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현은 작전을 다시 생각했다.
눈앞의 얼귀갱시 자원을 직접 상대하는 것 보다는 뒤에서 저격하는 비합을 먼저 노리는 것이 보다 수월할 것 같았다.
항현은 일단 사인검을 두 손으로 쥐고 내략(칼을 쥔 손을 고정, 혹은 아주 작게만 움직이고 허리를 회전시키는 방법으로 상대의 공격을 흘림)의 방법으로 허리를 돌려 상대의 평대도 공격을 흘리며 기회를 엿봤다.
“관원, 그리 움츠려 들어 있으니 보기가 딱하구면, 그냥 죽든가 항복하는 것이 편안할 방법 아니겠는가? 흐흐흐......”
비웃음이 어둠의 안개 속에 싸늘하게 울렸다.
항현은 그 비웃음에서 비합이란 사람이 검술, 일대일의 싸움의 소양이 부족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항현은 분명히 노리는 바가 있어 전법을 바꾼 것인데 비합의 비웃음은 그 전법의 속셈을 간파 못한 분명한 증거라고 생각했다.
‘잘 하면 저 노인을 먼저 잡아챌수 있을 지도......’
항현이 자원의 공격을 계속 흘리면 무던히도 기회를 노렸다.
“크워어어어어------!!!!!”
자원은 이미 죽은 귀갱시라는 장점을 망설임없이 사용하고 싸웠다.
아예 방어라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싸우고 있었다.
만일 묘한 오기로 상대의 공격을 자신의 공격과 맞바꾸는 식의 싸움을 벌였다가는 누구든 벌써 죽어서 다시 죽지 않는 귀갱시에게 상대가 되질 않았을 것이다.
이미 귀갱시를 겪어본 항현은 그런 우행을 피해 극단적 방어로만 일관하며 상황을 관찰하였다.
호흡도 없고 아픔도 없는 귀갱시 자원도 항현의 검행에 의문이 든 모양인지 공격을 하면서도 눈이 항현의 행동을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귀문을 지키는 영수여!
이 세상을 떠도는
가지 않는,
가지 못하는,
가야만 하는,
가여운 넋을 인도하라..........”
주문을 읊조리며 항현은 상황을 보았다. 눈앞에 자원보다 그 뒤의 비합을 살폈다.
‘반드시....... 그자가 자취를 보일 것이다........’
자원의 공격에 관찰로 인한 빈틈이 나온 순간, 자원의 옆구리 한 뼘쯤 떨어진 위치에서 사자추가 날아들었다.
‘지금이다!’
항현이 사자쾌속추를 따로 막지 않고 공중으로 뛰어 올라 피했다. 그리고 일단 자원의 머리를 일자로 내리 그었다.
명쾌하지만 단순한 항현의 공격을 자원은 평대도를 머리 위로 올리는 것으로 막았다.
그 순간, 자원의 평대도를 사인검으로 디딤판삼아 항현은 온몸을 띄워 자원의 등 뒤로 날았다.
일순간 귀갱시 자원이 허를 찔려 자신의 등 뒤를 허락한 것에 당황하여 항현을 쫓았다.
항현은 자원이 뒤로 돌아 쫓아오는 속도의 두 배는 빠르게 사자추가 나온 검은 안개의 지점으로 육박해 들어갔다.
항현의 사인검이 안개를 뚫었다고 생각할 때, 뒤에서 쫓아오던 자원도 사라지고 사자추도 사라졌다.
“읏-!”
“관원, 나도 자네와 벌써 몇 번째 싸움이던가......? 자원을 어떡게든 피하여 나를 노릴 것이라는 것을 나도 꿰고 있었네...... 후후후......”
항현이 등줄기로 한줄기 식은땀이 흘러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지 늙은이도 발전을 많이 했구나.......’
“그래도 내가 창칼로 자네를 지근거리에서 죽이기에는 많이 모자라지......흐흐흐”
비합에게서 자기 스스로가 손수 죽이기는 힘들다라는 말을 들은 그제야 항현은 뒤에서 사라진 자원을 경계했다.
