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회귀순리전
1.홍화문 전투
준모와 광조는 빈 집 하나에 들어가 비를 피하며 몸을 추스렸다.
“그 여자가 그 여자죠?”
“누구?”
“혁춘 선배를 한 번에 잡아버렸다던 그......?”
“......”
준모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싸우며 얻은 정보를 전달해주었다.
“그리고 그 여자도 사각신령구를 쓰고 있었어. 뱀의 무기였어. 사사모라고 하더군.”
“사...... 사모? 창이에요?”
“응, 자네한테는 거리상 좀 버거울 무기야.”
"거리가 길어요?”
"응, 꽤 길어......"
이번엔 광조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비를 피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선에서 제일 사람 많은 서울, 한양이 적막하고 음침한 오래된 무덤같이 되었다.
길가에 널려있는 것이 시체였고 그들 중 일부는 슬금슬금 움직일 기세까지 보였다.
두 사람은 임금과 조선을 사악한 주술적 공격으로부터 지키는 기관인 축귀검이 그 가장 중요한 임무인 국가 방어를 제대로 못한 것을 깨닫고 울분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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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달려서 준모와의 거리를 벌렸다고 생각한 종희는 해운을 땅에 내려놓고 숨을 몰아쉬었다.
뒤로 고개를 돌려 혹시나 있을 추격을 살폈지만 누가 따라오는 기색을 없었다.
해운이 전모를 종희에게 씌워 주고 자기 옷고름으로 종희의 이마의 땀을 닦아 주었다.
“종희 언니~ 많이 힘들어~”
종희가 해운을 바라보며 싱긋 웃어 보였다.
“아뇨. 하지만 숨은 좀 돌려야 겠어요.”
명치에 한 방 맞은 종희는 그 만큼을 뛰어 온 것이 부담이 되긴 되었다.
충격 때문인지 호흡이 쉽게 돌아 오질 않았고 그래서 그런지 운신이 몹시 버거웠다.
'그 사내놈, 모질게도 갈겼구만......'
더구나 혹시나 있을 추적을 피하기 위해 근성으로 뛸 때는 몰랐는데 잠깐 쉬었더니 몸이 더욱 안 움직였다.
내력이 회복으로 돌려지며 당장 운동력이 모자라게 된 것이다. 종희는 남아있는 힘껏 보이는 집을 향해 해운을 안고 뛰어 들어갔다.
방안에는 어머니인 듯한 중년의 여자와 딸인 듯한 해운 정도의 계집아이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 잠시 쉬었다만 갈 수 있게 해주세요.”
“...... 네......”
어깨가 떡 벌어지고 키가 남산만한 남자인지 여자인지 헷갈리는 사람이 긴 창을 끼고 들어와 쉬게 해 달라는 데 다른 말이 있을 수가 없었다.
“어서 문을 닫으세요. 뭔가 밖에 이상한 것들이 있어요!”
위압에 눌려 입장은 허락한 여인이 얼른 들어와 방을 외부와 패쇄해달라 원했다.
종희는 귀갱시 일이라면 괜찮다고 얘기를 할까하다가 자세히 얘기하는 게 되레 이 여인에세나 자신들에게나 좋을 게 없을 것 같아 그냥 들어와 문을 닫았다.
“그 긴 창은 직접 쓰시는 게유~?”
여인의 벌벌 떠는 질문에 종희는 작게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안고 있는 해운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조용히 청을 했다.
“잠시만 누워있다 가겠습니다. 큰 폐를 끼치지는 않겠습니다.”
가타부타 허락이 있기도 전에 종희는 누으며 해운의 손을 잡았다.
해운이 몸을 눕히는 종희를 보며 손을 토닥거리며 싱긋 웃어주었다.
“밖에 우리 아빠 있어요? 혹시 보셨어요?”
“!”
계집아이가 몸을 눕힌 종희에게 뭔가 갈구하는 눈빛으로 종희에게 물었다.
종희도 그 눈빛을 알았다.
아빠가 살아 계시다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이다.
