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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무협물
축귀의 검
작가 : 후우우우니
작품등록일 : 2017.12.4

세조 10년 현덕왕후의 저주로 나병에 걸려 문둥이가 된 세조.
설상가상으로 왕에 오르며 저지른 짓들이 다시 세조와 조선에 앙갚음으로 돌아온다.
적의 무기는 위대한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한글을 주문으로 사용하여 고대의 악한 마법을 되살린

"언문주"

언문주로 조선과 조선의 7대 임금 세조의 정권을 붕괴시키려는 적들.
그들로부터 국가의 안정을 지키고 사악한 주법을 막기 위해 언문주를 사용할 줄 아는 새로운 국가기관을 창설하는 데

그 이름은 "축귀검" 이었다.

 
6. 항현귀환전 6.순리(머리)
작성일 : 17-12-25 05:12     조회 : 48     추천 : 0     분량 : 1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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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순리

 

 “종희~, 아니지......, 종희언니~ 비가 와~”

 

  해운이 축축한 공기에 칭얼대며 종희에게 매달리자 종희가 가뿐히 끌어안아 뱀이 수놓아져 있는 자신의 넓고 검은 전모의 너울 안으로 넣었다.

 

 “에헤헤헤헤~”

 

 해운이 금새 칭얼대던 얼굴을 바꿔 해실거리자 종희도 싱긋 웃어주었다.

 

 “수빈 언니는 어디 있을까? 지하로 내려가더니 갑자기 우리도 내려오라고 하고 밑에 층으로 내려가면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벌써 한양에 갔다고 그러고......”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아기씨.”

 “음~......”

 

 또 금새 실쭉한 얼굴로 종희의 어깨에 뺨을 부비며 심통을 부리기 시작했다.

 종희는 그런 해운의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

 

  항현과 준모, 광조는 계속해서 서쪽으로 걸었다.

 말이 쉬워 한양의 서쪽이지 빠른 속도를 유지하는 성인의 걸음으로도 한나절은 꼬박 걸어야 했다.

 준모는 도성 내 마굿간을 볼 때마다 말을 구해 보려 했지만 어디에서나 말들은 그것을 관리하는 사람들과 함께 고기 조각으로 변해있었다.

 

 “나 참..... 여기 말들도 다 박살 나있어요.....”

 “노리고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저 귀갱시들이 휩쓸고 간 뒷자리에요.”

 

 광조의 말에 항현이 다시 창경궁을 향하려하자 광조가 항현을 말렸다.

 

 “우리는 도착만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선배님! 체력을 아끼며 해명을 만난다면 그 때부터는 전투를 벌여야 합니다. 힘을 소진하며 달려가서는 안됩니다.”

 “......”

 

  항현이 광조의 의견에 동의하며 쉬기로 했다.

 인시(새벽 3시~ 5시)가 중간 쯤에 소병을 나와 진시(아침 7시~ 9시)의 끝에 셋은 마침내 한 숨을 돌렸다.

 열에서 스물 정도의 귀갱시 무리들이 한양의 거미줄 같은 골목길에서 끊임없이 나타났다.

 

 “수가 너무 많습니다. 선배님.”

 “그렇겠죠. 말했잖아요....... 피끝마을에 왔던 병력 얘기...... 그래도 우는 소리는 맙시다.”

 “.........예.........”

 

  셋이 잠시 앉아 숨을 돌릴 때 설렁설렁, 높새바람이 음산한 압력으로 세 사람을 밀어내듯 불어왔다.

 이어서 가루비가 뿌리더니 곧 길가의 웅덩이에 비꽃(빗방울에 의한 왕관현상의 순 우리말)을 피우다가 갑자기 후두둑 손가락 한 마디만한 굵은 빗방울이 정신없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항현은 날씨가 왜 이리 변덕스러운가 생각하다가 이내 이 비가 여느 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 차렸다.

 서녘의 지평 너머로 사악한 기운이 넘실거리며 뻗어 올라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준모! 광조! 가야겠네!”

 “옛-!” “넷-!”

 

  두 사람도 항현보다 한 박자 늦기는 했지만 서쪽 하늘의 사기를 감지했다.

 뭔가가 진행되고 있었고 지금의 비는 그 결과물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 차렸다. 그때!

 

 “콰----흥------!”

 “크워어어어어.....”

