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멸암의 최하층, 윗층의 해명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에 비해 항현과 준모는 크르릉대는 징옥을 쳐다보며 한가롭게 앉아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피곤하긴 한데....... 잠을 잘 수가 없네......”
퀭한 눈을 한 준모의 묘한 푸념에 항현이 피식 웃어 버렸다.
“형님, 그냥 없애 버리죠. 이미 죽은 시체잖아요? 확실히 못 움직이게 끝내버리고 푹 자고 일어나자고요.”
준모가 항현에게 아이가 군것질거리를 조르듯, 조르자 항현이 뒤를 돌아보았다.
광조도 말은 안 했지만 내심, 움직임이 없을 때 아예 끊어 버렸으면 하는 눈치였다.
다만 안견은 뭔가를 시험하는 학자같은 눈으로 항현을 쳐다보고 있었다.
항현은 입가의 웃음을 지우고 단호하게 직접 조른 준모와 은근히 바라는 광조에게 일침을 놨다.
“동생, 후배, 내 말 잘 들으시게, 우리는 조정의 의리와 무가의 선배에 대한 예우로 이분이 힘을 잃은 지금, 치지 않기로 결심하였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시 몸이 졸립다던가, 마음이 불안하다던가 하는 일신상의 하찮은 이유로 우리의 결의를 훼손하진 마세나. 만일 두 사람이 염려하는 상황, 이 분에 의해 어려운 일에 빠지는 일이 있게 된다면 내가 다시 싸우겠네. 아직 내겐 여력이 있으니 한 번은 더 싸워 볼만하다고 생각하네......”
“.......”
“.......”
준모와 광조가 항현의 정론을 듣고 더는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자 항현이 끊어 말을 맺었다.
“초심의 결의대로! 알겠나?”
“...... 네.......”
“...... 예.......”
둘이 힘없이 대답하자 항현은 뒤에 벽이 아직 남아있는 곳으로 가 등을 기대고 앉았다.
준모와 광조도 자신들의 무구를 챙겨 항현과 마주 보며 앉았다.
안견이 그런 항현과 두 사람을 보며 미소 지으며 말했다.
“편의보다 정의라...... 자네는 성리학의 이상인 군자로구만.”
“아닙니다. 군자라면 고민이 없었겠지요. 하지만 저도 완전히 죽여야 하지 않나하고 고민을 했습니다.”
준모와 광조가 귀를 쫑긋 세우고 항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잘 꼬시면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저 괴물을 조용히 시키고 일 하나를 편하게 정리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저 괴물이 이미 힘을 잃어 치지 않는 것이 일반 상식에 의한 정의, 수오지심이라면 저 괴물이 깨어났을 때 닥칠 어려움을 미리 예상하고 지금 힘이 없을 때 처리하는 것이 상황을 비교하여 더 나은 것을 선택하는 시비지심이지요.”
“두 단(端)이 부딪혀 갈등하였는가? 그런데 어찌해 지금과 같은 판단을 하였는가?”
항현이 안견의 눈을 직시하며 대답했다.
“전 일에 뵈온 지장보살이 되신 안평대군께옵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수오와 시비가 부딪히면 측은지심에 물어보라고요.”
“!”
“이징옥이란 무인은 평생을 자신이 나온 나라의 방위를 위해 혼신을 다하신 분이시온데 정권이 급변하는 상황을 만나 역적이란 정치적 손해를 입으시고 해를 당하시어 이리 되셨습니다. 존경할 만한 분이 이리 되신 것에 측은함이 없을 수가 없었습니다. 수오와 시비로 갈등이 생겼을 때에 판단하는 방법에 대한 지장이 되신 분의 지혜를 믿고 더는 손대지 않은 것입니다.”
안견이 자신을 직시하는 항현의 눈을 바라보다 고개를 떨구며 대꾸했다.
“...... 그러셨는가?......”
안견의 떨군 얼굴에 묘한 미소가 번졌다.
뭔가 만족스런 표정이었다.
자신이 돕지 못하여 죽은 친구의 철학이 묘한 인연으로 이어져 그 이름을 기억하는 누군가에게 남겨졌다는 것에 죄책감을 덜었기 때문이었다.
