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대도와 마상대도가 항현과 준모에게 마구 날아들었다. 그러나 그 힘은 이징옥과 비길 수 있을지언정 검로의 요령이나 효율까지 같지는 않았다.
검로가 효율적이지 않으니 힘이 불안정하게까지 느껴졌고 그 약점을 둘의 연격으로 보완한 것인데 항현과 준모도 나름 합(合)을 맞춰가며 상대 형제만큼은 아니더라도 맞싸우며 여유정도는 갖출 수 있는 수준이 되자 역으로 자원, 윤원 형제의 검이 밀리기 시작했다.
상대의 공격을 맞싸울 수 있게 되자 서서히 역공도 가능하게 된 것이다.
평대도와 마상대도가 공수를 전환하는 순간, 준모가 수비를 맡는 윤원을 노리고 사진도로 윤원의 머리를 노리고 들어갔다.
수비의 윤원에게 준모의 공격이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항현도 윤원에게 쇄도해 들어갔다.
자원의 공격이 목표를 잃고 윤원이 모든 공격을 받도록 준모와 항현은 정(丁)자로 이동하여 윤원에게 아주 짧은 순간 2대 1의 상황을 만들어냈다.
“야압-!”
“카아아아----!”
“훕-!”
윤원은 상단으로 들어간 준모의 공격은 막아냈지만 하단으로 들어가는 항현의 의외의 공격에 너무도 쉽게 피격을 허용했다.
왼쪽 발목이 잘려 왼 발이 체중을 효율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며 몸이 기우뚱 기울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원의 투지는 식을 줄 몰랐다.
“크워어어어-----! 난신적자들을 용서하지 않는다---!”
윤원이 발목을 잘린 후 마상대도를 마구 휘둘렀다.
검광에 커다란 공이 하나 생긴 것 같았다.
항현과 준모가 그 공격 반경 밖으로 재빨리 몸을 피했고 항현을 노리고 자원이 평대로를 가로로 그으며 날다시피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미 소득을 거두고 태세를 전환한 항현은 내략의 방법으로 평대도의 공격을 부드럽게 흘려 냈다.
되려 준모의 사진도의 창룡귀동세에 머리를 노림받자 자원도 뒤로 빠지며 윤원을 막아서며 대치국면으로 물러났다. 그 순간 항현의 주문이 시작됐다.
“ 귀문을 지키는 영수여
이 세상을 떠도는
가지 않는,
가지 못하는,
가야만 하는,
가여운 넋을 인도하라
귀인일진격-!”
항현의 칼에서 포효하는 호랑이의 형상이 보이더니 이내 날카로운 검기로 변화하여 빠르게 앞으로 뻗었다.
자원이 그 앞을 막으려 했지만 그 얼굴의 왼쪽으로 검기가 빠져나가 뒤에 발목으로 준동이 힘든 윤원의 이마로 날아갔다.
“크-왘-!”
얼귀갱시의 핵이랄 수 있는 이마를 꿰뚫린 윤원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진짜 시체가 되었다.
이미 이징옥과 겨루며 눈과 신경을 이징옥의 수준으로 맞춰둔 항현과 준모는 호흡의 합조차 상대를 상회하며 싸움을 압도해 나갔다.
“...... 이거 이거 우리가 나서야 될 거 같군......”
비합이 너무 쉽게 두 귀갱시중 하나가 움직임을 멈추자 깜짝 놀랐다. 그래도 이징옥의 아들로 만든 귀갱시들인데 너무 쉽게 하나가 당한 것이다.
“저들도 확실하게 발전을 하고 있습니다. 이젠 크게 당황하지 않고 얼귀갱시도 처리하고 있어요.”
상황을 침착하게 살핀 종희가 의견을 말하자 비합도 이내 정신을 차렸다.
“흠~ 할 수 없지. 나도 저 자들에게 대항할 새로운 주술이 없는 것도 아니니......”
비합의 말을 중간만 들으며 종희가 자신의 사모를 틀어 쥐었다.
“...... 싸워 보세. 저 자원이 귀갱시는 협공같은 건 바랄 수가 없네. 도리어 너무 접근하면 공격도 당할 수 있으니 조심하게나.”
“알겠습니다. 어르신.”
비합이 자신의 팔에 둘둘 감겨 있던 사자쾌속추를 끌러내어 주문을 읊조리며 하늘 높이 던져 올렸다.
“정북방 북극성의 신수여......
세상이 너를 중심으로 돈단다.
정북방 모든 것의 죽음이여, 물이여......
네가 끝날 때 모든 하루가 끝난다.
나와 너의 적에게 모든 끝을 지우라.
암천자포연무-!”