 

  빗줄기의 어스름을 뚫고 귀갱시와 창귀호가 골목에서 쏟아져 나왔다.

 열, 스물 정도가 아니라 백 단위의 무리가 갑자기 나타났다.

 선두에 이끄는 항현과 바로 따라가는 광조의 뒤에서 갑자기 잔뜩 밀려 들어오면서 마지막에 있는 준모가 갑자기 두 사람과 멀어졌다.

 

 “이야아아아아압----!”

 

  준모가 호쾌하게 가로로 사진도를 긋자 귀갱시들 서넛이 상반신의 명치 부분이 잘라지며 그 자리에 엎어졌다. 그러나 골목에서 꾸역꾸역 쏟아져 나오는 귀갱시들의 수는 역불급이었다.

 

 “크와앙-!”

 

  창귀호가 초가집 지붕에서 뛰어내리며 오른 앞발로 광조의 얼굴을 노려 휘둘렀다.

 광조가 머리를 빙글 돌려 앞발의 궤도 밖으로 가까스로 빠져 나왔다.

 

 “이거 영천에서 본 놈이랑은 차원이 틀린데......”

 “그때는 연봉우가 있었잖은가...... 이 놈들은 한 편이라는 의식이 없어. 연봉우가 있을 때는 그 목 없는 무사가 무서워 함부로 못 움직였지만 여기는 자기보다 강한 짐승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자신 있게 움직이는 게야......”

 

  항현이 창귀호의 공격을 피하며 균형을 잃은 광조에게 어깨를 빌려주며 설명해주자 광조도 그 설명에 수긍을 했다.

 광조는 이들을 사람과 동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의 편으로 힘을 합쳐 자신들에게 적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귀갱시와 창귀호가 그저 먹는다는 가장 원초적인 본능만으로 행동하는 요괴인 것을 다시 새로 깨달았다.

 차가운 초봄의 비바람 속에 준모는 계속해서 몰려드는 귀갱시들과 씨름을 하고 있었고 반대쪽에는 항현과 광조가 창귀호와 대치하게 되었다.

 

 ---------------------------------------------------------------

 

 “자~ 얘들아~ 일단 비를 피할 곳을 찾자~!”

 “응으으으...... 언니.......”

 

 차가운 비바람에 아이들은 잘 울지도 못했다.

 수빈이 이끄는 대로 따라 어느 민가로 일단 들어갔다.

 

 “으아아앙~!” “꺄아아아앜-!” “아앙~! 무서워~!”

 

  아이들이 널부러진 그 집 주인들의 시체를 보고는 자지러지게 울었다.

 수빈이 아차싶은 마음에 아이들에게 눈을 가리라고 말하며 방안을 살펴보았다.

 가장 큰 방은 집주인인 듯한 남자의 뜯어먹힌 시체와 피로 범벅이었다.

 안채의 건넌방이 조금 멀쩡하여 아이들을 그리로 옮기는 데 마당에 아이들을 놀라게 한 시체가 음침한 소리를 울리며 슬금슬금 일어나고 있었다.

 

 “끄으으으으으........”

 “어........ 어..... 언니...... 언니........”

 

  수빈이 공포에 짓눌려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의 반응을 보고 자기 등 뒤의 상황을 대충 짐작했다.

 바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새는 불붙은 땅위로 비구름을 데려 온단다.

  불붙은 새는 악인의 땅위를 남기지 않고 태워버린단다.

  밝은 눈의 새는 한울님의 심판에....... ”

 “푸~우웈-----!”

 “끄으으으.......”

 

  귀갱시의 등 뒤에 해명의 철극이 박혔다.

 등뼈를 부수고 들어가 염통에 깨끗이 들어갔다.

 낡은 나무 쩌귀(경첩)문이 여닫히는 소리를 내며 귀갱시는 다시 주저앉았다.

 수빈이 동그랗게 눈을 뜨고 귀갱시 뒤에 서있는 해명을 보았다.

 

 “너무 힘을 소진하시는 것 같아서요. 조금 도와드린 것뿐입니다.”

 “.......”

 

  미운 사람, 고운데 없다고 그 미운 사람의 갑작스런 도움에 수빈이 고맙다는 말도 못하고 있을 때 해명이 되레 치고 들어왔다.

 

 “저도 같이 비 좀 피하게 해주세요. 찬비를 너무 맞았나 봐요. 으스스하게 몸이 떨리네요.”