준모와 광조는 잘 알아듣기 힘든 철학적 바탕 하에서 판단을 내린 항현을 그저 존경스런 눈으로 쳐다보았다.
굳은 의지의 한 사람과 만족감의 한 사람, 그리고 무식의 뿌리에서 피어난 존경의 꽃잎이 눈에 씌운 두 사람의 귀에 있을 수 없는 다른 한 사람의 말소리가 들렸다.
“여기가....... 어디인가.......? 내가 어디에...... 있는 게야.......?”
네 사람의 눈이 모두 소리가 난 방향으로 쏠렸다.
베어진 어깨가 반쯤 열려있는 이징옥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으로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그런 이징옥을 항현과 다른 세 사람 또한 영문을 모를, 그리고 공포가 차오르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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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명이 소병에서 뛰어나왔다.
이미 한양으로 침투시킨 귀갱시들은 주변의 민가들을 덮쳐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아아앜-!” “사람살려-!”
호드기로 귀갱시들을 조종하는 해명만이 그 난장판에서 홀로 오만한 눈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안됐다. 그러나 이유(세조)라는 파도를 운 좋게 피하고 이번에는 운 나쁘게 나라는 파도를 만난 것 뿐! 또 나라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은 자들은 또 새롭게 나타난 다스리는 자의, 나의 백성이 되겠지...... 자기의 인생에 주인되지 못한 자들의 종속된 삶이란 그런 것이지.”
“어----------흥~!”
창귀호의 포효를 들은 백성들의 너나할 것 없는 공포의 울부짖음에 해명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범이다-! 범이 동네에 들었다-!” “아이고~! 이 일을 어쩌누~!”
조선의 치안 조직은 기본적으로 육모방망이를 들고 야경을 도는 순라꾼, 그리고 관아에 대기하고 있다가 강력사범(칼이나 흉기를 소지한)이 있을 경우에 순라꾼의 요청으로 출동하는 창군과 활군, 궁수로 되어 있었다.
어지간하면 창군이 출동하는 시점에 상황은 종료 되었다. 그러나 그날 밤은 사방에서 창군을 요청하는 순라꾼의 보고가 올라왔다.
“방망이로는 택도 없습니다! 갑자기 달려들어 사람이 피가 나도록 물어 뜯어요!”
“뭐가? 범이?”
“아니요! 사람이요!”
“사람이, 사람을 물어 뜯는다는 말인가?”
“예-! 육모방망이로 개 패듯 패 봤는데 택도 없습니다! 가만히 시킬 수가 없어요!”
“범은 그럼, 무슨 말인가?”
“범도 있구요~! 범과 사람이 도성 안 백성을 물어 뜯어 해를 끼치고 있습니다!”
“......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한양 서북쪽을 맡아 치안을 관리하던 우포청도 한양 동남부와 중앙을 맡은 좌포청이 동시에 발칵 뒤집혔다.
갑작스레 나타난 괴이한 사람들과 범들이 도성 안의 사람들을 여럿 죽였다는 신고가 그 새벽에 여러 건 접수되었다.
그 중에는 양민뿐만 아니라 순라꾼같은 치안 요원까지 상했다는 보고도 있었다.
인시(새벽 3시 ~5시)의 초입에 땅에서 솟아나듯 도성의 각지에 사람들이 상한다는 얘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상황, 치안을 맡은 포도청은 발칵 뒤집힐 수 밖에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임금이 계신 도성 안에서 외적의 내습이라니!”
좌포도대장 성길원이 자다가 부랴부랴 나와 급증하는 보고들을 받아보며 황망한 얼굴을 지었다.
받은 보고를 모두 통틀어 생각해본 후 성길원은 외적의 침입이라 결론지었다.
‘도대체 어느 길목으로 도성에 잠입한 것인가? 그동안 조금씩 도성에 잠입시킨 것인가? 도성 내에 수상한 집단에 대한 감찰 보고는 없었는데 어떻게...... 아니, 외적인 것은 확실한가? 사람을 죽이면 죽였지 물어 뜯는 다는 건 뭔가? 범은 또 뭐고?’
