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정문 앞, 잔여병을 이끌고 있는 성길원은 걸어 다니는 나무와 호랑이. 그리고 이미 죽은 것이 분명함에도 움직이는 시체들을 바라보며 병졸들을 안돈시켰다(안정하고 정돈시키다).
성길원은 갑자기 명정문으로 쳐들어오지 않는 요괴들을 이상하게 쳐다 보았다.
만일 저 정도의 산 사람의 병력이 쳐들어온다고 해도 상황을 장담할 수 없는 데 정체를 알 수 없는 요괴들의 대군이라면 그 결과는 더욱 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더 공격을 해오지 않는가? 또한 왜 공격을 해오지 않는가? 만큼이나 의문스러운 것이 저들이 왜 동시에 동작을 멈추고 대기하고 있는가?
저들을 단일한 의지로 일사불란하게 지휘하는 의지가 있는가?
저들은 그런 지휘가 애초에 가능한 존재인가?였다.
성길원은 마음속에 그런 의문들이 계속 솟아나 앞의 상황을 헤아릴 수가 없었다.
‘아까의 전투를 생각해보면 저들은 확실히 본능만으로 움직이는 짐승에서 더 나은 존재가 아니다. 그렇다면 본능만으로 저리 일관된 행동을 하게 된 이유가 있는가? 아니다. 본능으로 저리 일사불란하게 행동할 수는 없는 법! 본능 위에 뭔가 다른 이유가 있다. 그러나 그런 이성적 지휘가 있다고 한다면 되려 더 힘들 수도 있지 않을까?’
명정문 앞 옥천교를 사이에 두라 나모가비가 서서 자신들을 쳐다보고 있었고 귀갱시들이 비를 맞으며 가만히 서있는 가운데, 명정문의 뒤에서 한 떼의 군사가 뛰어 왔다.
“좌포장 성길원 영감!”
“내금위장, 윤 영감! 내금위가 나온 것이요?”
대략 100여명의 인원이 뛰어 나와 칼을 뽑았다.
용과 호랑이가 작게 새겨져 있는 장식이 둘러져 있는 번쩍이는 장식 환도를 뽑아든 장졸들은 다른 병졸들보다 반 뼘쯤 큰 키에 어깨는 떡 벌어져 근사한 청년들이었다.
내금위는 임금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모시는 경호원들이다보니 단순히 싸움을 잘하고 강한 것 이상으로 키가 크고 늘씬한 외형도 많이 보는 부대였다.
군복도 보통의 검은 쾌자가 아니라 밝은 홍색, 밝은 청색, 진홍색의 갖가지 오색찬란한 색을 사용했고 칼에도 잘 닦아 빛나는 놋쇠장식이 달린 환도를 사용했다.
“그렇소! 인원손실이 많다길래 지원을 나왔소이다-! 저들이 적이오-?”
내금위장 윤손이가 적을 확인하기 위해 성길원에게 묻자 성길원이 고개를 끄덕거려 답을 해 주었다.
“그런데 어째서 적을 치지 않고 여기서 이러고 계시오? 좌포장께서는?”
좌포장 성길원이 어이없는 눈으로 새로 나타난 내금위장을 쏘아 보았다. 전멸은 안당하고 겨우 5분의 1만 건져 나온 것만도 천운이라 여기고 있는 마당에 적을 치라니...... 그러나 내금위장 윤손이는 성길원의 눈에서 아무 것도 읽지 못했다.
“참나~ 고생 좀 하시더니 겁을 자셨나~? 좋소. 지금부터는 우리 내금위가 움직여 저들을 몰아내리다-! 여봐라-! 나를 따르라-!”
“...... 아니...... 그, 그......”
성길원이 너무 지쳐서 의욕이 넘치는 재빠른 윤손이를 미처 막지 못했다.
재빠른 내금위장 윤손이의 지휘에 키 크고 잘생긴 내금위의 일백여 청년들이 환도를 번뜩이며 옥천교 너머의 나모가비와 창귀호, 귀갱시의 요괴 연합에 진격해 들어갔다.
내금위의 아름다운 청년들이 일각(15분쯤)도 안 되어 4분의 1이 상대에게 씹어 먹힌 후, 다시 옥천교를 넘어 도망 왔다.
“저 요괴들은 죽지도 않고 또한, 저 큰 나무요괴나....... 또, 저 귀신붙은 호랑이들은....... 어째 말리지도 않으셨소~! 좌포장 영감~~~!”
“말릴 려고 했는데...... 너무 빨리 나가시어......”
괜시리 신속하게 다리를 넘어가 시체만 더 안겨주고는 돌아와 중언부언, 우는 소리하는 윤손이에게 성길원은 짜증이 왈칵 솟았다. 그러면서도 다시 옥천교 다리 너머를 쳐다보고는 자신의 예상을 확신할 수 있었다.