 

  피투성이 안방과 아이들이 있는 건넌방의 사이마루에 해명이 비를 피해 들어왔다.

 수빈이 아이들이 있는 건넌방 문 앞에 가 앉아 해명을 가려주었다.

 이미 몇 번이고 싸움을 벌여 핏물을 뚝뚝 흘리는 철극에 아이들은 귀갱시 요괴만큼이나 해명에게 겁을 먹고 있었다.

  그걸 아는 수빈이 방문을 막아 아이들의 동요를 막으려 했고 해명도 그걸 아는 관계로 장난을 치고 싶어 했다.

 

 “오빠가 여기서 비 좀 피해도 되지? 되지? 얘들아?”

 

  약간 크게, 위압적으로 아이들에게 말하자 아이들이 겁먹고 눈도 안 마주치려고 했고 수빈이 언짢은 눈빛으로 해명을 노려보았다.

 해명은 그런 수빈을 여전히 미소로만 응대했다.

 

 “비 피하는 걸로 그리 화를 내시면 네가 너무 서운해요. 수빈님, 헤헤헤헤.....”

 “내가 비 피하는 것 때문에 당신에게 화내는 것 같아요?”

 

  해명의 능청에 수빈이 말려들지 않았다.

 여전히 노려보며 해명의 무차별 살인를 책망하는 무언의 항의를 보내고 있었다.

 마치 밤처럼 어두운 아침에 수빈은 해명이 다가오는 만큼 멀리 도망쳐서 둘 사이의 거리를 조금도 좁히려고 하지 않았다.

  해명은 그래도 자신의 힘이 필요한 상황이니 수빈이 거리를 둘망정, 자신을 떠나지는 못하리라는 예측으로 수빈을 계속 자극하고 있었고 부정적 감정으로나마 수빈에게 인상을 남기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창경궁 집결이라고.....?”

 “정말 도성 안을 이리 피바다로 만들다니.... 어느 놈인지.....”

 

  해명, 수빈이 쉬고 있는 민가를 끼고 도는 골목 끝에서 여럿의 사람들이 두런대는 소리가 났다.

 해명이 차갑게 식은 눈으로 골목 끝을 주시했다.

 

 “해명! 하지 마요! 절대 용서치 않겠어요! 움직이지 마요!”

 “말씀드렸잖아요. 전 정보를 가지고 창경궁으로 가는 인원을 최대한 줄일 거라고요.”

 “나도 아무 말 안할게요. 저들은 그냥 보내줘요. 해명! 부탁이에요!”

 “......”

 

  생글거리며 수빈의 마지막 부탁의 말에 해명을 대답을 안했다. 그러나 굳이 반드시 죽이겠다고 반박하지도 않았다.

 그저 웃을 뿐인 해명에게 수빈이 뭐라 한 마디를 더하려는 때 스무 명 정도에서 조금 모자란 인원이 민가 안에 마루에 앉아 있는 수빈과 해명을 보았다.

  말을 타고 있는 인솔장교가 말 아래 있는 당파창을 들고 벙거지를 쓴 쾌자차림의 병졸에게 작게 뭐라 하자 그 병졸이 방안에 수빈과 해명에게 말을 걸어 왔다.

 

 “자네들은 뉘시오?”

 

  병졸이 확인을 명받았는지 물어본 후 해명과 수빈을 곁눈질로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다.

 해명은 아무 말도 안하고 입 꼬리를 올리고 미소만 짓자 수빈이 황급히 마당으로 뛰어내려와 병졸의 물음을 받았다.

 

 “저희는 이 난리에 피난을 하고 있는 와중이온데 잠시 피로하여 이 집에서 쉬고 있사옵니다.”

 

  남자는 대청마루에 멀건이 누워 비웃는 듯한 미소만 짓고 있고 여자는 아예 버선발로 뛰어내려와 허리를 직각으로 숙여 임금님이라도 뵈는 듯이 공손하게 대답을 했다.

 묘한 부조화에 미심쩍은 느낌이 들긴 했지만 집결령으로 가는 길이 바쁜 병졸과 장교는 더는 물어볼 생각을 못했다.

 

 “그러시우? 어서 마루로 올라 가시우, 차가운 비를 너무 맞으면 젊은 처녀 몸에 해롭소.”

