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북청반란전
1.이시애
캄캄한 방안.
한 인물이 공자의 신위를 앞에 두고 이배(두 번 절함)를 정성껏 올렸다.
그 배향의 옆에는 야인인 듯, 짐승 털 가죽옷을 입고 정좌해 앉아있는 여럿의 사람들이 있었다.
이윽고 신위에 배례를 마친 인물이 옆에 앉아 있던 사람들을 향해 고쳐 앉으며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니....... 도령이 한양을 쳐 떨어뜨릴 수 있도록 돕겠다는 얘기신가?”
“그렇소.”
“..........”
말을 꺼낸 쪽은 제법 풍채가 있는 거구의 노안에 턱에는 두텁게 꼬불 수염이 그득했고 안광은 호롱잔처럼 빛을 내는 노인이었다.
냉소적인 긍정으로 말을 받은 쪽은........
...... 해명이었다.
창경궁까지 밀고 들어가 임금 이유의 목을 취하기 직전, 기관 축귀검과 동하군, 이유의 천리순응에 결국 제지당해 목적을 이루지 못한 그 해명이었다. 그리고 해명의 뒤에는 비합, 건암, 종희가 같이 정좌로 앉아 해명을 보좌하고 있었다.
“그대의 힘을 확인은 하였소. 나무가 사람처럼 움직이는 것도 보았고 죽은 범들을 군대처럼 부리는 것을 보았소. 그러나 언제나 하나에 대극이 되는 다른 하나가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 당신이 그런 힘을 쓴다면 아마도 나라에도 그런 힘을 쓰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그들은 당신을 막을 것이오. 그래도 당신이 이길 수는 있겠소?”
해명은 눈 밑 그늘이 검게 짙고 거뭇거뭇 자란 턱 밑 수염도 제대로 정리가 안되어 수척한 모습이었지만 그 눈만은 달빛을 반사하는 사금파리마냥 하얀 빛을 뿜고 있었다.
“혜안에 감탄했습니다. 물론 그 말씀대로입니다. 조정에서도 저희가 같은 힘을 가진 이들이 있었지요. 그러나.......”
“있었다고.....? 그러나라면......?”
해명은 한 호흡 쉬고 마주보고 있던 호롱 안광의 노인에게 대꾸했다.
“그들은 이미 다들 쫓겨 귀양살이중입니다.”
“음~? 그건 무슨 소리요?”
해명이 눈을 아래로 내리깔며 대답을 이어갔고 앞에 앉아 있던 노인도 해명의 말에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었다.
“성리학의 나라 아닙니까? 당장 내 공격에 일이 급할 때는 좋다고 부렸지만 막상 내가 한 걸음 물러나자 더 이상은 효용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모두 내 쫓아 버리더군요.”
“조정이 그들을 용납 못했다?”
“그렇소.”
호롱불 눈의 노인이 가만히 생각을 하더니 다시 해명에게 물었다.
“당신이 활동하면 조정에서도 그 자들을 불러들이지 않겠소?”
“다시 이용당해줄까요? 난힘자가 특별한 사람들이긴 합니다만 바보는 아니죠. 저는 수도의 궁궐을 공격해 들어가 대신들과 임금의 목숨을 해할 수 있는 지근거리에까지 들어갔었습니다. 그것을 조정의 난힘자들에게 저지당했지요. 조정대신들은 그런 위기에서 자신들을 구한 사람들을 귀양살이를 시킨 겁니다. 자신들의 성리학이란 종교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미명으로요.”
“......”
노인은 여전히 약간 못 미더운 얼굴로 해명을 바라보자 해명이 노인이 불안해하는 지점을 읽었다. 그리고 답해주었다.
“.....그리고 만일 다시 그 자들이 조정에 협력한다고 해도 우리는 그들을 쳐부술 충분한 역량이 됩니다.”
“믿어도 되겠소?”
“........”
노인의 확인에 해명은 말없이 웃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노인은 해명의 눈을 잠시 쳐다보다가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리고는 호탕한 외침으로 대답했다.
“좋소! 여기 이놈, 이시애! 함길도(함주와 길주, 동북면)에 태어나 평생을 야인들의 침략과 조정의 토색질 사이에서 마음 졸이며 살았던 인생, 그나마 고향어른의 지역 다스림 정도는 나라에서 인정해 주었거늘, 이젠 중앙 조정이 관리도 마음대로 파견하여 저들 마음대로 변경인들을 구워 먹겠다니 어찌 이대로 당하고만 있겠소!”
“......”
“내 당신의 힘을 믿고 한양으로 군을 몰아 내려가 보리다!”