좌포장 성길원은 졸린 머리를 가다듬으며 생각을 깊게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단 상부에 보고를 먼저 해야겠다는 판단에 도달했다.
‘일단 병판 김질 대감께 보고를 올려야 한다. 추후 명을 받아 행동하는 것이 지금으로써는 가장 옳은 방법이다.’
성길원은 병사들 중 전령을 둘, 선발하여 하나는 병조판서 김질의 자택으로, 하나는 도총부 청사로 보냈다.
양쪽 중, 한 군데에는 반드시 병조판서가 있으리라는 요량에서였다.
전령의 보고는 간단했다.
“외적내습, 궁궐방어이동, 지시는 궐로 바람.”
짧은 보고를 전령에게 암기시켜 보내고 성길원은 약 70~ 80여 되는 좌포청 내부 병력을 모두 집결시켰다.
“각 종사관들과 부장들은 휘하의 병사들을 챙겨라! 지금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해있다-! 궐을 지켜야 한다-! 나를 따르라-!”
병력을 모두 당파창과 활로 강력대응 무장을 시킨 후에 그들을 이끌고 좌포청의 청사를 나왔다.
궐로 이동 중에 여기저기에서 비명과 범의 포효가 난무했다.
“주변을 신경 쓰지 마라-! 한시바삐 궐로 가야한다-!”
성길원의 지시에 병사들은 들려오는 비명을 무시하고 2열 종대로 바쁘게 뛰어 창덕궁으로 행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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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귀갱시라 그런가, 이징옥이 마치 산 사람처럼 또렷이 문장을 만들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지난 피끝마을에서 목을 든 무사 연봉우가 말을 하긴 했지만 역적을 죽이겠다, 어린 임금을 다시 세운다, 정도의 단순한 말의 반복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의 이징옥은 여기가 어디인지를 확인하고 있었고 자신들에게 대화를 걸어 왔다는 점에서 항현들에게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인생을 어디까지 기억하십니까? 장군님......?”
“자네는 뉘신가?”
항현이 정중하게 지난 기억을 묻자 이징옥은 항현의 정체를 물었다.
먼저 질문했지만 항현은 뒤에 물어 본 징옥에게 선선히 자신의 이름을 먼저 밝혔다.
“전 사용 벼슬을 살고 있는 온가 항현이라 합니다. 장군님의 크신 존명은 이미 들어 알고 있습니다. 장군님.”
“나를 아신다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항현의 소개를 듣고 인사도 들은 징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일어나려다 자신의 팔을 보았다.
어깨와 머리 사이의 승모근이 갈라져 겨우 팔이 붙어 있는 자신의 모습에 멍한 눈으로 잠시 아무 말도 못했다.
항현과 다른 이들도 섣불리 말을 할 수가 없어서 그런 징옥을 바라만 보았다.
“...... 그래...... 나는 죽었었지...... 회령부의 정종이 놈이 바친 술을 마시고......”
멍한 눈의 이징옥이 머리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갑갑한 지하실의 천장에 이징옥은 가만히 눈을 두었다.
천장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지난날의 인생을 바라보는 먼 시선이었다.
잠시간의 시간을 그리 서 있다가 대뜸 항현을 향해 한마디를 던졌다.
“......방금 전에 들은 말 같은데, 내게 측은지심이 동했다고 했나.....?”
“기억이 나십니까?”
항현이 얼굴이 상기되어 되묻는 식으로 대답을 했다.
징옥이 얼굴이 벌개진 항현을 보고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나에게 측은지심을 갖다니 내 값이 많이 떨어졌던가 아니면 네 놈이 매우 뛰어난 무장이거나 둘 중에 하나렸다!”
“......”
농인 듯, 퉁인 듯, 한마디 던지자 항현이 대꾸를 못했다.
무장으로써의 대 선배다보니 놈 자를 붙여도 화도 나지 않았다.
말없이 시립한 항현에게 징옥은 싱긋 웃으며 자기 말을 이었다.
“머리 속에 기억이 드문드문 떠다니는 데 방금 네 놈과 싸운 기억이 보인다. 내 탄력참격을 맞아 내 평대도를 베어 끊고 내 어깨를 잘라냈구나. 그러면 매우 뛰어난 무장이 아닌가? 왜 대답하지 않는가? 나는 뛰어난 무장이라고......”
