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싸우던 준모와 건암, 그리고 그들을 돕던 일행들이 모두 놀라 해명 쪽을 쳐다보며 싸움을 멈추었다.
커다란 거인처럼 그 형상이 나타난 동휘에 놀라서 였다.
후방에 신료들도 자신들이 적극적으로 또는 소극적으로 그 죽음에 한 손 보탠 죄의 결과물에 아무 말도 못하고 바라 만 보았다.
어떤 이는 그 처참하고 거대한 모습에 고개를 돌리고 주저앉아 벌벌 떨며 울었다.
이유는 차분히 거대한 모습으로 나타난 자신의 업보를 올려다보았다.
어린 장조카의 입술과 목줄기가 피로 범벅이었다.
이유는 가만히 그 아픔을 올려 보았다.
자신의 죄를 가만히 목도하는 시간, 이유의 눈에서 가만히 눈물이 흘러내렸다.
빗물에 젖어 흘러내리는 빗물인지, 눈물인지, 볼을 타고 흐르는 온기로만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 장조카의 커다란 귀신이 허리를 굽혀 이유에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전하~! 피하소서~!”
황창성이 비명처럼 이유에게 피신을 권하였지만 이유는 오랜만에 본 조카의 얼굴을 쳐다보며 해후의 정을 만끽했다.
“동휘야~ 허허허허.......”
웃음이 웃음 같지가 않았다.
도리어 그 자리에 아무나 펑펑 울어도 그 웃음보다는 신이 날 것 같았다.
통곡같은 헛웃음에 허리를 굽힌 상왕, 동하군 이동휘의 귀신이 이유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이유는 어쩐지 무섭지 않았다.
그대로 입을 벌려 자신을 씹어 먹어도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임금 이유는 그대로 두 팔을 동하군의 얼굴을 향해 뻗었다. 그리고 그 얼굴을 만져 보려는 듯 손을 한껏 뻗어 손가락까지 쫙 폈다.
동하군 이동휘가 흠칫 얼굴을 들어 이유의 손을 피했다. 그저 이유와 눈을 마주치고 묵묵히 쳐다 만 보고 있었다.
이윽고 이유가 두 손을 내리며 앞으로 공수하고(절하기 전 손을 앞섶에 모음) 머리를 숙였다.
얼굴에는 이미 미소가 사라지고 평온함을 그린 듯한 무표정하며 경건한 낯빛이었다.
손을 눈을 가리듯 올렸다가 허리 아래까지 내리며 좌측 무릎을 굽히고 이어 오른 무릎을 굽히며 엎드렸다.
공수한 손이 땅을 짚고 이어 익선관을 쓴 이마가 그 위에 닿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엎드려 절하던 반대 순서로 머리를 들고 오른 발을 펴고 왼발을 이어 피며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어 자신을 바라보는 조카의 거대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다시 공수한 손을 내려 땅을 짚고는 양 무릎을 순서대로 굽혀 몸을 엎드렸다.
다시 이마를 공수한 손 위에 댔다 떼기를 한 번, 두 번, 세 번 반복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일어난 이유는 다시 공수한 채로 고개를 위를 올려 동하군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눈물이 맺힌 그대로 다시 땅을 손으로 짚고 무릎을 꿇어 엎드려 머리를 땅에 붙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
삼배구고두.
성리학의 예법에서 상대에게 바칠 수 있는 가장 극존의 배례. 그리고 이유는 울기 시작했다.
처음 흐느끼더니 이내 크게 울다가 마침내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동휘야....... 어흐흐흐흐~”
양팔과 양 무릎, 머리를 땅에 대고 하염없이 울었다.
“정말..... 정말....... 미안하다........ 으흐흐흐흐~~~~~!!!!!”
오체투지, 머리와 모든 체절을 땅에 붙이고 보는 이들에 따라서는 한나라의 임금에게 너무나도 굴욕이라고 받아 들일만한 자세였지만 이유는 아무 상관 안 했다.
“미안하다! 조카야! 동휘야! 미안하다! 어흐흐흐흐흐~~~~~!!!!!!”
임금의 통곡에 귀신 피해 멀리 떨어져 있던 신료들도 침통한 얼굴로 이유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감히 다가가질 못했다.
거대한 크기로 이유를 굽어보는 지난날의 상왕, 동휘의 모습에 압도된 까닭이었다.