 

  병졸이 더는 묻지 않고 비를 피하라고 수빈에게 배려해주었다.

 수빈이 꾸벅, 허리를 다시 굽혀 인사하는 찰나에 말을 타고 있던 인솔장교가 마루에 걸터 누워있는 해명의 손에 잡혀있는 철극을 보았다.

 쇠빛 광택이 은은한 철극을 빗줄기속에서 본 장교는 해명을 손가락으로 지적하며 물었다.

 

 “그 뒤에 사내,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해명의 비웃듯 올라가있는 입 꼬리가 더욱 위로 올라가며 손을 들어 손에 쥔 사술 상우극, 철극을 보여주었다.

 

 “너는 군졸도 아닌 것이 어째서 그런 병장기를 가지고 있는가!?”

 “봐요! 그냥 보내 주려고 해도 잘 안된다니까.......?”

 

 해명은 묻는 장교에게가 아니라 수빈에게 대답을 하며 쌍철극을 쥐고 일어섰다.

 

 “해명! 그만! 내가 말씀드려 볼께요. 멈춰요-!”

 “늦었어요~. 저 쪽은 이미 이쪽을 인상에 남겼어요. 할 수 없게 된 거예요.”

 

  해명의 미소지은 표정과 다른, 흉흉한 몸짓에 나름 훈련을 받은 병졸들은 괴이한 눈치를 채고 중평세(당파창을 배꼽 높이로 수평이 되게 적을 겨누는 자세)로 당파를 꼭 쥐고 해명을 겨누었다.

 훈련된 군인들답게 바로 두줄 격자로 대형을 이루었다.

 해명이 한 손에 하나씩 철극을 움켜쥐자 인솔장교가 호령을 내렸다.

 

 “이.... 놈이 역적이로구나! 전군 진보세(중평세로 걸어 앞으로 전진하는 방법)! 전진!”

 

 이미 부러진 싸릿문을 넘어 병졸들이 세날 당파창을 앞세우고 밀고 들어왔다.

 

 “어르신들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정말 잘못 알고 이러시는 겁니다. 저희는 선량한 백성이에요.”

 “시끄럽다-! 그 여자가 앞을 막거든 찔러버려라-!”

 

  마상 장교의 명령에 해명이 수빈의 팔을 잡아 뒤로 끌어 당겼다. 그리고 철극 하나를 마상의 장교에게 던지며 주술을 걸었다.

 

 “북서쪽 해지면 금잔디 바래지다

  활줄이 파고든 가는 목이 밤내 운다

  주검위의 봉분은 산자의 의무거늘

  봉분조차 못 가진 어린왕의 설움을

  이빨 드러낸 용맹의 개가 분노에 겨워 짖노라

  선풍술연격-!”

 

  맹렬하게 회전하며 날아가는 철극을 마상의 장교는 자신의 환도(둥글고 완만하게 휘어진 칼, 일본도가 대표적이다.)를 뽑아 쳐내려고 했다. 그러나 주력이 걸린 철극의 회전에 군용환도가 멀찌감치 날아가 떨어지고 마상장교의 목이 바로 이어서 환도 옆까지 날아갔다.

 지휘관의 너무나도 쉬운 죽음에 뒷줄의 병졸들이 바로 놀라 주저앉았다.

 

 “어엇-! 이게 뭐야-!”

 “해명! 그만해요! 제발!”

 

 해명이 남은 한 개의 철극을 쥐고 바로 뛰어올라 당파로 밀고 들어오는 병졸의 열을 날아가듯 넘었다.

 주력으로 아직 회전하고 있는 철극에 자신이 쥐고 있는 철극의 뒤를 내밀었다.

 바로 철극과 철극이 연결되는 순간! 주력 회전력을 살려 머리 위로 1회전시킨 철극의 위맹참격이 한 줄로 서있는 전진 병력을 가로로 줄줄이 그어냈다.

 

 “해명-!”

 “으와아아앜-!” “하이고오-!” “으....으아아..... 나... 몸이 잘렸다아아아-!”

 “으아아아아앙-!”

 

 생전 처음보는 기이주술과 그것과 연계된 공격에 열을 이룬 병사들이 한 참에 다 주살되자 뒷 줄의 병졸들은 얼이 쪽 빠졌다.

 방안의 아이들은 마당의 비명소리에 놀라, 밖이 보이지도 않는 방안에서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하지만 역시 훈련받은 군인의 반사적 행동과 투지가 그리 쉽게 꺽이지는 않았다.

