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언문주
각방에서 그날 밤을 보낸 다음날 일어나 쇠산고을 관아의 현령을 만났다.
동헌 안, 소장를 간수하는 행랑을 응접실 삼아 현감이 넷을 맞아 들였다.
“어제 밤에 도착했다 들었네. 손님이 들었는데 집주인이 잠만 자고 있었다니 부끄럽네. 부디 책망하지 말아 주시게.”
“아니올시다. 되려 밤늦게 들이닥친 무례를 눈감아주시니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허허헛흠...... 그래~ 어제 늦은 밤에 검시를 했다 얘기를 들었네. 어떻든가?”
현감의 물음에 항현이 대꾸를 했다.
“호환으로 죽은 시체이며 다른 기이한 점은 이제껏 보지 못한 주문같은 것을 몸에 그려 놓은 것만이 특이한 일이옵니다.”
“그럼, 이 사안은 그렇게 결론이 난 것인가? 끝난 것이야?”
현감이 기대에 찬 어조로 재차 물었다.
그 말하는 품에 항현이 의구심을 품었다.
“전반적인 수사는 끝이 났사오나 이 주문은 타인을 저주하기위해 자신에게 모진 일을 하는 자학의 주문이옵니다. 이 자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를 안내해 주시옵고, 이 자가 누구인지 말해주소서.”
“......”
현감이 갑자기 입을 다물자 옆에 있던 고을의 이방이 나서서 대신 대답했다.
“아...... 그건 사또 어른께옵서 잘 모르실 것 이온데, 저 동구 밖에 움막을 치고 사는 영우라는 아이요. 동네의 전답에 거름 주고 돼지 잡는 잡스런 일을 도우며 먹고 사는 아이올시다.”
“그런 아이가 어찌 이리 되었는지 혹시 모르시오? 말씀드렸다시피 이 주문은 자신의 몸을 산짐승에게 먹이로 던져 주는 독랄한 기법이오. 아주 큰 원한이 있는 것이 분명한데 마을에 알려지지 않을 리가 없소. 혹시 모르시오.”
“헛허~ 마을에 같이 쓰는 머슴 놈이 한을 품을 만한 일을 어찌 알겠소. 설령 한스런 일이 있다고 해도 그리 별 일이겠습니까?”
고을 아전이 고압적이고 비웃듯 대답했다.
은근히 노기를 넣어 높은 어조로 질문따위는 하지 말라는 듯한 얘기에 항현의 가슴에서 노기가 올랐다.
갑자기 언성이 높아지고 말이 빨라진 이방에게 한마디 하려는 때 뒤에 있던 혁춘이 소매를 슬쩍 당기며 보이지 않게 제지했다.
항현은 그 신호에 의아했지만 더는 대거리하지 않았다. 그래서 필요한 것만 요구했다.
“알았소이다! 그렇담, 시신의 발견 장소로 안내해 주시오. 어서 가보고 조정에 보고를 해야겠소.”
항현이 조정에 보고하고 곧, 일을 마칠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자 아전들이 서둘러 항현과 일행을 현장으로 옮기려고 했다.
“내가 맨 먼저 본 사람이요. 내가 모셔갈 수 있소!”
검지가 나서자 아전들이 항현을 뭔가 바라는 듯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일행 중 현장을 아는 사람이 있으니 같이 가지 않으셔도 되겠소이다.”
“아이코~ 그렇습니까? ......뭐...... 예~ 그럼, 그리하겠나이다.”
범 나오는 산에 안 따라가도 된다니 이방과 다른 아전들이 신나는 목소리로 답장단을 맞추었다.
약간의 요깃거리를 마련하여 주자 네 사람은 곧, 쇠산골 관아를 나와 마을 뒤를 두른 병풍같은 산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저 놈들, 뭔가 감추는 것이 있지?”
혁춘이 한마디하자 항현도 말을 받았다.
“그리고는 위압하여 말을 막으려 하더군요. 분명, 숨기는 것이 있다는 게지요.”
“그걸 일단 알아야하는데 억지로 털기보다는 상황을 재며 움직이세.”
“저도 아까 소매를 당기신 것이 그 뜻인줄 알았습니다.”
혁춘이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검지의 안내를 따라 갔다.