신료들은 당시 계유정난의 수혜자들인데다가 당시 동하군 사사에 대한 공론에 찬성자들이니 살인동조자들이었기 때문에 자신들도 죽을 가능성의 소지자들이었다.
두 길(한 길= 1.8m 두 길= 3.6m)크기의 동하군 귀신 앞에 저들 죽을 까봐 도저히 나설 수가 없었다.
“어흐흐흐흐흐~~~~~~ 죽여다오~~~~~!!!!! 죽여다오~~~~~!!!!! 미안하다~~~~! 미안하다~~~~!!!!! 동휘야~~~~!!!!!”
처절하도록 서러운 이유의 통곡이 계속되며 전의를 잃은, 아니 전의를 뺏긴 항현도 잠시 뒤로 물러난 준모쪽의 인원들, 준모와 엄지, 검지 그리고 상대편의 건암과 종희도 멀건히 바라만 보게 만들었다.
곤룡포에 익선관을 쓴 지존의 사나이의 대성통곡을 모든 사람들이 우두커니 지켜만 보고 있었다.
“숙부........”
음산하지만 차분한 목소리에 이유의 통곡이 멈췄다.
이유는 일어나지 않고 양손과 무릎이 땅에 붙은 채로 고개만 들어 저 높이 자신을 굽어보는 동휘의 얼굴을 보았다.
죽은 자와 죽인 자가 서로를 응시하며 말로 못할 긴 얘기를 눈으로 나누었다.
“귀신이 되면 산 사람의 마음속을 꿰뚫어 본답니다.......”
차분하게 상왕 동휘의 귀신이 말을 이어갔다.
“....... 진심이란 것을 알겠습니다.........”
이유가 절망하는 눈으로 장조카의 눈을 올려보았다.
“......저는 이제 편해집니다........ 숙부님도 편해지세요........”
“동휘야---! 나를 죽이거라-----! 나를 편하게 해다오------!”
동휘의 얼굴에 미소가 스치듯 지나가며 조용히 그 자취가 사라졌다.
그 큰 상왕 동하군 이동휘의 귀신이 사라지자 이유는 울부짖었다.
“동휘야---! 동휘야---! 나를 데려 가거라------! 나도 편하게 해다오------! 동휘야---! 어흐흐흐흐흐-------!”
울부짖는 이유의 앞에서 귀신이 사라진 자리에 해운이 작은 몸을 휘청거리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댔다.
맞은편의 수빈과 멀리 있던 종희가 놀라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옆에 같이 있던 해명이 날쌔게 달려들어 아이 손에 흙 묻는 것을 막았다.
“운이야~! 어떻게 된거야~! 운이야~!”
“......오빠......”
나모가비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리고 창귀호가 갑자기 네발을 하늘을 향하고 뻗뻗하게 굳어갔다. 또한 귀갱시들도 줄 끊어진 꼭두각시처럼 하나 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해명의 얼굴에는 난감함이 역력했다.
자신의 대업, 자신의 반정의 명분인 상왕, 동하대군, 이동휘가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으니 황당할 뿐이었다.
“운이야~! 네 친구 어디 갔니? 빨리 네 친구 다시 불러! 운아!”
해명이 조르듯 얘기하자 해운이 눈꺼풀을 파르르르 떨며 해명에게 답을 해주었다.
“......안돼......”
“뭐?!”
“친구, 이젠 집에 간다고 했어. 다시 돌아오지 않는데....... 아주 아주, 나중에 다시 만날 지도 모른다고 웃었어........”
“뭐라고---!!!”
종희가 해명과 해운의 자리로 서둘러 달려와 의식이 가물거리는 해운을 받았다.
해명은 상황을 이미 파악했다.
상왕 이동휘가 성불한 것이다.
이제 더는 이승에 미련을 두지 않고 하늘을 오가는 자유로운 바람이 된 것이다.
땅에 발 붙이고 사는 사람들이 여지껏 머리 싸매고 짜 놓은 계획들, 계산들을 모두모두 버리고 시원한 바람이 된 것이다.
