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희는 누워서 말없이 눈을 감고 있었지만 해운은 아이와 아이를 꼭 껴안은 아이 엄마에게 쳐다보며 관심을 보였다.
“왜 울어~?”
해운이 묻자 아이가 흠뻑 젖은 두 눈을 껌벅거리며 잠시 말문을 잊었다. 그러나 곧 대꾸를 했다.
“무섭고....... 슬퍼서........”
이번에는 해운의 두 눈이 껌벅거리며 되물었다.
“뭐가 슬프고 뭐가 무서운데?”
옆에 누워있던 종희는 해운의 문답을 제지하려다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일단 방치하고 있었다.
아마도 엄마라는 존재와 꼭 껴안고 있는 동년배 계집아이에게 호기심을 느낀 것일텐데 종희는 그 마음을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었다.
해운의 가치판단 체계가 정상적인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해운은 산에서 해명과 비합, 건암, 그리고 자신과 같이 지냈다. 평생 동안......
지금 수빈이나 축귀검의 인원들을 제외하면 처음으로 주술과 관계없는 일반 사람과 접촉한 것이다.
종희는 해운이 처음 만난 일반 인간과 어떻게, 어떤 대화를 하는 지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밖에....... 뭔가 무서운 게 있잖아..... 사람을 잡아먹는.......”
“그거? 그게 뭐가........”
“아기씨.......이 사람들은 ...... 무서워해요. 아기씨.......”
그냥 지켜만 보려던 종희가 처음부터 해운에게 훈수를 두었다.
해운은 귀갱시들을 무섭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자신의 노래와 주력으로 깨운 애완동물이랄까? 그런 느낌으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무서운 줄을 몰랐다.
더구나 염통을 칼이나 물리적인 힘으로 파괴하면 바로 정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해운은 염통에 깃든 넋을 날아가도록 하는 주술적 압력으로 얼마든지 귀갱시들을 정지시킬 수 있기 때문에 해운은 그저 움직이는 장난감 정도로만 판단하고 있었다.
종희도 해운이 귀갱시를 인식하는 그런 정도를 알고 있었다.
이 사람들에게 귀갱시가 무서워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일반인과의 대화의 첫 돌부터 잘못 놓는 것이니 첫 마디는 훈수를 둔 것이다.
더구나 여기에 귀갱시들을 자기가 만들었다는 이야기라도 할까봐 해운을 부드럽게 제지 시켰다.
아무래도 그건 숨겨야 할 사실이니까....
종희의 제지에 해운은 무섭다는 상대 아이의 말에 그 이상으로는 반론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감정을 물어 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럼...... 슬픈 건 뭐야? 왜 슬퍼?”
상대 아이는 별걸 다 물어본다는 표정으로 해운에게 답을 해 주었다.
“아빠가..... 밖에 계신데....... 안 들어오시잖아.......”
“아빠가 없으면 슬퍼?”
“흐으응...... 그럼 넌 안 슬프니?”
“난 원래 없었는 걸?”
아이와 아이를 안은 어미가 같이 해운을 쳐다보았다.
“아버지가 없으시니.....?”
“응! 난 오빠랑 언니랑 살아.”
“엄마도 없으셔?”
“응!”
해운이 또릿또릿 얘기하자 아이 어미가 가엽다는 눈빛으로 해운을 보더니 누워있는 종희를 보며 말을 했다.
“저기 저 언니? 저 언니랑 같이 살아?”
“응, 종희 언니.”
처음에는 어색해하는 것도 같더니만 이젠 언니란 소리가 입에 붙었다.
해운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뒤를 돌아보자 종희가 해운에게 눈빛으로 대답을 하고는 누워서 한 쪽에 아이를 안고 앉아있는 아이 어미를 빤히 노려보았다.
더는 묻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였고 아이의 어미는 그 눈빛의 말을 냉큼 알아들었다.
그런 종희에게 해운이 물었다.
“저기 종희 언니. 난 왜 엄마, 아빠가 없어?”
종희가 방향을 바꾼 해운의 질문에 난처한 눈빛으로 대꾸해 주었다.
“왜 없으세요? 아버님 이름은 김자 중자 광자 시고, 어머님 이름은 지자 솔자......”
“그게 아니고~”
해운이 누워있는 종희를 졸라대며 칭얼댔다.
