하십니다.”
유막안의 모든 사람이 항현은 쳐다보았다.
항현은 약간 낯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이준이 생각났다는 듯, 뭐라 말하려 할 때 갑자기 밖에서 병사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나무..... 나무가 걸어와 목책을 부수고 있습니다! 아주..... 아주 큽니다!”
보고병의 막 울음이 터지는 듯한 소리에 항현은 졸음이 확 달아났다.
자신의 전문분야의 일이 나타난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유막을 나서며 항현은 자신의 사인검을 뽑아들었다.
칼날이 떠르르 떨며 검광이 푸르게 빛났다.
가까운 곳에 베어야할 사악한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항현도 그런 검의 기지개를 느꼈다.
“크워어어어~”
“으아아아아~ 이게 뭐냐~!”
“사람살려~”
애처로운 비명과 이 세상 것이 아닌 괴성이 어우러져 항현은 자신이 있어야할 자리에 온 것임을 알았다.
“동북방 지옥문을 지키는 범의 성난 울음
괴로운 인생에 괴로워하는 산자들의 울음
남겨진 원한에 격노하는 남은 자들의 울음
불길에 몸을 태울 죄인들의 두려운 울음
달님만이 위로하며 소리 없이 우노매라.....”
천천히 도주하는 병사들의 사이로 사인검을 들고 걸어가며 시야에 목표가 될 나모가비를 넣었다.
무인다운 거리 측정으로 찬찬히 발을 놀려 최적의 거리를 확보했다.
그런 항현을 도총사인 구성군 이준을 포함해서 유막 안의 모든 참모들이 집중하여 보고 있었다.
“팍-!”
발끝으로 땅을 박차는 소리가 나며 항현이 나모가비를 향해 날았다.
사인참사검이 섬광을 흩뿌리며 밑에서 위로 둥근 반원을 그리며 올려졌다. 동시에 항현이 입에서 기합이 발했다.
“귀인참월격-!”
“커어어어어.......”
“쿠-쿵-!”
사악한 기운을 멸하는 저승의 호랑이의 기운이 나모가비를 반으로 찢어 뒤로 넘겨 버렸다. 진채 안에서 커다란 환호성이 일어났다.
“으와아아아아~”
항현을 뒤에서 바라보던 토벌군의 지휘부 참모들도 그 광경을 놀랍게 바라보고 있었다.
“저런 커다란 형상을 칼 한방으로 반으로 가르다니......”
“무예도 일정 수준을 넘어선 상당한 무장이옵니다. 총사.”
“......”
옆의 참모의 말에 눈을 커다랗게 뜬 구성군 이준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항현은 이 나모가비가 어떤 존재인지 알기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넘어진 잔해를 뒤적이며 마력의 근본이 되는 인골편을 찾고 있었다. 찾지 못한다면 곧 이 나모가비는 형상을 회복하고 다시 날뛸 것이다.
‘대충 중심점 쯤에 있던데 이 나모가비가 너무 커서 중심이랄 수 있는 부분이 너무 넓구나...... 사기가 어렴풋이 느껴는 지는 데 정확하게 알 수가 없군...... 그러고보니 이런 거 잘 찾는 분은.......’
“크어~!”
항현이 인골편을 찾던 중 잠깐 딴 생각을 한 순간, 갑자기 나모가비의 잘려진 반신이 움직였다.
팔로 보이는 부분이 크게 하늘로 솟구쳐 오르더니 항현을 놀려 납작하게 만드려 그대로 쳐 내렸다.
“아차!”
“저런~!”
항현과 지켜보는 병졸과 참모, 구성군까지 모두 안타까움에 단말마가 터져 나온 순간!
“새는 불붙은 땅위로 비구름을 데려 온단다.
불붙은 새는 악인의 땅위를 남기지 않고 태워버린단다.
밝은 눈의 새는 한울님의 심판에 공정한 증인이 된 단다.
구름 속에 밝은 눈의 불붙은 불새야. 지금 이리 오너라.
은조화격진-!”
항현의 오른 쪽에서 커다란 불꽃의 새가 화살처럼 날아 들었다.
“우지끈-!”
“크어허어엉~!”
두꺼운 나무가 부러지는 커다란 탁음이 들리더니 바로 나모가비의 오른 팔을 날려버렸다. 그리고 나모가비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탁음의 후렴을 이었다.
항현은 이 주문을 잘 알고 있었다.
빛나는 불새의 날개 짓에 악한 존재들이 날아가는 파괴력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가진 주문.
이 주문의 주인도 아름답기 그지없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지금 항현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나의 품으로 안기시는......’
사인검을 역수로 쥐고 양손을 어거주춤 올리며 “그 사람”을 맞이하려는 항현을 빠르게 지나쳐 누워있는 나모가비의 몸체에 몸을 수그린 “그 사람”은 이내 인골편을 찾아내어 손가락으로 끄집어냈다.
“찾았습니다! 나으리! 큰일날 뻔 하셨어요. 항현 나으리.”
“......수빈 아가씨......”
항현이 멋쩍게 피실피실 웃으며 수빈의 이름을 부르자 수빈이 반갑게 인사하며 대답했다.
“나으리! 어서 오셔요. 소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