“자네도 알겠지....... 지금 둘이 다름누리(이공간, 이계)에 상당히 겹쳐있다는 것을.....?”
항현이 읊조린 주문을 아직 거두지 않고 칼에 기운을 모아두고 있었다.
“서로 다른 위상에 놔두었으니 만나지 않지만 내가 위상을 일치시킨다면......!”
항현이 갑자기 측면에서 이상하게 강해지는 사기를 느꼈다. 그리고 비합의 음산한 목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그때는 갑자기 나타난 자원의 칼에 죽게 될 게야. 흐흐흐흐......”
“이 차가운 어둠 속에서.......”
항현이 비합에게 대답했다.
찬찬히 한 문장 씩 만들자 비합이 항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 한 조각 따스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나? 늙은이......?”
“?”
잠시, 정적과 정지로 어두운 안개 속이 관 속처럼 조용했다.
비합은 항현이 말하는 바가 무엇을 뜻하는지 몰라 주변을 빨리 점검해 보았다. 그러나 비합은 그 짧은 순간 동안 그 무엇도 느끼질 못하고 그저 항현의 허세라고 생각했다.
“흠~ 따스함이라...... 이제 곧 자네와는 연관없는 단어가 될게야....... 흐흐흐”
“크아아아아아아아-----------------!”
비합은 말을 마치는 순간, 자원을 항현의 옆에 나타나도록 다름누리에 위상을 일치시켰다.
바로 자원이 나타나 항현의 옆 머리를 겨누어 평대도를 들었다. 그때,
“피유우우우우~ 퍼어엉---!”
빛의 새가 날아들었다. 그리고는 바로 빛의 꽃을 펼치며 폭발했다.
폭발한 빛의 새를 중심으로 어둠의 안개를 서 너장 밀어버렸다. 그 순간, 비합과 자원이 자신들의 위치를 들어냈다.
“부우웅~”
뜻 밖의 빛에 눈을 감은 자원의 평대도가 허공을 가른 때에 항현의 오른 손에 사인검이 비합의 어깨 바깥 근육을 스치듯 베었다.
“앜-!”
항현은 오른 손의 회전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몸을 뒤돌려 목표를 놓치고 평대도로 땅을 찍은 자원의 이마로 사인검을 찔러 넣었다. 그리고---!
“귀인일진격-!”
“크아아아아앜-------!”
“프---엌---!”
이마 안에서 항현이 읊조려둔 주문이 발출되며 거센 검기에 자원의 머리가 뒤로 터져 나왔다.
뒤통수로 머리와 머리 안의 내용이 흘러내리며 자원이 무릎을 꿇으며 쓰러졌다.
항현이 고개를 돌려 비합을 쳐다보자 비합은 피가 흐르는 어깨를 감싸 쥐고 뒤로 밀려나 검은 안개 속으로 다시 숨어 들어갔다.
얼굴 가죽이 꼬깃꼬깃 일그러진 건 덤이었다.
“서라---!”
“항현님!”
수빈이 항현을 쫓아 검은 사기의 기문둔갑진에 들어왔다.
항현이 비합을 쫓는 것을 멈추고 수빈을 맞았다.
"몸은 어떠십니까? 어떻게 여기까지 이르셨습니까?"
"전 멀쩡해요. 싸움의 긴급할 때를 맞춰 올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벌써 한참을 해메이던 와중에 겨우 찾았을 때는 항현이 귀갱시와 비합의 협공에 위기에 빠진 중이었다.
바로 같이 연합하여 싸울까하다가 항현의 숨김 패로 도사리고 있는 것이 나을 것 같아 그들 앞에 나서지 않았다.
계산이 적중하여 적재에 띄워 올린 밝음 새가 제 값을 해주어 항현이 승리하는 데 멋진 역할을 한 것이다.
“감사합니다! 수빈 아가씨-!”