검지와 혁춘은 걸음질이 익숙한 사냥꾼인 만큼 산을 오르는 걸음이 날랬다. 허나 큰 산은 아니었지만 큰 나무와 잡목들이 꽤 우거지고 산과 산이 면해 급한 언덕을 많이 만들어서 그런지 다른 두 사람에게는 제법 걷기가 수월찮았다.
“괜찮으십니까?”
항현의 살핌에 수빈은 미소로 답을 해주었다.
“꾸준히 눈으로 땅을 살피며 걸으면 못 걸을 길은 아닙니다. 걱정마세요.”
험함이 목숨을 위험할 만큼은 아니지만 땀은 확실하게 뺄 만큼 험한 길을 제법 걸은 후에 네 사람은 현장에 도착하였다.
“바로 여깁니다! 이 곧 이 벽처럼 깍아 지른 절벽 아래에 사람이 놓여 있었어요.”
검지가 안내한 현장이라는 곳에는 흙과 돌의 무더기위에는 확실히 핏자국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이 바랜 색의 흔적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주변에 꽤 넓게 핏자국이 흩어진 것을 본 항현은 그 피 튄 자국을 찬찬히 살피더니 절벽의 위를 쳐다보았다.
절벽을 따라 피가 위에서 아래로 튀어 흐른 자국도 또렷했다.
“저 위에서 떨어졌군요.”
“그래, 어제 시신을 봤더니 확실히 범에 입을 탄 사람 몸이더군. 면상에 앞발로 일격을 가한 후 목 뒤를 물어뜯어 절명시킨 후 배를 갈라 내장을 싹 핥아 먹고 팔 하나를 씹어 먹은 후에 나머지는 다음 끼니에 먹으려고 남겨 둔 ....... 그런 꼴이었네.”
항현은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더니 위로 올라갈 길을 찾았다. 검지가 그런 항현에게 길을 일깨워 주었다.
“이 절벽은 보기에는 바로 위지만 저 위로 가려면 이 산자락을 빙~ 돌아 올라가야 해요.” “그럼 어서 갑시다. 꾸물댈 것 없소!”
“나 참, 산자락을 빙~ 돌아 오르면 우리 발걸음에 해가 지기 전에 산을 벗어 날수 있을지 장담을 못하겠단 말이요. 잘못하다 산을 하산하기도 전에 해가 지기라도 하며......”
“하면?”
“지금 우리가 조사하는 게 뭔지 잊었소! 재수 없으면 밤에 산군만난 우리 시체 보러 또 다른 도성사람이 올수도 있단 말이오!”
“아!..... 그럼 걸음을 재촉합시다. 내일 또 오를 수는 없잖소.”
자신들이 호환의 희생이 될수도 있다는 검지의 지적에 항현이 서둘러 길을 잡아줄 것을 재촉하자 검지는 잠깐 어이없다는 눈으로 항현을 빤히 보더니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곤 앞장서 나아갔다.
해가 날에 가장 높은 점에 올랐을 때 넷은 관아를 출발할 때 싸온 떡과 엿등, 약간의 요기 거리를 꺼내어 씹으며 큰 나무 그늘아래에 자리잡고 앉았다.
“어제 말하던 것 말인데요.”
이번엔 항현이 혁춘에게 먼저 말을 붙였다.
“응? 뭐 말인가?”
“금상(현재의 임금)에 대한 얘기 말입니다.”
혁춘이 한 쪽 눈썹을 찡그린 묘한 눈으로 항현을 쳐다보았다.
“왜? 흥미가 생기는 가?”
“그게 아니라......”
항현은 어제 혁춘의 느닷없는 정부 비판에 살짝 곤혹스러움이 있었다.
듣는 귀가 너무 많았던 것이다.
아무리 시골 관아의 아전들이라도 다리 없는 말이란 생각지도 못할 만큼 멀리 뛰어 가기도 하고 빠르게 날아가기 한다.
공연한 오해로 죽을 수도 있는 것이 반역, 역적죄이니 언제나 조심하는 것이 옳다. 더구나 자신들은 조정에서 부정하는 괴력 별자들이니 꼬투리가 될 만한 일을 만들어 봐야 좋을 일이 없으리란 생각이었다.