해명이 눈을 들어 자신을 내려다보는 덩치 큰 노인을 미소지으며 바라보았다.
스스로를 이시애라고 말한 위세당당한 노인은 그 자리에서 해명과 힘을 모으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사흘 후..........
강효문은 함길도의 군사감찰을 위해 파견된 절도사였다.
강효문은 변경, 함길도에 병마절도사로 온 자신의 처지를 곰씹으며 자신의 평소 처신에 대해 찬찬히 고민하고 있었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함길도는 태조 이성계가 일어난 왕지이긴 하나, 태조가 조사의를 조종해 일으킨 조사의의 난에 협력한 지방으로 중앙 조정에서는 드러나게 차별을 받는 곳이었다.
그곳으로 부임되어 가는 지방관들도 그 곳으로 가는 것을 보통의 부임으로 생각하지 않고 일종의 좌천이나 중앙에서의 축출로 여기고 있었다.
전대의 세종, 문종때는 임금, 스스로의 국토 확장의 의지로 북방변경의 지휘관들을 가려 뽑고 상당한 지원을 하고 있었다.
최윤덕, 김종서, 이징옥....... 그때의 지원을 받던 군사지휘관들이었고 또, 그들은 그만한 성과를 분명히 이루어 냈었다. 그러나 비정상적 방법으로 왕위를 빼앗은 이유(세조)는 변방에 강한 힘이 도사리는 것을 원치 않았다.
김종서는 스스로 직접, 사람을 몰고 가 철퇴로 머리를 쳐 죽였고 김종서의 후계자인 마지막 북방장군 이징옥도 반역자로 몰아 자기 군대의 장군을 자기 군대가 죽이게 만들었다.
그런 상황들을 겪고 난 후로 이유의 외방에 대한 불신은 더욱 심해졌다. 그래서 나온 방법이 중앙의 5위로 전국의 군사 지휘권을 모으고 변방에 외적의 침공이 있을 시 지방 별진은 방어만을 하며 중앙에 기별하여 중앙 군대의 지원을 기다리는 방법이었다.
지휘가 없이는 이동도 없는, 언제, 어느 만큼의 규모로 여진족의 침공이 있을지 모르는 변경을 한정된 병력만으로 기다리기만 하는 전략.
외방의 힘이 약화되어 백성들이 이방인들에게 죽는 것은 별문제가 아니었다.
외방의 지휘관이 지방의 힘을 길러 중앙정부에 반항하지 않는 것만이 최우선 과제였다.
국왕, 스스로의 윤리적 약점이 나라의 전략선택의 폭을 좁히는 결과가 된 것이다.
그러면서도 강한 여진족의 공격에 방어가 뚫려 자신들의 고장이 불바다가 되고 나면 지역민들은 방어에 충실치 않았다, 허약했다는 이유로 처벌까지 당해야 했다.
모질고 지겨운 국경.
그 곳에 한 평생 산 토착민들도 떠나고 싶어 하는 곳이 수도에서 파견되어 오는 서울 벼슬아치들에게는 또 얼마나 고된 곳이겠는가?
고생을 한다해도 알아주지도 않는 곳이 고생 끝에 맡은 임무를 실패하면 되려 벌을 받아야하는 동북면 변경에서 강효문도 그 지역의 발전과 번영보다는 어서 탈출하고픈 욕심으로 보편상식, 선비의 정의 따위는 깡그리 잊고 재물의 축적에만 열중하였다.
‘내가....... 뭘 잘못하였는가.......?’
강효문은 자신에게 빈곤한 자문을 하여 곧, 한심한 자답을 얻어내었다.
‘방법은 하나 뿐이지 않겠나.......? 부지런히 거두어 부지런히 뿌리는 수밖에.......’
강효문도 전임 벼슬아치들과 다를 바 없는 한심한 결론을 가지고 자신의 부임지인 동북면 변경을 다루기 시작했다.
동북면, 함주와 길주의 백성들은 방어에 필요한 물자를 스스로 생산하여 갖춰야하는 어려움에다가 해당지방에 애정이 없는 목민관의 서울에 높은 벼슬아치들에게 아첨하기 위한 비용까지 감당하는 이중고로 불만이 높을 대로 높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서울로, 가능하다면 평양 이남의 지방으로 배치를 원하는 강효문은 각 고을마다 여유 물자를 셈하고 조금이라도 손을 델 수 있는 부분은 모두 긁어모으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것으로 중앙의 현영휘나 황창성등에 바칠 심산이었다.
한참 토색질이 무르익어가는 그런 세월의 그에게 길주의 부호인 이시애가 면담을 청해왔다.