해명은 잠시 난감함에 멍한 눈을 지었다. 그러나 그 귀에 한 사람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동휘야~~~ 동휘야~~~ 나를 죽이거라~~~~ 나를 편하게 해다오~~~~”
힘없이 주문을 읊조리듯 흐느끼는 이유를 본 해명은 해운을 종희의 품으로 넘기고 철극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홀로 비를 맞으며 울고 있는 이유에게 걸어갔다.
동휘 귀신이 목에 활줄을 묶고 앞섶을 피로 물들이고 있음에도 사라질 때는 만족한 미소의 얼굴이었고 조카를 보내는 이유는 슬픔과 죄책감에 하염없이 무너지는 얼굴이라면, 이유에게 다가가는 해명의 얼굴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고야 말겠다는, 얻고자 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하늘의 이치도, 인간의 정리도, 반드시 넘고야 말겠다는 그야말로 짐승의 눈, 짐승의 의지, 짐승의 낯짝이었다.
“동휘야~~~ 동휘야~~~ 나를 죽여다오~~~~ 나를 편하게 해다오~~~~”
하늘을 보며 울고있는 이유의 등 뒤로 다가온 해명의 철극을 쥔 손이 높게 올라갔다. 그리고 이유의 목을 향해 세차게 그어 졌을 때!
철극은 그 목표를 잃고 허공을 갈랐다.
항현이 임금 이유를 안고 옆으로 굴렀기 때문이었다.
“수빈 아가씨! 전하를 부탁합니다---!”
“예-!”
항현이 사인검을 내밀며 앞으로 나섰다.
그 모습에 해명은 힘 빠진 웃음을 지었다.
“결국 끝에 끝까지 제 앞을 막아 서시네요. 어쩐지 이리 될 것 같았어요. 처음 뵈었을 때부터......”
“해명! 내 칼이 힘을 되찾았다! 무슨 의미인 줄 아느냐?”
해명이 고개를 살짝 들어 올리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아까 힘이 사라지자 쥐고 있던 과자를 뺏긴 아이처럼 울먹거리더니...... 이젠 힘이 돌아 오셨습니까?”
“사인참사검은 하늘의 이치로 지옥의 동북방 귀문을 지키는 귀신호랑이의 힘을 지상에 끌어 오는 검이다. 동하군께서 내 여동생의 몸을 빌어 내려 오셨을 때는 천리가 그쪽에 있으며 이쪽은 역천자 였으나......”
해명이 계속 미소를 유지하며 항현의 말을 묵묵히 듣기만 했다.
“....... 지존의 몸으로 오체투지, 낮은 땅에 몸을 내리셔 용서를 비셨으니 하늘도 감복하셨다! 이젠 이쪽도 천리가 있다!”
“그래요. 그 쪽도 다시 하늘이 서 주셨습니다. 그러나 내 쪽의 천리도 아직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럼 하늘의 뜻은 무엇일 것 같습니까?”
“........”
“힘이지요. 더 강한 놈이 마음대로 하라는 겁니다. 이 나라의 옥좌는 결국 항현님과 나의 싸움의 승자가 결정하는 겁니다.”
“해명, 그만 물러나라! 가엽게 돌아가신 동하군께서 성불하신 것은 너의 덕이다! 이젠 너의 덕을 쌓아 업을 갚으며 살아가라!”
“후후후후~~~~”
해명이 빙글빙글 웃으며 앞으로 걸어 나가자 항현이 긴장했다.
건암이 비합과 함께 탈진하여 혼절한 해운의 곁으로 다가 왔고 준모와 엄지, 검지가 이유와 수빈의 옆에 와 섰다.
모두가 뒤로 물러난 상황에서 해명과 항현, 단 둘만이 마주 섰다.
잠시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며 서 있던 해명과 항현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칼을 내밀며 상대를 향해 뛰어 날아갔다.
“타아아아앗------!”
“이------얍------!”
항현의 진전격적, 그대로 해명의 머리를 노린다.
해명의 휘검향적, 항현의 검을 쳐내며 항현의 몸통을 노린다.
하늘로 솟구치는 항현!
머리를 밑으로, 발끝을 위로, 역신으로 하늘을 날아 해명의 뒤로 내려앉았다.
자연스런 해명의 타도세.
해명은 몸을 일회전시키며 항현의 머리와 몸통을 동시에 노린다.
단숨에 몸을 땅바닥에 붙이며 해명의 사술상우극을 피하고는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며 사인검을 뻗어 둥근 전기톱처럼 회전하며 해명 몸의 해체를 노린다.