 

 “너~! 이 놈~! 도성 안에서 나라의 병졸들에게 칼질을 하다니-! 그러고도 무사할 성 싶으냐!”

 

 벌벌 떨면서도 도리어 으름장을 놓는 병졸에게 해명의 철극이 직선으로 뻗어 들어갔다.

 

 “.....쏙-!-퐄-!.....”

 

 계란찜에 젓가락 들어갔다 나오는 소리가 나더니 으름장을 놓은 병졸의 배에 난 구멍에서 피와 창자가 후두둑, 쏟아졌다.

 

 “어.... 어..... 아......아이고 내 배냇뭉치...... 아이고.....!”

 “해명! 이 나쁜 놈아-!”

 “아아아아아앙~~~~~~!”

 

  수빈이 언성을 높였지만 해명은 신경도 안 썼다.

 방안의 아이들의 울음은 더욱 커졌다.

 전우가 창자를 바닥에 쏟으며 주저앉는 것을 본 나머지 열 대 여섯, 남은 병사들이 고함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를 지르며 해명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해명은 가뿐히 그들의 창에 대서며(맞서며, 대들어서 항거하며) 몸을 공중으로 날렸다.

 해명은 거대한 둥근 한자루의 칼처럼 공중에서 회전하며 춤을 추었다.

 장교를 죽일 때는 주력을 썼지만 병졸들과 싸울 때는 온전히 체술로만 싸웠다.

 두 자루의 철극이 교차하며 당파창이 잘리고 그 뒤에 숨었던 병졸들이 하나하나 무생물이 되었다.

 곧 차가운 빗속에 싸움에서 해명은 몸에서 김이 무럭무럭 솟았다.

 큰 활동량에 열이 온몸에 뿜어져 나오는 것이 눈에 보였다.

 이젠 스무 명쯤 있던 인원이 다섯 밖에 안 남았다.

 다섯은 더 해명과 맞설 생각을 못하고 무릎을 꿇고 엎드려 싹싹 빌기 시작했다.

 

 “살려주십시오!”

 

 해명은 차분한 걸음으로 걸어가 뭘 말하려나 싶더니 엎드린 다섯 중 하나의 등을 무심히 찔렀다.

 

 “엌-!”

 

 엎드린 그대로 모로 쓰러져 한 사람이 또 죽었다.

 

 “해명! 살려달라고 빌잖아요!”

 “안된다니까요? 그냥 갔으면 모르지만 이미 내가 여기 있는 걸 알았는데 이젠 살려줄 수 없죠. 당연히......”

 

  다섯은 목숨구걸도 방법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는 걸음아 나 살려라 등을 보이며 도망을 치려했다.

 용수철처럼 튀어 나간 해명의 철극에 두 사람이 다시 등짝이 열리며 바닥을 뒹굴었다.

 그 순간 수빈이 손을 뻗었다.

 

 “사는 목숨 모두는 하늘에서 오는 것,

  죽는 목숨 모두는 하늘로 돌아가는 것,

  왔던 곳과 갈 곳은 새들만이 안다네.

  청안군행진-!”

 

  흠칫 놀란 해명이 수빈이 날린 푸른빛의 기러기 떼를 피해 하늘로 올랐다.

 옆 초가집의 지붕위로 올라간 해명이 밑의 수빈을 쳐다보며 비웃듯 말했다.

 

 “저랑 싸우시게요? 이거 서운한데요? 항현님이나 이유(세조)같은 대단한 인물도 아니고 고작 저 정도의 졸개들 때문에요?”

 “생명은 모두 하늘에서 내려와요! 안 소중한 생명이 없는 거라고요!”

 

  수빈의 엄중한 어조에 해명은 일어나 달아나는 군졸 네명을 보았다.

 멀리 보며 철극을 대각 상향, 곡선 궤도로 힘껏 던졌다. 그리고 바로 주문이 이어졌다.

 

 “계절잃은 하늘없는 메어마른 골짜기에

  하얀바위 날개벌려 삭바람을 맞서노라.......“

 

  날아간 사술극이 도망치던 네 병졸의 앞 땅에 꽂혔다. 도망치는 앞에 떨어져 꽂히는 철극에 깜짝 놀란 네 사람은 모두 그 자리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펔-!”