반가움에, 승리의 기쁨에 수빈의 이름을 불러보고 사은하는 항현이었지만 아직 기문둔갑진은 걷히지 않았고 상황은 겨우 한 걸음 진보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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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희의 사사비영모가 갈대밭에 숨어서 먹이를 노리는 독사마냥 끝을 파르르 떨며 준모를 향하고 있었다.
종희의 노림을 받는 준모는 호숫가에 꽈리를 튼 청룡처럼 사진멸악도를 쥐고 종희의 정면에 계속 대치하고 있었다.
이미 한 바탕 도와 검이 얽히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중이었다.
둘의 싸움은 제대로 된 대결이 아니었다.
마음 한 구석이 미안했던 준모가 분노로 치를 떠는 종희의 공격을 일방적으로 방어만 하던 싸움이어서 크게 상한 사람은 없었다.
“입만 살은 놈이로구나. 이 장창이 그리도 두려우냐-!”
“.......”
마음에 드는 아가씨가 자신에게 정말로 증오를 불태우는 모습에 준모는 몹시 서운했다.
마음 한 구석이 공허하게 비고, 아린 느낌에 말을 조금 상냥하게 던져 보았다.
“저...... 낭자, 이 전의 싸움에서 내가 조금 불량하게 군 것은 내가 너무 위급했기 때문이오. 노여움 푸시고........”
“닥쳐라-! 어린 아기씨 앞에서 그 따위 저질스런 언사를 마구 던지고서는 이제와서 위급했기 때문이라고-?! 그 주둥이에서 그 따위 망발이 나온 것은 그 심(心)속 성품이 더러워서 그런 것이다-! 내 곧 네놈 힘이 다하는 때에 그 입을 찢어 줄테다---!”
씨도 안 먹혔다.
준모는 사진도를 들어 방어를 중심으로 도법을 갈무리할 수 가 없었다.
시간이 촉박한 쪽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농뗑이 많이 피는 관원이기는 하였으나 해야 할 일은 확실히 하는 사람이기도 한 준모는 지금 궁궐이 귀신들에게 침범 당한 상황에서 임금의 곁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은 일종의 자존심 문제였다.
“내가 사과하라면 사과하지요. 그러니 같은 난힘자들 끼리 지나친 증오는 그만 거둡시다.”
“.....이......”
준모의 정성 어린 설득을 속 얕은 사내의 능청으로 받아들인 종희가 다시 한 번 성내려는 때에 비합의 급한 전음이 종희에게 전달되었다.
“종희! 내 쪽이 당했네! 귀갱시를 둘 다 잃었고 나도 피를 흘리게 되었네......이 쪽으로 와주어야겠네!”
“어르신.....! 그러나 이쪽의 이놈은 어찌합니까?”
“일단 내 쪽에 진을 치며 문을 돌파하여 들어오려는 적만을 요격하는 형태로 움직이세. 내 쪽으로 오시게나......”
준모가 못 듣는 전음통성으로 대화한 종희는 사사모를 거두어 뒤의 어두운 안개속으로 사라졌다.
“어~? 이보시오. 낭자?”
싸늘한 경멸의 시선만을 남기고 조용히 사라진 종희에게 준모가 당황해서 따라가 봤지만 이내 종희는 사라졌다.
준모는 종희가 사라진 어둠을 바로 따라가는 우행을 범하지 않고 다시 문의 수와 그 구조를 세기 시작했다.
“생문을 찾아 일단 기문둔갑진을 지나가야 해......”
준모도 중원의 주술을 알기는 했지만 아직 어린 나이에 그렇게 조예가 깊은 것은 아니어서 더듬더듬 기둥과 문을 세며 더디게 전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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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이 눈을 뒤집어 흰자를 낸 와중에 어린 남자의 목소리로 위엄있게 물어보았다.
“내가 왜 이곳에 있느냐~!”
“상왕 전하~! 상왕께서는 이제 이 창경궁에서 저 금수만도 못한 조카의 왕좌만을 탐하여 수많은 피를 본 역적을 죽이고 지난날의 한을 푸실 때이옵니다!”