이번에는 해명이 몸을 우측으로 날려 항현의 사인검의 간격에서 빠져 나왔다.
“번개치는 하늘아래
하염없이 울부짖는
홀로 된 들개처럼
선지피가 흐르도록
서러움이 달라붙다
날카로운 칼바람에
가루처럼 날리네”
“귀문을 지키는 영수여!
이 세상을 떠도는
가지 않는,
가지 못하는,
가야만 하는,
가여운 넋을 인도하라!”
가득한 주력.
격정과 호승심에 불타는 눈과 눈.
가슴과 연결된 통로인 붉은 입술에서 동시에 기합이 터졌다.
“사술극공참------!”
“귀인일진격------!”
두 사나이의 철판같은 가슴에서 끓어 나온 주력이 서로를 노린다.
해명의 공기를 가르는 진공의 검.
항현의 범의 포효가 뭉쳐진 강기의 화살.
“파카아아아아아앙---------!!!!!!!!!”
두 기운이 부딪혀 회오리바람이 일었다.
수빈의, 종희의, 나머지 모든 사람들의, 긴장된 호흡을 일시에 빨아들였다가 다시 내뿜으며 휘날렸다.
회오리를 헤치며 해명의 침착한 잰걸음, 휘검향적의 공격이 항현의 몸통을 좌로부터 노렸다.
항현은 공격과 그 다음 수까지 읽었다.
휘검향적, 중단으로 들어오는 공격을 막는 즉시 어깨에 올려놓은 반대쪽 철극이 항현의 머리를 부술 것이다.
항현은 아예 직부송서, 아래에서 위로 칼을 올려치며 해명의 사각 간격으로 전진해 들어간다.
해명은 그 전술도 꿰뚫고 있었다.
훌쩍 발목에 힘을 주어 몸을 띄워 몸을 가로로 뉘였다.
항현과 직각으로 몸이 위치한 가운데 몸이 세차게 회전하며 철극이 걸리는 데로 항현의 몸을 노렸다.
무차별적인 공격에 항현을 향하자 항현은 공격 간격 밖으로 나가려했지만 그만 해명보다 반에 반보도 안되는 짧은 순간이 느렸다.
손목을 스치는 해명의 철극에 항현이 얼굴을 찡그렸다.
허리의 병부를 빼내어 병부 띠를 손목의 상처에 감고 손과 사인검을 놓치지 않도록 묶었다.
“사술극공참------!”
진공의 대검이 연달아 항현을 덮친다.
항현은 그 연속된 공격이 어떤 의미인지 눈치챘다.
체력을 빼 놓고 자신의 최대의 공격을 먹일 것이다.
항현이 가장 두려워하는 공격.......
“북서쪽 해지면 금잔디 바래지다
활줄이 파고든 가는 목이 밤내 운다
주검위의 봉분은 산자의 의무거늘
봉분조차 못 가진 어린왕의 설움을
이빨 드러낸 용맹의 개가 분노에 겨워 짖노라......”
항현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집중하고 있던 해명의 위험한 기술이 읊조려졌다.
두려운만큼 정신이 고조된 항현의 뇌리에 하나의 생각이 번뜩였다. 그리고 바로 오른 손에 묶어 놨던 병부띠에 입을 가져갔다.
“선풍술연격-----!”
한쪽 철극이 회전하며 일자로 항현을 향해 날아갔다.
항현이 뒤로 물러나며 해명의 다음 공격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그러나 다음 공격이 나오질 않았다.
해명이 회전하며 다가오는 철극의 뒤에서 항현의 몸 놀림을 집중해서 살피고 있었다.
항현은 마음에 공포심이 들었다.
‘반드시 죽이려는 게다.......’
해명의 눈동자에서는 먹이를 노리는 늑대의 안광이 보였다. 그리고는 바로 해명은 항현의 직각 방향으로 뛰었다.
“북서쪽 해지면 금잔디 바래지다
활줄이 파고든 가는 목이 밤내 운다
주검위의 봉분은 산자의 의무거늘
봉분조차 못 가진 어린왕의 설움을
이빨 드러낸 용맹의 개가 분노에 겨워 짖노라
선풍술연격-----!”
이중 선풍술연격!