“송구스럽습니다.”
항현은 비꼼같은 칭찬에 부끄럽기도 하고 잘려나간 어깨가 미안하기도 하여 대꾸를 제대로 못했다.
“나를 이런 요괴로 다시 살린 건 비합, 그 중 놈인가?”
“비합을 아십니까?”
“당연히 알지, 내가 데리고 있던 자였으니...... 밤낮 요괴 만드는 법만 연구하며 여진족, 토번국(티벳) 옛날 문헌이나 뒤지던 놈이었지. 결국 제 놈 하고 싶은 일로 성공했구만...... 소재가 나라는 것이 마음에 안 들지만......”
항현이 자신의 죽음을 덤덤히 받아들이는 징옥에게 뭐라 말해야 할지 감을 못 잡아 그저 서있기만 한 가운데 징옥이 옆의 막혀있는 계단으로 걸어갔다.
“여기가 막힌 것이 자네들의 일도 막힌 것인 셈이지?”
“예.....옛......!”
이징옥이 오른 발을 앞으로 한 우선보의 자세로 자신의 오른 주먹을 왼손으로 잡았다.
평대도가 없을 뿐, 아까의 싸움에서 시전한 탄력참격의 자세였다.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선배님!”
항현의 선배라는 말에 함박 미소를 입가에 띄우며 징옥은 고개를 돌려 항현을 보았다.
“선배라...... 난데없이 후배가 생겼구만...... 후배 갈 길을 열어주는 것이 당연한 선배의 일이 아니겠나?”
“예?”
“으읔......”
왼손으로 꼭 잡은 오른 주먹이 어깨와 상박의 커다란 힘에 의해 부들부들 떨렸다.
징옥이 막혀있는, 계단의 주술이 걸린 방벽을 보았다.
“내가 쓰는 평대도의 탄력참격은 여진족의 말과 사람을 서넛 정도 한번에 다 베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었지.”
“....... 예, 충분히 그럴 거라 생각합니다.”
항현이 대답하자 징옥이 맞대거리를 해주었다.
“자네는 자네 힘에 자신을 가져도 돼! 자네는 강한 무사야-!”
“.......”
항현이 뭐라 답하기 전에 징옥의 왼손이 오른 주먹을 놓았다.
응축된 힘이 모인 오른 주먹이 바람소리를 내며 큰 반월을 그려 계단의 돌벽을 가격했다.
“쿠-----------------쾅-!”
무겁고 크게 울리는 소리가 지하실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곧 계단을 막은 돌방벽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쿠르르르르르.......”
뽀얗게 먼지가 올라오고 서서히 가라앉자 이징옥이 계단의 입구에 없었다.
항현이 계단 입구로 걸어가 보았더니 이미 징옥은 위층으로 올라가 있었다.
항현이 바로 위층으로 따라 올라갔다.
이미 연폭소병이 가동되어 음산한 요기를 발산하고 있었고 그 층에는 아무도, 무엇도 있지 않았다.
따라 올라간 항현은 어마어마한 충격에 오른 주먹이 부서져 뼈가 살갗을 뚫고 나와 검은 피가 범벅인 징옥의 오른 주먹을 보았다.
“선배님-!”
“흠...... 죽은 몸이라 그런가......? 아무런 느낌이 없군......”
“선배님-!”
항현의 외침에 징옥이 고개를 들어 항현을 보았다.
북방의 큰 장군의 목소리가 사방이 막힌 지하실에 쩌렁쩌렁 울렸다.
“너! 후배!”
항현을 지적하여 외쳤으나 항현이 징옥의 처참한 모습에 압도되어 대답조차 못했다.
대꾸를 바란 것이 아니었는지 징옥은 자기 이야기를 계속 쩌렁쩌렁 이어갔다.
“난 이미 죽은 몸-! 이제 세상이 내 마음에 안 든다고 해도 이미 내 세상이 아니다! 너! 너의 판단, 너의 수오와 시비, 그리고 측은지심을 믿어라! 너의 판단으로 세상을 구하라! 세상이 너를 버린다고 해도 네가 세상을 버리지는 마라! 그게 남보다 강한 무장의 숙명이니라!”
