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창귀호
“아~ 출출한 데...... 어머니, 집에 뭐 먹을 거 없소. 낮에 부쳐 놓은 전 부엌에 있어요?”
“왜~ 차려줄까?”
“아~! 있냐고요! 있음 내가 내어 먹음 되지. 차리긴 무슨..... 나오지 말고 누워 계슈.”
해가 막 저문 동네에 각 집집마다 저녁 식사를 마친 정겨운 온기가 서서히 식어가는 때였다.
전대의 뛰어난 군주(세종, 문종)의 정성어린 행정의 여파가 나름 풍요로운 정경을 만들고 있었다.
그런 시골의 정경중 한 집에 젊은 덩치 하나가 자기 집 마당에 나와 배가 고프다는 투정을 늙은 어미에게 부렸다.
차려주겠다는 어미에게 미안한지 자기가 차려 먹겠다고 짧게 퉁을 놓더니, 방 안의 호롱을 들고 다시 나와 부엌으로 들어갔다.
“담가 놓은 모주가 어디에~ 있나~”
흥얼흥얼, 입에 단 것, 군것질을 할 생각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항아리에 담긴 모주를 표주박으로 떠 큰 대접에 가득 담기게 채우고 한지 깔린 싸리 채반에 소담하게 담긴 야채전을 집어다 작은 쟁반에 담아 가지고 나왔다.
‘모주 한잔에 구수하게 삶은 돼지고기 수육이 제격인데......’
속으로 아쉬운 생각을 하면서도 계란옷 두텁게 입은 야채전으로도 기분이 나쁘진 않은 지 가슴 팍에 소중히 품고 부엌에서 나왔다.
‘돼지고기생각을 해서 그러나...... 어디서 구수하고 노릿노릿한 냄새가 나네.’
방안에 전과 술잔을 놓고 다시 부엌에 들어가 초를 가지고 나오는 데 노린내가 더욱 강하게 났다.
‘원~ 제길 어느 팔자 좋은 집구석이 이 야밤에 돼지고길 구워 포식하는지 모르겠네. 먹다 얹혀 죽었으면 좋겠구만.’
속으로 샘이 나 악담을 툴툴대며 부엌 문을 닫고 나오는 데 눈앞에 솥뚜껑 같은 검은 것에 등잔 두 개가 있는 것이 보였다.
강렬한 노린내가 어딘 가에 좋은 팔자 집구석이 아니라 눈앞의 이것에서 나오고 있었다.
“크르르르르.......”
밤중에 눈으로 봐서는 뭔지 모를 것, 그것에서 나오는 효후 소리로 그것이 뭔지 알았다.
“히이이이잌-! 범이다.”
손에서 초가 떨어져 불이 맥없이 꺼졌다.
마당에서 아들의 큰 소리를 들은 어미 놀라 뛰쳐나왔다. 그러나 같이 놀라는 것 말고는 다른 수가 없었다.
“히익-! 이....이게 뭐야!”
늙은 어미는 마당을 가득 채운 짐승의 몸통을 보고는 주저앉아 버렸다.
너무나 거대한 질감에 압도되어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어흥-!”
포효에 가난한 초가의 장지문이 떠르르 떨렸다.
주저앉았던 늙은 어미는 그 자리에서 눈에 흰자를 보이며 혼절했고 아들놈은 범이 들어와 막고 있는 싸리문으론 못나가고 돌을 얼기설기 쌓아 놓은 뒤에 돌 담을 기어올라 도망치려 했다.
그런 아들놈에게 범은 천천히 다가가 오른 앞 발가락에서 발톱을 꺼냈다.
“휘-잉-!”
“콱!”
“아이-고!”
범은 앞발을 휘둘러 담을 넘던 사내의 왼 종아리를 후려쳤다.
발톱을 세우고 휘두르자 사내의 왼 종아리에는 고랑이 줄줄이 파이고 고랑마다 시뻘건 선지피가 쏟아져 내렸다.
그 뜨거움에 사내는 돌담 바깥으로 몸을 던졌다.
담 아랫 길에 주저앉아 자신의 후끈대는 발을 보고는 통곡이 흘러나왔다.
“아이고 이 피! 사람살려~!”
사내는 무서워 울며, 절뚝대며 밤길을 걸어 도망쳤다.
“콰르르르르......”
요란한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방금 자신이 넘어온 담을 허물어뜨리고는 범이 홀짝 뛰어 나왔다.
“히이이이익~!”
사내가 도망치려는데 뒤에서 사내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웅퉁이 너 이놈...... 서라...... 댓가를 받으라......”
앞선 사내가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제야 사내는 그것이 예사 짐승이 아님을 깨달았다.
저벅저벅 걸어오는 범의 주변에 불덩이가 날아다니고 그 위로 사람의 형상이 있는 데 음산함과 기괴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범의 등짝 어름에 있는 사람형상의 낯은 익히 알던 모습이었다.
“여......영우형, 영우형...... 나......난 아니우......”
“네 놈..... 숨을 내놓아라..... ”
“아.....아이고...... 형님, 어쩔수 없었소. 윗 전에서 시키던 것을 낸들 어찌 하오.”
“네 놈...... 목숨을 내어라. 니깟 놈 말, 필요 없다. 흐흐흐흐흐.........”
웅퉁이라 불린 사내가 절뚝거리며 도망치고 있었고, 뒤의 창귀호는 한 모둠 뛰어 박살낼 수 있는 지근거리에서 웅퉁이를 느긋하게 쫓고 있었다.
곧 웅퉁이는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되고 아랫도리는 피로 범벅이 된 채 땀이 뻘뻘 나도록 쫓기고 있었다.
“영우형...... 영우형....... 살려주시오. 살려주시오. 엉~ 엉~ 내가 잘못했소. 살려주시오.”
절뚝대며 쫓기는 웅퉁이는 창귀호가 바로 죽일 수 있음에도 천천히 자기를 몰아 대기만 하며 죽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 차렸다.
살살 가지고 놀며 일종의 폭행을 가하는 것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으나 두 눈에 붉은 불이 번뜩대는 맹수와 그 등에 귀신이 붙어 있으니 도망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흐흐흨~ 영우 형 살려 주시오. 살려 주......”
마을에서 빨래터로 쓰는 개울가 끄트머리까지 쫓긴 웅퉁이는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피와 땀을 너무 흘렸기 때문에 더 이상은 걸을 수가 없었다.
“으으...... 형...... 영우형 제발 살려주시우........”
“너는 핏줄은 달라도 나와 형아, 아우야하며 절친함을 넘어 형제처럼 지냈다.”
“살려 주시우....... 살려 주시우........”
웅퉁이는 지쳐 정신도 없는지 넋두리처럼 살려달라는 말만 계속 반복할 뿐이었다.
“너는 내 누이와도 오빠야, 누이야하며 친남매처럼 지냈다.”
“흐흐흑~! 내가 잘못했소. 정말 잘못했소. 살려만 주시오. 흐흐흑~!”
호랑이의 눈과 사람 그림자의 눈이 같이 빛났다.
“그리 가깝게 지낸 네 놈이 우리 남매에게.......어찌 그랬느냐........”
“크르르르......”
“으....... 으....... 사...... 살려주시......”
“크왕-!”
“아아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