두 자루의 철극이 기묘하리만큼 적절한 높이와 거의 직각에 가까운 각도, 그리고 틈을 주지않는 속도로 항현을 엄습했다.
뒤로 물러서는 방법뿐이지만 그랬다간.........
‘......그랬다간 바로 이어지는 위맹강격의 간격이니....... 그런데 두 자루를 다 던져 돌려놓았는데 그 기술이 가능한가.......? 뒤로 물러서도 괜찮은 건가......?’
항현은 이 이중선풍술연격에 갈등이 일었다. 도망칠 수 있는 기술 같았다. 그러나!
‘아니야! 뒤로 물러나면 단숨에 내 몸을 반 토막을 낼 꺼다! 이 상황에서 사는 길은......’
해명이 아무래도 항현이 뒤로 물러설 것 같지 않자 오른 손을 내밀며 주먹을 꽉 쥐어 보였다.
회전하는 두 자루의 철극이 궤도가 겹치며 철극의 뒤의 고리가 걸리며 합쳐졌다.
그 일순, 해명이 합쳐진 철극에 뛰어들어 철극과 하나가 되었다.
검신합일! 그리고 두 개의 회전력을 더해 파괴력을 정점까지 올렸다.
항현에게 절체절명의 위기!
항현은 양손으로 사인검을 쥐고 거대한 호를 그리며 밑으로 내리치는 해명의 위맹강기를 사인검으로 막았다.
“콰---------깡---------!!!!!!”
항현은 철극이 검에 접촉하며 그 힘이 너무나도 강한 것에 순간 당황했다.
사인검이 항현의 뒤고 있는 손에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읔-!”
항현이 결국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사인검을 놓쳤다.
사인검을 놓치며 철극을 가까스로 비껴냈다.
사인검을 몸 앞에 놓고 해명의 위맹강기를 버티려 했다면 칼과 몸이 동시에 반 토막이 났을 것이다.
그만큼 해명의 위맹강기는 그 힘이 우악스러운 데가 있었다. 그러나 칼을 튕겨낸 해명은 잠깐 미소를 지었다가 금방 웃음을 멈추었다.
사인참사검의 자루에 뭔 가가 묶여 있었다.
항현이 손목을 다치며 묶어 놓은 병부띠였다.
항현의 세차게 손을 당기자 사인검이 살아있는 생물처럼 뛰어서 다시 반대편으로 날아갔다.
“헉-!”
“푸-웈----!”
항현의 손목에 묶인 사인검이 떨어진 땅에서 정 반대방향에 있는 해명의 옆구리로 총알같이 날아갔다.
살에 칼이 박히는 섬뜩한 소리와 불로 지지는 듯한 뜨거움에 해명이 순간 멈춰버렸다.
“귀문을 지키는 영수여!
이 세상을 떠도는
가지 않는,
가지 못하는,
가야만 하는,
가여운 넋을 인도하라!
귀인일진격-!”
“으헉”
제로거리 귀인일진격이 해명의 옆구리를 관통했다.
피가 일진격의 세기에 한줄로 길게 뿌려졌다. 그리고 무너지듯 해명이 주저앉아 버렸다.
항현이 일어나 자신의 사인검을 병부띠를 당겨 손에 쥐었다. 그리고 해명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종희와 건암이 나서려는 찰나, 항현의 뒤에서 구슬픈 호령이 들렸다.
“온사용,....... 손을 멈추거라~!”
항현이 뒤를 돌아보니 이유가 해명을 쳐다보며 항현에게 명을 내리고 있었다.
“온사용, 이제 되었느니...... 그만 손을 멈추라~......”
“진심이시옵니까?”
항현이 짐짓 엄한 눈으로 되려 임금인 이유에게 되물었다.
당신을 죽이려 한 자를 살리고 싶은 것이 맞냐는 질문이었다.
“내가 큰 죄를 크게 용서 받았느니라. 어찌 용서를 받은 죄인이 다른 이를 엄혹히 대하겠는가? 그만하고 그 아이....... 중광의 아이를 보내 주거라......”
항현이 해명에게 칼을 겨눈 상태로 말을 했다.
“주상 전하의 명으로 너는 지금 산다. 기뻐하라고는 얘기 않겠다. 그러나......”
“........”
건암이 해명의 옆으로 와 해명을 부축했다.