한 줄 유성추가 검은 연기를 내 뿜으며 하늘 높이 올려졌다.
검은 연기같은 사기(사악한 기)가 이내 주변에 약하게 소용돌이치며 고이기 시작했다.
“음.... 이건?”
비합의 기술에 맞서본 경험이 있는 항현이 그 주술을 준모에게 주의시켜 주었다.
“준모! 이 안개는 저 비합이란 늙은이의 수법일세 이리 시야를 막고 뒤를 노린다네! 조심해-!”
“꼭! 저 같은 짓거리를 하는........읏-!”
준모가 대답을 마저 맺지 못했다.
종희의 사사모가 가슴어름을 노리고 찌르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가까스로 사진도를 들어 뻗어 사사모를 쳐냈다.
“채앵-!”
“굉장히 저희 일을 방해하는 수법이 세련되어 지셨네요.”
“인상깊나 보죠?”
준모가 종희의 말을 받아내자 종희가 다시 자기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일을 방해하는 당신들을 처리하기 위해 만든 방법도 보세요. 우리도 장족의 발전이 있었답니다.”
“......”
한길이 족히 넘는 사사비영모가 준모를 밀어 붙이더니 곧 옆의 항현까지 같이 노리며 깊고 빠르게 찔러 들어왔다.
긴 사모가 뱀처럼 귀갱시자원의 검로, 사이사이로 끼어 들어왔다.
그 모두를 막아내는 항현의 칼이 자연히 어지러워졌다.
준모가 급히 항현을 보조하여 사모와 평대도를 같이 막아냈다. 그리고 어떡해든 역공으로 다시 귀갱시 자원을 베어 상황을 호전 시키려고 했다.
그런 자원의 뒤로 사기를 흩뿌리던 비합의 사자쾌속추가 총알처럼 준모의 미간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항현이 그 추의 진로에 급히 사인검을 대어 가까스로 준모의 머리를 지켜냈다.
“카앙--!”
“조심하게-!”
“..... 옛-! 형님도요.”
일단 서로가 서로를 지키며 적의 하나를 끊어 냈지만 상황이 전혀 진전되질 않았다.
“이 자들 시간을 끌고 있어. 잃을 각오를 하고 우리의 치명타를 노리는 것이 아니라 안정된 상황에서 더 이상 뻗지만 못하게 만들고 있어!”
“저도 그걸 읽어서 어떡해든 뚫으려고 했는 데......”
“그럼 거꾸로 당할 수 있네......”
항현이 상황을 통찰했다.
종희는 귀갱시 자원과 직각으로 자릴 잡고 사모의 긴 거리를 이용하여 둘을 동시에 공격했다.
항현과 맞붙은 얼귀갱시 자원은 동생인 귀갱시 윤원이 죽은 것에 크게 분노하지도 않았지만 항현이 말리지 못할 만큼 길길히 날뛰고 있어서 자연스레 종희와 같이 협격하는 셈이 되었다.
부서진 홍화문에는 이미 먹물같은 사기가 소용돌이 치고 있는 가운데 그 범위를 조금씩 넓혀 오고 있었고 그 안에서는 사자추가 빈틈을 보일 때 마다 튀어나오고 있었다.
어서 빨리 이 에움을 뚫고 임금을 지키고자 하는 항현으로서는 난감한 상황에 혀를 찰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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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아~, 어때 아직이야?”
“응~ 잘 안 와~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 ...... 자꾸 말 시키면 더 못 찾는단 말이야~!”
“.......”
해명이 눈을 감고 조용히 서있는 해운에게 물어 보았다가 야단을 맞고는 입을 꼭 다물었다.
이들 남매는 항현과 비합이 싸우는 홍화문의 안쪽에 나모가비 하나를 세워두고 가지에 천을 드리워 그 밑에서 비를 피하며 둘은 같이 서있었다.
앞에는 귀갱시와 나모가비 창귀호가 군사들과 대치를 유지하고 있었다.
해명은 반대편을 지켜보다가, 해운을 쳐다보다가 시선을 번갈아 놓으며 지루함과 싸우고 있었다.
밤이 점점 깊어지자 초봄의 쌀쌀한 기운이 젖은 몸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해명 자신은 아직 버틸만했지만 어린 해운이 걱정되어 부서진 홍화문의 잔해를 뒤져보았다.
이내 작은 화로를 몇 개 찾아내어 숯 한 망태와 함께 해운에게로 들고 갔다.
해명은 화로를 해운의 양 옆에 늘어놓고 숯을 나눠 넣어 불을 붙였다.
곧 훈훈한 온기가 해운과 해명이 있는 곳을 가득 채웠다.
“.....따뜻하다......”
“운아, 운이 추울까봐 오빠가 불 피웠어. 안 춥니?”