 “히이잌-!”

 “......부모없이 서로기댄 들개들의 효후성은

  검은계곡 심골마다 피비린내 채우노라

  사술소환령-!”

 

  멀리 떨어진 해명의 주문이 끝나자 네 군졸 앞에 날아와 꽂힌 철극에서 네 마리의 귀신 개가 소환되어 튀어 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네 사람을 물어 공격했다.

 

 “컹컹컹컹컹----!!!”

 “아이고-! 이게 뭐야-!” “사람살려-!” “으아아아앜-!” “아앜-! 살려줘-!”

 

 수빈이 초가 지붕위의 해명을 향해 오른 손을 뻗었다.

 

 “새는 불붙은 땅위로 비구름을 데려 온단다.

  불붙은 새는 악인의 땅위를 남기지 않고 태워버린단다.

  밝은 눈의 새는 한울님의 심판에 공정한 증인이 된 단다.

  구름 속에 밝은 눈의 불붙은 불새야. 지금 이리 오너라.

  은조화격진-!”

 

 “두텁고 단단한 태산이 걷는도다

  귓가에 겁없고 당당한 호통친다

  하늘을 보지 않고 땅의 그늘만 찾으니

  대지의 어린 꽃을 빈틈 없이 지키노라

  대해호강기-!”

 

  불꽃의 새가 해명을 향해 날았다.

 해명이 왼손의 손 방패를 내밀어 밑에서 올라오는 불새를 막았다.

 불새가 해명의 방어강기를 뚫지 못하자 성난 수빈이 반대쪽 손을 들어 두 손을 모으며 다시 주문을 외웠다.

 

 “새는 불붙은 땅위로 비구름을 데려 온단다.

  불붙은 새는 악인의 땅위를 남기지 않고 태워버린단다.

  밝은 눈의 새는 한울님의 심판에 공정한 증인이 된 단다.

  구름 속에 밝은 눈의 불붙은 불새야. 지금 이리 오너라.

  은조화격진-!”

 

  은조화염이중격!

 두 마리의 불새가 사이좋은 원앙마냥 회오리돌며 해명의 방어강기에 부딪혔다.

 강기자체가 파괴되진 않았지만 해명을 밀어 올리는 강한 압력이 되었다.

 

 “이.... 이런 힘이 있으셨다니..... 이거 밀리겠는데...... 요.......”

 “멀리 꺼져버려-!”

 

 수빈의 분노에 찬 욕설같은 기합에 압력이 순간적으로 늘어났다.

 

 “어엇-! 이런-!”

 “우당탕탕-----!”

 

  수빈의 은조화격진의 압력에 내던져진 해명은 뒤의 초가지붕 위에 던져져 지붕을 뚫고 남의 집 방안으로 떨어졌다.

 해명을 튕겨낸 수빈의 불꽃의 새가 한양의 검은 하늘에 승천하듯 올라갔다.

 수빈이 검은 하늘로 사라진 자신의 불새를 바라보다 수빈이 고개를 내렸다.

 사방에 널려 있는 시신에 수빈은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많이 목숨이 끊어지다니...... 나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흨으으읔.....”

 

  울음조차 크게 곡을 못하고 신음하듯 흐느끼던 수빈의 얼굴에 곧 표정이 사라지고 하얗게 낯빛을 잃었다.

 그대로 두 무릎이 꺾이며 핏물, 빗물로 진창이 된 마당에 엎어져 버렸다.

 이미 귀갱시를 상대하며 상당히 소진한 기력이 이젠 한계를 넘어선 것이었다.

 비명과 기합이 교차하고 불꽃과 바람이 난무하던 마당이 한 순간에 조용해지자 얼굴이 공포와 눈물로 범벅이 된 아이들이 방에서 고개를 내밀며 부들부들 떨며 나왔다.

 

 ----------------------------------------------------------------

 

  창귀호가 공중에서 두 동작을 하며 항현과 광조를 둘 다 노렸다.

 준모는 다량의 귀갱시에게 밀려 나며 시야에서 꽤 멀리 벗어나 버렸다.

 

 “범은 범이군! 이렇게나 빠르다니.......”

 “나는 죽었는데~ 살아 즐거이 누리는 자들~! 밉다~! 밉다~! 미워~ 다 죽일터~!”