‘저것들, 일정한 지휘를 받고 있다. 아니면 조종이라고 해도 좋아...... 다리를 넘어 오지 않고 공격을 받아치기만 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를 고립시키기만 하는 목적이 있다는 얘기인데......’
일단 성길원은 상대가 옥천교 다리를 넘어 오지 않는 것에 안도하며 반대편을 지켜 보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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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현은 나모가비를 조금씩 부숴내는 방법으로 대응 방법을 잡았다.
“귀문을 지키는 영수여
이 세상을 떠도는
가지 않는,
가지 못하는,
가야만 하는,
가여운 넋을 인도하라
귀인일진격-!”
항현의 칼에서 뿜어진 검기가 나모가비의 가지들을 잘라 내며 나모가비의 풍성한 크기가 조금씩 작아졌다.
“어-------흥-!”
창귀호가 포효성을 지르며 나모가비의 엄호를 나섰다.
항현을 목표로 두 마리의 창귀호가 날 듯이 덥쳤다.
“흩어진 악을 쫓아 귀인의 범 떼를 푸노라,
하나가 쫓아 잡아 악을 하나 찢었도다,
하나가 쫓아 잡아 악을 둘 찢었도다,
하나는 하나를 뿌리치지 못하니 얼마라도 찢기리라.
귀인천망격-!”
“크-왕-!” “어----흥-!”
항현의 가로로 베자 두 마리의 귀신 호랑이가 뛰어나와 다른 호랑이들과 맞섰다.
네 마리의 시체 호랑이와 귀신 호랑이가 서로 싸우며 뒤엉켜 주변에 빗방울이 튕겼다.
“한울님의 눈이 땅의 그늘을 굽어보노라!
굴음님의 숨이 악의 어둠을 살펴보노라!
천룡님의 뜻이 마의 비겁함을 노려보노라!
벼락을 부른 이곳에 밝음만이 깃들어 어둔 그늘 없노라
집전파사격-!”
준모가 우렁차게 주문을 마치며 사진도를 던져 덩어리의 중앙에 있는 귀갱시의 몸통에 꽂았다. 그리고 온 동네를 밝히는 번개가 사진도로 떨어지더니 대충 열 지어 서있는 스물 조금 넘는 귀갱시들이 모조리 솥뚜껑 위에 오래 올려놓은 파전 꼴이 되었다.
새카맣게 탄 귀갱시들이 쓰러지는 와중에 몇몇, 벼락을 피한 귀갱시들을 광조가 다가가 택견 발차기로 그 염통을 확실히 파괴하여 끝냈다.
“광조 후배, 정말 자네는 주력을 쓸 줄 아는 것이 없는가?”
언제나 체술로만 움직이는 광조에게 준모가 퉁을 놓듯 질문하자 광조가 심각한 얼굴로 대답했다.
“전 제 단련된 몸으로만 어두움을 깨뜨릴 겁니다. 절대로 기이묘술에 의지하진 않을 거예요.”
“나 원~”
준모는 지난 지난 번 주술에 대한 광조의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항현이 창귀호들을 다 눌러 행동불능으로 만든 두 마리의 자기 귀신 호랑이를 자신의 칼로 불러 들였다.
“동북방 귀문을 지키는 영수여-!
검에 깃들어 맑은 칼날의 예리함을 지키라-!
검을 달구어 뜨거운 칼날의 선명함을 지키라-!
피 주린 검이 울지 않도록 네가 포효하라-!
검강합인령-!”
그리고 바로 이어서 결합 주문이 터져 나왔다.
“동북방 지옥문을 지키는 범의 성난 울음
괴로운 인생에 괴로워하는 산자들의 울음
남겨진 원한에 격노하는 남은 자들의 울음
불길에 몸을 태울 죄인들의 두려운 울음
달님만이 위로하며 소리 없이 우노매라
귀인참월격-!”
나모가비의 품 안으로 뛰어든 항현의 사인검이 둥근 원을 그리자 원형의 검로를 따라 나모가비의 큰 몸이 세로로 잘라졌다.
“그워어어어어~~~~”
“쿠-쿵---!”
나모가비가 둘로 갈라져 땅에 넘어지고 더는 움직이지 않는 장작더미로 변했다.
“대충 끝난 것 같군......!”
엄지와 검지가 새로 가세하여 그런지 꽤 많은 귀갱시와 나모가비, 창귀호들 이었는데 무난하게 일을 마친 느낌이었다.
맞은편에서 숨어서 지켜보던 건암도 혀를 찼다.
‘굉장하군...... 우리만 발전한 게 아니구만.’
건암은 생각했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빨리 해명에게 달려가 합류하여 항현들의 힘을 알리는 것이 하나, 아니면 지금 다시 귀갱시와 여타 요괴들을 모아서 싸움을 시키며 시간을 버는 것 두 가지인데 건암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만일 저들이 창경궁에 도착한다면, 설마 그럴리야 없겠지만 해명님을 이기게 될까? 거기 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아주 귀찮아질 것 같기는 한데...... 그렇다고 여기에 자꾸 우리 전력을 계속 쏟아 붓는 것도 좋은 생각은 아니잖아?’