“어른께서 어쩐 일이십니까?”
“절도사 어른의 큰 수고에 작은 격려나마 아끼는 것이 이 나라 백성의 소임이 아닌 듯하여 그저 부족하나마 성의를 다해 준비하였나이다. 준비된 것을 거두어 주소서......”
나이도 지긋한 어른이 극진한 존대로 이야기하자 강효문은 얼굴에 웃음을 띄우며 공손히 응대했다.
“공인이 스스로를 갈고 닦아 백성의 삶을 보살피는 것은 당연지사인 것을 이리 응원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저 조금 더 열심히 해달라는 채찍질로 받아들이겠습니다. 허허허......”
안 받겠다는 소리는 안하는 강효문의 앞에 제법 큰 궤짝이 놓여졌다. 그런데 그 궤짝을 들고 온 젊은이의 얼굴이 어디선가에서 본 얼굴이었다.
‘누구였더라.......’
왠지 비가 내리는 풍경이 연상되는 얼굴이었다.
거뭇거뭇 이제야 터럭이 나기 시작한 턱이 쌀알모양으로 내리며 삼각산의 절벽 능선을 연상시키는 곧게 솟은 코가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도 동굴 속의 호랑이를 연상시키는 깊은 눈 속의 하얀 안광이 기억에 언뜻언뜻 솟아났다.
‘어디서 봤지......?’
“무얼하느냐! 어서 상자 안의 것을 절도사 대감께 올리거라!”
강효문이 기억을 더듬고 있을 때, 이시애가 상자를 짊어지고 온 일꾼 청년에게 군령처럼 절도있게 지시를 내렸다.
강효문이 눈치가 있었다면 방금 이 지시의 묘한 긴장감을 느꼈을 것이다.
바로 열린 궤짝 안에는 두 자루의 철극이 있었다.
전혀 관계없는 사실들, 생각나지는 않으나 어딘지 낯익은 얼굴, 머릿속에 떠오르는 비가 내리는 풍경, 그리고 “ㅓ”저 모양의 쌍철극.
‘범궐(궁궐을 침범함)했던...... 바로 그!’
강효문은 생각이 났다.
어린 왕의 한을 갚겠노라 온갖 귀신을 몰고 임금이 계신 궁궐로 쳐들어 왔던!
임금의 바로 앞까지 날이 퍼런 칼을 들고 접근했던!
바로 그 놈!
경악의 표정으로 일꾼과 이시애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 표정을 읽은 일꾼으로 변장한 해명은 바로 상자의 철극을 꺼냈다.
병장기를 본 강효문이 자신의 호위군졸들에게 비명처럼 령을 내리는 찰나,
“여봐라! 어서 이 자들을.......”
“쉬-잌---!!”
“툭!”
말도 맺지 못하고 그걸로 끝났다.
땅에 떨어진 강효문의 머리가 마치지 못한 명령을 잇고자 입을 뻐끔거리긴 했지만 폐와의 연결이 끊어진 입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밀려나오질 못했다.
놀란 호위 병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창을 거머쥐자 이시애가 앞에 나섰다.
“함길도의 아들들아! 너희는 너희를 낳은 부모들의 시체를 보겠다는 말이냐!”
이시애의 외침에 함길도에서 징병되어 절도사의 호위를 하고 있던 병졸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모였다.
“이제 함길도에는 각도의 죄인들을 끌어다 던지는 쓰레기장이 되어가고 있으며 왕위를 찬탈한 왕은 이 고장이 이징옥과 관련있다하여 남도의 군사를 끌어 모아 동북면 사람들을 다 죽이려 한다! 내가 이런 부임 관리들의 작태를 파악하여 의로운 군을 일으키는 것이다! 나를 죽이려는가!”
함길도에서 뽑혀 절도사의 호위병이 되었지만 좋아된 것도 아니었다.
고향 어른이 고향 사람들을 위해 일어 났노라는 말에 더욱 마음이 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나를 따르라-! 이젠 우리 힘으로 우리 동북면 사람들의 한을 풀자-!”
“예-!”
그 자리의 스물 정도의 호위병으로 따라온 젊은이들은 이제 목이 잘려 뒹구는 보호대상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새로운 고향 어른의 군병이 되었다.
역사에는 지방에 파견된 경관, 절도사 강효문에 독대를 청한 이시애는 만난 그 자리에서 불문곡직, 강효문을 베어버렸다고 되어 있다.
이유가 옥좌에 오른 지 13년 만의 일, 그 해 5월의 일이었다.
해명이 다시 조선을 노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