“왜 돌아 가셨냐구~ 왜 난 어릴 때부터 난 종희 언니랑 해명 오빠뿐이야~?”
종희가 천천히 일어나 앉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 얘기하면 해명님이 안된다고 하셨죠.”
“......”
시무룩하게 입술을 삐죽거리는 해운에게 종희가 딱 끊어서 말하자 해운이 대꾸했다.
“오빠는 엄마, 아빠를 본 적이 있잖아...... 난 없는데......”
“........그래서 더 슬프신 거죠.”
침울해진 해운에게 종희가 살살 달래며 이야기를 이어가자 해운이 처음 보는 낯선 가족과 묘한 공감을 표현했다.
“지금 저 친구처럼 해명 오빠도 슬펐어? 무서웠구?”
조금 당황한 종희가 고개를 들어 아이와 그 어미를 보고는 다시 고개를 내려 해운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 보다 훨씬 더 많이요. 정말 많이 슬퍼 하셨대요. 지금도 많이 슬퍼하시고요.”
“......오빠는 늘 웃고 있는데...... 저렇게 안 울어...... 근데도 슬픈 거야?”
“......그건.......”
종희가 잠깐 쉬었다가 대꾸를 마저 해주었다.
“해명님은 화를 내시는 거예요. 화가 너무 나시니까 차라리 웃으시는 거지요.”
“거짓말, 화가 나면 화를 내야지, 어째서 웃어요?”
맞은편의 아이가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다가 의문이 나자 대뜸 종희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미가 서둘러 아이를 품으로 끌어안았지만 아이는 그 정도로 입이 막히지 않았다.
“화가 나면 소리지르고 막 때리고 그러는 거 아니예요? 화가 나는 데 어째서 웃어요?”
“맞아 맞아, 생각해 보니까 종희 말은 이상해. 까르르르......”
눈가는 아직 젖어있었지만 아이가 적극적으로 종희의 말에 반박하고 나오자 해운도 아이의 활기에 힘이 났는지 둘이 힘을 합쳐, 같이 종희의 말에 반박하기 시작했다.
둘이 힘을 합쳐 종희에게 엉기며 깔깔대기 시작하자 종희도 굳이 반대편 아이를 조용히 시키지 않았다.
낮은 차원에 공감을 하는 동갑나기 아이와 한 마음으로 사안에 의견을 피력하자 해운은 신이 나 얼굴이 환해졌다.
눈에 아직 눈물이 그렁거리는 아이도 겨우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런 모습이 종희에게 정겹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의 엄마가 품 안의 아이에게 조용히 타일렀다.
“웃어서 화난 것을 감춘다는 것은 정말 너무 화가 났기 때문이야. 너무 노하면 자신이 주변의 가깝고 친한 자들에게 해를 끼칠까봐 일부러 더 즐겁게 웃고 자기를 감추기도 해.”
“....... 그래요?”
“그럼 우리 오빠도 너무 화가 나서 그런 거야?”
해운이 자기 오빠 일을 아이의 어미에게 묻자 아이의 어미는 해운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해운이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우리 오빠는 엄마, 아빠가 죽어서 너무 슬프다가 많이 화가 난 거구나. 그리고 너무 많이 화가 나서 늘 웃는 구나......”
해운의 말에 종희는 해운을 슬픈 눈으로 보았다.
갑자기 해운이 고개를 들어 종희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며 다시 까르르 웃으며 말했다.
“해명 오빠는 이상해! 화내는 것도 이상해! 아하하하하~”
갑자기 까르르 폭소를 터트리는 해운에 맞은편의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같이 웃기 시작했고 아이의 어미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해운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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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백여 명이 남아있는 홍화문에 해명이 건암과 비합과 함께 점심을 다 먹고 다시 찾아 왔다.
내부에 임금 이유를 직접 경호하는 금군이 있었지만 그들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들의 임무는 분명하게 임금 이유만을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홍화문의 문루에는 윤금룡과 2십여 궁수가 있었지만 그들은 문 아래로 내려갈 생각을 안했다.
문루 아래, 홍화문 앞 군졸들과 성길원은 피 범벅이 되어 있는 홍화문 앞 거리를 대충 정리하고 있었다.
“그럼, 다시 시작하지요.”
해명이 건암을 돌아보며 말하자 건암이 목에 걸고 있는 호드기를 입으로 가져가 불었다.