항현을 노려보며 해명이 일어났다.
“...... 그러나 이젠 잊을 것은 잊어라...... 동하군께서도 그리 하셨으니......”
“내가 졌으니 대꾸는 안 하리다. 허나 왕이 가라 하였으니 나는 가겠소. 이의는 없을 것이오.”
“해명........”
해명의 눈빛은 공허함으로 차가운 빛을 뿜고 있었다.
놔주면 지금보다 더 나은 체포의 기회는 다시는 없을 것 같았다.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자가 큰 소리를 내어 임금에게 잔인해지길 권했다.
“전하-! 지금 피 흘리는 저들을 취하소서-! 이 기회를 놓치면 아니되옵니다-!”
영의정 현영휘가 여지껏 눈물을 그렁거리던 눈을 다시 희번뜩 치켜 뜨고는 이유를 추돌질했다. 그러나 이미 익은 인간이 된 이유는 조용히 말을 맺었다.
“얘야~ 중광이 아들아~”
“......”
해명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이유를 쳐다보자 이유가 말을 이었다.
“내 말했던 데로 너는 나를 미워할 충분한 이유가 있느니....... 반드시 피로만이 그 한을 씻을 수 있다 생각하면 내 피를 보거라...... 허나 내 피를 주어도 내 한이 씻기지 않을까 그것이 염려되는 구나......”
“전하-! 어찌 그런-!”
항현이 도리어 놀라 이유를 제지했지만 이유가 머리를 흔들며 대화를 계속 해명에게 이어나갔다.
“나는 이제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구나....... 내 조카 동휘도 이제는 편해지겠노라 하였고 나는 자격이 없음에도 용서를 받았으니 이제는 과거에서 연관된 사람 중에 편하지 않은 사람은 너 뿐이지 않느냐....... 나는 그것이 너무 마음이 아프구나.”
“.......”
“가렴, 가서 다시 생각을 많이 하려무나....... 네게는 미안한 마음뿐이다.”
“전하-! 아니 되옵니다-!”
영의정 현영휘가 크게 외쳐 이유에게 주청을 올렸지만 이유는 다무는 한 마디를 던졌다.
“영휘형, 우리...... 그만 하십시다....... 용서를 받았으니 또 주어야지요......”
“전하-!”
현영휘가 이유의 포기를 안타까워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비합이 사자추를 끌러 하늘 높이 던졌다.
검은 안개가 쏟아지듯 큰 반원형으로 떨어져 모였다.
“가겠소!”
“생각을 잘 정리하시길.......”
건암이 해명을 부축하여 안개 속으로 걸어갔다.
부축하는 건암과 그 옆에서 해운을 안고 있던 종희만이 보았다.
해명의 뺨에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항현나으리”
“형님~”
수빈과 준모가 항현에게 뛰어왔다.
손목에서는 아직도 가늘게나마 피가 흐르고 있었다.
“주상전하 앞입니다. 모두 자중하세요.”
항현, 스스로 승리의 함성을 소리 높여 지르고 싶었으나 임금이 있는 자리니 함부로 날뛸 수가 없었다.
그 자리를 임금 이유가 자연스레 놓아 주었다.
“축귀검은 국가 누란 사태의 해결과 사직의 보존에 아주 큰 공을 세웠느니라! 다만 지금 조정의 상태가 정돈이 안 되었으니 이후 그 공을 논할 것이다! 각자 정한 장소에서 어명을 대기하라1”
임금인 이유가 육성으로 축귀검 기관의 공을 상찬하고 공을 분명히 해주었다.
잠시 얼떨떨한 눈으로 멀건히 서있던 항현들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그 자리에서 군례로 한 쪽 무릎을 꿇으며 대답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미소를 띈 이유가 그대로 양화당 침전으로 들어가고 그 앞에 널려 있는 움직임을 멈춘 나모가비를 위시한 요괴들, 시체들에 신료들은 떨며 비어있는 전각을 조당삼아 뛰어갔다.
어느 틈에 구름은 걷히고 오래 묵혀 잘익은 햇빛이 한양의 구석구석에 뿌려졌다.
비로 씻긴 맑은 하늘을 뚫고 내려오는 햇살 아래 항현과 수빈이 서로를 보았다.
햇빛에 어울리는 화사한 미소가 항현과 수빈의 얼굴에 함박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