“헤에~ 오빠 고맙습니다~”
“헤헷~”
“......근데 갑자기 따뜻해져서 정신집중이 흩어졌어~ 처음부터 다시 부름을 해야 돼...... 미안.....”
해운의 말에 해명이 눈을 찌푸리며 멋쩍은 미소로 실망을 나타냈지만 크게 다그치지는 않았다.
“괜...... 찮아...... 헤에~ 시간 많으니까 여유 있게 해~”
“히히히히~ 거짓말...... 실망했으면서, 이히히히히.......”
해운이 천진하게 웃으며 오빠를 놀리자 해명도 같이 웃어주었다,
“빨리 해 볼게, 헤헤헤헤.......”
“응~”
한참 웃던 해운은 다시 잔잔한 미소를 띠운 얼굴 그대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해명은 해운이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시키자 다시 조용히 입을 다물고 해운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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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쪽 성길원과 윤손이가 움직이지 않는 귀신들에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어떤 확인도 선제적 작전도 감행할 수가 없었다.
“이거, 이리 기다리기만 해야 하오?”
이미 한바탕 붙었다가 젊은 목숨, 여럿을 피떡으로 만들어 놓고도 윤손이가 허튼소리를 지껄였다.
성길원은 피곤함에 짜증이 절로 났지만 금위의 수장은 임금과 직담을 할 수 있는 자리이니 일단은 져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대화를 한 수 접고 들어갔다.
“일단 저들이 움직이지 않으니 그 움직임에 맞추어 행동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임금을 지키는 중차대한 소임이 있으니 함부로 모험을 감행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일단은 여기에 군사를 묶어 놓고 기다리십시다.”
성길원이 차분하게 한 마디하자 윤손이는 그것을 되려 더 자신을 빈정대는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역정을 내기 시작했다.
“아니, 좌포장영감. 내가 최초로 적을 쳐서 큰 소득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나를 너무 앝보시는 것 아니시오. 적으로부터 주상전하를 지키는 것을 오로지 기다리기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시는 것은 너무 소극적인 처신 아니시오? 먼저 나아가 적을 쳐서 무찌르는 것도 임금을 지키는 충성이 아니겠소? 영감?”
“이미 우리가 가진 병력이 적지 않게 상한 상황입니다. 나머지 병력을 소중히 사용하여 전하를 지키는 일에 틈을 보여서는 안될 것입니다.”
“병력을 지휘하는 지휘관이 적극적으로 움직여 적을 선제적으로 제압해할 생각을 해야 하거늘 어째서 영감께선 이리 기다리기만 하시오.”
아직 힘이 넘치는 윤손이가 계속 성길원을 추돌질하자 성길원은 결국 짜증이 폭발했다.
“보시오! 어젯밤부터 잠시도 쉬질 못하고 저 사람인지 귀신인지 알 수 없는 놈들과 뒤엉켜 피범벅이 되어 하룻 밤, 하룻 날을 보냈소이다! 당신도 직접 부딪혀 겪어 보았으니 알 것 아니오? 저들이 보통의 외적인 것 같소이까? 이미 죽은 시신이 움직이며 산 사람을 깨물어 피를 내는 이 일을 어떤 선제적 조치를 취할 것인지 내가 되려 영감을 보고 배워야 겠소. 포청 군사는 여기 명정문을 지킬 터이니 금군을 휘몰아 공을 세워 보시지요?”
성길원이 버럭 쏟아내며 먼저 뭐든 해봐라고 톡 쏘아버리자 윤손이가 할 말 없는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 아니 나는 나중에 적을 눈앞에 두고도 싸우지 않은 적전 회피에 책임을 지게 될까 두려워서 그렇지......”
“그러니까 뭐든 해보시 라니까요? 저는 뒤에서 용맹한 금군의 위용과 전술을 보고 배운 후에 움직이겠습니다.”
성길원이 다시 톡 쏘고는 더는 대꾸도 않고 칼을 지팡이 삼아 옆으로 나와 서자 윤손이도 멋쩍은 얼굴로 잠시 먼 산 만을 바라보다 뒤의 병사를 하나 불렀다.
“너! 이리 와 보거라!”
“예!”
젊은 금군 하나가 윤손이의 부름에 허둥지둥 뛰어왔다.
그 병졸에게 윤손이는 뒤로 보고를 전하라 명하며 명을 짧은 문장으로 말해 주었다.
“적 대치중. 상황타계불능. 대책을 새로 강구바람.”
금군이 전갈을 가지고 뒤로 뛰어가자 성길원도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윤손이가 그런 성길원에게 별 말 없이 앞의 요괴군을 보며 혀만 끌끌차며 그 밤의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