 

 범에 깃든 원귀가 맥락 없는 원한을 외치며 범은 주변의 담장과 지붕을 마구 날아다녔다.

 

 “날쌔네요. 주변 집을 이용해 우리 머리위에서 덮쳐 내리니 공격각이 잘 안나와요.”

 

 고개를 끄덕이며 항현이 광조의 상대 공격분석에 추임을 넣으려고 할 때 뒤에서 말 우는 소리가 났다.

 

 “히이이이잉~!”

 

 항현이 빗속을 돌아보자 말 한필이 등에 무언가를 얹고 터덜터덜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광조! 내가 말을 가져오지. 잠시만 혼자 버티게!”

 “옛!”

 

  항현이 빗속을 뛰어가 말고삐를 붙잡은 뒤에 말 등에 있는 것이 뭔지 알았다.

 목이 어디론가 사라진 사람의 시체였다.

 항현이 그 시체를 찬찬히 내리며 그 상처를 보았다.

 귀갱시에게 뜯어 먹힌 시체가 아니라 칼로 빠르게 잘린 상처였으나 무수히 많이 칼질을 한 듯한 부채꼴의 상처들이 보였다.

  독특한 상처의 흔적에 항현은 눈빛이 사나워 졌다.

 

 ‘놈이 가까이 있나?’

 

  말의 고삐를 쥐고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는데 광조에게 다시 창귀호가 덮치는 것이 보였다.

 항현은 등자(안장에 연결된 발잡이)를 밟고 말 위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광조와 싸우는 창귀호에게 달려갔다.

 훈련이 잘된 군마여서 그런지 범을 겁내지 않고 순순히 항현의 지시를 따라 범을 향해 달렸다.

 항현이 몸을 낮추어 사인검을 올려 베었다.

 창귀호가 사인검을 피해 흙담을 박차고 뛰어 올라 옆의 초가집 지붕으로 올랐다.

 

 “광조! 이리로 !”

 

  항현이 무릎을 꺾어 등자 하나를 광조에게 내주자 광조가 등자를 밟고 범을 쫓아 하늘로 솟구쳤다.

 창귀호는 이제껏 싸움에는 일단 머리 위로 올라가면 다음 공격까지 쉴 시간을 벌었는데 광조가 지붕위로 쫓아오자 적지 않게 당황했다.

 당황해서였을까?

 광조가 공중에서 그대로 몸을 회전 시키며 던진 둔중한 공중돌려차기를 창귀호는 너무 어이없이 얻어맞고 그대로 지붕에서 떨어졌다.

 두 길(1길=1.8m 2길= 3.6m) 좀 안 되는 지붕에서 떨어져 어리벙벙한 호랑이의 옆구리에 그대로 칼이 날아와 박혔다.

 항현이 던진 사인참사검이었다.

 

 “흩어진 악을 쫓아 귀인의 범 떼를 푸노라,

  하나가 쫓아 잡아 악을 하나 찢었도다.

  귀인천망격-!”

 “펔-!”

 

  칼이 박힌 상태로 부름의 주, 천망격을 시전하자 창귀호의 내부에서 귀신호랑이가 나타나며 그대로 창귀호의 몸이 터져버렸다.

 깃들 몸이 없어지자 창귀호를 조종하던 원귀또한 서러운 귀곡성을 남기고 조용히 사라져갔다.

 

 “으허허헝~”

 

 광조가 지붕에서 뛰어 내려 항현에게 걸어왔다. 항현또한 말에서 내려 터져나간 호랑이의 몸통 반쪽에서 사인검을 뽑았다.

 

 “후배님, 여기 부림을 한 귀신호랑이와 함께 준모를 도와요.”

 “선배님께선......?”

 “이 말 위에 있던 시체의 흔적이 좀 마음에 걸려서....... 확인만 하고 바로 다시 와 돕겠소!”

 

 항현이 광조에게 얘기한 순간, 하늘로 불의 새 두 마리가 검은 구름 속으로 승천하며 사라졌다.

 

 “불의 새!”

 

 광조도 항현도 저 불새가 누구를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불새를 확인한 후 광조가 도리어 항현을 등 떠밀었다.

 

 “가세요! 선배님! 여기는 준모선배와 같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항현이 광조와 눈빛만을 교환한 후 바로 다시 말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불새가 하늘로 올라간 위치를 눈대중으로 셈하며 거미줄같은 골목으로 말을 몰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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