“선배님-!”
징옥이 어조를 낮게 진정하며 항현에게 타이르듯 말을 마저 이었다.
“...... 그래도 후배님은 복된 인생을 살았으면 하네. 나처럼 되지 말고.....”
“선배님......”
열린 계단을 따라 준모와 광조, 안견이 서서히 올라왔다.
징옥이 그들 모두를 쳐다보며 말했다.
“자~ 올라가 공들을 이루시게, 그리고 후배님...... 나는 이제 끝을 맺어주시게, 이젠 피곤하구만.......”
항현이 잠시 가만히 있다가 곧 징옥의 말을 알아듣고는 사인검을 쥔 손을 벌벌 떨었다.
그 모습에 징옥이 껄껄대며 호통을 쳤다.
“이놈아~! 남의 어깨는 반쪽을 내놓고 이제와 벌벌 떠느냐-! 하하하하~! 나는 이미 오래전에 죽은 사람이니 나를 맺어주는 것은 수오에도 시비에도 측은에도 맞는 일이다! 어찌 주저하느냐-! 하하하하하~”
호방한 꾸중에 항현이 되려 눈물이 맺혀졌다.
‘이리 멋진 사람을 죽이고, 요괴로 살리고, 그러면서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 인생이란 말인가!’
“야-! 이 놈아-! 어서ㅡ!”
징옥이 항현의 반짝거리는 눈을 보고 마음에 갈등이 생긴 것을 알았다.
그런 갈등을 깨끗이 날리는 커다란 호통이었다.
벼락같은 호통에 깜짝 놀라 항현이 고개를 들었다.
깨끗한 일갈이 항현의 가슴을 꿰뚫듯 들어왔다.
“날 편하게 해주는 일이다-! 아니 그러하냐-?! 하하하하하.......!”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항현이 울부짖듯 작별을 고하며 사인검을 두 손으로 거머쥐고 가슴에 품듯 쥐었다.
입술을 꽉 깨물고 마음을 다져 먹었다.
“와라-!”
“이얍-!”
항현이 몸을 쭉 뻗으며 사인검을 내질렀다.
사인검의 칼 끝이 징옥의 이마에 한 뼘 가까이 들어갔다 나오자 이징옥은 무너지듯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준모도 광조도 섣불리 항현에게 말을 붙이지 못하고 옆에 서 있자 항현이 둘에게 얘기 했다.
“시간이 촉박하니 몸이라도 편히 곧게 펴드립시다. 매장까지는 안 되겠지만...... 저기 부러진 평대도도 자루와 같이 가지고 오세요.”
“예!”
두 사람이 밑 층으로 뛰어 내려가 부러진 평대도와 칼의 손잡이를 가지고 오는 동안 항현이 앞으로 엎어진 이징옥을 안아 들어 뒤집어 눕혀주었다.
안견이 조심스레 다가와 손발을 곧게 펴주었다.
“내 마음과 같을 게야......”
“네?”
항현이 안견을 보자 안견이 항현에게 말해주었다.
“난 안평대군의 마음이 자네에게 이어진 것에 평안했다네, 죽은 사람이 죽음,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면면히 이어진다는 게 얼마나 위안이 되는 지...... 이 사람이 자네를 조선 최강검으로 인정하지 않았는가?”
“무슨......”
항현이 부끄러움에 얼굴을 찌푸렸으나 안견은 반론을 듣지 않고 말을 이어 맺었다.
“전(前) 조선 최강이 자네를 인정하고, 무예의 맥이 끊이지 않음을 안심하고 간 것이니 자네는 큰일을 한 것이네. 전 조선 최강이 인정한 현(現) 조선 최강인게야.”
“......”
항현이 뭐라 하려할 때 준모와 광조가 평대도를 가지고 왔다.
항현은 그것을 맞추어 가슴에 올려주고 양손을 그 위에 모아 주었다.
간단한 목례로 배례를 대신한 후 준모와 광조에게 우렁차게 호령했다.
“이제 우리는 해명을 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