아마도 이 집 아비는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한 것 같았다.
지금의 사태를 불러온 장본인들 중의 하나인 종희는 차마 죽었을 거라는 대답은 못하고 그저 고개를 가로로 젓기만 했다.
계집아이는 눈에 눈물을 글썽거리며 제 어미의 품으로 부비적거리며 안겨 들어갔다.
어미인 듯한 여인이 저도 눈물을 삼키며 계집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해운이 웃으며 뭔가 말을 하려 했지만 손을 쥐고 있던 종희가 손을 꼭 쥐며 해운에게 말을 못하게 말렸다.
같은 방의 네 사람이 어색한 침묵 속에 묻혀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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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당의 전각 또한 침묵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했다.
임금 이유의 주사인지 행패인지 모를 희한한 난행에 신료들은 묵직한 충격을 받았다.
임금 이유, 스스로 자신의 정통성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니 이유와 가까운 사이일수록 그 충격이 더했다.
방금 전의 사실을 병에 의한 일시적인 일로 무시하려는 황창성은 계속 야속한 세월에 원망의 눈물을 쏟았고 정권 정통성의 핵심인 이유의 회고에 충격을 받아 멀건히 앉아있는 현영휘은 좌의정 신숙주가 위로같은 채근을 던지고야 겨우 현실로 돌아왔다.
“영상...... 우리는 할 일이 있소. 지금 이렇게 말없이 앉아 있어서는 안된단 말이오.” “.......”
현영휘가 신숙주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더니 다시 책상위로 눈길을 떨구고는 한 호흡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
“그래..... 임금이 버린 나라에서도 사람은 살아야지....... 우리도 살아야 하고......”
반쯤 웅얼거리듯한 소리에 신료들은 거의 못 들었지만 곁에 있던 황창성과 박동파는 현영휘의 얘기를 들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귀하디 귀한 사람의 입에서 인생의 비루함이 묻어나오는 후회를 듣자 동파는 서글픔에 한숨이 나왔다.
“외곽에 배치되어 있는 오위도총부의 군사들 중 일부를 들이고 일부는 수원과 의정부에 장교단을 파견하여 병력을 모아 대기하라 하시오. 지금부터 한양 근방에 동원령을 발하겠소. 주상전하께서는 지금 옥체미령하신 관계로.......”
현영휘가 이 부분에서 호흡을 다시 한번 가다듬었다. 눈에 눈물이 맺히고 입술이 떨린 탓이었다.
“........ 옥체미령하신 관계로......... 나 영의정 현영휘가 차후에 동원령 발령의 모든 책임을 지겠소. 전령을 어서......”
“우우우우......” “아아아아아......”
갑자기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얼굴이 눈물 범벅인 황창성이 짜증스런 소리로 밖을 향해 외쳤다.
“병졸들이 모였다고 계집애들처럼 떠들며 소란스럽게 굴다니 이곳이 궐인 줄 모르느냐! 썩 나가 조용히 시켜라!”
조당이 좌불안석인 하급 당하관들이 서둘러 뛰어나갔다. 그리고는 곧 뛰어 들어와 다급한 어조로 보고를 던졌다.
“홍화문(창경궁의 정문)이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뭔가의 공격으로 홍화문 앞에서 피투성이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뭐야!”
조당안의 모든 신료들이 자리에서 펄쩍 뛰어 일어났다. 임금님 계신 궁궐이 직격 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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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궐 대문을 공격하는 귀갱시들이 얼마나 되지요?”
해명의 질문에 비합이 잠시 생각을 하더니 대답을 해주었다.
“7백여....? 천이 좀 안 됩니다. 도성 사람들을 귀갱시로 만든다고 여기저기 흩어 놨더니 다시 모으는 것이 좀 힘들군요. 그러나 건암이 지금 여기저기로 뛰어다니며 호드기를 불어 귀갱시들을 집결시키고 있으니 곧 다 모을 수 있습니다.”