건암은 품속에 호드기를 만지작 만지작 거리며 다음 행동을 쉽게 결정 못했다. 그 때 항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을 이끌고 궁궐로 가야합니다. 밤이 깊어지면 이것들이 더욱 기승을 부릴 공산이 커요. 빨리 움직여야 해요.”
“아마도 지금 움직인 이것들도 시간을 끄려는 수작일 수 있어요. 어서 가야......”
준모도 바로 출발할 것을 종용하고 일행은 바로 움직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건암의 다음 행동도 바로 정해졌다. 적이 자신의 행동을 결정해주는, 그런 상황이었다.
‘하는 수 없군, 따라가면서 뒤를 들이칠 적당한 때를 봐야 겠구만......’
결국 체념한 건암은 항현들이 가는 뒤를 밟아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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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무너진 홍화문의 앞에 있는 정자나무밑에서 비를 피하며 해명, 비합, 종희와 종희가 안고 있는 해운이 서있었다.
뾰로롱한 얼굴로 종희의 품에 안겨온 해운에게 해명은 싱글싱글 웃었다.
“운아~, 한양구경 많이 했어?”
오빠의 웃는 낯을 보자 심통난 얼굴이 풀어졌다. 그래도 여태껏 씰쭉거렸는데 갑자기 웃기에는 면이 없는지 눈을 이리저리 피하며 계속 심통난 척 얼굴을 일부러 찌푸리고 있었다.
동생이 웃고 싶어하는 것을 확인한 해명이 얼굴을 돌릴 때 마다 얼굴로 따라 다니며 계속 미소를 보냈다.
“화났어? 우리 운이 화났어?”
“...........킥!”
요리조리로 고개를 빼다가 결국 웃음이 터졌다.
“어! 화난 줄 알았는데 우리 운이 웃는다! 어!”
“아이 참~! 하지마~ 하하하하~!”
해운이 결국 웃음보가 터지자 해운이 얼른 안아 올려 눈을 맞추었다.
눈이 마주치자 해운은 더는 못 버티고 헤벌쭉 입을 열고 웃기 시작했다.
“에헤헤헤~~”
부모가 모두 죽고 오래비는 그 어머니, 아버지의 죽음을 직접 목도까지 했다. 그리고 홀로 키우다시피한 아빠같은 오빠와 행여 다른 부모보다 모자랄까 아낌없이 사랑해준 오빠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여동생의 교감에 종희가 눈물을 보였다.
“왜 그렇게 화났었어?”
“종희언니가 수빈언니랑 못 놀게 해서....... 수빈언니 저기 와있는데.......”
해운의 말에 해명이 종희를 쳐다보자 종희가 좀 더 구체적으로 보고를 했다.
“여기서 동남쪽으로 2리에서 3리(1리=400미터 2~3리= 약 1킬로미터)쯤에 수빈씨와 같이하는 관원 일행이 있었습니다. 건암님이 주변의 우리 수족을 모아 공격을 하신다고 남으셨습니다.”
“으음~........뭐하러 공격은....... 그냥 오시지, 참 나~!”
해명이 종희의 보고에 혀를 차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오빠~ 나~ 수빈언니랑 놀면 안돼?”
“으응~ 안되는 건 아닌데, 기다리면 수빈 언니가 올 거야~.기다리자~.”
해명의 말에 뼈가 있음을 종희가 알아차렸다.
결국 그 자들은 관원이고 자신들이 공격하는 곳은 궁궐이니 반드시 자신들의 앞에 나타날 것이 뻔했다.
‘다만 온다면 분명히 놀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싸우게 될 텐데 그 일은 어찌 할 것인가?’
종희가 걱정으로 얼굴을 찌푸릴 때 해명이 품안의 해운에게 부탁을 했다.
“운아~ 그 아이 생각나?”
“누구~?”
해운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해명을 쳐다보자 해명은 좀 더 자세하게 얘기했다.
“있잖아~ 그 목에 활이 달린~ 영월의 자규루에 놀러갔을 때 봤던......”
“기억나~! 자기가 왕이라던 그 아이~!”
“응! 그 아이 지금 부를 수 있겠어?”
해명이 기쁘게 웃으며 가능 여부를 묻자 해운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대답했다.
“음~ 걔는 찾기도 힘들고 불러도 잘 안 오는 적도 많아서......”
“부탁해~ 운이야~ 응~?”
해명이 살살 달래자 해운이 약간 자신 없는 얼굴로 고개를 계속 갸우뚱 거렸다.
뒤에 서 있던 비합과 종희가 감회가 어린 눈으로 해명과 해운의 뒷모습을 보았다.
일이 막바지로 달음질 치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