사람 귀에는 그저 바람이 새는 정도의 소리로만 들리는 소리에 귀갱시들이 반응하여 홍화문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해명은 재미있는 구경을 즐기는 구경꾼이 되었다.
어디서 구했는지 말린 옥수수 낟알을 한 줌 쥐고는 입가로 조금씩 가져가 씹으며 홍화문을 쳐다보았다.
비합과 건암도 그런 해명의 모습에 싱글싱글 웃으며 홍화문으로 자기들이 준비한 병력을 계속 보냈다.
“저기-! 또 온다-!”
홍화문의 1백여 군졸이 다시 한 번 이를 악 물고 당파창을 거머쥐었다.
이번에는 상대의 약점이 어디인지 확실히 알다보니 해볼 만 하다는 생각들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저...... 저건 뭐야-! 정자나무가...... 걸어온다!”
“히~익~! 크...... 크다-!”
나모가비가 나뭇가지를 승전군의 기치창검인양 하늘로 빽빽이 곧추 세우고는 홍화문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오고 있었다.
“안돼...... 안돼....... 저건 못 이겨......”
심약한 몇 명은 창을 던지고 정신없이 반대방향으로 뛰어 도망쳤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런 등을 보이고 뛰는 병졸들을 덮치는 그림자가 있었다.
“어-------흥------!!!”
“살아 있는 것들이 밉다. 이유의 세상에 빌붙어 사는 것들이 밉다!”
창귀호였다.
창귀호가 개별로 흩어진 병졸들을 우선적으로 덮쳐 먹어 치웠다.
맹수에게 등을 보이고 도망치던 병졸들은 속절없이 쓰러져 피투성이 쓰레기로 변해갔다.
병졸들의 피를 한껏 입에 머금은 창귀호들이 승리의 포효를 울렸다.
“콰-----흥------!”
"다 죽인다. 다 죽일테다-!"
범 등에 붙어있는 귀신의 저주에 병사들은 이젠 공포를 넘어 실소가 나올 지경이었다.
문루 위의 윤금룡도 홍화문 앞의 성길원도 황당무계한 괴물들에 압도되어 잠시 말문이 막혔다.
시체가 걸어 다니며 산 사람을 잡아먹는 것도 기가 차는 놀랠 일인데 귀신이 들린 호랑이와 걸어 다니는 정자나무라니......
귀갱시라면 한번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던 1백여 용사들도 당파창을 거머쥔 손에서 힘이 빠져 부들거리며 떨었다.
그런 병사들을 보며 성길원도 전투의욕을 아예 잃었다.
“......전원 홍화문으로 들어가라! 후퇴! 전원 궐 안으로 후퇴하라!”
명이 떨어지자 1백여 병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홍화문으로 뛰어 들어갔다.
성길원이 가장 마지막으로 병사들을 챙기며 홍화문에 들어서자 병졸들이 홍화문을 닫고 빗장을 채웠다.
“전각이나 창고들을 뒤져 굵은 나무, 창대등을 챙겨 와라! 문을 막아야 한다!”
일부의 병사들이 당파창을 제 자리에 놓고 궐로 모두 뛰어갔다.
성길원이 남은 병사들 서른 정도를 문루로 올라가게 했다.
“문루에 궁수들을 지켜라! 혹시나 문을 기어오를 수도 있다. 여기에 창들을 가지고 올라가라!”
“예! 그런데 좌포도대장님께오선 올라가지 않으십니까?”
성길원이 멍한 눈으로 대장의 거처를 묻는 병졸의 질문에 잠시 뜸을 들이다 대꾸를 해주었다.
“.......음....... 난 좀 쉬고 싶구나....... 조금 있다 올라가던가..... 아니면 여기서 문을 지키던가.......그리...... 할 것이다.......”
성길원이 기이묘사에 크게 놀라고 놀란 병졸들을 독려하고 지휘하며, 더구나 귀갱시와 직접 격투까지 벌이느라 머리도 몸도 이미 여력이 없이 많이 지쳐 있었다.
멍한 성길원이 자신의 양 무릎을 두 손으로 짚고 엉거주춤 등을 굽혀 그 자리에서 땅만 쳐다보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당최 말이 돼야 뭘 해보지....... 이젠 더 무얼 해야 하나......? 어떻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