“한을...... 풀어.......?”
해운에게 해명이 한 쪽 무릎을 꿇고 왕을 대하는 무관의 예로 상황을 보고 하였다.
해운에게서는 산 사람의 것이라고 보기 힘든 흉흉한 사기가 온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상왕 전하-! 여기에 있는 수많은 귀병들이 상황 전하의 한을 풀기 위해 도열해 있사옵니다. 이제부터 제가 모실 터이니 저를 따르소서. 기필코 간적 이유의 목을 전하의 앞에 가져 오겠나이다-!”
“......너는 누구냐......”
“저는 필부로 그저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바르게 옳은 곳으로 가기만을 바라는 김씨 성을 쓰는 자 올시다. 김가놈이라 부르소서~!”
“.......”
이유가 왕좌에 오를 때 앞서 옥좌에 있던 것은 열 여섯의 조카였다.
이유는 스물도 안된 조카에게 선위라는 아름다운 형태로 익선관을 물려 받은 후 그 자리에 올랐다.
곧 그 아름다움은 조카를 죽임으로써 교활한 사기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동하군 이동휘, 죽을 때의 지위는 군이었지만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을 때에는 이유가 왕에 동하군 이동휘가 상왕에 위치하고 있었다.
해명이 눈자위를 꺼꾸로 뒤집고 있는 해운을 상왕전하라 불렀다.
해운이 하루 밤새워 다름누리의 어딘 가에서 만나려던 혼령은 바로 죽은 어린 왕, 이동휘였던 것이다.
해운이 흰자뿐이 없는 눈으로 해명을 한참을 쏘아보았다.
해명은 고개조차 들지 않고 가만히 해운의 눈동자 없는 시선을 받아들였다.
이윽고 해운의 입에서 젊은이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주술을 아는 자로구나....... 귀신에게 이름을 함부로 알려 주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아는....... 후후후.......”
“......!.......”
해명이 움찔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의외로 총명하군......’
“김가놈, 네가 나를 완전히 믿지 않는 것이 되려 맘에 드는 구나...... 그래서 네놈이 나를 위해 다음 해 줄 일이 무엇이냐.”
“저...... 이유에게 가실 수 있도록 저의 귀신병으로 길을 열겠나이다.”
눈동자가 없는 해운이 여유있게 웃으며 해명에게 대꾸를 했다.
“왕을 끌고 다니는 법이 있더냐? 내 숙부와 나를 대면시킬 요량이면 숙부를 내 앞으로 모셔 와야 하지 않겠느냐?”
해명이 고개를 들며 힘차게 말했다.
“하명이시라면 기꺼이 이 김가놈이 패역무도한 이유를 전하의 앞으로 끌고 오겠나이다-!”
해명의 힘있는 대답에 해운의 입가에 다시 미소가 걸렸다.
“아니, 아니다! 네가 나를 이끌어 가겠다 했으니 네가 준비한 장단에 내가 맞춰 주겠노라. 가자-!”
“알겠사옵니다! 그럼 이 김가놈, 길을 열겠나이다.”
해명이 목에 걸어 놓았던 호드기를 입에 물자 인간은 듣지 못하는 호드기의 소리가 명정문 앞에 진을 치고 있던 나모가비와 창귀호, 귀갱시들을 전진했다.
“어흥---!”
“크워어어어어어------!”
“어어어어어~~~~~~~!”
호드기 소리에 한양 전체에 풀어놓았던 창귀호와 나모가비, 귀갱시들이 밤새도록 꼬약꼬약 모여 들어있던 참이었다.
제법 만만찮은 숫자의 귀갱시들이 옥천교 위로, 혹은 옥천교 아래 옥류천을 걸어 넘어서 명정문으로 일자진같은 모양새로 일정한 압력으로 밀고 들어갔다.
명정문을 지키고 있던 좌포장 성길원과 내금위장 윤손이는 절망하고 말았다.
‘들어오는 구나-! 이젠 끝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