해명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멀찌감치에서 홍화문 앞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보면서 피 범벅이 되어 길바닥에 쓰러지는 병사들을 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곧 끝나면...... 그 때부터 새 세상이 될게야....... 그럼...... 사과하지. 그렇게 죽게 한 것..... 받아주든 받아주지 않든......’
반대편, 홍화문의 성길원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병사들을 지휘했다.
싸움이 시작되기 전, 홍화문의 문루에 비를 피하기 위해 올라갔던 윤금룡은 문루의 궁수들을 지휘하며 상대적으로 덜 고된 일을 하고 있었다.
“쏴라-! 아군을 피해 정확히 조준 후 사격하라-!”
짧은 거리인 데다 조준사격을 종용하는 윤금룡 덕분에 아군의 오인사격에 의한 오발피해는 적었지만 적은 적당히 베어서는 죽지 않는 귀갱시들이 꼬챙이 하나 둘에 꽤뚫렸다고 쓰러지는 법은 없었다.
몸의 여기저기에 화살을 꽂고 바늘꽂이가 되어도 계속 움직이는 귀갱시들에게 직접 칼을 맞대고 싸우는 병졸들을 되려 더 큰 공포를 느꼈다.
홍화문 앞 대로에서 피범벅의 육박전을 벌이고 있는 좌포도대장 성길원은 비로소 그 귀갱시들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 이해를 했다.
‘명치 께를 공격당하던가 베이면 움직임이 멈춘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맞는 지 성길원은 다음 자신의 앞에 맞서는 귀갱시의 명치를 깊게 찔러 넣어 봤다.
무너지듯 쓰러지는 귀갱시에 성길원은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을 알았다.
“명치다! 창으로 명치를 노려 찔러라! 이 괴물들은 그래야 죽는다-!”
어떤 눈썰미 좋은 놈은 이미 스스로 그 사실을 이미 느끼고 명치 쪽만 노리는 놈도 있었고 성길원이 뒤에서 명치라고 기를 쓰고, 악을 쓰는 데도 공포에 질려 창대를 빙빙 휘두르다 귀갱시들에게 잡아먹히는 놈도 있었다.
그렇게 두시진(1시진= 2시간, 2시진= 4시간)약 5백에 조금 모자라던 군졸이 1백 여로 줄어든 시점에서 일단 겨우 홍화문을 공격한 귀갱시들을 전멸시키고 홍화문을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이겼다~! 우리가 이겼다~!”
“.......”
성길원이 일단 전술목표를 달성한 기쁨에 승리를 선언했지만 병사들은 전혀 호응이 없었다.
5백이 1백으로 줄어든 상황에서 겨우 살아남은 병사들은 죽은 자들에 대한 죄책감, 다시 살아남을 수 있을까하는 걱정, 지금 밖에서 지원이 들어오는가, 적은 전체 규모가 어느 정도되는가 하는 저간 사정에 대한 전황정보 부재등으로 지휘관의 사기고양노력에 호응해 줄 수가 없었다.
성길원은 강제로라도 크게 호응하도록 군졸들에게 강권을 해볼까하다 관뒀다.
스스로도 피곤하고 널려있는 시체들의 수에 압도되어 그렇게까지 할 만큼 흥이 안 났다.
그런 패잔병같은 병사들의 머리 위에서 승리의 함성이 튀어 나왔다.
“보아라-! 이것이 조선군대의 힘이다-! 우리가 승리했다-!”
“와아아아아-!”
문루 위에서 화살만 날리던 궁수대와 윤금룡이 함성을 담당하자 땅바닥에서 피곤죽이 되어 싸움박질을 행하던 보병졸들과 성길원은 차가운 냉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그 승전의 함성은 먼발치에서 싸움을 살피던 해명을 쓸데없이 약을 오르게 만들었다.
“참나~ 이거이거~ 우리가 진 게 되면 곤란하지요. 다음 공격은 확실히 맛을 보여줘야 겠네요.”
“후후후후......”
해명이 난처하다는 듯한 미소를 얼굴에 띄우고 장난스레 말하자 비합이 음산한 미소로 해명의 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